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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운남성(云南省←雲南省)에는 이미 4번이나 가보아서 성(省)내의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아직도 동티 베트지역에 속한 곳 중에서 트레킹여행을 해보지 못한 곳이 많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곳으로 여행을 해보려 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마침 비교적 비행기요금이 저렴한 케이스가 포착되었다. 그런데 여행코스가 곤명(昆 明)으로 바로 가는 직항로가 아니고 상해(上海)를 거쳐 가는 여행루트였다. 어차피 시간적 여유가 많은 사람 이고, 중국여행을 하는데 상해(上海)를 또 한번 더 가보아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하는 날 17시에 인천국제공항 3층 E 카운터의 남방항공(南方航空) 데스크로 가서 수화물을 위탁하면서 비행기 좌석 배정을 받으라는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필자는 서울의 동북부지역에 살고 있어 15:00 에 집을 나서 노원교 공항버스 출발점에 20분정도 걸려 도착하였다. 15:40 에 출발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버 스를 타니 서울북부외곽고속도로를 따라 한시간 정도 걸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하여 조금 쉬면서 비행기 좌석배정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티켓 체크하는 시간을 기다렸 다. 조금 기다리니 17:00 부터 업무가 시작되어 중국의 남방항공(南方航空) 에서 티켓 수속중인 E32창구에서 티켓 예약증과 여권을 제시하였다. 그렇게 하여 17:40 에 수하물탁송수속과 좌석배정이 끝나고나서 개인별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나서 출국수속을 한 후 공항의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출국장으로 들어가 면세지역의 상점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18:00 에는 B 터미널로 가기 위하여 에스컬레이 터를 타고 내려가서 B 터미널로 가는 전철을 탔다. B 터미널로 이동하여 103 게이트 앞에 기다리다가 18:30 남방항공(南方航空) 상해포동(上海浦东)행 CZ 370 에 탑승하였다. 비행기는 바로 출발하기 위하여 활주로로 나아가 19:05 에 완전히 이륙하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나서 30분쯤 지나고 나서 기내식(機內便餐)이 나왔다. 기내식은 쌀밥에다 닭고기조림에 작 은 빵 하나와 버터, 그리고 가벼운 과일 섞음의 드레싱이었다. 먹을 만한 내용이었으나 조금 부실한 편이었다. 기내식을 먹고 비행기내부 불을 끄고 조금 쉬는 동안에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잠결에 들리는 기내방송에서 어느덧 비행기는 20분후 상해포동공항에 내린다는 멘트가 나왔다. 한중(韓中)간 운행하는 비행기인데도 멘트 는 중국어와 영어로만 하였다.
필자가 탄 비행기는 중국시간 19:45 에 중국의 장강(长江)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끝부분과 항주만(杭州湾) 사이의 가장 동쪽으로 튀어나온 상해의 포동신구(浦东新区)의 동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포동공항(浦东机 场)에 착륙하였다.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포동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비행기가 공중에는 떠 있은 시간은 1시 간40분이었던 셈이다. 조금 후인 20:10 경에 비행기는 터미널에 닿아 필자는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수속(入 境手续)을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와 입구에 서 있는 버스를 탔다.
- 필자가 탄 버스는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와 포동지구(浦东地区)를 거쳐서 황포강(黃浦江)을 건너 21:30 에 숙 소로 정한 외탄(外滩)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상해선장유스호스텔(上海老船长国际青年旅舍)에 도착했다. 이 호 스텔은 영문이름인 Captain Youth Hostel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숙소로 유스호스텔로도 인기가 높고, 도미토리 도 병행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요금이 저렴하고 깨끗하면서 위치도 좋아 필자가 과거에도 한번 지내본 곳이다. 문앞에 나서면 바로 외탄(外滩)거리이고, 조금만 걸으면 예원(豫园)과 남경로(南京路)에 갈 수 있다. 상해에 처 음 오는 개별여행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여행자료를 챙길 수 있으며, 인터넷시설도 갖추고 있어 편리 하지만, 성수기에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
♥ 住处 - 船长青年旅舍(Captain Hostel) -上海市(黄浦区)福州路37号 (外滩) 021-6323-5053
♣ 상해(上海) ♣ ○ 상해개황(上海概况) - 상해(上海)는 중국대륙 남북해안선의 중부인 장강(长江)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제일의 대도시이며, 세계 제8 대 도시이면서 북경(北京)、천진(天津)、중경(重慶)과 함께 중국의 4개 직할시(直 辖市)중 하나이다. 중 국최대의 경제중심무역항구로 최대의 종합공업도시이면서 중요한 과학기술과 무역 및 금융과 정보통신의 중 심지이다. - 교통이 편리하고 후배지가 광활하여 지리적여건이 우월한데다 상해항(上海港)은 세계최대의 항구이다. 상해 (上海) 관할인 숭명도(崇明岛)는 대만(臺灣)과 해남도(海南島)에 이어 중국에서 셋째로 큰섬이다. 상해(上海) 에는 현재 중국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인 상해국제금융센터(上海环球金融中心)가 있고, 거기다가 2013년에 완 공되면 台北101 빌딩을 능가하게 되는 <상해그랜드센터빌딩(上海中心大楼)>을 짓고 있다.
○《上海》라는 이름의 기원 - “上海”라는 이름은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위에”, “꼭대기”라는 의미와 “바다”라는 뜻을 가진다. 표준발음 (普通话)으로 上海는 “샹하이(shànghǎi)” 이지만, 上海人들의 발음으로는 “짱해”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 느냐에 대해서 논쟁이 있지만, 지역 관공서의 공식해석은 일관되게 “바다 보다 더높은” 이라고 말한다. 그러 나 또 다른 발음, 특히 사투리에서는 “바다 위로 가다” 는 의미를 제시하기도 한다. 上海의 좀 더 시적(詩的) 인 이름은 두 문자를 바꾸기도 한다. 즉 하이샹(海上)이다. 서부에서는 上海가 <샹하이, 짱하이, 챵하이>라 고 불리지만 1990년대에 와서는 표준발음(普通话)으로 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샹하이(shànghǎi)”로 정해진 이후 서부에서도 이렇게 널리 불리게 되었다. 上海는 “동쪽의 파리(Paris of the East; 东边的巴黎)", "동양의 여왕(Queen of the Orient; 东洋的女王)", 심지어는 1920년과 30년대의 만연한 부정과 죄악, 마약 그리고 매 춘과 관련하여 "아시아의 매춘부(Prostitute in Asia; 亚洲的卖春妇)” 등 영어로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 역사연혁(历史沿革) - 상해(上海)지구는 오송강(吴淞江)이남을 751년(唐天宝10년)에 가흥(嘉兴)동쪽과 해염(海盐)북쪽과 곤산(昆 山)남쪽에 위치한 지역을 잘라서 화정현(华亭县)을 만들었다. 1277년에는 화정현(华亭县)을 화정부(华亭府) 로 승격시키고,다음 해에는 송강부(松江府)로 개칭하였다. 청대(清代) 에 이르러서 송강부(松江府)는 화정 (华亭)、루(娄)、상해(上海)、청포(青浦)、금산(金山)、봉현(奉贤)、남회(南汇)등 7개현(县)과 천사무민청 (川沙抚民厅)을 관할하게 되었다. 오송강(吴淞江)이북은 1218년 1월 7일(南宋嘉定 10년12월초9일)에 가정현 (嘉定县)을 설치하고, 그후에 다시 보산현(宝山县)을 따로 설치하였다. 장강(长江) 하구의 삼각주에 907년경 (五代初) 숭명진(崇明镇)을 설치하고, 1277년에는 숭명주(崇明州)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1369년(明洪武2年) 에 숭명현(崇明县)으로 개칭하였다. - 상해(上海) 도시지역은 원래 오송강(吴淞江)하류의 일개 어촌에 불과하였으나, 당송(唐宋)에 이르러 점차 번 영된 항구로 발전하였다. 남송(南宋)의 함순년간(咸淳年间)(1265-1274)에 상해진(上海镇)이 만들어지고, 그 진(镇)은 황포강(黄浦江)서쪽의 상해포(上海浦)라는 이름을 얻게되었다. 1291년(至元28年)에 원(元)나라 조 정의 비준을 거쳐, 1292년에는 정식으로 상해현(上海 县)을 분리설치하고,화정현(华亭县) 동북과 황포강(黄 浦江) 동서 양안의 고창(高昌)、장인(长人)、북정(北亭)、해우(海隅)、신강(新江) 등 5향(乡)을 관할하고, 송 강부(松江府)의 속현(属县)이 되었다. 요즈음 발굴된 송강광부림(松江广富林)은 앞으로 상해(上海)의 역사가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 1927년에 설립된 상해특별시(上海特别市)는 1930년5월에 상해시(上海市) 로 개칭되었다가, 1949년 신중국 건 국과 동시에 중앙직할시(中央直轄市)가 되었다.
○ 지리환경(地理环境) - 상해시(上海市)는 120°51′- 122°12′E,30°40′- 31°53′N 사이에 위치하며,태평양서안,아시아대륙의 동쪽연 안인 中国의 남북해안중심지점에 자리잡고 있으며, 장강(长江)과 전당강(钱塘江)이 바다로 합해지는 곳이다. 북쪽은 장강(长江)에 접하고, 동쪽은 동중국해에 인접하며, 남쪽은 항주만(杭州湾), 서쪽은 강소성(江苏省)과 절강성(浙江省)의 두 성과 경계를 이룬다. 장강삼각주(长江三 角洲)의 충적평원의 일부분으로 평균고도는 해 발 4m좌우이다. 육지지세는 동향서저(东向西低)의 미미한 경사를 이루는 총괄추세이다. 상해(上海)의 북쪽은 장강(长江)과 바다에 접하는데, 숭명(崇 明)、장흥(长兴)、횡사(横沙)의 3섬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숭명도(崇 明岛)는 중국에서 셋째로 큰섬이며, 장강(长江)에서 떠내려온 진흙과 모래가 쌓여서 장강(长江)하구에 형성된 섬으로 그 면적은 1041.21㎢이고 해발 3.5m~4.5m이다. 장흥도(长兴岛)는 면적이 88.54㎢이고, 횡사도(横沙岛) 의 면적은 55.74㎢이다. - 1949년 상해(上海)의 면적은 636㎢였다. 1958년에 강소성(江苏省)의 상해(上海)、보산(宝山)、가정(嘉定)、송 강(松江)、남회(南汇)、청포(靑浦)、봉현(奉贤)、숭명(崇明)、금사(金山)、천사(川沙) 등 10개 현(县)이 상해 (上海)에 편입되어 상해시(上海市) 직할구의 범위가 5910㎢로 확대되었고, 2003년말에는 상해면적은 6340.5㎢ 에 이르렀다.
○ 행정구획(行政区划) - 1949년에 상해(上海)는 모두 20개 시구(市区)와 10개 교외구(郊外区)로 나누어졌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행정구 획조정과 현(县)을 구(区)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으며, 1992년에는 포동신구(浦东新 区)가 신설되고, 2000년에 는 남서구(南市区)가 황포구(黄浦区)에, 그리고 2009년 6월에는 남회구(南汇区)가 포동신구(浦东新区)에 병합 되어 현재 상해(上海)의 행정구는 17개구(区)와 1개현(县)으로 되어 모두 118개의 진(镇), 3개의 향(乡), 100개 의 가도판사처(街道办事处), 3293개 주민위원회(居民委员会)와 1991개 마을위원회(村民委员会)로 되어 있다. - 시인민정부(市人民政府)는 황포구(黄浦区) 인민대도(人民大道) 200호에 있으며, 17구(区)는 황포구(黄浦区)、 서회구(徐汇区)、갑북구(闸北区)、홍구구(虹口区)、양포구(杨浦区)、포동신구(浦东新 区)、장녕구(长宁区)、 보타구(普陀区)、로만구(卢湾区)、정안구(静安区)、보산구(宝山区)、가정구(嘉定区)、청포구(青浦区)、민행 구(闵行区)、송강구(松江 区)、금산구(金山区)、봉현구(奉贤区)이며, 1개현(县)은 숭명현(崇明县)이다.
○ 인구구성(人口结构) - 2007년 상해시(上海市)의 상주인구밀도 1㎢당 2931명에 달하게 되었으며,중국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성급행정구(省级行政区)이다. 전시(全市)의 상주인구는 1860만명,호적인구는 1380만명이며,상해(上海)를 방문하는 유동 인구가 660만명이나 된다. 全市상주인구 자연증가율은 3.04‰, 호적인구의 자연증가율은-0.1‰ 로,상해(上海)는 중국에서 인구의 자연증가가 줄어드는 성급행정구(省级行政区)이다. 인구의 평균기망수명 은 81세이고, 여성들의 총 출산율은 0.95이다. 전시호적인구 중 60세 이상의 노인인구는 287만명으로 호적인 구의 21%를 점한다. 상해(上海)의 인구노령화정도는 중국에서 제일 높다. - 상해(上海)에는 대량으로 인구가 전입해 들어오는 외부유동인구의 유입속도가 빨라 상해(上海)의 총인구는 끊 임없이 확대되었다. 개항당시의 인구는 10만명이 되지 않았으나, 1949년에 이르러 520만명이 되었고, 2007년말 에는 상해시의 호적인구가 이미 1380만명에 달하여, 사회주의 설립 초기의 2.7 배나 되고,중국 전체 총인구의 1%나 된다. 2007년말 상해시의 상주인구는 1860만명이고,그중 외래상주인구가 500만명이나 된다. 전시의 상 주인구는 계산상으로는 인구 밀도가 매 ㎢당 2930명을 넘어섰다.
○ 상해(上海)의 간칭(简称)《沪》과 별칭(别称)《申》 - 상해(上海)의 간칭(简称)은 “호(沪)”이고,별칭(别称)은 “신(申)”이다. 약 6000년전에는 지금의 상해(上海)서 부는 이미 육지로 되어 있었으나 동부지구는 그때는 육지가 아니었는데, 2000년이란 긴 세월이 더 흐른후에야 육지가 되었다. - 춘추전국시기에 상해(上海)는 초나라(楚国)에 속했는데, 일찍이 춘신군황헐(春申君黄歇)의 봉읍이었다고 전 해 진다. 그 흔적은 현재 상해(上海)를 관통하는 황포강(黃浦江)의 옛 명칭인 춘신강(春申江)과 상해(上海)에 대한 별칭인《신(申)》에 남아 있다. 서기 4~5세기의 진나라(晋朝)에 송강(松江)<지금의 소주하(苏州河)>과 빈해(滨海)일대의 주민들은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살고 있었다. 그들은 대나무로《호(扈)》라고 부르는 낚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당시 장강(长江)의 지류가 바다로 이어지는 곳을 “독(渎)”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송강(松江)하류일대<현재 소주하(苏州河)와 황포강(黄浦江)이 만나는 지구>를 “호독(扈渎)” 이라고 불렀다. 이후에 “호(扈)” 를《沪←扈》라고 부르게 되었다. ◐ 沪[Hù]←扈; 강 이름 호,
○ 上海와 大韓民國의 獨立運動 - 上海는 교통이 편리하고 손문(孫文)이 이끄는 국민당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조계(租界)가 있어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도 갖추고 있었다. 독립지사들 은 가장 우호적이었던 프랑스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조계에 살면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런 까닭에 독립지사들이 上海로 몰려들었고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上海에서 설립되었다. 윤봉길(尹奉吉)의사 가 홍구공원(虹口公园、今魯迅公园)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것도 上海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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