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14코스 (대축∼원부춘)
▣ 일시: 2024.11.9. (토)
▣ 대축마을∼ 안군산 부부송∼ 동정호∼입석마을∼서어나무 쉼터∼윗재∼원부춘
▣ 도상거리: 11.65km,
▣ 소요 시간: 6시간 20분
이번 구간은 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대축마을과 화개면 부춘리 원부춘 마을을 잇는 길이다. 대축마을에서 성제봉 윗재를 넘어가는 코스로 트레킹이라기보단 등산 수준의 구간이다. 이곳 악양면은 2009년 세계에서 111번째, 국내 5번째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곳이다. 그러니 서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느긋하게 걸어볼 일이다.
지리산은 겨울 채비가 한창이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옷을 갈아입었다. 진초록이었던 잎들은 어느새 붉고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산과 들은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차오른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하늘을 가르며 춤추듯 땅으로 내려앉고,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마저도 가을의 속삭임이다.
이 구간에서 가장 멋지고 기억에 남는 구간은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녘에 서 있는 부부송 그리고 동정호를 들려가는 것일 거다. 평사리 들판은 지리산과 백운산이 만든 협곡을 헤쳐 흐르던 섬진강이 부려놓은 큰 들이다. 평사리 들판을 무딤이 들이라고도 하고 소설‘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축지교에서 입석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평사리 들판을 거쳐 가는 길과 악양천 둑길로 가는 지름길로 나눠진다. 어느 길을 선택해도 악양 들판을 품고 가지만, 지름길인 둑길을 버리고 동정호와 부부송이 있는 무딤이 들로 길을 잡는다. 몇몇은 산길 오를 힘을 비축한다고 지름길을 택한다.
동정호 물가의 수양버들은 수묵화 한 폭을 연상케 한다. 먹으로 번진 듯한 뿌연 안개와 어우러진 버드나무의 실루엣은 동양화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부부송은 서양화의 정물화 같다. 햇살 아래 빛나는 솔잎과 거친 나무껍질의 질감은 현실감 넘치는 표현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처럼 두 풍경은 각기 다른 화풍의 그림처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동정호 한가운데에는 꽃섬을 만들어 구름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동정호 물속에는 내려앉은 백운산이 이쁘다. 동정호 옆에 정답게 서 있는 부부송은 더 이쁘다.
둘레길은 동정호를 지나면 최참판댁을 지나지 않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서 봉대리까지 직진 길이다. 그러나 둘레길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최참판댁 쪽으로 길을 잡는다. 참판 댁에는 전에 한 번 들린 적이 있기에 들리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보문사 갈림길을 지나 그늘 한 점 없는 시멘트임도 길을 오른다. 성제봉에서 이 길을 몇 번 내려온 적은 있지만, 올라가는 건 첨이다. 땡볕 오름길은 힘이 든다. 시멘트 길이라 더 힘들고 지친다.
서어나무 쉼터에 이른다. 먼저 와 있어야 할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지름길을 택한 일행들이 길을 잃고 한참이나 헤맨 모양이다.
이곳에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발걸음이 무겁게 내디뎌지는 오르막길, 평사리 들판을 뒤로하고 성제봉 윗재를 향해 오른다. 급경사도 아닌데 숨이 차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이는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가 시원하게 가슴을 뚫어준다. 멀리 보이는 섬진강은 유유히 흐르며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마치 모든 근심을 씻어내 주는 듯 맑고 투명한 물빛이 시원하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과 군데군데 모래톱이 참 아름답다.
가파른 길을 오를수록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멀리 백운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아래로는 넓은 악양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힘겹게 윗재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동안의 고된 노력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탁 트인 시야에 가슴이 뻥 뚫린다. 멀리 보이는 섬진강은 더욱 빛나 보이고, 백운산은 점차 낮아 보인다. 힘든 길을 함께 걸어온 벗님네들과 함께라서 주변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너럭바위 윗재는 둘레길과 성제봉에 오르는 등산로가 나뉘는 고갯길이다. 윗재에 오를 때는 힘들었다. 성제봉 능선을 지나 숲속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든다. 저 멀리 구례읍이 아득하고 섬진강과 백운산자락을 벗 삼아 걷는 길이 마냥 즐겁다. 그동안 느꼈던 고통은 곧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할 것이었다.
서어나무 쉼터 ▲ 대봉 감나무밭이 이어져 있는 길을 계속 오르면, 개서어나무가 반기는 쉼터(원부춘 4.9㎞/ 대축 3.6㎞)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굵은 개서어나무 그늘에 평상과 벤치도 있고 바로 아래엔 화장실과 완주 인증을 위한 스탬프 함도 있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 비경, 성제봉, 섬진강 건너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까지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대축마을 ▲‘대봉감’ 시배지로 전해진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대봉감과 대봉 곶감은 전국 그 어떤 대봉감보다 우수한 크기와 맛을 자랑한다.
무딤이 들과 악양면을 둘러싼 산세 ▲ 물이 넘나든다고 해서 불리는 넓은 들녘이다. 추수가 끝나 텅 빈 들녘은 83만 평이라는 수치보다도 훨씬 더 넓어 보인다. 신성봉·형제봉·거사봉·시루봉 등 1,000m 수준의 봉우리들이 길게 이어진다.
부부송 ▲ 들녘 한가운데, 소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우뚝 서있다. 토지 속 주인공 서희와 길상이를 연상시킨다. 사진작가들의 좋아하는 단골 모델이다.
동정호 ▲ 자연 습지를 복원한 생태공원의 호수다. 하동군 악양면이 중국에 있는 악양과 지명이 같은데 착안해 그 동네 호수의 이름을 빌려온 모양이다.
소설 토지와 평사리 ▲ 소설은 60년에 가까운 시간과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얘기가 전개되지만, 시작과 끝은 여기서 이뤄진다. 나는 박경리의 고향이 평사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박경리는 작품을 끝낼 때까지 평사리를 방문한 적이 없단다. 단 한 번 진주여고 시절 이곳 출신 선배와 함께 평사리를 방문했던 기억이 전부였단다.
소설을 구상하던 중 만석꾼이 날 정도의 넓은 평야가 있어야 한다는 공간적 배경, 작품에 작가에게 익숙한 사투리와 같은 문화적 요소를 녹여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다가, 넓은 논밭이 있던 평사리를 기억해 내고 ‘토지’의 배경지로 삼았다고 한다.
조릿대가 아니다. 시느르대이다.
첫댓글 ㅡ 권수문
이번 코스는 볼거리가 많은 코스였지만 길을 잘못 잡아
주마간산 형국이었는데 형님의 산행기를 읽으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생각보다
빡센 14구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