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 유적의 산실 ‘장도’
해상왕 장보고
장좌리 앞 바다에 전복을 엎어놓은 듯 둥글넓적한 섬 장도(일명 장군섬)가 있다. 마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약 180m 쯤 되고 하루 두 차례씩 썰물 때는 바닥이 드러나 걸어갈 수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유명한 무장 장보고 장군과 그가 이룩한 청해진의 유적지이다. 장보고 장군은 이곳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여 삼해의 해상권을 장악, 신라, 일본, 당나라 3국의 해상교역에서 신라가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당시의 유적으로 장도에 외성과 내성이 있었다고 전하며 현재 유적 성역화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당시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와, 토기 등 여러 유적과 유물이 장도를 중심으로 완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물이 빠졌을 때는 장도 남쪽 갯벌에서, 원래 청해진을 방비하기 위해 굵은 통나무를 섬 둘레에 박아놓았던 목책의 흔적이 드러난다. 유적으로는 청해진성, 와당편 다수, 토기편, 사당, 법화사지터 등이 있다.
• 목책 : 장도의 남쪽과 북서쪽 해안에는 약 1,000여개의 직경 40∼80cm의 목책이 남아있다.
• 맷돌 : 섬 중앙에 직경 1m, 두께 30cm의 맷돌이 하나 남아 있다. 그 모양이 중국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
• 법화사지 : 장좌리 뒤쪽 상황봉 기슭에 다섯 계단으로 여러 채의 큰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있다.
[출처] 완도 청해진유적지(장도)|
완도 청해진 유적(莞島 淸海鎭 遺蹟): 사적
-지정(등록)일: 1984.09.01
-소재지: 전남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734번지
-시대: 신라시대
청해진은 신라 흥덕왕 3년(828) 장보고가 설치한 해군기지이자 무역기지로, 전라남도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인 장도에 있다. 당시 이곳은 신라와 당,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장보고(∼846)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장군이 되었으나, 해적들이 신라사람들을 노예로 삼는 것에 분개하여 신라에 돌아와 왕의 허락을 받고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청해진은 국제무역의 중심지로 동아시아 무역을 독점하여 번영을 누리며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왕위계승과 관련된 권력다툼에 휘말려 자객 염장에 의해 846년 암살당하였고, 문성왕 13년(851)에 청해진은 폐쇄되었다.
장도는 섬 전체가 계단식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바다를 제외한 주변바다는 수심이 얕아 방어용 목책을 박아 외부접근을 막도록 만들었다. 성터 안에는 토기와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인근에 장보고가 지었다는 법화사터가 남아있다.
청해진은 신라 후기 장보고가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의 산동지방과 일본을 연결한 해상 교역로의 본거지로서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다.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장도는 지난 1959년 태풍 사라호가 완도를 덮친 이후 섬의 해안에서 직경 40~80cm 크기의 목책(木柵) 1,000여 개가 발견되어 새롭게 주목받았다.
목책은 10cm 간격으로 촘촘히 박혀 있었으며, 그 길이는 300m에 달했다. 이후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 목책이 장보고 시대 유적으로 밝혀지면서 장도는 해상왕 장보고의 섬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특히 썰물 때가 되면 장좌리에서 장도 방향으로 다리 건너자마자 오른쪽 갯벌 해안에 목책의 남은 밑동을 확인할 수 있다.
장도는 현재 사적 제308호 장도 청해진 유적지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청해진유적지 복원사업으로 현재 토성과 탐방로, 사당, 남문 등이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울창한 섬 정상에 자리 잡은 사당에는 장보고 등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 지금도 장좌리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당제를 올린다.
[출처] 완도 청해진유적지(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