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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14) 2024. 9. 18
솔로몬의 왕궁 건축
왕상7:1-12
솔로몬은 성전을 짓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왕궁 건축>
이어 솔로몬은, 자기의 궁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절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왕궁을 건축하는데, 13년이 걸렸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시간보다 거의 배나 걸렸다는 점에서 혹시 자신의 왕궁을 짖는 일에 더 몰두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또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지쳐있는데, 연이어 왕궁 건축에 동원한 것은 가혹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혹한 노동력 동원이 훗날 통일 왕국이 분열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12:4).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설계도와 자재, 그리고 비용은 상당 부분 다윗 왕 시절부터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짧은 7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궁은 성전의 두 배가 되는 크기였기 때문에 13년이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제사장 한 사람이 들어가 제사하는 공간이면 되었지만, 왕궁은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개인 공간은 물론, 왕국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사무 공간과 재판 공간, 그리고 신하들이 머물 공간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규모면에서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왕궁을 건설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력을 동원한 것이 왕국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도, 결과론적으로 해석한 분석입니다. 솔로몬의 신앙이 왕국을 건축할 당시부터 변질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시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짖는 일에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이어 왕궁을 짖는다 해도 나라를 강성하게 세우는 일환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로몬이 끝까지 하나님과 백성에게 끝까지 존경받고 인정받는 왕으로 남았다면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 동원된 사실을 백성들은 노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결과가 좋았다면, 과정은 얼마든지 새롭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모두 마치고 봉헌할 때,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셨습니다.
왕상 9:1~5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2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을 만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성전과 왕궁의 건축을 비교하지 않으셨습니다. 솔로몬이 왕궁을 성전보다 더 크게, 더 화려하게 건축하는 데 신경을 썼다는 식으로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기뻐하셨고, 솔로몬을 마음껏 축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솔로몬의 중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우리는 솔로몬이 왕궁을 건축한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훗날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솔로몬이 하나님보다 다른 이방 신을 섬기기 시작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지 않자 자신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원망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왕궁의 구조>
그러면 왕궁의 규모와 구조는 어떻게 지었을까요?
솔로몬의 왕궁은 다섯 채로 이루어진 복합 단지였습니다(모형도 보여주기).
1) '레바논 나무로 된 궁’.
2~5절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솔로몬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습니다. '레바논 나무'란 곧 '백향목'(柏香木)을 말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 '나무'로 번역된 '야아르'는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대다수의 영역본들도 본절의 '나무'를 '숲'이란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건축 재료를 백향목으로 사용했다는 뜻을 넘어 백향목의 밀집 상태, 즉 수풀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지칭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경 중에서 공동번역 성경은 ‘레바논 숲의 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최고급 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궁의 용도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있으나 일부는 병기고로 사용되었으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10:17, 사 22:8). 그러나 병기고 외에도 좀더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규모는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입니다. 이는 환산하면 대략 길이가 50m이고 너비가 25m이고 높이가 14m입니다.
성전의 크기는 길이가 60규빗(28m), 너비가 20규빗(9m), 그리고 높이가 30규빗(14m)입니다.
길이는 두배가 안되고, 넓이는 두배가 넘고, 높이는 같습니다(길이와 폭이 두 배이니 공간적으로는 성전의 4배).
중국의 자금성이나,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비교해도 소박한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 궁전의 하층은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 기둥들의 숫자가 400개라고 주장하나, 궁전의 규모를 감안할 때 너무 과밀(過密)합니다.
백향목 기둥 위에는 백향목 서까래를 얹었습니다. 지붕에는, 한 줄에 열다섯 개씩, 모두 마흔다섯 개의 서까래를 대고, 백향목 판자로 덮었습니다. 창틀은 세 줄로 되어 있고, 그 창문들은 세 단으로 되어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문과 문설주는 모두 네모 난 모양이고, 창문은 창문끼리 세 줄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2) '주랑'을 만들었습니다.
6절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주랑’은 오늘날의 ‘현관’과 같은 역할입니다(길이 25미터, 넓이 14미터). 벽은 없이 여러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덮어 개방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섬돌’을 두어 안으로 들어가는 층계를 만들었습니다(섬돌 – 집채와 뜰을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든 돌층계). ‘섬돌’을 처마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3) '보좌의 주랑'을 만들었습니다.
7절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기 위한 법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건물은 상아에 정금을 입혀 만든 화려한 보좌와 여섯 층계, 열두 사자상들이 있는 곳입니다(10:18-20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19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가 있고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서 있으며/ 20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좌우편에 서 있으니 어느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그 마루를 모두 백향목으로 깔았습니다.
4) '솔로몬의 거처'와 (5) 솔로몬의 아내인 '바로의 딸을 위한 궁정'을 만들었습니다.
8절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왕이 국사를 집무할 궁전을 지은 후 그는 자신이 거처할 궁과 자신의 부인인 애굽의 바로의 딸을 위한 별궁을 지었습니다. 그 양식은 재판정과 같았습니다.
<왕궁에 사용된 돌>
이어 왕궁을 짖는데 사용된 석재를 설명합니다.
9~11절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안팍(보이지 않은 부분도 모두)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습니다. 그 돌을 다듬기 위해 ‘톱’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건축 공사에 사용된 톱의 모양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기록상 톱은 다윗 때부터 이미 사용되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삼하 12:31, 대상 20:3).
‘초석에서 처마까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궁전의 모든 건물을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습니다. 따라서 본절의 '큰 뜰'이 왕궁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뜰 전체를 지칭한다면, '외면'은 왕궁과 성전의 경계를 이루는 성전의 뜰을 의미합니다.
기초석의 크기는 ‘십 규빗 되는 돌’(5.2-5.4m)과 ‘여덟 규빗 되는 돌’(3.68-4.32m)이었습니다. 그 위에 다양한 크기의 다듬은 돌과 백향목으로 왕궁을 건축했습니다.
<왕궁 담에 사용된 돌과 백향목>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궁을 둘러싼 담(벽)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12절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왕궁의 모든 담도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로 둘렀습니다.
다듬은 돌 세 켜(겹겹이 포개진 물건의 낱낱의 층)란 말은 ‘다듬은 돌로 3층 높이’로 쌓았다는 말입니다. 그 위에 백향목 두꺼운 판자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성전의 안뜰과 주랑에 놓인 담과 동일한 방식으로 담을 둘렀다는 것입니다.
<배우는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솔로몬의 왕궁 건축에 대한 기사가 성전 건축의 연속성 사이에 삽입되어 있습니다(6장, 7:13-51).
열왕기서 기자가 이렇게 나란히 배열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성전과 왕국을 나란히 읽도록 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크게 보면 성전 건축의 일부로서 왕궁도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로 이스라엘의 흥왕을, 동시에 하나님의 부재로 이스라엘의 몰락을 함께 보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존귀함을 받을 때, 솔로몬의 왕궁도 존귀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성전은 머리, 왕궁은 몸의 지체).
여기서 잠시, 솔로몬이 정성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와중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상기해 보겠습니다.
왕상6:11~13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13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한 언약은 무엇입니까? 삼하 7:12-16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즉 하나님의 성전과 솔로몬의 왕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신정일치 사회). 성전과 연결하여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영화가 성전 건축과 함께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한국 기독교(교회)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면서 시작되었고, 흥망성쇠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선교사가 처음 파송된 시기는 구한말 봉건사회였습니다. 그때 한국 사회의 개화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적 인간관’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기독교적 인간관은 당시 반상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교회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쳤고, 실제 교회 안에서 평등을 실천하였습니다.
또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당시에는 반외세․국가 자주 운동을 펼치며 ‘독립운동’의 기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해방 후, 독재 정권 시절에는 인권․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한국 기독교 민족운동의 한 형태로서 한국의 인권신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한국의 경제발전도 급속하게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교회에 달려있다는 믿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소돔과 고모라 땅의 의인 10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흥하면 나라도 흥합니다. 우리가 망하면 나라도 망합니다. 우리가 더욱 믿음 위에서 행해야 할 이유입니다.
둘째, 솔로몬 왕궁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성전과 가장 가깝게 붙여 지었습니다.
사람의 심리는 부담스러운 존재와는 멀리 떨아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가장 부담스러울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아니 아예 붙여지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통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제일 가까운 곳에 지었습니다. 즉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생각이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감당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람데오(Coram Deo) - '앞에서'라는 뜻의 라틴어 '코람(coram)'과 하나님을 뜻하는 '데우스(Deus)'가 합쳐진 말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을 가진 기독교신학 용어입니다. 사도 바울과 종교 개혁가들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말이기도 합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영광 아래 살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실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처럼, 보이시든 안 보이시든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을 면전에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두려움과 존경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솔로몬은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습니다.
솔로몬은 7년간 성전의 외관과 내부 장식이 완성될 동안,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왕궁을 먼저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바리새인, 장로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열심을 다했지만 이 율법을 하나하나 지키다보니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예수님은 지적하시며 그들이 우선순위를 높여서 지켜야할 계명은 하나님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이웃 사랑) 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계십니다(막7:1~16).
넷째, 솔로몬은 재판정을 왕궁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솔로몬은 왕궁을 세우는 목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자신이 가진 부와 영광을 자랑하고, 왕궁에서 단순히 안락을 누리고자 왕궁 건축을 시행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사명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판’의 직무였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재판하는 것을 그의 막중한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소원을 물으셨을 때, 그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3:9)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다스리는 모든 백성 중 억울한 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통치의 원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공평과 정의가 흐르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교분리가 되어 있지만, 교회의 사명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 나라의 3권 분립(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이 균형 잡혀 돌아가는지 견제하는 파숫꾼의 역할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은 결코 자신의 안락과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왕궁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관으로 지었습니다. 즉 이 왕궁은 성소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한 지체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몸의 각 ‘지체’입니다(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에게 주신 몸과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용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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