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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청이 발행한 <의성 관광>에 실려 있는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천연기념물 373호' 안내문을 읽어본다. '공룡발자국 300여 기가 화석을 이루고' 있는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의성 일대는 '중생대 약 1억1,500만 년 전 공룡 공원지대'였다. 공룡들은 '중생대에 번성하였으나 6600만 년 전 먹이의 변화와 운석 충돌로 지구에서 사라졌다.'
지금부터 6,500만~2억 2,500만 년 전을 중생대(中生代)라 한다. '가운데中'과 '살生' 그리고 '시대代'를 쓰는 것으로 보아 그보다 이전인 고생대(古生代)와 뒤인 신생대(新生代)도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 단어들 속에 들어 있는 '生'은 동물과 식물을 뜻하는 '생물(生物)'의 '생'이므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에는 각각 '다른' 동물과 식물들이 '살았다[生]'고 이해하면 된다.
6600만 년 전에 지구에서 사라진 공룡은 몸덩어리가 5∼25m나 되는 거대한 파충류 동물이다. 그러나 뱀류, 도마뱀류, 악어류, 거북류 등의 파충류는 현재도 지구에 살고 있다. 파충류(爬蟲類)는 기어다니는[爬] 벌레[蟲] 같은 종류(類)의 동물이라는 뜻이다,
공룡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짐작되듯이 파충류는 중생대에 가장 번성했다. 공룡은 중생대 중에서도 시기적으로 중간 시점인 쥐라기 때 특히 큰 덩치와 기이한 모습을 자랑했다. 공룡은 중생대 후반부인 백악기에도 번성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없어졌다. 공룡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신비'로 여겨지고 있다.
<의성 관광>은 6600만 년 전에 공룡이 모두 사라진 이유를 먹이의 변화와 운석의 충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생태계(生態界)의 변화로 식물들과 동물들이 바뀌면, 그것을 먹고 사는 동물까지도 어떤 것은 살아남지만 또 어떤 것은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므로, 공룡 또한 중생대에서 신생대로 바뀔 때 먹이를 찾지 못하면서 지구에서 사라져버린다.
공룡이 먹이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은 지구 덩어리가 온통 뒤흔들리면서 물이었던 곳이 땅이 되고, 뭍이었던 곳이 바다가 되는 식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반도가 본래는 적도 부근에 있었는데 결국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고, 수십 km에서 수백 km에 이르는 엄청난 호수가 곳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실감이 난다. 그 많은 호수들이 공룡들의 놀이터이자 먹을거리를 구하는 '식당'이었는데 지구의 대변화 속에 온통 땅으로 변해버리면서 그들은 굶어죽는 처지로 몰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운석(隕石)의 충돌로 공룡들이 다 죽었다는 견해는 꼭 완전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운석충돌설은 하늘을 빙빙 돌던 어떤 별이 지구와 충돌을 하면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발생하여 3년 정도 지구를 뒤덮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햇빛을 받지 못한 많은 식물들이 죽어버리면서 그것을 먹고 살던 동물들 또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사라졌다는 논리이다. 물론 전혀 근거가 안 되는,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이 충돌 이후에도 공룡이 100만 년은 더 살아 있었다는 증거들이 나타나면서 운석 때문에 공룡들이 아주 종적을 감추었다고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물론 <의성 관광>의 설명은 운석의 충돌 때문에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고, '먹이의 변화'와 '운석 충돌'이 공룡의 멸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아래는 대구광역시 앞산 고산골 입구에 있는 공룡발자국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이다. 대구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대구광역시의 구역을 포함하는 경상북도 일대가 아득한 옛날에는 대부분 커다란 호수 지역이었으며, 온통 공룡들이 뛰어놀던 놀이터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조각류(Ornithopoda) : 2족 보행을 하는 초식 공룡으로 뾰족한 부리와 많은 수의 이빨을 지녔다. 육지나 물가에 살면서 대부분 두 발로 걸었으나, 간혹 네 발로 걷는 종류도 있었다. 이구아노돈, 하드로사우루스, 드리오사우루스 등. 용각류(Sauropoda) : 쥐라기에서 백악기에 번성한 공룡 무리로 4족 보행을 하고 긴 목과 꼬리를 가진 초식 공룡이며,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가장 큰 생명체이다. 브라키오사우루스, 디플로도쿠스 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 도로 개설 중 발견
어마어마한 세월을 땅속에 묻힌 채 눌리고 눌려 돌[石]처럼 딱딱하게 변한[化] 제오리의 공룡발자국 화석(化石)이 드디어 땅 위로 드러났다. 1982년의 일이다. 그것도 평지가 아니라 불쑥 솟은 벼랑에 모습을 내놓았다. 실제로 제오리에 가서 보면, 42도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는 약 500평 면적의 절벽에 두드러지게 남아있는 공룡발자국은 정말 장관이다. 여기저기 평지에서 보는 공룡발자국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다.
공룡의 발자국은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까? 1억1천만 년 전의 어느 기간에 다양한 공룡들이 강가를 지나가면서 물기가 남아있는 퇴적(堆積)층에 발자국을 남긴다. 발자국이 찍힌 퇴적층은 물기가 날아가면서 단단해진다. 다시 수위(水位)가 높아져 발자국 위에 새로운 퇴적물이 쌓인다. 그 위를 다시 공룡들이 지나가고, 다시 발자국이 남고, 그 위로 또 다시 퇴적물이 쌓인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발자국을 포함한 지층은 그 이후 1억년 이상 땅 속에 묻혀 있다가 화산 활동 및 땅이 치솟아 산이 만들어지는 조산(造山)운동 등의 변화를 겪게 되며 경사도 가지게 된다. 이 경사를 먼 훗날 인간들이 도로 등을 내기 위해 깎는다. 공룡발자국은 이 때 발견된다.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약 1억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도 의성군이 도로를 넓히는 공사를 하면서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내다가 발견하였다.
이곳에서는 4종류의 공룡발자국 316개가 확인되었다. 그 발자국의 주인들은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인 한국공룡이다.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됨으로써 다양한 공룡들이 한데 어울려 살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사실 공룡발자국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공룡발자국 중에서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받은 것이 바로 의성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이다.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지는 주로 남해안 일대에 나타나는 발자국과는 달리 내륙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점부터 특이하다. 그리고 단일면적에 매우 높은 공룡발자국 밀도를 보여준다는 점도 중요하다.
또 발의 크기, 보폭 방향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기념물 공룡발자국이라는 명예까지 누리면서!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등진 채 들판 너머로 우리 나라 최초의 사(死)화산인 금성산을 바라본다. 해발 531m의 금성산은 태백산맥의 남쪽 줄기로 그 오른쪽의 671m 높이 비봉산과 쌍벽을 이룬다. 금성산성(山城) 유적지인 이 두 산을 아우르는 등산로를 모두 걸으려면 대략 7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금부터 약 1억1천만 년 이전 아득한 옛날, 갖가지 공룡들이 무리를 이루어 이 길을 걸었으리라. 그 광경을 한번 떠올려본다. 그 당시 금성산은 물 속에 묻혀 있었겠지만,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알 리가 없는 공룡들은 물장구도 치고 먹이도 찾으면서 평화로이 노닐었으리라. 그리고 어느 날 모두 사라졌으리라.
지구를 지키지 않으면 사람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생각할 줄 알고, 도구를 만들 줄 알고, 언어를 사용하여 대화하고, 역사까지 기록해내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사람이다.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지 않으면 사람도 공룡 신세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들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룡처럼 사라지지 않으려면 지구가 잘못 변하지 않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라디오에서는, 옛날에 없었던 이상(異常) 난온(暖溫) 겨울을 걱정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윙윙' 들려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