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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의 300자 칼럼 (2009년 3월)
강남국
◇ 3월 1일 : 3월입니다. 봄이고요. 이어령은 『茶 한 잔의 思想』이라는 책에서 “삼월에는 「소리」가 있다. 침묵 속에서 움트는 「소리」가 있다. 짐승들의 포효…….햇살처럼 번져가는 생명의 소리가 있다. 지층을 뚫고 분출하는 삼월의 소리는 죽은 나뭇가지에 꽃잎을 피우고 망각의 대지에 기억을 소생시킨다.”라고 했지요. 영어로 삼월을 March라고 하지요. 이것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군신(軍神) Mars란 이름에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어원 그대로 전투의 달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물이 선전포고를, 생존의 경쟁 속으로 돌입해 들어가는 투쟁의 계절이란 뜻이지요. 이제 겨우내 닫혔던 창을 열고 환희의 봄 속으로 뛰어들어야겠습니다.
◇ 3월 2일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은 봄을 이렇게 표현했네요. “봄은 나에게는 취기의 계절, 광기의 계절로 느껴진다. 비가 오던 날 뮌헨의 회색 하늘빛 포도에 망연히 서서 길바닥에 뿌려진 그 전 날의 카니발 색종이의 조각의 나머지가 눈처럼 쌓여있는 것을 바라보던 슬픔은 잊히지 않는다. 혼돈과 깨어남과 감미한 비애와 도취……이런 것이 나의 봄이었다.”고요. 어떻게 봄을 맞고 계신가요?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란 (피천득은「봄」)표현처럼 생명의 경이와 만나고 싶습니다. 대지가 옷을 갈아입는 기적을 내 삶에 심고 싶고, 또 그런 뜨거움으로 가까이 오는 봄을 맞고 싶습니다.
◇ 3월 3일 : 며칠 전 출판사 편집장들이 대학 신입생에게 추천하는 책 50권이 발표되었습니다.(활짝웃는 독서회 문사철 자료함에 있음) 목록을 훑어보니 주옥같은 책들이고 절발쯤은 저도 읽었던 것들이네요. 우리나라 책으로는 신영복의『강의』이정우『개념 뿌리들』남경태『기념어 사전』최인훈 『광장』김병종『김병종의 라틴화첩 기행』장하준『나쁜 사마리아인들』유홍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정호승『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정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석영중『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이광수 『무정』이태준『문장강화』서정주『미당 시전집』정재서『산해경』은희경『새의 선물』안대회『선비답게 산다는 것』신경숙『외딴빵』공지영『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유시민『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곽금주『20대 심리학』홍성욱『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한형조『조선 유학의 거장들』황광우『철학 콘서트』박경리『토지』등이 들어 있습니다.
◇ 3월 4일 : 대하소설인 조정래씨의『태백산맥』(해냄 刊)이 200쇄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숫자는 뭣을 말해줄까요. 지난 1986년 첫 권이 나온 이래 89년 전10권으로 완간된 이 작품은 ‘분단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요. 조세희씨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2005년 200쇄를 넘어선 적은 있지만, 이렇게 다권본이 200쇄를 넘긴 것은 첨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마흔이었던 지난 1983년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여전히 요원한 것이 작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안타까움이지요. 이 작품 외에도 작가는 『아리랑』과 『한강』등의 대하소설이 있는데 시인 김초혜씨의 남편이기도합니다.
◇ 3월 5일 : 「보리피리」로 유명한 한하운은 흔히 천형(天刑)이라 불리는 나병(Leprosy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입니다.「罰」,「소록도 가는 길에」등 절절한 그의 시를 더 좋아하는 저는 지난 1990년 수술차 여수애양병원이라는 곳엘 가서야 그 병을 앓았던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사슴을 닮은 곳’이란 뜻의 소록도(小鹿島)는 그동안 세상에서 버림받은 천형의 아픔을 삭임질하며 살았던 한센인들의 보금자리이며 620여명의 천국이었지요. 1916년 강제 격리 수용된 지 93년 만에 지난 2일 소록대교가 개통됐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차별과 편견의 한(限)을 넘어 이젠 육지인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길 한하운 시인도 기원하겠지요.
◇ 3월 6일 : 지난 2월 중순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대도시에 사는 30대 대졸 기혼 여성이라고 하네요. 그 중에서도 가구 소득이 500만 원 이상으로 한국인의 행복은 소득순(順)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행복 지수는 10점 만점에 6.78이었고, 500만 원 이상의 소득에서만 7.30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물질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난감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고 적게 벌면 불행하단 뜻인가요? 행복이란 정의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씁쓸한 마음입니다. 소득이 행복 순이라니요.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문제 일텐데!!!
◇ 3월 7일 : 벌써 30여 년 전에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글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 왜 그리 슬펐던 지요.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시작되는 그 글은 이미 현실에서 상실한 시대의 아픔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허물없이 찾아갈 이웃을 잃어버린 오늘, 저는 늘 행복한 노래를 부릅니다. 이웃에 73세 되신 국현숙님은 제가 시시때때로 찾아가 차를 얻어 마시지요. 오늘은 아들들이 보내왔다면 세계명작영화들을 내보이시며 갔다 보라고 하셨습니다.《대지》,《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왕과 나》정말 행복합니다.
◇ 3월 8일 : 어제(3월7일)는 짧게 살다간 『입 속의 검은 입』의 기형도(1960-1989)시인의 20주기였습니다. 그는 29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요. 세월이 흘러도 그를 향한 사랑은 식지를 않네요. 첫 시집의 제목조차 미처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48세를 살다간 고 문학평론가 김현씨가 제목을 붙였던 시집은 이제 65쇄(24만부)를 찍으며 문청들의 필독서가 됐지요. 며칠 전 추모문집『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문학과지성사)이 나왔습니다. 젊은 시인들의 좌담과 생전에 그와 가까웠던 문단 인사들의 회고담과 비평문으로 꾸며졌다네요. 서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중풍(노졸증)으로 갑자기 떠난 그는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 3월 9일 : 고정관념처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삶이란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살건만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갇히게 되면 이것이 아니면 안 되고 저것은 무조건 틀렸다고 하지요. 이곳에 길이 있으면 저곳에도 길이 있다는 생각을 못합니다. 같은 곡을 연주할 때도 어떤 사람은 C장조로 연주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G로 연주를 하지요. 처음 기타를 배우던 때 생각이 납니다. 노래책엔 A로 나왔는데 어떤 분은 C로 하데요. 요즘엔 자료를 컴에 올리기 위해서 스캐너가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없으면 디카로 다시 찍어서 올릴 수도 있음을 선뜻 생각 못합니다. 고정관념이지요. 만물(萬物)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할 때라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 3월 10일 : 오늘부터 20회에 걸쳐《서양미술 들여다보기 20선》을 올립니다. 솔직히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의식의 산물인 서양의 거대한 줄기는 상식적인 면에서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소설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서양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작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여기에서 소개되는 책 중에 단 한권이라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그림만큼 또렷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J.러스킨 /두 개의 길》에서 “미술은 인간의 손·머리·마음이 한 몸을 이룬다”라고 했습니다. 가히 열풍이랄 수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 전을 보면서 더욱 서양미술에 대한 관심이 솟네요.
◇ 3월 11일 : 한국인은 유난히 토론(討論)에 약합니다. 토론도 하나의 습관처럼 그렇게 자연스레 교육이 됐어야 함에도 우리는 그런 혜택을 받지 못했지요. 유대인은 미국 인구의 3%지만 노벨상을 휩쓰는 유대인의 수가 27%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서양교육의 특징은 바로 토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토론은 활발한 뇌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V.M.위고》는 “남과 토론할 때 격렬한 언사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이유가 박약함을 나타내는 증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A.앨코오트/平和스러운 날》에 보면 “토론은 남성적, 회화는 여성적”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하는 까닭을 들어주는 것! 토론의 시작입니다.
◇ 3월 12일 :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모든 사람에게는 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겠지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의 표현대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지만 오늘도 진한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병마와 가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정신의 반비례로 나타나는 시대의 아픔을 어쩌지 못함이겠지요. 정과 사랑이 메말라버린 원인이야 문명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더 궁극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도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군요. 그래서 비록 맹목적일지라도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봄이 정말 따뜻했으면!!!
◇ 3월 13일 : 오늘날에도 수필(隨筆)이란 단순히 ‘붓 가는 대론 쉽게 쓰는 장르’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의는 그렇게 내릴지 모르지만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필 장르를 처음으로 만든 이는 미셸 몽테뉴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적이고 진부한 주부들의 수필을 잘 읽지 않습니다. 수필이란 그렇게 단순한 일상의 나열식 얘기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수필만큼 폭넓은 문학적 스펙트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음서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인지요. 좋은 수필은 ‘삶의 진실’과 ‘독창성’ 없인 나올 수 없지요. 치열한 사색과 독서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잖을까요?
◇ 3월 14일 : 새벽에 일어나 정호승시인의『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라는 책을 120페이지쯤 읽었습니다. 잔잔하네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어려운 말도 없고 억지로 쓴 흔적도 보이질 않네요. 시인이 쓴 글이라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글이란 쉽고 단순하면서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란 생각을 늘 하지요. 알긴 아는데 그런 글을 쓰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 사는 얘기만큼 가슴과 영혼을 울리는 것은 없지요. 이름도 예쁜 꽃샘추위라고 하지만 3월도 중순인데 싶네요. 평화로운 마음으로 활기찬 주말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삶과 봄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 3월 15일 : 영어동화책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로 영어과외선생 33년째를 맞고 있습니다만, 지난해부터 통역을 맡으면서 정말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그동안 숱한 세월 죽은 영어를 해 왔다는 자책에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문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말을 할 수 있는 영어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엔 모든 교재를 원서로 바꾸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어동화를 읽히는 것은 정말로 좋은 교육방법입니다. 영어동화를 많이 읽다보면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추론에 획기적입니다.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해 같은 영어동화책을 500번쯤 읽어줘도 질릴 줄을 모른다는 통계가 있어요.
◇ 3월 16일 :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으며,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은 “되읽고 싶은 책을 단 한권이라도 챙기고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책이 없는 집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물이 없거나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집과 같습니다. 영혼이 없는 쓸쓸한 육체와 같습니다.…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손에서 책을 놓으면 숨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 들고 살다가, 책을 들고 죽으려고 합니다”라고 했네요. 어쩜 그렇게 제 생각과 똑같은지요. 독서는 정신의 식사입니다.
◇ 3월 17일 : 어제는 제가 대표로 있는 봉사대의 전진대회 날이었습니다. 200여 회원들이 모여 시내 중심가와 개화산을 돌며 쓰레기를 주었지요. 휠체어를 타신 30~40여명의 회원들도 똑같이 쓰레기를 주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몸은 불편해도 내가 사는 주변을 청결하게 한다는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더군요. 타인의 시선을 넘어 곳곳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는 모습에서 지상의 아름다운 꽃이 활짝 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지만, 무심결에 버려진 담배꽁초하나가 화단을 비롯한 생명이 있는 곳에 떨어졌을 땐 상상을 초월하는 생과 사의 싸움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사는 방화동이 훨씬 아름다워졌습니다.
◇ 3월 18일 : 경희대학교 한의대가 교양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추천도서 100권을 지난 16일 발표했습니다. 2년간 20권을 읽지 않으면 예과(豫科) 학생들에게 유급을 실시한다고 하네요. 아주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생이면서도 가뜩이나 가벼운 책들만 읽는 풍토에서 이런 제도는 획기적 독서의 전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서양 고전을 비롯한 자연과학서적 사화과학서적 인문학 관련 서적이 골고루 선정됐습니다. ‘읽고 생각한다’는 의미의 독서노트 독이고(讀而考)를 모든 학생들에게 나눠준다니 얼마나 좋은지요. 폭넓은 학문적 소양은 독서에서 닦아지며 지식과 사고의 폭은 독서만큼 좋은 것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 3월 19일 : 정민교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통합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은 18년 유배생활 중에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완성한 한국지식사의 불가사의로 통하지요. 유배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시대를 탓하거나 자신의 억울함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천금처럼 세월을 아껴 귀양살이의 시간을 하늘이 준 축복으로 알고 학문연구에 몰두했다는 것! 개인에게는 절망이었겠지만, 조선 학술계를 위해서는 큰 축복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역경(逆境)에 좌절하는 사람은 순경(順境)에도 금방 교만해진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 3월 20일 : 포크물결이 한창이던 지난 70년대 초반 서유석의「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었지요. 김민기나 현경과 영애가 불렀던 「아름다운 사람」하고는 또 다른 노래였습니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라 알려진 노래인데, 지금도 기타를 잡으면 종종 부르지요. 요즘엔 그 제목에 걸맞은 사람이 누굴까 하고 생각해 볼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야 하면 뭐하겠습니까만 ‘자기의 몫을 다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열심히 거리 청소를 하는 사람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고, 궂은일이지만 냄새가 풀풀 나는 쓰레기를 치워가는 분들도 이 사회의 꼭 필요한 분들이지요. 몫이 있어 생이 아름답습니다.
◇ 3월 21일 : 이 세상에 술이 없다면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아찔하네요. 술이 없었다면 시성(詩聖) 杜甫와 李白이 과연 존재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에우리피데스/박카스》에서 “술이 없는 곳에 사랑은 있을 수 없다”라고 했고 《I.칸트/人間學》에서 “술은 마음을 털어놓게 하며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라고 정의 했지요. 《이봉구/시들은 갈대》에서 “요즘 같은 시절에 술 없이 어찌 마음을 지탱할 수 있겠느냐. 술은 곧 마음을 바로 잡는 약수와도 같은 게다” 저는 한마디로 술은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를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에게 술은 곧 그들의 세계를 만개케 하는 원천이 아닐까요?
◇ 3월 22일 : 세계3대문호 중의 한사람인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햄릿(Hamlet)을 원서로 읽을 때, 지금은 쓰지 않는 고어 때문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어(言語)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요즘의 신세대들이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의 파괴행위는 가히 기절직전입니다. 그들이 쓰는 이모티콘이나 파괴된 문자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글자 숫자를 줄여 써야 하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건 해도 너무합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판독이 불가능한 파괴된 한글이 서글픈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의 언어학계가 인정한 보물 중의 하나인데요.
◇ 3월 23일 : 저에게도 숨길 수 없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차일피일병(病)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꾸 내일로 미루는 것이지요. 계획은 늘 거창하게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시간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올바른 생을 살 수 있을까 싶어 한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한해에 성경을 한 번은 읽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게 좀처럼 쉽지 않고,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지난달엔 겨우 4권밖에 못 읽었네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는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시키의 말이 떠오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습니다.
◇ 3월 24일 :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아름다운 것은 꽃들이 피고 풀들이 돋아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드네요. 봄은 정말 환희롭습니다. 죽음 같은 혹한의 겨울을 이기고 그 가녀린 가지에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새순이 돋아 날 수 있는지요. 요즘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뜻의 톨레랑스(寬容, tolerantia)라는 말의 의미를 많이 생각합니다. 톨레랑스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 뜻인데 만약 봄꽃이 하나만 피어난다면 이 봄이 이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도 또한 아찔하네요. 산수유,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등은 다투지 않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죠. 인간만이 다름에 가장 인색한 듯합니다.
◇ 3월 25일 : 오늘을 사는 현대인치고 돈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돈이 힘이기 때문이지요. 돈이 전부인 세상이기에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는 물론, 목사나 스님들조차 오늘날에는 돈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돈은 ‘잘 먹고 잘사는’ 삶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심리적, 육체적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일까요? ‘세계적인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시키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라는 부재가 붙은 석영중교수의『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란 책을 아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냥 술술 읽히네요. 작가는 평생 동안 돈을 위해 그렇게 많은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정말로 돈을 벌기 위해!!!
◇ 3월 26일 : 지난 22일 말, 오리, 동물, 나무, 꽃, 집, 등 자연을 소재로 독특한 그림세계를 이뤘던 화가 김점선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전 숱한 기행과 더불어 개성에 충실했던 삶을 살았던 작가였습니다. 그분의 사상은 ‘한 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죽자’였지요. 퍼포먼스를 한다고 한강 백사장에서 나체로 법석을 떨기도 했으며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삶을 사셨던 분이지요. 작가 최인호 박완서 장영희 씨의 책에 그림을 그렸고 10여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분이셨습니다. ‘괴짜 화가’였지요. 수년전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교수를 통해 그분을 알게 됐고, 함께 사진도 찍었던 분이셨지요. KBS 1TV ‘문화지대’를 맡기도 했던 자유인 김점선! 그녀의 명복을 빕니다.
◇ 3월 27일 :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읽고 생각할 때 마다 목이 메고 눈가가 젖습니다. 영혼이 떨리며 마음이 젖는 거지요. 어린아이처럼 살다 간 시인의 삶도 그렇거니와 어떻게 살면 시의 마지막 연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할 수 있을까 해서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평생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영육에 헤일 수 없이 많은 때가 묻는 것이란 생각도 하네요. 살면서 그 때를 어떻게 벗겨야만 이 시처럼 그렇게 해맑은 마음안고 하늘로 돌아가 지상에서의 삶을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면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할까를 다시금 배웁니다.
◇ 3월 28일 : 사람들은 흔히 과정보다는 결과로 판단하고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고된 훈련을 하고 힘든 과정을 거쳤다 해도 결과가 나쁘면 박수를 치지 않지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삶이란 때로 무섭도록 차갑고 냉혹한 것이구나 하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악하지 않은 현실이 어디에 있나요. 다 어렵고 힘들지요. 그럼에도 그 현실의 벽을 뚫고 나아가려 애쓰는 모습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처럼 곱고 예쁘지요.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뭣이든 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제자 영후는 심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복지관에 나와 영어를 배우지요. 속도는 느리지만 그 열정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영후에게 결과를 기대하겠습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영후의 발음 속에서 저는 천상의 아름다운 인간 삶의 과정을 봅니다.
◇ 3월 29일 : 며칠 전 43회 독서회로 모였을 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올해 73세이신 국현숙님은 레마르크의 『개선문』,리처드 바크『갈매기의 꿈』,생텍쥐페리 『어린왕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고, 시인으로는 박두진, 서정주,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의 기욤 아폴리네르가 생각난다고 회상하셨습니다. 다음번 낭송시로 이해인의 ‘말’을 추천해 주시기도 했지요. 이재숙님은 여고시절에 읽었던 한수산의 『바다로 간 목마』가 생각나는데 내용은 기억이 없다셔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김정윤님은 체코태생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좋아했고 ‘고엽’이라는 작품을 좋아해서 세례명이 시몬 마리오랍니다.
◇ 3월 30일 : 제 외가(外家)는 안면도 고남입니다. 어제는 병석에 계신 어머니 문병차 올해 84세이신 큰외삼촌내외를 비롯한 9명이 다녀가셨네요. 어머닌 목메어 거의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친정의 혈육을 병석에서 만나는 그 깊은 정과 사랑을 말로는 다 하지 못하지요. 큰외숙모께서는 날마다 사서 잡숫는 죽이 질리지 않냐 며 손수 끓여 오셨고, 맛있는 파김치를 담가오셨습니다. 승언리 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굴도 사 오셨고요. 오랜만에 먹어보는 팥죽은 옛 고향의 맛 그대로였습니다. 정성이 깃든 맛이기에 더 그렇겠지요. 잔잔한 감동이 함께 모인 우리형제들에게도 퍼졌습니다. 모처럼 환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봄이 한껏 더 아름다웠네요.
◇ 3월 31일 : 어제는 이웃에 있는 지인 댁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길 나눴네요. 얼마 전 대학생이 된 손자에게 했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손자가 태어나자 할머닌 지금까지 그 손자를 위해 기도했답니다. 얼마 전 만났을 때 할머닌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를 위해 기도해왔다. 뭣이든 보면 너를 먼저 생각했고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할미 늙었으니 네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이 할미를 챙겨라. 용돈도 주고.”라고 했다네요. 말을 하지 않고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모릅니다.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자식들에게도 서운타 하지 말고 미리 말을 해서 시켜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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