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녀의 첫돌 잔치
(2004. 4. 23)
라일락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날 외손녀는 첫돌을 맞았다.
딸이 시집가던 날 입었던 고운 한복을 입고 남편과 함께 나섰다. 이제는 집안 행사의 대부분을 외부의 넓고 쾌적한 장소를 찾아서 치루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편리함과 효율을 추구하는 신세대들의 사고를 나무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커다란 외손녀 사진이 입구에서 안내를 하고 있다. 꽃이 있고 오색영롱한 크고 작은 풍선들을 겹겹으로 공중에 띄워 놓고 벽면을 장식하니 아름다운 꽃동산에 온 것 같았다. 떡과 여러 가지 커다란 열대과일 바구니를 늘어놓은 돌상이었다. 기린 사자 표범 원숭이 얼룩말의 모형이 돌상을 에워싸고 있어 동물의 왕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린이 놀이동산을 꾸며놓은 모습이었다.
내 아이들의 돌잔치 때는 밤늦도록 수수경단을 빚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며 백설기를 찌고 경단을 삶아 팥고물을 입혀 과일과 함께 돌상을 차렸다. 병풍을 치고 아이 목에는 무명실타래를 걸어주었다. 돌떡을 받은 이웃집에서는 빈 접시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나 실 한 타래를 얹어주기도 하는 풍습이 있었다.
사돈내외와 함께 주인공 가족이 왔다. 신사복 정장차림의 네 살짜리 외손자와 분홍실크 드레스를 입은 꼬마 공주 외손녀가 평소보다 의젓해 보였다. 딸과 사위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손님 접대를 했다. 한복으로 갈아입히고 조바위를 씌우니 예나의 앙증스런 모습이 더욱 귀엽다.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제 어미와 남매만이 생활하던 외손자가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또래아이들과 넓은 홀에서 어울리며 즐거워했다. 빈자리가 거의 채워졌을 때 차려진 식사를 자유롭게 하였다.
식탁마다 외손녀의 사진이 들어간 “예나의 프로필”이 칼라로 잘 인쇄되어 꽂혀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곳, 신체크기 혈액형 별자리 탄생석 가족관계 신체특징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음악이 나오면 해병대 박수를 치면서 눈웃음치는 것을 개인기로 기재한 것은 자식사랑에 기운 어미의 마음일 것이다.
뒷장에는 “예나의 생일에 오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과 깜짝이벤트로 응모권 추첨설명이 있다. 예나가 태어나서 일 년 동안 자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화로 꾸며 놓은 것을 보고 좋은 덕담 한마디 남길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돌아갈 때는 떡과 조그만 답례품을 받아가도록 준비된 것을 알려놓았다. 답례품이 담긴 쇼핑백에는 행복한 가족사진과 감사이야기가 적혀있다.
식사가 끝나갈 때 지배인이 행사진행을 하느라 마이크를 잡았다. 가족 소개를 하였다. 예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앞에 모시고 딸이 감사장을 드렸다. 사돈은 마이크를 받아들고 감회를 이야기하였다. 친구들의 손자자랑에 씁쓸했는데 늦게 결혼했어도 남매를 낳고 살림도 아주 잘 하는 며느리가 고맙다는 인사였다. 사위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인 우리부부에게 감사장을 주었다. 남편도 행복해 하면서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행복이 가득한 우리 집이란 직인이 붉게 찍힌 것을 받아드니 기쁨이 온몸으로 퍼진다.
“감사장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조금만 더 크면 직접전화 걸어서 목소리 들려드리고 애교도 부릴께요.……
손녀 손예나”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와 아들딸 낳고 규모 있게 살림을 잘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밀 줄 아는 감각을 지닌 딸이 대견스러웠다. 자식 키운 보람을 이런 때 느끼는가 보다. 감사장이라는 것은 공적인 기관에서나 주고받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부모생각을 하는 딸 내외가 고마웠다.
주인공이 돌상에서 무엇을 잡을까. 장내의 모든 시선이 주인공 예나에게 쏠렸다. 연필을 자꾸 가까이 놓는 어미심정도 모르고 실 연필 쌀 돈 마우스 야구공 마이크 중에서 몇 번이고 외손녀 예나는 공을 잡았다. 운동선수가 되려나 보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삼십삼 년 전 딸은 가위를 집어냈다. 두 돌이 지난 후부터 종이 인형도 잘 자르고 손재주가 남달랐다. 책과 가위도 놓아 주었으면 어땠을까. 그것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입구에서 나누어준 행운권 추첨은 주인공과 아이의 부모가 번갈아가며 집어냈다. 남편에게 당첨된 것은 친정어머님께 드렸다. 어머니는 돈 봉투 매달린 실타래를 예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사위의 직장 사원들이 대부분 당첨되었다. 젊은이들이 잔치분위기에 흠뻑 빠져 박수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니 매우 유쾌하였다. 모두가 즐거워한 동화속의 돌잔치였다.
어린이들이 풍선을 가져가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끝으로 사돈가족과 우리부부만 남았다. 오늘의 즐거운 돌잔치를 잘 치루기 위해 딸은 몇날 며칠 밤잠을 못자며 고생했나보다. 주인공의 드레스를 만들랴 컴퓨터로 이벤트행사를 기획하랴 커다란 예나사진을 보드에 붙여 안내판을 만들랴 얼마나 바빴을까. 멋진 행사를 준비한 딸 내외의 가슴 가득한 사랑을 보았다.
자식에 대한 한량없는 부모사랑은 최선을 다하여 잘 기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우리세대에는 검박(儉朴)한 생활을 하고 저축을 하며 이웃을 배려하는 절제의 미덕이 사회의 가치기준이었다.
신세대들은 즐거운 놀이문화를 받아들이며 마음껏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을 행복의 가치기준으로 삼고 있는듯하다.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웰빙(wellbeing)의 방식대로 삶을 구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생활풍속도 빠르게 변하여 격세지감을 느낀다.
엄마 아빠의 사랑과 정성을 모아 차린 돌잔치가 외손녀에게 오래오래 아름다운 꿈을 실어다 주는 황금마차가 되었으면 한다. 아직 서너 발자국 밖에 떼어 놓지 못하는 예나가 어서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첫댓글 형식은 달라졌어도 돌잔치에 들이는 정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봅니다.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던 엄마의 마음이나 커 가는 아기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멋진 이벤트를 준비하는 마음이나 결국 똑같은 부모의 마음이군요.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
어린 손주들은 친가와 외가 양가를 화목하게 하는 보물단지와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외손녀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