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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가는 길
숲은 연기로 자욱했다. 연기는 빽빽한 수림사이를 비집고 꾸역꾸역 퍼져나갔다. 뿌연 연기 속에서 희꺼먼 물체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급히 빠져나와 모습을 들어냈다. 산발처럼 헝크러진 쪽진 머리. 아무렇게 걸치고 묶은 치마저고리. 그러나 초점없이 허공을 쏘아보는 눈초리는 분노와 절망감에 타고 있었다. 여자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보일 듯 사라졌다. 여자는 돌투성이인 산길을 쓰러질듯 몇 발자국을 걸어 내려와 계곡으로 돌출된 바위절벽 끝에 풀썩 주저앉았다. 쑥쑥 자란 전나무들이 생흙이 파여 뿌리를 들어낸 체 급경사 기슭에 위태롭게 서있다. 여자는 산 아래 선운리 마을을 회한에 찬 눈으로 물끄럼히 내려다보다가 어께를 들썩이며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목이 쉬어 울음소리가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때 생솔이 타는 연기와 화기에 놀란 까마귀 떼가 숲에서 까맣게 떠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으악!으악!으악!으악!"
새들이 저쪽 산 너머로 사라진 허공을 망망히 쳐다보는 여자의 눈에 새들의 날개 짓은 세상을 먼저 버린 藝人들이 ‘오라, 빨리 오라.’는 수천수만 개의 열화같은 손짓으로 보였다. 이윽고 여자는 머리와 옷매무새를 대강 손질하며 정자세로 고쳐 앉았다. 눈빛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요했다. 여자는 잠시 목소리를 고른 후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육자배기였다. 잠긴 목구멍을 애써 빠져 나오던 둔한 소리는 차츰 제 기력을 회복하여 탁한 듯 청아한 소리로 울러 퍼졌다.그때 여자의 등 뒤까지 퍼진 연기 속에서 갑자기 시뻘건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노한 악마의 저주처럼 불길은 맹렬한 기세로 잡관목을 휩쓸어 태우며 무섭게 사방으로 번져갔다. 그러나 여자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구슬픈 소리는 신이 들린 듯 더욱 흥이 올라 계곡을 쩌렁쩌렁 울렸다. 끝내 불길이 여자의 몸을 휘감았다. 여자는 간지러운 듯 교태롭게 비틀면서 몸을 편안히 불길에 안겼다. 불길이 여자의 몸을 핥으며 교묘히 더듬자 곧 그녀의 몸은 폭발하듯 점화되어 횃불처럼 타 올랐다. 드디어 여자와 불꽃이 어울려 한 몸이 된 것이다. 춤추는 그 불꽃 속에서 여자의 남도소리는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산 아래 마을로 흘러갔다. 불길은 곰소만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떠밀려 벌써 산 전체로 번졌고 산은 하나의 장대한 烽火가 되어 활활 타고 있었다. 산불은 이상하게도 인접한 계곡이나 산으로는 번지지 않고 오로지 그 봉우리만 태우고는 저절로 꺼졌다.
그 후 동백꽃이 질 때쯤이면 폐허로 변한 도솔봉에서 탄내가 썩인 바람결에 실려 여자의 노래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그러나 그 봉우리가 수년후 다시 자란 나무들로 울창한 제 모습을 회복했을 때부터는 들려오지 않았고 그 노래 소리는 곧 마을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나는 막 떠날려는 14시55분발 고창행 고속버스에 앉았다. 버스에는 빈자리가 띄엄띄엄 보일만큼 승객은 거의 찾다. 그들은 모두 눈을 감거나 신문을 보거나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등산모임의 전세버스를 제대로 탔으면 동료들과 캔맥주도 까고 잡담하며 갔을텐데 혼자서 심심하게 갈 수 밖에 없게 됐다. 전북 고창 선운산으로 등산간다는 전언을 받고 오늘 약속장소로 나갔으나 버스는 이미 출발해버리고 없었다. 고이한 친구들!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이지. 나는 출발시간 보다 늦게 도착한 내 잘못을 탓하기보다 정시에 미련없이 출발해 버린 동료들에게 공연히 투덜거렸다. 버스가 사라진 텅 빈 장소를 보고 집으로 그냥 돌아갈까 했다. 그러나 돌아서려는 그때 고속버스를 타고 오라는 동료의 간곡한 전화를 받고 마음을 바꾸고 고속 터미날로 왔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가슴 속에 묻혀있던 오래된 한 이미지가 지금 올올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옛날에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처음 읽고 나서 웬지 속이 쓰라리고 목이 메인 적이 있다. 말라비틀어진 동백꽃 한 송이와 늙은 주모의 목쉰 남도소리가 대비되면서 그 주모에 대한 형연할 수 없는 슬픔과 연민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주모는 시인인 형상한 가공의 인물일 수 있는데도 실존 했던 사람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주모의 모습은 이 시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표상하며 남아있는 자들의 무심함을 일깨우는 서러운 잔상으로 남았다. 나는 옷깃을 여미며 순교자의 흰 피 같은 막걸리 한 잔을 들고 주모의 목쉰 육자배기가락을 아프게 바라보고 싶었다.
나의 정중한 청에 마침내 응한 주모는 낡은 초가 주막안에서 학처럼 고고히 소리를 뿜어 화답할 것이다. 그것은 쇄락해 가는 과거, 도태되는 전통을 마지막으로 葬送하는 무대에서 남는 자와 가는 자간에 주고받는 최소한의 예의와 긍지일 터이다. 아마 선운사 고랑에는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막걸리 한 사발에 저절로 흥이 돋아 신들린 듯 절창을 내뿜는 저자거리의 藝人, 그 주모의 처연한 육자배기 가락이.....
버스는 고속도로 전용 차로를 시원스레 달리더니 천안-논산간 민영국도로 들어섰고 탄천휴게소에 잠시 쉰 후 다시 하행을 계속했다. 고속도로 옆 새 도로를 내려고 파헤쳐진 전라도 땅 붉은 황토가 단칼에 베여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체근육 같다.그 황토색갈과 늦봄 신록의 짙푸름간 대비가 처연하다. 만경평야 넓은 논 속에 여러 대의 이앙기가 왔다갔다하며 모내기에 한창이다. 이젠 농부들이 노동요를 흥얼대며 일열로 늘어서서 허리굽혀 모내기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는가 보다.
고창에 내리면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하나? 역시 산행버스를 탔으면 걱정 안해도 될 걱정이다. 모임의 회장에게 휴대폰으로 물었다. 고창에서 택시를 타고 선운사 관광호텔로 가자하면 돼! 한 2만원 나올거야... 약간의 월회비만 내면 될 일을 고속버스 표 값에다 택시비에 헛돈 많이 깨지네.
“그런데 김용원 있지? 그 사람도 고속버스로 오고 있데.”
그래? 그럼 같은 처지인 그 친구를 불러보자. 그의 번호를 휴대폰에서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그의 목소리를 확인하자 반가움에 대뜸 소릴질렀다.
“고속버스 탔어? 어디쯤 가는 거야?”
“탄천 휴게소를 지났어.”
탄천 휴게소? 나도 막 지났는데. 나보다 앞 차를 탄 건가?
“전북 고속이야. 버스회사가...”
전북고속? 내가 탄 버스도 전북고속인데. 아니 이거 혹시 같은 차 탄 거 아냐? 고개를 빼들고 뒤 좌석 쪽으로 돌려보니 휴대폰을 귀에다 대고 전북고속이라고 거듭 외치는 그의 둥근 얼굴이 승객의 어께 너머로 보였다. 같은 차를 타고도 서로 보지 못했구만! 그의 자리로 가서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하소연할 상대를 잘 만났다는 듯이 그는 어두운 표정에다 몹시 분개한 어조로 말을 터뜨렸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나한테 경로석을 주네.”
이 친구는 나보다 아마 위일 텐데 그냥 말을 놓고 지낸다. 그래서 나랑 같은 연배로 통하는데 자신을 제 나이 보다 늙게 보고 경노석을 준 버스표 파는 아가씨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털어놓았다.
“내 것도 경로석인데?”
“당신은 맨 뒤에 표를 샀으니 남은 경로석을 줄 수밖에 없지. 난 맨 처음 표를 샀단 말이야. 오늘 아침에 妻랑 등산 바지 살러 갔는데 옷 파는 여편네가, 아이구 지는 팍삭 늙은 할머니드만, 부인은 젊으신데 아저씨는 연세 좀 드셨으니 나이 차가 많아 나는가 봐요 이러는 거라. 그래 내가 넷째 마누라요 했지! 최근에 들어 갑자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단 말이야. 기분 안 나뻐 이거?”
그러고 보니 갑짜기 초췌해 뵈기도 하는 그에게 사실 그렇다고 했다가는 친구간의 의리가 깨질까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니 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동조할 필요도 있고 또 빈자리가 띄엄띄엄 있는 걸로 보아 표 파는 아가씨가 내게도 이 사람과 같은 이유로 경로석을 주었을 가능성도 덜컥 상상되었다. 이런 고이한 인간이 있나?
“참 눈깔도 삔 여자로구만! 사람을 어찌 보구 경로석을 다 준데?그런데 왜 여기 앉았어?”
그가 앉은 좌석은 경로석이 아니었다.
“내 자리는 쩌~ 그여.”
그가 턱으로 가리키는 곳은 내가 앉았던 좌석의 건너편 경로석이였고 거기에는 아무리 깎아 봐도 50대 중반은 분명히 넘었을 여자 하나가 두 다리 쭉 뻗어 두 자릴 다 차지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잠에 떨어졌다.
“나가 저 자리에 앉아서 저 여자와 동급으로 취급되야 쓰것어?”
말하자면 그는 표 파는 아가씨의 눈으로 대표된, 자신의 나이에 관한 사회적 평가가 너무 억울해서 자릴 옮겨 앉으면서까지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먼저 간 친구 중 한 명을 불러내고서 이렇게 지껄었다. 얼굴에 잔뜩 꼈던 노기가 어느 틈에 생글생글 웃음으로 바뀌었다.
“어이, 재봉이 성님! 고창이면 성님 고향에 왔는디, 성님 고향 아니면 내 고속버스 타고 여그 안오지. 오늘 쭈꾸미라도 한 잔 살꺼요 안살꺼요?”
아마 재봉이 형님께서 한 잔 사겠다고 쾌히 응하신 모양이다. 그가 만족한 웃음을 띄며 휴대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안내방송이 나왔다.
“흥덕입니다. 흥덕에서 내릴 손님 나오세요.”
“고창까지 갈 것 없어. 여기서 내려야 돼!”
그가 단호히 말하여 즉시 일어나 버스를 내리고 택시로 갈아탔다.
“기사양반, 선운사 관광호텔 꺼정 얼마 나오요?”
“한 만이삼천원 나올끼요.”
“아 이거 만원밖에 없는데. 나머지는 외상허면 안돼 것소? 안 그라면 만원어치만 가고 나머지는 택시를 밀고 가던가.”
“아이고, 돈 많은 서울 손님이 고향땅에 와서 돈 떨어졌는가 보라. 그라시오. 까짖거, 고향 사람헌티 그것 짬 못 허것소?”
이 친구와 정통 전라어를 그대로 구사하는 시골 택시기사 간에 남도 사투리의 즐펀한 대화가 이어졌다.
19시경 호텔에 도착하고 먼저 떠났음을 미안해하는 친구들의 환영을 받았다. 뷔페로 저녁을 먹으면서 모임 회장의 건배제의가 있었는데 뜻밖에도 건배사로 미당의 시 禪雲寺 洞口를 읊는 것 이였다.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그렇고 그런 건배사만 듣던 회원들이 이 이색적인 건배사에 일순 조용해졌으나 곧 안중에 없는 듯 다시 시끄러워졌다. 건배한 후 회장이 내 자리를 찾아와 묻는다.
“뻔데기의 주름을 좀 잡았는데 어떻습니까?”
“아이구, 무슨 말씀을! 건배사로 시를 낭송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소. 대단해요. 시의 대중화에 거보를 내디뎠소!”
다른 테이블에 있던 후배의 부인 한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목례를 보내길래 그 자리로 옮겨 앉았다.
“대둔산 갔을 때 있죠? 작년에. 그때 너무너무 재밋었어요. 붕어찜도 먹고”
내가 작년 이 모임의 장으로 재임할 때의 행사가 재밌었다는 말에 고마운 생각이 들어 내가 답례로서 우스게 소리를 꺼냈다.
“내가 하는 말에 대답해 보세요. 절 좋아하세요?”
지적받은 부인이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좋아하기보다는.... 존경은 하지요.”
“틀렸어요! 절 존경하시면 낼 아침 선운사로 가세요.”
좌중이 모두 까르륵 웃었다. 다른 후배가 재미있다며 하나 더 청한다.
“넌 개하고 해봤어?........ 난 소랑 달 봤다!”
폭소 속에 식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저쪽에서 김용원이가 재봉이 성님의 소맷자락을 끌고 실외로 빠저 나가는 게 보여 부리나케 일어나 따라 붙었다. 로비에서 그들은 실랑이를 벌였다.
“이 사람아! 쭈꾸미는 무슨 쭈구미여. 다 제 철이 있는 벱이여.”
“아, 그러면 풍천 장어라도 사얄 꺼 아뇨 이거?”
김용원은 응석인지 시비인지 계속 밀어붙였다.
“풍천장어는 부페에 많이 나왔데. 그거 먹으면 되잖여?”
“재봉이 성님 사는 거 하고 맛이 같간디?”
“알았어! 그럼. 차를 오라고 했응게로 잠시 기둘려.”
피차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공연히 퉁겨보는 친밀한 말싸움이다. 잠시후 카랜스 차가 왔고 4~5명이 올라탔다. 재봉이 성님이 잘 아는 근처 풍천장어 전문 음식점에 앉았다.
“잘 있었어? 여그 장어 3개하고, 뷔페서 많이 먹어 그려. 복분자 한 병 줘.”
자신을 보고 과한 호들갑을 떠는 주인여자에게 재봉이 성님이 말씀하셨다. 먼저 나온 산채나물중 콩나물무침을 한 점 먹어보니 몹시 짰다. 이거 참! 남도 음식은 감칠맛이 최고라던데 감칠맛은 고사하고 간도 제되로 못 맞추나? 내색 않고 있는데 김용원이 심심해서 그것을 한번 먹어보더니 대뜸 주인여자를 불러 말을 쏟아 부었다.
“아짐씨! 여그 소금 값이 꽤 비싼가 뵈여. 워찌 여다 소금 안쳤다냐? 승거워서 묵것어? 남도 맛을 다 베레뿌꾸마!”
역으로 표현했을 뿐 야유가 아님을 대번에 눈치채고, 남도소리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듯이 넙쩍하게 생긴 주인여자가 아무 말 없이 콩나물 무침 그릇을 들고 가면서 한 점 입에 넣더니 눈살을 찌푸린다. 내가 한마디 붙였다.
“주방 아짐니가 오늘 출근 전에 부부싸움 했는게벼.”
주인여자가 주방 구멍으로 그릇을 밀어넣으면서 말했다.
“오늘 나오문서 아자씨랑 싸웠소? 워찌 이리 짜다냐!”
부식과 주음식이 상에 진열되고 술도 나왔다. 두 홉들이 병이 아니고 1되들이 플라스틱 병에 까만색 술이었다.
“이게 진짜 복분자여. 한번 묵어봐. 호텔에서 묵던 복분자 하고는 다를 것이여.”
마셔보니 부페에 나온 공장제 복분자술보다 더 진한 시금털털한 맛이 났다. 야생의 복분자를 따서 집집마다 고유한 솜씨로 복분자술을 만들어 판단다.
“이 한 되들이가 3만원이여. 비싸도 이술 묵어야 복분자 묵었다고 할 수 있제”
재봉이 성님은 후배들에게 진짜 복분자 술을 마시는 기회를 베품에 자랑스러워하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복분자는 산딸기 일종인데 옛날 한 노인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이 딸기를 먹고 회춘되어 늦둥이를 많이 두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래서 이름이 覆盆子란다. 영감님이 오줌을 누니 세찬 오줌의 분사력으로 인해 요강이 뒤집어 졌다. 뒤집힐 복 화분 분. 그런데 그건 속설이고 사실은 복분자의 모양이 요강을 엎어놓은 모양여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적당한 주취 속에 우리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주로 재봉이 성님의 고향 자랑과 3~40년전의 옛 추억을 말하고 김용원이 이에 맛장구를 치는 형식이였다. 맛장구를 칠 정도이니 김용원도 이 고장을 잘 아는 모양인데 알고 보니 그의 고향은 여기서 멀지 않은 정읍이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끼어들었다.
“난 정읍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데도 정읍이라면 막연히 좋은 곳으로 보여.”
“왜?”
자기 고향을 칭찬하는 말에 궁금증이 생긴 김용원이 대뜸 물었다.
“정읍사가 있어서. 한번 읊어 볼까. 돌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추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너러신고요 어긔야 즌데 디디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더 계속해?”
“캬아... 고등학교 때 꺼 다 외우니 이거 환장할 것이여.”
그에게 칭찬 받을 정도로 내가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런데 취향이 좀 있다 보니 제절로 외워진 거지.
“그거 끝까지 들어보자. 옛것을 다시 공부하는 셈치고...”
“어느이따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데 졈그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님! 높히 높히 떠올라 멀리멀리 비추세요 지아비가 시장에 장사할러 가셨는데 혹시 진창길을 밟으실까. 당신은 어느 곳에다 짐을 내려놓고 쉬세요. 하지만 당신이 가는 곳이 날이 저믈까 염려되네요. 정읍에 살던 보부상의 아내가 지아비를 걱정하는 백제 때 노래래. 그 여자는 말하자면 삼국시대 최고의 여류작가에다 소리꾼인 셈이지.어긔야 등은 모두 감탄사고 글중 “내 가난데”에서 내는 자신이 아니고 당신을 뜻한다누만. 요즘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편, 애인을 자기라고 부르는 연원은 이거라고 말할 수 있것제.”
나는 복분자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진창길을 밟을라를 창녀 집으로 갈라로 해설하는 이도 있드만. 남편은 집을 나서기만 하면 딴 여자를 찾고 마누라는 남편의 호색질을 걱정하고. 그때나 지금이나....우헤헤헤...”
나의 술 취한 귀에는 정읍사를 부르는 백제녀의 솟아오르는 고운 목소리와 육자배기를 부르는 주모의 철철 흘러 떨어지는 탁한 목소리가 뒤썩여 환청처럼 들렸다. 여기가 다 옛날 백제 땅이니 미당이 만났던 주모는 당대 최고의 명창 보부상 아내의 후손이 아니겠는가.내 기분에 취한 내가 끈굼없이 물었다.
“근디 재봉이 성님. 거시기 육자배기 부르며 막걸리를 파는 주모 집이 여그 워디 있다요?”
술이 약해 적은 술에도 온 얼굴이 붉콰해진 재봉이 성님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대답했다.
“읎서 읎서.다 6~70년대 옛날 예기여. 끄윽”
“그때 봤긴 봤씁디여?”
“봤제만, 거 머시냐 장사가 안된께로 뿔뿔히 사라졌제. 세상버리고 입산하다 산불에 타 죽은 여자도 있었고.끄윽..”
“산불에 타죽은 여자라고라?”
나는 취중에도 뭔가 모를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져 정색하며 재봉이 성님에게 대뜸 물었다.
“그려. 그 여자 혼령이 육짜베기를 부른다 혀서 우덜이 무서버서 그 산에 들어가기 싫어 했제...끄윽 ”
“어메...놀라뿐거...그 말 좀 더 해 봇씨요!”
그 다음 말은 더 듣지 못했다. 대취에 도달한 제봉이 성님이 마침내 登仙하며 갑자기 몸을 草芥처럼 방바닥에 냅다 팽겨쳐 버렸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나 해수탕욕하고 밥먹고 선운사로 향했다. 산기슭을 따라 미당 시에 나오는 동백나무 군락이 쭉 뻗어 자라고 있었는데 미당처럼 “아직 일러서”가 아니고 너무 늦어 동백꽃은 볼 수 없었다. 동백나무는 체격이 크지 않아 어른 키만한 저 정도라도 500년이상 묵은 나무여서 천연기념물184호로 보호한단다. 선운사는 경내가 무척 넓었고 그래선지 전각들이 띄엄띄엄 자릴 잡고 있었다. 백제 때 창건됐다지만 현 건물은 모두 조선조 광해군5년(1613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전각 모두 맛배 지붕으로 律불교의 고찰답게 단순 엄숙미를 조용히 과시했다. 그런데 웬 팔짝지붕 하나가 그 속에 버티고 앉아 古雅한 분위기를 깨뜨린다. 문화재급 고찰에 사는 스님들은 염불만 외울게 아니라 불교미술에 대한 기초교육이라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고풍스런 절 분위기를 해치는줄 모르고 화려한 팔짝지붕을 그것도 시멘트로 지어놓고 좋다고 앉았으니!
한말의 명필 이광사의 윤기있는 글씨의 현판이 붙은 대웅보전에 들어가 불쌍한 부처님께 삼배 올렸다. 부처님! 365일 저 시멘트 건물을 부처님이 눈 아프게 응시하게 한 저 몰지각한 승려들을 득도에 앞서 각성케 하소서... 승복차림인 한 아주머니가 기와 불사에 동참하기를 권하기에 멈칫 피하려고 하다가 그냥 만원을 줘버리고 기왓장에 소원을 썼다. 이 돈을 모아 부처님 눈앞에 시멘트 구조물을 또 짖지 않기를...
경내 모퉁이에 선다원이란 간판을 단 집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전통차와 불교용품을 팔고 있었는데 동료 여럿이 자릴 잡고 있다가 뒤늦은 내게 자리를 내며 차를 권했다. 솔잎향과 매실향이 어울어진 따뜻한 찻물은 술에 절은 속을 곱게 풀어준다. 찻집에서 나와 냇가 옆에 앉았다. 좀 피곤하여 등산보다 휴식하는 게 더 나을 듯싶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꿩이 퀑퀑하고 우는 소리가 숲속을 울린다. 작은 다람쥐 한마리가 풀 속을 나오더니 돌멩이에 앞발을 오두마니 모으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면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리 올라오너라. 나랑 이야기를 나누자.”
다람쥐는 꼬리를 쫑긋 세우더니 내 말에 응하지 않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냇물 속에는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물고기들이 떼지어 한가로히 유영하고 있었다. 어떤 아가씨가 과자부스러기를 뿌리니 그놈들이 우르르 몰려와 수면에 솟구치며 입으로 낚아 체는 게 재미있었다. 물은 깨끗한데 바닥에 깔린 돌맹이들은 까만색이어서 냇물은 저승에서 흐르는 망각의 강 레테처럼 검은 시내로 보인다. 약간 하류 쪽에 돌멩이를 모아 아무렇게 만든 수중보 덕분에 시냇물인데도 수면은 물결의 흐름과 흔들림이 없어 흡사 커다란 거울 같다. 그야말로 明鏡止水! 그 수면에 5월의 신록으로 치장한 냇가 옆 울창한 숲 전체가 거꾸로 투영되어있다. 물속의 숲은 고요하고 신비롭다. 냇가 나뭇잎이 바람에 일렁일 때마다 수중 나뭇잎 사이로 반사되는 햇빛이 현란하게 눈을 찌른다. 선운사 고랑은 수면을 화판으로 사용하여 멋진 그림을 그려놓았구나! 그런데 그림은 순간적 인상을 정지된 한 커트로 그린 게 아니다. 지그시 바라보니 태양광선이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울창한 숲의 진경이 그대로 수면에 연달아 재현된다. 이 얼마나 천의무봉한 솜씨인가! 수면은 나무그늘과 검은색 바닥 때문에 약간 컴컴했고 그래서 그 수면에 비친 숲과 계곡은 幽眩하다. 천연 그대로의 물감으로 그린 옛 산수화다. 내 시선은 그림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간다. 그곳은 정읍사가 처음 불리던 무렵의 그 산하 아닌가? 나무사이에서 금방 보부상의 아내, 미당의 주모가 다가와 ‘어서 오소’ 하며 나를 맞이할 듯 싶다.한 발짝만 옮기면 그 시대 속으로 완전히 들어 갈 수 있다!
“어이, 산에 안 올라가?”
이토록 일편 도원경에 빠져 세속을 벗어나 몽유하고 있는데 세속으로 돌아오라는 세속의 소리가 불쑥 들렸다. 일찍 산에 올랐다 벌써 하산하는 친구들 이었다.
“산에 오르면 산이 안보여. 난 여기서 산의 속살을 보고 있지.”
등산 하지 않은데 대한 작은 열등감에 약간 맥이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답 했는지 우답 했는지..
“산에 안 오르려면 저기 가서 막걸리나 먹자.”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 길가 양쪽에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한 황토길로 들어섰다. 붉은 흙의 빛갈이 맨몸에 상채기를 내듯 웬지 갑자기 눈알에 아픔이 전해졌다. 육자배기 주모의 애잔한 애환을 곱씹듯 황토길을 한걸음 두걸음 내딨는데 그 친구들이 또 멀리서 소리친다.
“그 길은 먼지 나. 이 길로 와.”
걱정이 고맙지만 니들이 도시생활하면서 먼지나는 황토 길을 걸어 본적 있어? 이것도 추억이고 운치인데. 속으로 투덜댔지만 그냥 발길을 꺾어 시내물을 건너 그 친구들을 뒤따라 갔다.그런데 길옆 쭉쭉 뻗은 전나무 숲속에 부도群이 눈에 띄어 얼른 발걸음을 돌려 다가갔다. 옹기형 장명등형 연화형의 여러 부도 중에 우뚝 선 큼직한 비석 하나가 웬지 눈길을 끌어 자세히 살폈다. 전면에 웅혼한 해서체로 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어디서 본 듯한데... 뒷면에는 유려한 행서체의 잔글씨로 가득 찬 명(銘)있지만 읽을 재주는 없고, 맨 마지막에 阮堂學士 金正喜 撰倂書! 아뿔싸, 추사 김정희의 글이 아닌가. 하마트면 이 절편을 못 볼 뻔 했구나!
선운사의 금동불상이 보물217,218호로 지정됐다지만 이글도 못지않은 보물이다. 그런데 천하의 명필 추사의 힘과 기가 베인 저 글씨를 그대로 남포 오석 단단한 석면에 새긴 이름모를 석공의 솜씨가 더 입신의 경지가 아닐까? 글씨에 실린 힘과 리듬에 따라 획을 혹은 깊게 넓게, 혹은 얕게 좁게 파서 筆感을 그대로 살린 저 글은 도저히 정으로 쪼아 새길 수는 없다. 석공이 붓을 잡고 기를 모아 힘차게 일필휘지하니 장풍에 흩날리듯 모필에 석면이 그렇게 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는 추사보다 더 높은 神工이라 할 밖에...
드디어 나는 막걸리 집에 당도했다. 그러나 그 집은 판넬로 아무렇게나 지은 가건물이었고, 각종 술중에 병 막걸리도 파는 음식점이었고, 집주인은 주름살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의 젊은 아줌마였다. 꼭 미당풍의 주모 집은 아니어도 남도민요가 은은히 깔린 요즘 흔한 전통주점 정도의 변질된 분위기라도 기대했던 내 마음은 황망히 무너져 버렸다. 뒷마당에 삥 둘러앉은 동료들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기에 부산한 주인녀가 공연히 얄미워져서 내가 시비조로 말했다.
“육자배기 한 번 불러 보쇼. 선운사에 와서 동백꽃은 못보고 육자배기나 듣고 갔다니....”
“육자배기가 뭐에요?”
짧은 청바지 차림의 그녀는 맑은 목소리에 또렷한 서울 말씨를 썼다.
“전라도 고창 땅에서 육자배기를 모르다니!”
“힌트를 주세요. 힌트! 힌트!”
그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말하는 투로 봐서 육자배기가 그 고장의 전통 소리인지를 모르는 것이 빤한데 힌트를 준다 해서 그녀가 부를 수 있을까. 육자배기를 무슨 수수께끼로 잘못 알고, 또 힌트란 외국말도 귀에 거슬린다. 미당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잘 가꾸었는데! 내가 아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지. 모란이 지면 그뿐 나만 삼백예순날 마냥 섭섭해 울어야겠지. 아아. 선운사에 와서 육자배기 한가락 듣지 못하고 가면 무슨 운치 있으랴! 5월 이 화창한 날! 막걸리집 앞 거창하게 큰 수국나무에 탐스러운 수국 꽃이 무더기로 만발했다. 육자배기도 가고 목쉰 주모도 가고 미당도 갔다. 그들을 보았고 그들이 보았을 저 나무만 남았다. 내 희망과 전혀 엇갈린 주인여자의 말은 저 화사한 수국 꽃빛을 靑霜의 상복처럼 정작 서러운 빛으로 슬프게 했다. 왜 이렇게 푸르른 날이냐? 오늘 이 고창 땅 하늘은. 그리워해야 할 사람들이 어디 남아있다고. 동백꽃까지 피면 어이하리야. 못 견디는 나만 질긴 목숨으로 마냥 살아있는데... 나는 더 머물 것 없이 구정물 같은 막걸리 한잔만 씁쓸히 받아 마시고 뭔가 모를 아픔을 씹으며 바로 일어나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고즈녁했을 선운사 고랑은 여기저기 들어선 모텔과 식당으로 난잡한 시가지가 되어버렸다. 5월의 햇빛을 벌써 성가시게 여겨 가로수 그늘을 골라 띠엄띠엄 늘어앉아 좌판을 벌려놓은 나이든 여인네들이 지나가는 내게 차례로 말을 걸었다.
“아자씨, 고사리 사가씨요. 중국산 아니어라.”
“아짐씨, 이거 다 살테니 육자배기 한번 불러 볼라요?”
그 고장 백제인 후손일 여인네들이므로 혹시나 들을까 해서 사람마다 물어 봤으나 모두들 모른다고 대답했다. 꾸겨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고, 그란 노래를 우째 여그서 부른다요?”
단 한사람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었지만 결국 덜떨어진 육자배기라도 주워들으려는 나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젠 미당의 시는 이렇게 바뀌야 할 판인가 보다.
선운사 고랑으로/동백꽃을 보러 갔더니/꽃은 때가 늦어 보지 못하고/육자배기를 부르던 주모는 사라진지 오랜데/고사리 팔기가 급한 여인네들이 새로 남았습디다/그것도 꾸겨진 목소리로 남았습디다...
거장 서정주의 명성을 꾸긴거나 아닌지 몰라. 그렇지만 미당은 나를 꾸짖기 보다는 옛 맛이 다 사라진 선운사 가는 길의 서글픈 풍경을 더 꾸짖을 꺼라. 황망한 심정에 눈길이 우연히 동백꽃이 진 능선에 멎었다. 그때 거기서 눈처럼 흰 까마귀 한마리가 떠오르더니 청량한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푸른 하늘을 가로질러 신록이 짙은 도솔봉 쪽으로 날아 들어갔다.이산 저산의 등성이에 부딧쳐서 메아리로 되돌아온 그 까마귀 울음소리만 긴 여운으로 허공에서 끝없이 공명되며 신작로 한 가운데 선 내 귓가에 어지럽게 맴돌았다.
아악!아악!아악!아악!아악!...
200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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