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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1950년대 독도경비사 재정립 필요성 |
한국전쟁 전후 독도상황은 “당시는 한국 전쟁이 진행중인지라 우리 정부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김명기 명지대 명예교수) “국가가 북방전선에 온 힘을 경주하느라고 동해의 동남쪽 낙도인 독도에 미쳐 손 쓸 사이 없는 틈을 타서 일부 일본인들이 불법적으로 평화선을 넘어...”(나홍주 독도조사연구학회 회장)등 정부차원에서 실질적인 독도경비를 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의용수비대는 1954년 5월부터 독도에 상주하며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물리쳤고 12월에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되어 55년부터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원으로 독도경비를 담당했다. 독도의용수비대 생존대원은 왜곡된 3년 8개월 보다 민간인으로서 8개월의 역사가 더 자랑스럽다며 정부기관에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독도경비 노력도 계속되었다. 평화선 선언잏후 일본 어선의 나포가 급격히 증가했고, 1953년부터 외무부의 지시로 시작된 시작된 독도 영토표석 설치는 1954년 8월에 독도경비초사와 함께 완성되었다. 울릉경찰서는 독도순라반을 조직하여 1953년 7월에 일본 순시선 헤쿠라호를 총격으로 물리쳤고, 1955년부터 독도의용수비대 특채경찰관과 상주하며 독도경비를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권국으로 실효적 지배 조치는 지속된 사실을 부정하고 우리 스스로 실효적 지배조치를 부정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1950년대 독도경비사와 독도의용수비대 연구를 통해 실효적 지배 조치가 계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
- 성 명 서-
- 홈페이지에서 독도역사 왜곡, |
독도를 행정구역으로 포함하고 있는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가 독도홈페이지 <사이버독도>의 <역사속인물>에서 독도의용수비대, 고 이종학 전 독도박물관장, 독도최초 주민 고 최종덕, 독도경비대 등을 삭제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상이용사로 구성되었으며 1954년부터 독도에 상주하며 수차례에 걸쳐 일본의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물리치는 등 독도를 지켰고, 고 이종학 관장은 평생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이 허구임을 밝혀내는 자료 발굴과 연구에 평생을 보냈고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지내신 분이다.
삭제 시기는 '경상북도가 홈페이지를 통해 독도경비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과 수정요구가 본격화된 이후이며, 삭제한 이유는 독도경비사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없이 논란만 잠재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독도지킴은 일부내용에 문제가 있어 수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1950년대 독도경비사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어려운 시기에도 독도를 지키기 위한 우리의 실효적 지배 조치가 지속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경상북도가 수정을 거부하는 독도경비사는 생존대원의 증언, 경찰청 인사기록, 국방부 병적기록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심지어 1978년에 경상북도가 울릉도 현지조사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1950년대 독도경비사는 ‘한국전쟁 전후 혼란한 정세로 인해 정부차원의 독도경비는 없었다“고 정의되고 있다.
독도수호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