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 없어진 낙산사가
한창 재건되고 있다(혹은, 재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날씨가 맑은 날을 골라 (일기예보 참조)
동해안을 타고 강원도로 들어갔다.
바닷가에서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의상대> 팻말을 따라 얕은 오르막을 올랐다.
낙사가가 모두 불에 탈 때 (2005년)
의상대만은 홀로 화염에 넘어가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았으니
나는 더욱 의상대가 보고 싶다.
독야청청 아닌가!
그런데 낙산사를 한 바퀴 다 둘러본 뒤에도
의상대는 볼 수 없었다.
신라 문무왕 시절인 671년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가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좌선을 했던 곳이 바로 의상대라고 하는데
새벽 같은 7시에 집을 떠나 이곳까지 왔건만
의상대는 없,었,다!
다만 의상대 자리에는
관음송만이 푸르게 남아
겨울바다를 응시하며 곧게 서 있었다.
의상대는 없어졌지만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의상대에 몰아닥칠 세찬 해풍을 막고 있었다.
(사진) 의상대 자리에 홀로 남아 있는 관음송
의상대가 넘어질 우려가 제기되어
해체 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인데
올해 말(2009년 12월 31일)까지 완성이 된다고 한다.
소중한 문화재를 튼실하게 보전하기 위해
잠시 의상대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는데
내가 뭐랄 것인가.
그저 나는 의상대를 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나에 비하면 정철은 사뭇 달랐다.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梨니花화는 벌셔 디고 졉동새 슬피 울 제
洛낙山산東동畔반으로 義의相샹臺대예 올라 안자
日일出츌을 보리라 밤듕만 니러하니
祥샹雲운이 집피는 동, 六뉵龍뇽이 바퇴는 동
바다히 떠날 제는 萬만國국이 일위더니
天텬中듕의 티뜨니 毫호髮발을 혜리로다
하고 노래했다.
정철은 밤 같은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려고 의상대에 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는 <동명일기>의 의유당 김씨에 견줘서는 쉽게
일출의 장관을 본 듯하다.
그런데 정철은 의상대에서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던 중 문득
'아마도 녈구름 근쳐의 머믈셰라.'하고 노래한다.
그가 '지나가는 구름이 해를 가릴 것 같구나.' 하면서 한탄하는 내용은
임금 주위의 간신배들이 성총(聖聰)을 흐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정철의 <관동별곡> 중 의상대 부분의 내용을 돌이키면서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정철은 이곳에서 우국을 노래하는데
나는 다만 의상대를 구경하지 못하는 것,
의상대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만 안타까워하는구나.
지금은 간신들이 왕의 총명함을 가릴까 걱정하는 시대는 아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는 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왕(소수의 권력집단)이 백성(주권재민)의 지혜로움을 오도할까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지역감정 조장, 통계 조작, 허위 정보 유포 등 갖가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여
유권자인 백성을 속이려고 날마다 꼼수를 쓰고 있고,
거기에 기생하여
떡고물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 된 일부 정치꾼들의 농간에 넘어간
백성들은 거기 넘어가 무의미한 투표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백성들 또한 별로 신통하지 못하다.
박하식의 소설 <아버지의 아들>에 나오는 지문을 읽어보자.
지금 온 세상이 물질 만능주의에 혼이 빠져 극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온 세계가 동 세상이 되는 판이다.
스승은 돈을 받고 상품 교육을 하고
종교인은 돈을 받고 신을 팔고
여자는 돈을 받고 몸을 판다.
사람들은 돈을 받고 모든 것을 팔아 자기 영육의 안일만을 도모한다.
돈을 위하여 oo이 되고
돈을 위하여 oo가 되고
돈을 위하여 oo도 되고
돈을 위하여 지도자가 되고
돈을 위하여 공무원이 되고......
세상은 돈을 위해서 산다.
이제 곧 의상대는 곧게 일어설 것이다.
관음송은 다시 새롭게 겨울바람을 막고서서 의상대의 아름다움을 지켜줄 것이다.
나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의상대 터 앞에 서서
마음으로 푸르른 의상대의 진면목을 똑똑하게 바라본다.
의상대는 겨울바다만큼 푸르다.
첫댓글 좋은 글, 경치, 감회 잘 읽고 잘 보고 잘 느끼고 갑니다. 건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