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 입맛 없는 날, 진주의 한 비빔밥집을 찾았습니다. 비빔밥하면 다들 예외없이 전주를 들곤 하지만 사실 진주비빔밥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식당 내부 작은 마당 주위로 방이 있다. 방에서 식사를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 두는 게 좋다.
진주라 천리길, 지리산을 끼고 있는 이 외딴 소도시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오랜 맛의 전통이 있습니다. 음식하면 전라도,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맛없다라는 상식을 깨뜨리는게 이곳 진주의 음식입니다.
지리산의 풍부한 약초와 산나물, 남해 바다의 싱싱한 해산물이 이곳 진주에서 기방음식문화를 만나 독특한 문화를 일구어 내었습니다.
진주비빔밥 전주, 해주의 비빔밥과 더불어 유명하다. 천황식당은 3대 80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서둘러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자 비벼먹은데서 유래되었다.
진주 한량들이 기방에서 야참을 먹은데서 비롯한 진주냉면이 북쪽의 평양, 함흥 냉면과 쌍벽을 이루었다면 조,일전쟁(임진왜란) 당시 군,관,민이 밥에다 나물을 비벼 먹은 것이 전주, 해주의 그것과 견줄 수있는 진주 비빔밥의 유래였다 하지요. 논개와 산홍이 같은 의기들을 배출한 곳도 이곳 진주이지요. 충절과 풍류가 대치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생활속에 남아 있는 곳이 이곳 진주랍니다.
대개의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한다. 그래야 밥알과 재료가 상하지 않아 원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진주비빔밥의 명맥을 이어가는 곳이 얼추 세 군데 정도 있습니다. 여행자는 이 세 곳의 비빔밥을 몇 번씩이나 먹어 보았지요. 천황식당, 제일식당, 갑을가든 정도 입니다. 셋 중에서는 역시 천황식당과 제일식당입니다. 천황식당의 비빔밥이 약간 고슬고슬 하다면 제일식당의 비빔밥은 조금은 찰집니다. 천황식당이 손바닥만한 마당 둘레로 방이 몇 칸 있어 고졸한 분위기가 있다면 제일식당은 장터의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시끌벅적한 곳입니다. 갑을가든은 조금은 현대화된 대형식당으로 남강을 바라볼 수 있어 분위기는 좋은데 맛은 깊지 못하더군요.
선지국 보기와는 달리 무우와 콩나물을 넣어 잡내가 없는 국물맛이 시원하다. 선지국은 달라는 대로 주는 후덕함이 있다.
천황식당은 진주시 중앙시장 인근에 있습니다. 천황의 '황'은 봉황을 의미합니다.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황이 날아 오른 비봉산이 있고, 그 아래에 봉이 알을 낳은 '봉알 자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지명의 특성에 연유하여 식당의 이름도 지어진 모양입니다.
식당 내부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책상과 의자들이 시간을 잃어 버린듯 하다.
전에도 와 본 곳이지만 한참을 헤메었습니다. 중앙시장 인근이라는 것만 기억을 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식당에 도착하니 80년대 전화기에서 70년대 밸소리가 쉴새없이 울립니다. 식당 위치를 묻는 외지인들의 전화였습니다.
육회 선홍빛의 육회 맛은 일품이다. 취향에 따라 마늘과 배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좋다.
비빔밥과 육회를 주문하고 식당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봅니다. 60,70년대 세트장 같은 분위기가 우선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앉으면 금방이라도 부셔질 것 같은 의자와 책상, 오래된 검은색 전화기,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었다는 옛 집, 미닫이문 안에 좁게 자리잡은 방들, 모든 것이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비빔밥이 나오자 색이 무척 곱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선홍색의 육회와 빨간 고추장, 노란 숙주나물, 갈색의 고사리, 초록색의 시금치 등 일곱가지 나물들이 한 송이 꽃처럼 피어 있었습니다. '꽃밥', '칠보화반'이라는 이름이 꽤나 어울립니다.
후식 후식으로 계피와 감초가 있다. 음식을 먹고난 후 약간은 찝찝한 입안을 싸하고 상쾌하게 한다..
맛은 어떨까요. '입에 척 감긴다.' 외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네요. 선지국이 같이 나오는데, 보기와는 달리 무우와 콩나물을 넣어 국물맛이 시원하고 잡내는 전혀 없습니다. 비빔밤을 더 맛나게 하네요. 육회도 한 접시 했는데, 채로 썬 배와 마늘이 곁들여 나옵니다. 취향에 따라 섞어 먹어도 되지요. 육회의 선홍빛이 정말 아름답기까지 하더군요.
전주비빔밥이 세련되고 걸게 나와 가격이 비싼 반면 진주비빔밤은 소박하고 맛깔나면서도 가격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으니 여행자의 가벼운 주머니에는 제격입니다.
천황식당 3대 80년째 운영해 왔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 새로 목조와가을 지었다. 옛 추억이 물씬 풍긴다.
☞ 여행팁 진주시 중앙시장 인근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 편 골목 ☎ 055-741-2646
비빔밥 6,000원 육회 20,000원 석쇠불고기 15,000원 |
출처: 김천령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김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