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똣한(따뜻한) 제주 속 아픔
인천 인성여자고등학교
3학년 전세연
현재 시각, 4월 3일 새벽 2시.
내가 이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은 이 시간, 68년 전 제주도 주민들은 평범한 내일을 기다리며 단잠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단잠은 1947년부터 시작된 무력충돌과 정부의 진압과정에서 찾을 수 없었고, 7년 후 학살피해자가 3만명으로 세어진 1954년이 지나서야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작년 11월. 나는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푸른 빛 바다도 보고 새콤한 귤도 먹었지만 아직까지 내 머리 속에는 ‘제주 4.3 평화공원’에 갔다 온 기억만이 가장 생생히 남아있다.
제주 4.3평화공원
4.3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에 발을 디디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먹구름이 잔뜩 덮인 공원에 수많은 까마귀들이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4.3사건 그 때의 상황을 알려주는 듯이 우리를 보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68년 전으로 돌아가는 역사의 동굴을 지나 그때의 진실을 마주하였다. 긴 터널을 지나 높은 천장 아래에 있는 ‘백비’를 만났다. 다른 비석과는 달리 비문이 없고 뉘어있는 백비는,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왜냐하면 2016년, 지금까지도 ‘4.3사건’이라고 임시규정 되어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 백비는 후에 이 사건이 올바르게 진상규명하게 되면 비문을 몸에 새기고 누워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으로 기대되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날이 빨리 오길 소망하며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화해, 평화의 실현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4.3평화공원 백비
백비를 지나 우리는 해방부터 시작하여 4.3사건의 도화선인 3.1 발포사건까지 순차적으로 전시되어 있는 2,3관을 지나 ‘초토화와 학살’이라는 제목을 가진 4관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듯 원통현의 하얀 방에는 죽음의 다양한 형상들을 석고로 표현하고 있었고, 각종 고문의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물론 친구들은 너무 놀라 경악을 하였고 어느덧 우리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그곳을 둘러보았다.
제4관 ‘초토화와 학살’
그 때가 내가 처음으로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날이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그곳에 있던 모은 그림과 글귀를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검은색 바탕의 붉은 글씨로 적힌 하나의 글귀는 아직도 나의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 터였다.’
아름다운 풍경, 섬 전체가 세계문화 유산인 이 제주도에 이런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제주 4.3사건에 대해 무관심하다.
3월 중반, 내가 이 문예공모에 참여한다 했을 때 친구들 모두가 싸늘한 반응이었다.
“정신 차려. 너 고3 이과반이야.”
“하루하루가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이딴 대회에 나가서 왜 시간 낭비를 하냐.”
라며 지금까지도 나를 어리석게 쳐다본다. 4.3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찾고 이 글을 한 자씩 써내려가면서도 눈물을 흘린 나에게 ‘이딴 사건’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열이 받은 나는 항상 되물어본다.
“너 제주 4.3사건을 알고도 이딴 대회라고 말하는 거야?”
하지만 대답을 하는 친구들의 말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아, 그 까마귀 많던 공원 간 거? 그거밖에 기억 안 나는데...”
“수능 한국사 시험에도 안 나오는데 그런 걸 내가 왜 알아야 해.”
“일본인들이 한 거 아냐? 조선시대였나...”
수능 시험에 안 나온다며 나와는 상관없다며 알아야하는 가치가 없다며 말하는 친구들은 작년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것도 잊어버린 듯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답답하고 무고한 희생자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친구들 말대로 2011년 이후로 ‘제주 4.3 사건’은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제외되었다. 책에 적혔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짧은 두어 줄로 적혀 있다. 그 때문인지 친구들은 이 사건을 알 이유가 없었고, 오직 수능에만 나오는 일제 강점기만 열심히 외울 뿐이었다.
또한 나는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11월의 기억을 되새기며 사진들과 영상을 보고, 우연히 사이버 참배라는 공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곳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는 글들을 올리는 공간인데, 안타깝게도 가장 최근 글이 2년 전인 2014년이었다. 나는 희생자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추모의 글을 썼고, 문뜩 하나의 생각에 잠겼다. 평화공원에 들어올 때 마주한 까마귀들은 어쩌면 희생자들의 영혼이 아닐까...
4.3평화공원 비석에 내려앉은 까마귀
제주 4.3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반면, 우리 학교 학생들은 배우기 위해 이 곳을 방문했으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우리를 보며 서럽게 울던 까마귀들은 반갑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까마귀라 나를 포함하여 친구들은 그들을 꺼려하였고 이곳을 기억하려해도 맨 처음 본 것이 그들이기 때문에 까마귀만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게 현실인 듯하였다.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자세히 알고, 배우려 해도 정부부터 진실을 밝힐 의지가 전혀 없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교육과정에서의 제외는 물론, 신문을 읽어보니 2014년 3월 추념일로 지정되었지만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추념식에 참여한 대통령은 없었고, 올해도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자 박근혜 대통령도 임기 내내 단 한 번도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 4.3 위령제에서 연설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4.3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국가권력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과했다.
펜을 놓을려니 복잡한 감정이 나를 휩싸고 돈다. 4.3사건에 관해서라면 뭐든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지만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제약되는 부분이 많아 아쉬운 마음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4.3사건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쓰고,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는 마음만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지금뿐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몇 십 년이 아닌 몇 년 뒤에는 모든 사람들이 4.3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저 멀리 희생자 분들의 억울한 눈물이 멈추고 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들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