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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김주민
바람이 차갑다. 비 내린 뒤끝이라 그런지 하늘 기운이 검붉다. 마음의 여유가 줄어든 느낌이다. 해야 할 일들 미뤄왔던 일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마음이 무거울 땐 거리를 걷는다. 지난주에는 성안동을 지나 중앙동까지 긴 시간을 걸었다. 거리의 활기찬 내음이 옛 풍경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다 문득 옛날 즐겨 찾던 책방이 있는 골목에 들어섰다. 지금은 그 많던 책방은 찾아볼 수 없고 상점들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중학교 시절 중간고사 기간이 되면 친구들은 하나둘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갖고 공부를 한다.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참고서가 없었다. 어느 날 친구가 너덜너덜한 참고서로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책은 어디서 사는지 물었다. 헌책방에서 싸게 산다고 한다. 청주 지리를 모르는 난 학교 앞 책방 이외에 다른 책방에서 싸게 살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친구는 중앙동 인근에 가면 아주 다양한 책들이 있으니 한번 같이 가자고 한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학교에서부터 걸어 한 시간여를 간 것 같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바람 따라 마음도 한껏 부풀어 오른다. 한주의 힘든 때가 하나둘 허물을 벗는 느낌이다. 일주일에 토요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토요일 오전에도 학교에 나갔다. 오후의 꿀맛을 생각할 때 오전 네 시간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시간이다. 중앙동 인근에는 헌책방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 있다. 다양한 참고서는 물론 태권도와 쿵후 교본 등 없는 게 없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다. 그날은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1주일 후 다시 혼자 찾았다. 천천히 탐색하며 찾고 싶은 다양한 책들을 구입하고 싶었다. 새 책에 비해 가격도 아주 저렴하다. 부모님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도와주려면 이런 데서 참고서를 사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먼저 교과서를 대체할 참고서를 샀다. 그다음은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태권도와 수영 교본을 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키가 작아 다른 아이들에게 많이 위축돼 있었다. 힘센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할 땐 학교 가기가 싫었다. 태권도나 수영을 배워 나 스스로 체력을 기르고 싶었다. 참고서와 태권도 교본, 수영 교본을 가방에 담아 집으로 왔다. 어디에서나 쉽게 연습할 수 있는 태권도를 익히고 수영은 나중에 해야겠다. 한여름 친구들에게 뛰어난 수영실력을 보여줘야 하니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 참고서나 태권도 교본보다 수영 교본이 더 소중하다. 이른 봄이니 여름까지 고이 간직해야 한다. 이 중요한 책을 어디다 보관하지. 한참을 고민하다 장롱과 벽 사이에 작은 틈이 있는 걸 발견했다. 여기다. 여기에 보관하면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그렇게 수영 교본을 비밀 장소에 보관하고 한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우선 태권도 교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뒤란에서 열심히 기본동작을 익혔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열심히 했지만 점차 힘들기도 하고 싫증도 났다. 내가 하는 품새가 맞는지 책을 보며 익힌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권도 교본이 슬슬 방구석 한곳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한 해가 저물었다. 몇 년 후 고등학생이 되어 여름이 다가올 즈음 수영 교본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수영 교본을 어디다 둔 기억은 있는데 그곳이 어딘지 생각나지 않았다. 꼭 찾아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정말 난감했다. 친구들은 아무 근본 없는 개헤엄을 칠 게 뻔하다. 나의 폼 나는 수영실력을 뽐내기 위해서라도 수영 교본을 찾아야 한다. 접영, 평영, 자유형, 배영 이 모든 걸 능수능란하게 하려면 교본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분명히 장롱과 벽 사이 어딘가에 놓은 것 같은데 없다. 엄마가 버렸나 아니면 동생이 치웠나. 몇 년 지난 일을 물어본들 누가 알 수 있을까. 벽과 장롱 사이나 장롱 위를 보니 짙은 먼지만이 뭉쳐 단합대회를 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장 롱 위 구석진 곳을 훑으니 손바닥이 먼지로 검붉다. 이런 낭패다. 소중한 걸 잘 보관하자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놨더니 숨겨놓은 나조차 찾을 수가 없게 됐구나. 진정 소중했다면 잘 있나 들춰보고 닦아주어 손때를 묻혔어야 했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엄마가 치웠다 하더라도 먼지 묻은 책이 소중한지 알았겠는가. 동생이 딱지로 만들었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소중한 걸 간직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얼마 전 청주시에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청주 미래유산’ 23건을 선정 발표했다. 우리 미래세대에게 가치 있는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23곳을 선정한 것이다. 여기에 ‘중앙동 헌책방’이 들어있다. 미래유산이라고 한 것을 문화유산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문화유산은 장래의 문화발전을 위해 다음 세대나 젊은 세대에게 계승할 만한 가치 있는 우리의 정신적 물질적 자산이다. ‘중앙동 헌책방’이 미래유산이고 문화유산이라면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둔다면 장롱에 숨겨둔 수영 교본처럼 다음 세대가 더 이상 찾지 못할 수 있다. 소중할수록 한 번 더 쓰다듬어주자. 헌 책방이 헌 책의 가치가 아니라 미래를 이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자주 찾아가고 보살피자. 그리고 보존하자. 헌책방의 핵심은 ‘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 있다는 사실과 그 중심에 중앙동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또 다른 나
김주민
아침 햇살이 따갑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으니 그 누구보다 신나게 놀자.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다 보면 언제 방학이 끝났는지 모른다. 찌르르 찌르르. 매미가 경쾌한 목소리로 허공에 인사하면 따스한 공기가 너울을 일으킨다. 곤충채집이라는 방학 숙제가 있기도 하지만 매미의 어디에서 고음 소리가 나는지 확인해야겠다. 작은 꿀벌이 꿀을 어디에 저장하는지도 알고 싶다. 여름방학에는 해야 할 신명 난 일이 너무 많다. 방학 동안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면 피부도 마음도 한결 탄력이 붙겠지.
나에겐 동생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따라 한다. 이걸 하면 이걸 하고 저걸 하면 저걸 따라 한다. 뜨거운 태양열이 정수리 정점에 와있다. 뒷산으로 매미를 잡으러 갈 시간이다. 뒷산 근처 밭에는 산딸나무 한 무더기가 있다. 무더위를 이기려는 듯 매미들이 나무 그늘 속에서 계속 지져댄다. 더위를 못 이겨 우는 어린 매미도 있고 친구와 놀러 가자고 소리 지르는 젊은 녀석도 있다. 매미를 잡기 위해 살금살금 기어간다. 매미들은 아주 예민해서 살짝 소리만 나도 퍼뜩 날아가기 일쑤다. 산딸나무에 달라붙은 매미들은 이곳이 아주 편한 곳인 냥 거의 도망가지 않는다. 매미채가 없어도 쉽게 잡을 수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명당이다. 햇볕의 열기가 누그러질 즈음인 초저녁엔 뒷동산에 올라 찌꺼 벌레를 잡는다. 이것도 지루하면 한밤중에 술래잡기도 한다. 술래잡기하다 건물 모퉁이에 숨어있던 동생이 뾰족한 막대기로 나를 찌른 적이 있다. 으악. 어찌나 아팠는지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에는 수영이 제일이다. 마을 인근에는 작은 방죽이 있다. 한 여름에 헤엄치며 놀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다. 방죽은 본래 웅덩이에 물을 상비하였다가 가뭄이 들면 논이나 밭에 물을 끌어다 쓰는 연못이다. 햇볕이 뜨겁던 어느 날 친구들과 방죽으로 수영하러 갔다. 친구들은 하나둘 찢어진 팬티로 수영복 티를 낸다. 하얀 러닝은 선크림 대신이다. 마치 수영선수처럼 의기양양하게 걷는다. 고추 밭과 담배 밭을 지나면 방죽이 나온다. 찐득한 진물이 나오는 담뱃잎을 스치면 끈적한 액이 몸 여기저기 묻는다. 팔뚝에 묻은 진물은 수영하면 없어질 테니 걱정하진 않는다. 방죽은 제법 깊지만 익숙한 곳이다. 작은 원처럼 되어 있고 속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다. 작고 깊은 곳에서 한 여름을 즐기겠다고 위험을 감수했는지 정말 아찔하다. 우리에겐 여름을 이겨낼 다른 대안이 없었다. 방죽 물은 더럽고 거머리가 많아 몸을 담그면 마음만 시원하다. 더 아찔한 건 모서리가 큰 돌로 쌓여있어 잘못하면 머리가 다칠 수도 있다. 고학년 형들이 장난삼아 방죽 한가운데서 발을 내리면 머리카락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이끼도 많아 온몸에 미끈한 미역 같은 검은 풀이 화려한 치장을 해준다. 간혹 거머리가 헌혈하라며 종아리에 찰싹 달라붙어 피를 쪽쪽 빨아먹기까지 한다. 요놈의 거머리를 퇴치할 겨를도 없이 신나게 놀다 보면 몸 이곳저곳이 울긋불긋하다.
한날은 수영을 못하는 동생이 같이 가자며 따라나섰다. 나도 그렇게 수영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개 헤염은 칠 줄 안다. 마구잡이 개헤엄이지만 물 위에 뜰 수 있다. 가라앉지 않기에 깊은 물도 자신 있다. 친구들 모두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물장구를 친다. 처음에는 다이빙을 하며 방죽 밑에 거울이나 돌을 던져 놓고 제일 먼저 집어오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을 한다. 거너 마을인 벌터 아이들과 우리가 사는 동편 말 아이들이 서로 앞다퉈 물속 깊이 들어간다. 그때 갑자기 동생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으로 뛰어든 동생을 보며 어 안되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동생은 수영을 못하는데 어딜 들어가는 거지. 여긴 너무 깊은 곳이라 빠지면 못 나올 텐데. 그 시절엔 안전시설이 많이 없어 우물에 빠져 사망한 아이도 있었고 차선 없는 도로에서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여럿 있었다. 동생이 물속으로 뛰어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 큰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허우적거리며 물을 먹고 있었다. 입을 벌리며 힘겨워하다 꼬르륵 가라앉는다.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 힘이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신을 차리고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온 힘을 다해 검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질펀한 흙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도 동생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동생이 장난치는 줄 알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때만큼 사력을 다한 적이 없다. 흙탕물을 조금 들이키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다. 간혹 꿈에서 그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엄마한테 혼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일어났다. 내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동생을 어깨에 올리지 않았어도 동생은 어떡해서든 물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삶은 그냥 살아지는 거니까.
어른이 되어서 직장은 다르지만 동생과 같은 직종을 갖게 되었다. 업무에서 모르는 부분은 서로 공유하며 많은 부분을 채워갔다. 최근에 아버지가 편찮으시고 집안에 상의할 일이 있을 때마다 으레 동생을 찾는다. 의지가 된다. 인생의 반을 살아오며 많은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을 겪었다. 만남과 헤어짐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변화무쌍한 흐름 속에서 동생에 대한 마음만은 변치 않았으면 한다. 방죽 근처에는 여전히 개울물이 흐르고 있다. 시냇물 속 두 개의 작은 조약돌이 나란히 기대어 있다. 물이 마를 때까지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자고 속삭인다. 두 개의 조약돌은 또 다른 나인 것처럼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이별의 아픔에서 얻는 삶의지혜
반숙자의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읽고 -
김주민
사과나무. 지구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심어야 할 나무 중 하나다.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이유는 내일의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의 저자는 부군의 일을 돕기 위해 고향인 음성으로 과수 농사를 지으려 낙향한다. 농사일이 으레 그렇듯 쏟아붓는 정성 대비 과실은 크지 않다. 인근 과수원들이 오래된 사과나무를 베어내는 일이 한창이다. 자식처럼 길러온 사과나무를 벤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남편은 자식 같은 사과나무를 베려니 마음이 아려 그믐 달빛 아래 사과나무를 안고 운다. 천직이었던 공직을 뒤로하고 사반세기 동안 가꿔온 결과가 자기 손으로 사과나무를 직접 베어내야 한다니 그 허망한 심정을 누가 알까. 달빛을 동무 삼아 매일 과수원으로 간다. 남편 못지않게 사과나무를 사랑했던 저자 또한 남편의 서글픈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저리다. 저자 스스로가 사과나무였기에 더욱 아픈지 모른다.
사과나무는 세상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해충이 달라붙어 피부를 긁고 싶어도 인내하고 버틴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면 더 단단해질 것이다. 사과나무야말로 사색의 나무다. 사색의 결과가 탐스러운 과일이다. 모진 풍파를 견뎌온 사과나무를 경제적 타산 때문에 베야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남편은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우는 것으로 속을 달랜다. “으흐흐 으흐흐”. 다 큰 어른이 노쇠해지는 사과나무를 껴안고 운다는 것이 얼마나 아련하고 애잔한가. 사과나무도 이런 마음을 아는 듯하다. 주인의 정성스러운 사랑을 이십여 년 받고 자랐기에 이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허물을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사과나무도 순수한 삶으로 돌아가려 뜨겁게 흐느낀다. 낮고 굵은 울음소리가 심령의 골짜기까지 울려 퍼진다. 그 울음소리가 사라질 때쯤 꽃이 피고 질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니까. 자연의 순리가 잔인하다 하나 그런 이치가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현재는 자연의 결과다. 이별도 자연이니 순응해야 하지만 한 줌의 미약한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에 달빛의 처연함이 분위기를 더해준다. 오히려 달빛은 감시자일지도 모른다. 감시자인 달빛 아래 사과나무, 남편, 저자 모두가 애절함으로 하나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애틋해 하고 아껴주며 사랑해 왔다. 달빛은 남편의 볼기짝을 어루만지며 동시에 낙엽을 떨구기까지 한다. 이제 우리는 이별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그 누군가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 사과나무도 그렇다.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전제로 하겠지만 그런 만남이 언제 올지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이별의 시간을 맞이하기 전 내 남은 생애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어떻게 간직해야 하는지 달빛에게 묻는다. 달빛은 여전히 한걸음 비껴 세상을 비추기만 할 뿐이다.
저자가 사랑했던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에게서 무얼 얻는가. 사과나무는 이별하면서 표피에 묻은 체면, 탐욕 모두를 태워버린다. 이 모든 걸 던져버리는 날이 이별의 순간이다. 겨울을 나는 꽃눈의 향기를 편안히 맡을 수 있도록 아직 남아 있는 내 마음의 찌꺼기를 긁어내자.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를 읽고 덕지덕지 붙어있는 욕심을 버리니 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지는 듯하다. 내일 다시 사과나무를 심어야겠다.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반숙자
처서가 지나면 건들마는 간단없이 한 차례씩 지나간다. 이맘때 쯤이면 나무들은 물 걷기를 시작하면서 조금 씩 잎을 태워 동면을 준비 한다.
기도 하고 몽유병자처럼 암흑 가운데 우뚝 서서 삼경(三更)을 보내기도 했다. 전국 어느 곳엘 가 봐도 울타리 없는 과수원은 이곳 음성(陰城) 밖에 없다던 과수원 마을에, 올 가을부터 수령 십년, 이십년이 넘는 사과나무를 캐는 작업이 한창이다. 비싼 소독약 뿌리고 비싼 비료주어 일년 농사 지어봐야 생산비 건지기도 힘드니 공들여 키워 온 나무를 베어버리는 그들의 심중은 알고도 남는다.
서리가 하얗게 내리던 밤이었다. 잠이 안 온다고 담배만 피우던 그이가 “임자 자나?” 잠결에 들려온 그의 목소리가 푹 가라앉아 있었다. “임자, 과수원 하기도 힘들지? 몸도 약하고 소독약 중독돼 얼굴 붓고” 혼자 중얼거리는 그이의 저의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냥 둬요. 이십년이나 길렀어요. 자식 기르듯이.” 그이는 망연히 담배 연기만 날리고 있더니, “이렇게 가다가는 자식 놈 둘 대학 공부도 못 마쳐.” 한마디 내 뱉고는 휑하니 밖으로 나갔다. 다른 공산품은 원자재 값이다, 가공료다 하고 가격 현실화를 했건만, 농산품은 마치 맹물 먹고 자라는 콩나물로 아는지 제자리 걸음이다.
농민은 고독하다. 혈기 있고 교육 받은 젊은이는 도시로 빠져나가고 남은 것은 텅 빈 집과 노인과 부녀자 뿐이다. 어디 살기 힘든 곳이 농촌 뿐이랴. 하지만 국민 전체의 식생활을 담당하고 있는 농촌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농촌에 한한 것만이 아닌 국민 전체의 것이 아닐까.
스무하루 그믐 달빛이 창으로 비쳐 들고 있다. 서울에서 공직에 있던 그이가 과수원이 좋다고 고향으로 내려온지도 사반세기가 흘렀다. 삼십대 초반의 장년이 이제 지명의 황혼 길에 서서 어느덧 자신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로 변신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한 치도 숨돌릴 수 없는 급박한 현실에 밤마다 몸으로 우는 그의 아픔을 나는 안다.
그이가 좋아 한 이상으로 나도 사과나무를 좋아 했다. 가지마다 화사한 요정을 달고 섰는 봄 나무가 좋고 짙푸른 생명력으로 주어진 생(生)을 열성껏 살고 있는 여름 나무도 좋지만 인고(忍苦)의 결실로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섰는 가을 나무는 충만한 은혜로움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해 더욱 좋다.
그러나 더더욱 좋은 것은 모두를 돌려 보내고 살을 가르는 동천(冬天)에 빈손으로 서서 묵묵히 사색하는 겨울나무는 나의 스승이요 벗이요 연인이었다. 검지 손가락 같은 묘목을 심은 게 엊그제 같은데 두 팔 안에 뿌듯이 안겨오는 나무의 몸매, 그 안에 우리의 생활이 연륜으로 무늬 져 있다.
방문을 열고 뜰에 내려서니 달빛이 시리도록 천지가 적요하다. 그이는 온데 간데 없고 어디선지 부엉이 울음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린다. 한기(寒氣)에 팔장을 끼고 큰 밭으로 주춤주춤 가보니 사과나무 둥치를 껴안고 울고 섰는 그이. “으흐흐 으흐흐” 나무를 껴안다 두드리다 얼굴을 비비며 흐느끼는 그이, 나무 뒤에 숨어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잎 지는 가을밤 그 스산함이여.
천지가 백설로 뒤덮인 겨울에도 신의 음성을 들으며 찰그락 찰그락 순을 치다 보면 어느새 가슴으론 시냇물이 도올돌 흐르고 꽃망울 트는 소기가 귓가에 와 맴돈다고 했다. 깊게 잠든 삼라만상을 바람이 두드려 깨우는 3월이 오면 우리는 사과나무 등피를 긁어주는 작업에 바빴다. 월동한 병충알, 때묻은 표피를 벅벅 긁어 주다 보면 짐스러운 체면, 탐욕의 인간사도 가끔은 사과나무처럼 말끔히 긁어내 태워버리고 싶어진다.
보숭보숭한 솜털을 두르고 겨울을 나는 꽃눈의 지혜 또한 놀라웁고 다투어 꽃피고 잎 피는 그 순리(順理), 얼마나 기묘한가? 흰 듯 발그레한 연연한 꽃 이파리. 봉오리마다 은은히 피어 오르는 순백의 향연, 눈물인 듯 감격인 듯 달밤을 휘두르며 퍼내는 향내, 그 향기에 질식사해도 후회 없겠다던 봄 밤, 우리는 이 과원을 가꾸며 창조주의 크신 사랑을 터득했으며 흙손 속에 짚이는 솔직한 땀의 응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다산 선생께서는 일찍이 농사가 다른 일보다 못한 이유를 대우가 선비들만 못하고 이익이 상업만 못하고 편안하기가 공업만 못하다고 실토하셨다. 그러나 우직한 믿음과 속임수 모르는 순수한 삶이 그 어느 인생보다 값지고 보람 있다고 자부 해 왔다. 어떤 나무에는 부란병의 고질이 있어 해마다 수술하고 응애가 붙어 가려워 하는 나뭇잎, 배가 고파 허기진 가지, 갈증에 허덕이며 타는 입술, 탄저가 도려내는 사과의 신음소리까지도 알아내어 치료해 주는 열렬한 사이로 살아 왔다.
“모두가 고향을 버리고 떠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살다가 여기에 묻힙시다” 나무 밑 잡초를 뽑아주다가 무심히 던진 그 한마디가 내 깊은 심령의 골짜기까지 울려 온다. “감기 들어요, 들어가요.” 그이는 흠칫 놀라며 소매 깃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일부터 사과나무를 캐야 겠어. 그런 줄 알어.” 퉁명스럽게 내 뱉고는 방으로 들어 갔다.
달빛이 비껴 내린 알몸의 사과나무도 하얀 눈물을 뜨겁게 뜨겁게 쏟고 있었다.
2021년 한국수필등단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수료
무심수필문학회 회원
88jumin@hanmail.net
남이초등학교
<사진>첨부
추신 : 이메일(minimouse2004@hanmail.net)로도 사진1매(파일)와 함께 제출하였습니다. 끝
첫댓글 김주민 선생님,
무심 수필 6호 원고, 좋은 작품 일찍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잠시 틈이나서 정독을 했습니다.
잔잔하고 뭉클한 감동에 쉬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