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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남 유다 백성들의 잘못
본문 : 예레미야 3장 1-10절
『오늘 말씀은 지난 주에 이어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으로 인해 멸망한 북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도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남 유다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이 어떤 잘못을 하였는지를 설명하면서 ‘이와 같이 남 유다도 같은 잘못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라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시온으로 돌아오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시간 상, 다 살펴볼 수는 없고, 오늘 우리가 읽었던 분문을 중심으로 ‘남 유다 백성들이 어떤 잘못을 하였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잘 들으시고 저들과 같은 잘못을 하지 말아야 할 줄 믿습니다.
1.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잘못’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여기서 두 나라가 나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입니다. 이 두 나라는 다 하나님과 결혼을 한 사랑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하나님만 사랑했어야 하는데,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을 배역하고, 간음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배역’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메슈바’라 하는데, ‘배신하다, 변절하다, 돌아서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할 저들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남자와 간음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진짜 간음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던 저들이 마음이 바꿔 이방신, 우상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내쫓고, 이혼서를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남 유다가 이런 북 이스라엘의 모든 잘못을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다가 마침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정신차렸어야지요. “우리는 저들과 같이 되지 말아야지”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다고 했어요? 8절 하반절입니다. “유다가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저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보았어요. 그래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11절에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말씀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 여기서 이스라엘을 ‘배역한’으로 말하고 있고, 유다에겐 ‘반역한’이란 말을 썼습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릅니다. ‘배역’은 ‘잠시 배반한 것’입니다. ‘잠시 마음이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반역’은 ‘완전히 떠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완악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역한 이스라엘보다 유다가 더 낫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남 유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완전히 떠나있다는 것도 모르고, 또한 북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며, 거리낌 없이 가서 행음을 하는 저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결혼을 한 신부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역한다면, 그래서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영적인 정절을 잃어버린다면 어찌 될까요? 심지어 유다와 같이 아예 반역을 하여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다면 어찌 될까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들이 알면서도 행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저들의 잘못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줄 믿습니다. “혹시 나는 하나님을 배역하지 않고 있는지? 나는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않은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알면서도 같은 죄를 짓는다면, 저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보면서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결과가 어떠한지 보았음에도 돌이키지 않는 잘못’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단비’란, ‘이른 비’를 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땅에 씨를 파종하는 시기에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봄비’입니다. 이때 비가 적당히 내려주어야 심은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늦은 비’는 ‘곡식이 한창 여물고 있을 때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이때 물이 없어 메마르게 되면 여물지 못하거나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적당한 비가 오게 되면, 각종 열매가 잘 자라게 됩니다. 물이 없는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께서 봄과 가을에 적당하게 비를 내려주시어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맺어지는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죄악으로 인해, 단비와 늦은 비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봄에 비가 내리지 않으니 심은 씨가 싹이 나지 않고 자랄 수도 없게 됩니다. 또한 늦은 비가 오지 않으면, 열매들이 자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정신을 차렸어야지요. 하나님의 징계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느냐?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말일까요? 분명 그렇게 하는 것이 부끄러운 짓인지 알았어야 하는데, 저들은 창녀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창녀가 남자와 자는 것을 부끄러워 할까요? 이 남자 저 남자 사귄다고 창피하게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부끄럽거나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을 버는 직업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 유다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결과가 어떠한지 알았다면, 속히 돌이켰어야 합니다. 그것도 단비가 그치고, 늦은 지가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면, 속히 깨닫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어요? ‘창녀의 낯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창피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5절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쉽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요?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에게 화를 내시렵니까? 우리가 그럴지라도 끝까지 사랑하셔야지요” 이는 저들이 전혀 자기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남 유다 백성들과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어떤 표적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가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돌아보았어야 할 텐데, 창녀의 낯을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요?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에게 화를 내시렵니까? 우리가 그럴지라도 끝까지 사랑하셔야지요” 말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북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였을까요? 또 남 유다에게 왜 어려움이 생기고 있을까요?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14절에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저들을 버리실 것이면, 구태여 이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되시기에 저들이 깨닫고 돌아서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도 우리의 잘못을 돌아보아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또한 보여주시고 어떤 어려움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깨닫길 원하시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하여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환경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속히 돌이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거짓으로 행하는 잘못’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요시야 왕 때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요시야 왕 때 어떤 일이 있었느냐? 열왕기상 23장에 나오는데, 요시야가 왕이 된 후에 나라에 퍼져 있었던 모든 우상들이 다 없애는 개혁을 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와 태양신과 아스다롯과 밀곰의 상을 찍어 불에 태워 없애 버렸습니다. 또한 산당의 제사장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게 하였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들려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시야 왕 때, 우상을 섬기던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만 섬길 것을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백성들이 어떻게 했느냐? 10절입니다.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이 모든 일이 있어도’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요시야 왕의 명령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배역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잘못을 행하였는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요시야 왕이 명령한 것처럼, 오직 하나님만 섬겼어야 할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것을 보았다면,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했다고 했나요?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입니다. 여기서 ‘거짓으로 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세케르’라고 하는데, ‘속이다, 형식적으로 하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안 드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몸으로는 예배를 드리지만,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마음 속에는 예전에 섬기던 우상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저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싶지만, 왕의 명령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예배, 어쩔 수 없어서 이쪽도 섬기고, 저쪽도 섬기는 양다리를 걸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고는 있지만, 거짓으로 행하는 잘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저들에게 13절에서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있을까요? 저들과 같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혹시라도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요? 저들의 잘못이 뭐라고 했어요? ‘거짓을 행하는 잘못’입니다.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신앙, 양다리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는 절대 거짓을 행하는 잘못이 없어야 할 줄 믿습니다. 더 이상 형식적인 예배, 억지로 드리는 예배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양다리 신앙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다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여 언제나 진심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저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을까요? 야단을 치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2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패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설명을 안 해도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저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잔소리를 해서라도 저들의 잘못을 고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자. 저들에게 세 가지 잘못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알면서도 행하는 잘못’을 하였고, 둘째는 ‘돌이키지 않는 잘못’을 하였고, 셋째는 ‘거짓으로 행하는 잘못’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해당하는 잘못이 있습니까? 만약에 잘못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행한다면, 돌이키지 않는다면, 거짓으로 돌이키는 척을 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잘못된 곳에서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시길 원하십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14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무슨 말일까요? ‘지극히 적은 무리, 다시 말해서 잘못된 것을 깨닫고 돌아서는 자에 한해서 구원하여 시온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시겠다’는 것입니다. 하여 오늘 여러분 모두 잘못된 것에서 돌아서서 택함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모두 들어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