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실제로 없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부재이지만, 머릿속에 살아 있다는 점에서 그의 육체는 현존이다. 말장난 같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부재하는 현존이며, 현존하는 부재이다. 그러나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 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무서워라, 그때에 그는 정말로 없음의 세계로 들어간다."(김현,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해설 중에서)
퇴근 길에 갑자기 뇌리에서 "사~랑~은~ 나의 행~복"하고 멜로디가 울렸다. 문득 떠오른 것인데,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공허감과 함께 무한반복되었다. 전곡을 듣지 않으면 잡히지 않을 이 귀벌레(Earworm)부터 쫓기 위해, 집에 들어서자 마자 유투브에서 송창식의 가창을 찾아 들었는데 아니었다. 이윽고 패티김을, 최희준을, 조용필을....여러 가수를 열어보았지만 모두 아니었다. 그러다 저 클래식 기타 반주에 어우러지는 장사익의 가창을 듣는 순간, "이거였어!" 답답하던 속내가 그제서야 뚫리고 조금 가라앉는 듯 하였다.
작가가 죽으면 그의 영혼은 책에 묻히고, 소리꾼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노래에 남을 것이다. 존재 자체가 장르인 예술가. 몇 년 전, 성대결절로 노래를 못한다더니, 얼마전 평창 올림픽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요즘 가수들은 젊어서부터 가요 기획사에 들어가 노래를 배운 후 인생을 배우지만, 나는 거꾸로 인생을 배운 다음에 노래를 불렀다"는 소리꾼 장사익. 그의 소리로 내 불안한 영혼이 잠시나마 어깨를 기대고 위로를 받았다. 어찌나 감사한지. 호르몬의 작란인지, 변덕스런 날씨탓인지..... 미처 다 알 수 없는 이유들로 내 안이 소란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