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인문학] '파우스트' '안나 카레니나'… 명작들 줄줄이 무대에

[무지렁이]

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파우스트' '안나 카레니나'… 명작들 줄줄이 무대에

• 입력 : 2023.04.24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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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고전

▲ 29일까지 상연하는 연극 ‘파우스트’의 한 장면. /샘컴퍼니

오래전 대문호(大文豪)가 남긴 명작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공연 예술 장르로 변주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평생을 바쳐 쓴 역작 '파우스트'는 연극(29일까지·LG아트센터)으로 제작됐어요.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가 중년에 이르러 삶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쓴 '참회록'과 그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도 최근 음악극으로 재탄생해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가 연극으로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파우스트가 이렇게 외치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그의 영혼을 가져가려 합니다. 신을 이해하고 학문을 완성하는 길에 인생을 바치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자살하려던 파우스트는, 바라는 모든 것을 이뤄주겠다는 악마와 영혼을 건 계약을 했죠. 하지만 그 계약은 절대로 파우스트가 하면 안 되는 저 금기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끝납니다.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유명한 이 문장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방황하는 나약한 인간이 어느 한순간에 집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파우스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신이 '나의 종'이라 부르며 아끼는 대상이었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죠.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런 파우스트조차도 삶의 부질없음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성욕과 물욕, 그리고 권력욕 앞에 무릎 꿇고 그 순간에 집착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신은 파우스트를 구원합니다. 인간은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괴테는 25세 되던 1774년 집필을 시작해 죽기 1년 전인 1831년 마침내 '파우스트'를 완성했어요. 57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대장정이었죠.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808년 1부가 먼저 출판되고, 이후 20여 년 뒤인 1831년 2부가 출판됐습니다. 그사이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1부와 2부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고, 특히 2부는 난해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우리가 보통 '파우스트'를 이야기할 때는 1부를 지칭합니다. 괴테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술사였던 '게오르크 파우스트'라는 실존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썼다고 전해져요. 또 '아다나의 성 테오필로'라는 신화 속에서 고위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테오필로가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오죠.

'파우스트'는 그동안 영화·연극·뮤지컬·오페라 등 수많은 버전으로 재탄생돼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요. 베토벤은 '파우스트'의 매력에 빠져 오페라로 만들 계획을 세우지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꿈을 이루지 못했죠. 말러는 교향곡 제8번 Eb장조 '천인 교향곡'에서 파우스트 2부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죠. 리스트 역시 파우스트를 주제로 교향곡을 썼고, 악마 메피스토를 주제로는 왈츠 4곡을 작곡했습니다.

지난달 국내에서 막을 올린 연극 '파우스트'는 유인촌 배우가 파우스트를, 박해수 배우가 메피스토를 맡았습니다. 스펙터클한 대극장 연극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죠. 가로 27m, 높이 8m에 이르는 초대형 LED 스크린을 배경으로 초현실적인 영상을 구현하고, 메피스토가 투명한 잔에 물을 따르자 포도주로 변하고, 책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 마술 기법까지 등장시켜 관객을 몰입시키죠. 이번 연극 역시 방대한 '파우스트' 원작 중 1부만 무대에 올려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어요.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가 만난다면

무거운 정적으로 가득한 러시아 아스타포보 기차역. 마지막 기차를 기다리는 노년의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지난 16일 막을 내린 음악극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는 작가 톨스토이와 그가 창조해 낸 책 속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죠. 톨스토이가 54세였던 1882년 발표한 '참회록'은 자신의 과거와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와 반성 속에서 길어 올린 걸작으로 평가받아요. 1875년 잡지에 발표된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명작입니다.

19세기 후반 러시아를 배경으로 남편이 있는 아름다운 안나 카레니나와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가 사랑에 빠지고 질투하고 아파하는 사랑의 과정을 치밀한 심리 묘사로 그리고 있어요. 사랑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안나 카레니나는 결국 달려오는 기차에 투신해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 역시 파우스트처럼 영화·드라마·발레·연극·뮤지컬로 제작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2018년 러시아 제작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 옥주현, 정선아 배우가 캐스팅돼 초연 무대를 올렸습니다. 2017년 11월 국립발레단이 국내 및 아시아 초연으로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현대 발레'라는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성을 인정받는 보리스 에이프만 안무가의 발레 '안나 카레니나' 역시 국내 발레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음악극 형식의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노·바이올린·첼로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배우 한 명이 안나 카레니나의 '마음'을 의인화해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연기합니다. 이런 연출 덕분에 관객은 금지된 사랑 앞에서 고뇌하던 안나 카레니나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지요.

공연의 배경이 된 러시아 아스타포보 기차역은 실제로 톨스토이가 82세를 일기로 숨진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기차역 역장의 숙소에서 세상을 떠난 대문호를 기리기 위해 1918년 아스타포보역은 '레프 톨스토이역'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역장의 숙소는 박물관으로 개조돼 톨스토이를 기리는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습니다.

▲ 29일까지 상연하는 연극 ‘파우스트’의 한 장면. /샘컴퍼니

▲ 1808년 나온 ‘파우스트’ 1부 초판. /위키피디아

▲ 지난 16일 막 내린 음악극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의 한 장면. /극단 피악

▲ 지난 16일 막 내린 음악극 ‘톨스토이 참회록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의 한 장면. /극단 피악

▲ 레프 톨스토이(왼쪽)와 1878년 책으로 출간된 ‘안나 카레니나’ 초판. /위키피디아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