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은 두번의 청장, 두번의 장관, 두 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영원한 공복(公僕)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전라남도 함평에서 농사꾼의 6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사를 지으며 고향 마을에서 학다리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전남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공무원 재직 중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를,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직에 입문, 철옹성 같았던 연고주의를 뛰어넘고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원 원장과 세제실장→관세청장→국세청장→대통령 비서실 혁신관리수석비서관→행정자치부 장관→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시골 중고등학교와 지방대 출신으로 학연·혈연·지연의 높고 견고한 벽들을 넘어서며 공직사회의 ‘성공신화’가 되자 붙여진 별명이 ‘담쟁이’다.
2008년, 33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정의롭고 풍요로운 세상」, 평생 간직해 온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 18대,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민주당 대변인과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을 지냈다. 낙후된 고향 광주를 지방자치의 성공모델로 만들어 보고 싶어 2014년 6.4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당초 약속을 어기고 광주시민의 뜻과는 달리 경선 없이 전략공천을 밀어붙이자 탈당과 함께 국회의원직도 사퇴했다.
저잣거리에서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과 부대끼며 삶의 길을 다시 생각하는 2년여의 진솔한 시간을 가졌다. 정권교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 ‘正道가 이기는 정치’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올곧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작은 언덕이라도 되어 드리겠다는 심정으로 20대('16.4.13) 총선에 광주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야권의 심장인 광주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전패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도전과 역경의 정치인생 1장을 마무리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 현실정치를 떠났다.
더불어 잘사는 공정한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고 싶은 간절함과 절실함으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후보를 지지했다. 文캠프에서 비상경제대책단장과 후보 경제특보를 맡아 열정을 쏟았다. 2017. 5.16. 문재인정부의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J노믹스 실현에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세번(국세청장, 행정자치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임명시) 이나 문제 없이 통과하면서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받았으며, 가는 곳마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혁신최우수기관으로 개혁함으로써 혁신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초선 국회의원시절이던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경제정의실천연합'과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두 곳으로부터 4년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된 국회의원은 이용섭의원 딱 한 사람이었다.
“궁해도 의로움을 잃지 않고, 잘되어도 도를 벗어나지 않는다[窮不失義 達不離道]”
가 인생 좌우명이다. 원칙과 논리를 중시하지만, 한 줄의 시구에도 눈물 짓는 감성을 간직한 천생 시골 사람이다. [출처] 이용섭 프로필|작성자 담쟁이
<재산소비세심의관 시절 1998-1999.1>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고소득전문직 사업자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과세하고, 변칙상속증여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세법안을 입안하여 과세공평성을 제고하고자 노력하였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양도소득세율을 일반 소득세율 수준으로 인하(30~50% → 20~40%)하고, 토지초과이득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입안하였다.
<세제총괄심의관 시절 1999.1-2000.6>
외환위기이후 악화된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세제를 대폭 개편하였다. 실질소득 감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 온 봉급생활자들의 세부담을 평균 30% 경감, 식음료품,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 중산․서민층이 주로 소비하는 물품에 대한 특별소비세 폐지, 금융소득종합과세 재실시 등의 법안을 마련하였으며, 세정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과세자료를 국세청에 통보토록 의무화하는「과세자료제출및관리에관한법률」을 입안하였다.
<국세심판원장 시절 2000.6-2001.4>
과세 관청의 입장에서 벗어나 억울한 납세자의 권리는 적극 구제하고, 불성실 납세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심판하여 건전 납세의식을 제고하였다.
<세제실장 시절 2001.4-2002.2>
우리나라 조세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세제실장 재직시에는 비과세․감면을 대폭 축소하여 과세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94년 이후 7년만에 소득세율을 인하하고 특별부가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마련하여 「넓은 세원 낮은 세율」체계를 통해 과세의 공평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쟁력 있는 세제를 구축하였다.
<관세청장 시절 2002.2-2003.3>
공․항만의 감시체제를 강화하여 테러물품의 반입을 차단함으로써 안전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개최를 뒷받침하였다. 또한 관세행정의 정보화, 감시장비의 과학화, 관세인력의 전문화를 추진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시스템을 구축하여 직원들이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정착시켰다.
<국세청장 시절 2003.3-2005.3>
국세행정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립하고, 성실한 납세자가 존경받는 선진납세문화를 확산시키는 등 국세행정의 패러다임과 시스템을 바꾸는 강도 높은 혁신을 추진하였다. 접대비실명제, 현금영수증제 등 투명사회 실현을 위한 각 종 혁신적 조치 등을 시행하였고, 권력기관으로 인식되던 국세청을 국민에게 봉사 하는 서비스기관으로 탈바꿈시켜 재임하던 2년 연속 혁신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다
<혁신관리수석비서관 2005.4-2006.3>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의 혁신관리를 총괄하고 전자정부수준의 향상과 정부통합민원시스템의 구축을 뒷받침함으로써,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들이 고충과 민원을 편리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 행정자치부장관 시절 2006.3-2006.12>
인터넷민원서비스 확대와 같은 국민이 체감하는 정부혁 신을 통하여 전자정부 평가 세계 1위, UN공공행정상 수상 등의 성과를 창출했다.
<건설교통부장관 시절 2006.12-2008.1>
분양가상한제 원가공개제 등을 시행해 폭등하던 집값과 부동산가격을 확실하게 안정시켰고 투기를 진정시켰으며,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착공 등 국가균형발전사업도 큰 진전을 이루었다.
철도 항공 지하철 화물연대 택시 등의 파업이나 집단행동이 재직중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것은 98년 이후 처음 있는 일로서 끈임없는 소통의 리더십 결과이다.
.
< 국회의원 시절 2008.4-2014.5>
ㅇ18대(2008.6-2012.5) 국회의원 299명중 유일하게「경제정의실천연합」과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두개 기관 모두로 부터 4년 연속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다.
ㅇ야당 국회의원으로서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여 부자감세의 사실상 철회를 이끌어 냈고, 특히 민주당 ‘종부세폐지반대 천만인서명운동본부장’으로서 야당 역사상 최초로 320만명의 국민서명을 받아 결국 종부세를 지켜냈다. 또 한반도 대운하정책 철회,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 원안 그대로 지켜낸 것도 의정활동의 커다란 성과이다.
ㅇ 민주당 ‘보편적복지 기획단’ 위원장으로서 보편적복지 재원 33조원의 조달방안을 제시해 ‘세금폭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잠식시키고 보편적 복지가 시행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정책임을 입증했다. 아울러 민주당의 민생본부장으로서 전월세상한제․ 주택바우처제도 도입 등 중산서민을 위한 다수의 민생정책을 입법 발의해 ‘당론’으로 채택해 추진했다.
o 당 대변인 시절에는 “선비 기품을 유지하면서도 치밀한 논리로 강한 야성본능을 드러냈다”는 언론의 평가처럼 정책과 정치를 접목한 브리핑을 통해 새로운 야당 대변인상을 만들어 냈다.
[출처] 공직과 정치인으로서 성과|작성자 담쟁이
<저서>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