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화쟁사상 5 - 마르크시즘 對 饒益衆生 | |
http://blog.naver.com/uuuau/40008422304 | |
기획연재: 현대사회의 위기와 대안의 패러다임으로서 원효의 화쟁사상 제5강: 도시화, 산업화와 공동체의 파괴 진정한 제3의 길, 혹은 새로운 공동체는 가능한가: 마르크시즘 對 饒益衆生 이도흠/한양대 국문과 강사 ahurum@hitel.net 저미도록 그리운, 그 날 그 골목의 사람들 뉴질랜드에 가 있는 제자로부터 뜻밖의 답장이 왔다. 무더운 여름을 탓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더니 오히려 이역만리 타향에서 가슴 저미게 그리운 것이 바로 한국의 여름이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들 어떠리? 성규네 엄마, 길수네 엄마, 돗자리를 들고, 없으면 작년에 이사 오면서 갈아버린 헌 장판을 들고 골목으로 나선다. 어? 문실이는 시멘트 포장지를 들고 나왔네. 제법 펑퍼짐한 곳을 찾아 자리를 펴고 우물물에 담가 두었던 수박을 썩썩 썰어선 동네 사람들 불러모은다. 지나는 길손까지 소매를 잡아 붙들어 기어이 수박 한 조각을 먹인 후에야 보낸다. 창수네 아저씨는 어느 틈에 모깃불을 피우고 개구쟁이들은 난리법석을 떠는 것 같더니 어느새 코를 곤다. 아줌마들은 주저리주저리 수다꽃을 피우고 아저씨들은 시국이 어떠네 하며 나라 걱정, 경제 걱정으로 밤을 지샌다. 시골 이야기가 아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 한 복판에도 골목 문화란 것이 있었다. 우리 집이 제천에서 이사 와서 터를 잡은 신길동은 서울이지만 거기는 분명 공동체였다. 생일날이면 으레 그 집에 모여 아침 식사를 같이 하였고 그것으로 흥이 차지 않은 어른들은 밤늦게까지 술판을 벌였다. 설날이면 가장 나이 드신 분부터 시작해서 동네 전체를 세배 다녔고 대보름날이면 이 집 저 집 아홉 그릇을 채우러 다녔다. 농악대가 마을을 훑고 지나가면 어른들은 동네 공터에 모여 윷판을 벌렸다. 저녁을 먹자마자 한 애가 “애, 애, 애들 나와라.”라는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쏟아져 나와 달 밝은 날은 성 빼앗기나 오징어 가위생 같은 놀이를, 별이 반짝이는 날은 다방구나 숨바꼭질을 하였다. 누가 이사를 가거나 오면 골목부대 모두가 동원되어 하루종일 이삿짐을 날랐다. 1원에 서너 개 하던 바가지 과자를 받아들고는 우리들은 행복해 하였다. 김장과 연탄 나르기, 잔치 음식 준비하기 등 큰 일은 모두 내 일, 네 일 구분 없이 품앗이로 하였다. 새로 이사 온 집은 고사를 지내고 동네 어른을 모셔 술대접을 하고 고사떡과 고기를 돌렸고 거기엔 불문율이 있었다. 그 접시와 그릇을 반드시 무엇인가로 채워 돌려주어야 한다는. 없는 살림에 그 그릇을 채우려고 일부러 별식을 만드는 적도 많았다. 그릇은 일년 내내 마을을 돌았다. 품앗이로 김장을 하면서도 김치를 담아, 명절 땐 가래떡과 송편을, 여름엔 콩국수와 수박과 부침개를, 가을엔 시골서 올라온 농산물을, 겨울엔 팥죽과 동치미와 만두를, 봄이면 나물과 쑥떡을 꾹꾹 눌러 담아 노인이 계신 집이나 가난한 집부터 돌렸다. 단 한 집도 문을 닫고 사는 집이 없었고 누구도 서로의 경사와 슬픔을 나누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도 공동체는 이어졌다. 도로 정비 명목으로 철거를 하기 전까지는. 서울 살림이 이랬는데 당시 우리 농촌은 얼마나 더 했겠는가? 그리 서로를 보듬고 기쁨을 함께 하고 슬픔을 나누었기에 사람들은 가난했어도 행복할 수 있었고 불행이 있었어도 그 시절이 진정 행복한 때였다고 되새길 수 있었다. 노도처럼 밀려들던 산업화와 도시화도 골목문화를 없애지 못하였는데, 도시재개발로, IMF 한 방으로 골목문화는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골목문화는 이제 허기진 그리움으로, 우리들의 가슴에만 남아있다. 이게 어디 나 하나뿐이랴? 우리에겐 어느덧 돌아갈 고향이 없다. 동무들과 미역을 감으며 버들치를 잡던 시냇물엔 시커먼 폐수가 흐르고 잠자리와 나비를 좇던 푸른 언덕은 골프장으로, 가든으로, 러브호텔로 변하였다. 말없이 서서 청빈과 검소, 安分의 지혜를 알리던 건너 편 산 허리를 덥썩 잘라내고 흉물스런 아파트가 들어섰다. 사람이라도, 사람 사는 온기라도 있으면 그래도 견디련만 모두들 떠나고 빈들엔 휑한 바람만 훑고 지나간다. 자본주의 사회는 죽음의 욕망이 꿈틀대는 거대한 쇼핑센터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토대가 변화하자 수천 년 간 지속되어 온 농촌 공동체는 급속히 해체되었다. 공장은 농지를 야금야금 삼켜버렸고 농민들을 노동자로 전환시켰다. 도시화 또한 산업화와 함께 급속히 단행되었다. 2,000년 현재 세계 인류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29억 명이 도시에 살고 있다. 2007년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생활자가 농촌생활자를 초월할 것이며 2030년에는 그 60%인 49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2000년 12월 현재 한국에서 농촌에 사는 사람은 10%도 넘지 않는다(8.7%). 젊은이들은 돈 벌러, 공부하러, 출세하러 도시로 가버리고 노인들만 남아 새우등처럼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며 밭을 일구고 있다. 도시로 온 90% 사람들이 일터에선 구더기처럼 오글거리다가도 삶터로 돌아오면 콘크리트 상자곽에 서로를 가둔 채 고독을 되씹고 있다.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어 몇 달이 지나서야 썩는 냄새가 진동하자 발견되는 일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돈 몇 푼에 가족을 살해하는 일은 뉴스로 보도되기는 하나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이들과 결합하면서 공동체는 완전히 붕괴하였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자를 분리하기에, 사람들은 대지로부터, 그 대지에 터를 두고 살아가던 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 생산자들은 노동력을 판매하는 자이기에 인간은 물론 노동 자체가 상품화한다.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노동하는 대상으로부터, 함께 노동하는 사람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왜, 어떤 목적으로 생산을 하는 지 거의 모른 채 노동을 하고 자신의 생산물을 익명의 상품으로 내놓는다. 20승을 하는 투수에게 2,000만불을 준다면 10승을 하는 선수에게 700만 불 정도를 주고자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러니 능력이 있는 자는 떵떵거리며 살고 없는 자들은 빈곤과 기아에서 허덕인다. 기회가 균등하다면 그리 커다란 불만이 없다. 능력이 없는 데도 아버지를 잘 두어서 누구는 호화 별장에 요트를 가지고 평생을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환락 속에서 보내고, 누구는 뛰어난 능력이 있으나 학교 갈 돈이 없어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 고통이기만 삶을 마지못해 연명한다. 그래도 모두에게 똑같은 규정이 적용된다면 한이 맺히지는 않는다. 자기보다 빨리 달리는 자가 손을 휘두르며 달리는 것을 보고 손을 휘두르며 달리면 반칙이라는 규정을 만드는 것처럼, 먼저 권력을 잡은 이들이 계속 지배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모든 법과 제도를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짜 맞추었다. 이 틀 속에서 가진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의 잉여노동을 마음껏 착취한다. 그리고도 불만을 가지지 못하도록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는다. 문화와 예술을 동원하여 일하는 자, 순종하는 자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그들의 저항의식을 서서히 거세한다. 학교를 통하여 지배층의 먹이를 잘 물어다주는 방법을 가르치고 주인에게 순종하는 미덕에 대해 어릴 때부터 세뇌시킨다. 미디어는 그들의 대변자 노릇을 하고 그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고 때로는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잉여노동을 착취하고 상품을 판매하여 자본을 축적하는 사회이기에 과잉생산을 추구하고 과소비를 조장한다. 모든 부문에서 교환가치를 더 우선시 하면서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다. 생산과정에서는 포드시스템을 동원하고 연봉, 승진 따위로 적당한 보상을 하여 노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생산성을 높인다. 소비자들에겐 구조적 통찰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을 의지와 능력일랑 버리게 하고 오로지 상품광고와 유행에 의존하여 미친 듯 상품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노동자들 스스로도 이 체제 속에서 자본주의적 인간이 된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더 높은 명예를 얻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 욕망이란 이미 점유하고 있는 타자의 권력과 자본과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이기에, 이 구조 속의 인간들은 나와 타자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타자를 토끼와 거북이식으로 밀어내는 것을 자연스런 생존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상대방을 무너트려야 내가 더 강한 권력과 더 높은 명예, 더 많은 돈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이웃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적으로 삼는 곳에서 어찌 공동체가 자리하리?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정글법칙대로 생존이 결정되고, 저 밑에서는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욕망이 꿈틀대는 거대한 쇼핑센타로 전락하였다. 정의란 나 아닌 다른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자본주의 사회가 무엇보다도 인간을 소외시키며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을 혐오한 마르크스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 공동체를 내세운다. 그가 꿈을 꾼 세상은 피의 혁명과 숙청을 통한 공산주의 건설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그룬트리쎄≫에서 “정의란 나 아닌 다른 타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공산당선언≫에선 적극적 자유는 사회적 개인들의 자기발전이므로 각 개인이 타자를 더 많이 향상시켜 줄수록 그들 각자의 발전의 여지는 더욱 커진다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된다.”라고 선언한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이야기이다. 영국군의 한 소대가 사막의 여우 롬멜장군(Erwin Johannes Eugen Rommel: 1891-1944)의 대전차 군단에 패하여 패잔병으로 사막을 방랑하고 있었다. 폭양은 뜨거운 모래 위로 이글거리는데 상처투성이 다리를 끌며 걷고 또 걸어도 오아시스도, 아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날을 헤매다가 소대장은 소대원을 향하여 외쳤다. “여러분! 제군들은 그 동안 뜨거운 조국애와 전우애로 롬멜의 대전차군단도, 사막의 폭양도 잘 견뎌주었다. 그러나 이제 양식도, 약도 모두 떨어졌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이란 고작 이 수통의 물뿐이다. 여러분이 짐작하다시피 우리는 아마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제군들을 만나서 나는 행복한 장교였다. 감사한다. 이제 우리 수통의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며 마지막으로 전우애를 나누자.” 소대원들은 하나 둘 수통을 건네 들었다. 수통은 소대원을 돌아 다시 소대장에게로 왔다. 그 순간 소대장은 수통의 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수통의 물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나도 마시고 싶지만 옆의 00일병은 다리의 출혈이 심하니 더 갈증이 심할 거야.” “아니야, 00병장은 노모가 계시다는데 그가 살아남아야 해.”라며 이들은 죽음의 전선에서 서로 양보하였던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의 갈증을 더 마음 아파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살아남았고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들이 영국군 소대처럼 나 아닌 다른 이를 좀더 행복하게, 자유롭게 하려고 서로 서로 갖은 실천을 다하는 사회를 꿈꾸었다. 가진 자, 못 가진 자 없이 모두가 모여 함께 할 일을 정하고 일하는 자가 땅과 공장을 가진다. 이곳에서 노동은 더 이상 소외된 노동이 아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이자 자기 앞의 장애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방편이다. 더 나아가 나의 노동을 통하여 타인을 자유롭게 하는 利他的인 동시에 對自的이고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각자의 능력을 따름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름으로”라는 마르크스가 제시한 원칙에 나타난 대로 사람들은 우열이 아니라 차이에 따라 존재의의를 가지며 능력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분배한다. 타인을 자유롭게 하여 나는 더 자유롭게 되고 자유로와진 나로 하여 타인은 더욱 자유롭게 된다. 인간은 이미 “사회 관계 속에 있는 개인(individuals in social relation)”이다. 나는 수많은 타인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니 나의 자유는 이들과 함께 공유할 때 완성된다. 그러니 진정한 자유는 나 아닌 다른 타인을 구속과 압제에서 벗어나게 할 때 완성된다. 빈곤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에게 양식을 줄 때, 나를 위한 삽질이 아니라 나보다 더 가난한 이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루에 500평의 밭을 갈던 이가 600평을 밭을 갈고자 할 때 나 자신은 진정 자유로운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는 정의와 결합한다. 개인의 자유는 공동선과 부합한다. 바로 이 때문에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영광과 명예와 환락의 길을 버리고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삶을 구원하려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노동자들은 혼신을 다해 망치질을 하여 기적적인 생산증대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모두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인류역사상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사상을 위하여 수십만이 자발적으로 피를 흘린 사상이 마르크시즘 말고 또 있었던가? 오랜 동안 몽고의 지배를 받던 유럽의 삼등 국가 러시아가 미국과 맞먹는 소련으로 거듭난 것은 바로 이런 힘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의기양양하였다. 인간을 서로 소외시키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가 곧 붕괴하고 전 세계가 사회주의로 돌아서리라고.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다시 굶어죽는 인민이 생겼고 소련은 미국의 식량 지원이 없이는 국가 자체가 위기에 놓일 지경이 되었다. 집단 농장의 배추는 썩어 가는데 개인 텃밭의 배추는 싱싱하였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 휴지가 없을 정도로, 장작이 없어 마르크스 책을 땔감으로 삼을 정도로 물자가 모자라고 남아도 유통이 되지 않아 많은 인민들이 고통에 찬 생활을 하였다. 굶주림을 면하려 다른 나라에 가서 몸을 파는 인터걸까지 생겼다. 예술은 혁명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고 언론은 새로운 지배층의 나팔수가 되었다. 왜 사회주의는 실패하였는가? 먼저 이야기할 것은 사회주의의 실패가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의 실패라기보다 마르크시즘을 왜곡한 스탈린주의의 실패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의 역기능을 이야기할 때 획일화, 전체주의화, 통제와 억압 심화, 관료화, 국가의 비대화와 정당성 상실을 꼽는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공동체적인 생산 및 분배활동 내에서, 목적과 절차의 공동 결정은 공동체의 각 성원이 다른 성원의 목적, 필요, 개별적 차이점들을 감안해 주는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된다고 보았다. 레닌은 소수라 할지라도 반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진리에 수렴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제국주의에 포위된 상황에서 혁명을 완수하려면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며 소련을 전체주의화하였다. 당은 더 이상 인민의 대표기관이 아니었다. 인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관료기구로 바뀌었다. 비밀경찰은 인민 모두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국가기구, 하지만 인민의 일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유령이 되었다. 소련 전체가 ‘수용소군도’로 전락하였다고 표현할 정도로 인민의 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억압당하였고 인간의 존엄성은 박탈되었다. 지하신문, 사미즈다트(samizdat; 검열을 피해 솔제니친 등이 스스로 발행하여 몰래 돌린 출판물)를 통해서만 진실을 접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의 획일성은 개인의 욕망과 창조성, 문화와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억압하였다. 자연스레 사회와 문화는 퇴보를 하였고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다시 굶주리는 사람이 생겨났다.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라 노멘클라투라라는 신종 계급이 등장하였다. 그러기에 사회주의를 개혁하자는 페레스트로이카 철학을 제시한 렉토르스키나 이를 구현하고자 한 소련의 초대 대통령 고르바초프(Mikhail S. Gorbachyov: 1931-)는 다같이 “레닌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쳤던 것이다. 과연 스탈린만이 사회주의의 실패의 짐을 지어야 할까? 사회주의자들은 수요와 공급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절로 조절되는 시장을 무시하였다. 지금 용량의 수만 배 되는 슈퍼컴퓨터가 있더라도 당이 시장을 대체할 수 없다. 한 곳에서는 철근이 산처럼 쌓여 녹이 슬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철근이 없어서 다리를 놓지 못하고 집을 짓지 못하여 많은 인민들이 고통에 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의 풍속도가 되었다. 패러다임 자체가 인간중심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중앙집권적인 통제경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사회주의에서도 환경파괴는 극심하였다. 노동을 자연의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정의하였듯 마르크시즘 또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중앙집권적인 통제 경제를 실시하였고 실제로는 인민을 소외시킨 계획경제였기에 목표 달성과 혁명 완수의 구호 속에 누구도 자연파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악이 아니라 창조의 원동력임을 간과한 데 있다. 왜 개인 텃밭의 배추는 싱싱할까? 그것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행위, 사회의 공동선에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간주하여 강력한 사상교육을 시켜야 할까, 아니면 모든 이들이 공동으로 자극을 받도록 인민재판을 해야 할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성공 비결은 개인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개발하고 그런 만큼 철저히 보상해 주는 데 있다. 10여 년 이상의 세월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여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으로 얻어지는 이익을 사회 전체의 몫으로 한다면 과연 몇 명의 과학자가 혼신을 다해 연구에 몰두할까? 개인의 이기심과 욕망은 자기의 사리사욕만 채워 공동체를 해치는 악으로 규정하여 철저히 없애버려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창조의 원동력이었다. 자신의 연봉이 늘어나고, 자신의 명예와 권세가 높아지기에, 그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도 혜택이 돌아가기에 피땀을 흘리며 일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체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심의 동물이다.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좀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남의 것을 빼앗아 와서라도 자기의 것을 채우고자 욕심을 부린다. 물론 인류 모두가 나를 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 모두를 깨닫게 하면 된다고 하더라도 그럴 때까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사회를 방치해야 할까? 모든 이들이 깨달음에 이르지 않는 한, 개인의 이익과 자유는 집단의 공동선과 마주친다. 그럼 모든 인민이 더불어 잘 사는 길은 무엇일까? 안토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절충에 불과함은 블레어의 실험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원효의 사상에 그 씨앗이 있을까? 연꽃은 저 높은 산록에서 피지 않는다 “空相이 또한 공하다”라 한 것은 ‘공상’이 바로 俗諦를 버리고 眞諦의 평등한 상을 나타낸 것이요, “또한 공하다”란 곧 진제를 융합하여 속제로 삼은 “空空”의 의미이니, 순금을 녹여 장엄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 “또한 공하다”라 한 것은 이 속제를 다시 융합하여 진제로 삼은 것이니, 이것은 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덩이로 환원시키는 것과 같다. …… 또 처음의 門에서 “속제를 버려서 나타낸 진제”와 제2의 공 가운데 ‘속제를 융합하여 나타낸 진제’인 이 2문의 진제는 오직 하나요 둘이 아니며, 진제의 오직 한 가지로 圓成實性이다. 그러므로 버리고 융합하여 나타낸 진제는 오직 하나이다.(《金剛三昧經論≫, <入實際品>, 《韓國佛敎全書≫, 제1책, 639-하-640-상: “空相亦空者 空相卽是遣俗顯眞 平等之相 亦空卽是融眞爲俗 空空之義 如銷眞金作莊嚴具 …… 亦空還是融俗爲眞也 如銷嚴具 還爲金ꝛ ……又初門內 遣俗所顯之眞 第二空中 融俗所顯之眞 此二門眞 唯一無二 眞唯一種 圓成實性 所以遣融所顯唯一”)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만약 보살이 我相이나 人相이나 衆生相이나 壽者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구원의 주체인 나나 대상인 타인이 있다는 생각, 중생이든 다른 존재이든 이보다 위에 서서 그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의 대상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어서, 그들보다 높이 깨달아서, 그들보다 시간이 많아서, 그들보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보살행은 내가 그보다 높이 서서 나의 佛性을 그들에게 불어넣어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처님과 같은 성품을 지녔다. 유리창만 닦으면 하늘이 다시 청정함을 드러내듯, 無明만 없애면 본래 청정한 중생 속의 불성이 스스로 드러나니 그 먼지만 사알짝 닦아내면 된다. 그러니 중생과 깨달은 자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화쟁의 목표는 한 마디로 말하여 一心의 本源으로 돌아가 중생을 풍요롭고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다[歸一心之源 饒益衆生]. 원효는 이를 위하여 진과 속이 하나가 아니라는 眞俗不二를 외친다. 우리 미천한 인간들이 속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수행 정진하여야 완성된 인격[眞]에 이를 수 있고 또 이에 이른 사람은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들을 이끌어야 비로소 깨달음이 완성될 수 있다. 높은 깨달음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열반에 머물지 않고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을 구제해야 비로소 깨달음의 완성에 이른다. 이것이 眞俗一如이다. 원효는 열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不住涅槃을 추구하였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자 중생 속으로 내려갔다. 티벳의 승려는 수천 리 길을 맨발로 5체투지를 하며 걷고 영하 삼, 사십 도의 찬바람이 살을 에는 수천 미터 설산에서 맨몸으로 잠을 잔다. 이렇듯 범인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고행을 하며 중생을 구원하다 그는 결국 그 업보로 궁극적 존재인 부처가 되어 해탈을 이룬다. 그러나 가장 존귀한 존재인 부처가 되었어도 그들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다시 인간의 몸으로 환생한다. 원효의 표현대로 금을 녹여 장엄구로 만들듯 眞諦를 녹여 俗諦를 만들며, 다시 장엄구를 녹여 금덩이로 환원시키듯 속제를 녹여 진제로 만든다. 금덩이를 녹여 금반지를 만들고 금반지를 녹여 다시 금덩이를 만들지만 둘은 모두 금으로 하나이다. 그러니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圓成實性], 부처와 중생,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 엘리트와 대중이 둘이 아니요 하나이다. 연꽃은 저 높고 아름다운 산록에서 피어나지 않는다. 왜 저 아름다운 연꽃이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향기로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높은 언덕에 피지 않고 냄새나는 수렁의 진흙 속에서 피어날까? 왜 가장 더러운 진흙 속에서 줄기를 뻗어 청정한 하늘 위로 가장 아름다운 꽃 송아리를 틔울까?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이 저 높은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 반야의 바다를 완전히 갖추었어도 열반의 성에 머무르지 않고 무량한 겁 동안 온갖 번뇌를 버리지 않고 온 중생을 구제한 뒤에 비로소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나 혼자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들을 열반의 언덕으로 나아가도록 할 때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구원은 그를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로 가 그를 완성시키고 그를 통해 다시 나를 완성하는 행위이다. 조금만 숲 속으로 발을 옮겨도 연꽃보다 예쁘게 생긴 꽃은 허다하다. 그러나 진흙 수렁 속에서 피어나기에 연꽃은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그럼 진속불이를 통한 饒益衆生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까? 마르크스의 사상에 공과 연기의 사상을 종합한다면 모든 인민이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타자를 통하여 내가 드러나는 공동체가 되었으리라. 지구상에 이런 곳이 실재하니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는 불교 공동체, 라다크이다. 히말라야의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땅을 안고 사는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종족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행복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들은 불법의 가르침에 따라 물질의 풍요보다 마음의 평안을 더 소중히 여긴다. 그들은 공의 철학에 따라 나를 비우니 탐욕과 어리석음과 분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사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나와 너, 나와 세계, 인간과 자연을 서로 서로 연기된 것으로 여기니 그가 있어서 내가 있는 것이요, 깨달음과 자비심은 하나이다. “말을 1백 마리 가진 사람이라도 채찍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라는 이들의 속담처럼 이들은 상대방이 어린이든,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이든, 장애인이든 모두를 부처님과 같이 존귀한 존재로 보고 존중한다. 하기는, 땅 속의 지렁이도 소중한 생명체로 여겨 그를 피해 쟁기질을 하는 이들인데, 자신이 기른 가축을 죽일 때도 간절히 용서를 구하고 부처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하는 이들인데 사람에 대해선 오죽하겠는가? 서로가 서로를 완벽한 인격체로 대하니 이들에게 소외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개인의 이익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과 맞서지 않는다. 가족과 이웃에서 다른 마을 사람과 낯선 사람에 이르기까지 라다크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농사일을 더불어 하며 사유재산도 함께 사용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과 짐승의 오줌과 똥을 비료와 연료로 쓸 정도로 낭비를 하지 않고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재활용을 하며 자연과 철저히 공존하는 삶을 산다. 이들은 질병이 이해의 결핍에서 생긴다며 상대방을, 자기 앞의 세계를 늘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감싸려 하기에 스트레스는 없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열심히 일하면서 느슨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기에,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고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일하기에 이들은 모두가 건강하다. 모두가 삶에 대해 충만한 행복감을 가지고 있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늘 웃음을 띤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들을 16년간 관찰한 이방인 학자에게 묻는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그 이방인 학자, 노르베리 호지는 결론을 내린다. 협동과 공생과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항상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한 라다크야말로 서구 산업사회가 지향해야 할 사회, ‘오래된 미래’라고. 라다크는 홀로 존재할 때 완벽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라다크에 마저 침투하여 라다크를 서서히 해체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대응 없이 어떤 공동체도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밖이 자신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 불타는 자본주의 사회인데 자신의 공동체만은 이에서 떠나 고고한 성을 유지하는 것은 그 공동체를 신비적 종교의 성채로 유지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침투 속에서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나 자본주의 사회와 전혀 교류가 없는 공동체들을 보면 대개가 사이비 종교, 혹은 교조적 광신적 종교집단의 공동체이다. 다른 사회나 집단과 소통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자본주의를 뒤엎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19세기식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를 그리 만만하게 보았는가? 그럼 어떻게? 미시적으로는 우선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소련을 해체시키고 거의 전 세계를 점령하고 승리를 선언한 상황에서 이를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 체제의 모순을 모른 채 욕망의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다. 어느 정도 아는 자들조차도 그 정도 문제는 다른 장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 한다. 모순에 대한 인식이 없이 모순의 극복은 없다. 빠름에서 느림으로, 채워짐에서 비워짐으로, 욕망을 향해 달리는 삶에서 조절하는 삶으로 우리의 삶의 양식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욕망은 신기루이다. 이르려고 하면 할수록 욕망의 완성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욕망을 향하여 질주한다. 아직 1년에만 4백만 이상의 어린이가 굶어죽는 땅에서 한껏 먹고 욕망의 포화상태에 이른 현대인들은 각종 성인병, 현대병에 시달리면서 다이어트를 하느라 뼈를 깎는 고통을 겪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비용으로 한국에서만 2조원의 막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이는 이 사회가 왜 건강하지 못하며 모순과 부조리에 차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포만감에 이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아야 자신의 체중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나무 우듬치에 연 과일을 까치밥으로 남겨 놓았다. 이 나무, 저 나무의 까치밥을 따먹을 때 까치는 반가운 손님이 오심을 제일 먼저 알리는 익조였고 길조였다. 그러나 농약을 뿌려 까치의 먹이가 되는 벌레가 사라지고 까치밥 또한 없애면서 까치는 가장 단맛 나는 과일만 골라 해를 입히는 해조로 변하였다. 욕망은 영원히 누구도 달성할 수 없으며 욕망을 채우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결혼 기념일이라고 특급 호텔에서 캐비어를 먹는 것보다 뒷산의 약수터로 걸어가 노인들과 싸간 김밥을 나누며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욕망을 채우려는 것보다 욕망을 조절하는 것이, 타인을 위하여 욕망의 여분을 남겨두는 삶이 행복한 삶일 수 있음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게 한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변화하지 않을까? 패스트후드 대신 곰삭인 음식을 대화를 하며 천천히 먹고 사랑하는 이들과 산책을 하며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삶을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이미지와 상징을 벗어나고 이에 대항하는 이미지와 상징들을 만들어야 한다. 지펠 냉장고 광고를 보자. 한 여인이 고급 냉장고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남편을 기다리면서 퐁듀 요리를 한다. 이내 남편이 들어오고 남편의 품에 안겨 여인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 광고는 말한다. 지펠 냉장고를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중산층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이 광고에 조작 당한 대중들은 얼마 쓰지 않은 냉장고를 버리고 지펠을 경쟁적으로 사들인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여러 이미지와 상징을 만들고 이들은 대중들에게 과잉 소비를 부추긴다. 그리하여 확대 재생산해야만 자본주의를 번성시키고 자본가를 살찌운다. 지배체제가 양산하는 수많은 담론들에 맞서서 그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다시쓰기’를 감행하여 조작 당하는 대상에서 읽고 쓰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수많은 우화 가운데 이솝우화가, 이솝우화 중에서도 왜 유독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아는 지배적 담론이 되었을까? 초등학교 3,4 학년을 데리고 실험을 하였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읽고 거기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을 향하여 말했다. “얘들아,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잘 읽으면 거기에서 잘못을 찾을 수 있을 게다. 그것을 한번 찾아보아라.” 아이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산에 사는 토끼가 물에 사는 거북이와 느닷없이 만나는 것은 이상하다.”에서부터 “토끼가 잠을 자는 새에 거북이가 달려가 일등을 한 것은 비겁하다.”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적이 나왔다. 그것을 발표를 시킨 다음 다시 아이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자, 발표 잘 들었지? 어느 것은 여러분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고 어느 것은 그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 이번엔 너희들이 이솝이라고 생각하고 잘못을 고쳐 토끼와 거북이를 다시 쓰지 않겠니?” 아이들은 금세 눈을 반짝이며 신이 나서 썼고 그 이상으로 신명나게 발표를 하였다. 이 중 가장 많은 이야기가 거북이가 토끼를 깨우고 토끼는 이에 감동을 하여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가는 것으로 고친 이야기였다. 그 전의 <토끼와 거북이>가 경쟁심을 부추기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는 담론이었다면 후자는 이와는 정반대로 그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담론이다. <토끼와 거북이>를 어깨동무하고 가는 것으로 결말을 바꾸었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어린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엄청 다르리라고 본다. BAGAUP이라는 시민단체는 말보로 광고에 낙서를 하여 그 광고 텍스트에 숨어있는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이 운동으로 미국의 모든 출판물은 담배 광고를 싣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다시쓰기는 텍스트를 단순히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신화에 조작되던 대상이 주체로 서서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쓰기를 포함하는 읽기를 수행하여야 한다. 그럴 때 텍스트의 의미는 맑고 환한 별로 반짝인다. 더불어 10여 년 써서 낡았지만 사연과 추억이 있는 내 만년필을 수십만 원 짜리 만년필과 바꾸지 않듯 사용가치가 교환가치보다 더 중요한 영역을 늘리는 것도, 더 나아가 사용가치보다 존재가치를 중요시하는 것도 대안일 것이다. 물화를 극복하고 모든 것을 교환가치보다 사용가치로 바라보며 내가 먼저 인간이 되어 다른 이들을 참다운 인간으로 대하는 것도, 그런 이들과의 만남과 연대를 늘리는 것, 연기의 원리에 따라 구체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자본주의 원리와 다른 영역을 야금야금 만들다 보면 자본주의는 안으로부터 해체될 수도 있다. ‘나무전략’, ‘기생전략’, ‘잉크전략’ 또한 하나의 대안이다. 나무 전략이란 큰 나무 옆에 아무리 조그만 나무라도 다른 나무가 자라 햇빛을 막고 영양분을 빼앗아간다면 큰 나무가 언제인가는 새로운 나무에 자리를 내주어 숲이 침엽수림에서 활엽수림으로 바뀌듯 구조 밖에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구조를 교체하는 것이다. 기생전략이란 나무 안에 들어가 나무를 안으로부터 썩게 하는 것이다. 잉크전략이란 잉크처럼 스며들어 안으로부터 색깔을 바꾸는 것이다. 학교로 예를 들면 이곳저곳에 대안의 학교를 만들어 기존의 학교들이 창의성과 다양성의 보장과 연기적 사고를 하게 하고 민주주의와 생태적 가치, 인간적 가치들을 지향하는 교육장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나무 전략이다. 진보적 선생들이 교육부와 학교로 들어가 선생들을 변하게 하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면 교과서, 커리큘럼을 바꾸고 나중에는 학교 자체를 변하게 하는 것이 기생전략이다. 그러나 인드라망의 <귀농,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기획>에서 성여경 사무처장이 털어놓은 것처럼 농사를 지어서 연봉이 300여만 원밖에 안되고 문화시설이나 교육시설은 전무하다고 하면 사람들은 귀농 학교를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신념이 강한 몇몇이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을 끌어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기심과 욕망이 본질인 인간에게 그것을 없애버리고 공동체로 오라고 하는 것은 신이 나서 장관 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대뜸 모두 부질없는 짓이니 스님이 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기심과 욕망을 발현할 장을 마련하는 한편 이를 공동체의 테두리 안에서 융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화쟁의 진속불이 패러다임 속에서 다산 정약용이 제시한 閭田制를 응용하여 사회주의의 집단농장과 자본주의의 기업의 장점을 조화시킬 수 있다. 다산은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내다보고 여전제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그는 촌락의 공동경작과 노력보수제를 조화시킨다. 그가 <田論> 7장에서 밝힌 대로, “노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분배의 후하고 박함이 결정되므로 농부는 힘을 다하고, 田地는 地利를 다하게 될 것이요 地利를 잘 이용하면 民山이 富饒하고 민산이 부요하면 風俗이 淳厚하고 풍속이 순후하면 백성이 孝悌를 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법은 田制의 上策이다.” 그전에 고무신을 1만 켤레 생산하는 공장이 1만 켤레를 공동 생산하고 분배하여 소련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제는 그 중 5천 켤레는 공동의 몫으로 하여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게 하고 그 중 3천 켤레는 개인의 능력별로 나누어주어 개인의 창의력과 능력에 따른 보상을 하여 그들의 활기찬 참여를 이끈다. 나머지 2천 켤레는 자신의 노동이 타인을 자유롭게 하였다는 것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그 공동체와 연관이 있는 주변의 장애인이나 양로원 등에 보낸다. 물론 구성원간 상호주체성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의 목적과 방법에서부터 분할 비율에 이르기까지 전체 과정을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여 자유토론으로 정한다. 외적으로는 不一不二의 패러다임을 따라 공동체와 다른 집단을 네트워킹하고 내적으로는 眞俗不二의 원리에 따라 구성원간 상호주체성과 상보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 안에서 화쟁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려 한다면,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 구분 없이 나 아닌 다른 이를 자유롭게 할 때 내가 진정 해방되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세상의 삼라만상과 내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 생산에서 소비체제에 이르기까지 순환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가진 자 못 가진 자 없이, 환경파괴 없이 깊은 연대와 사랑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출처:춤 이론 연구소 |
첫댓글 "한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중생을 이롭게 한다(歸一心源 饒益衆生)"
이도흠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화쟁의 패러다임을 가지고..보듬으려 한다면, ...실천한다면, ...적용한다면," 우리 모두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텐데요. 깨달음에 이은 실천만이 그 행복을 가져다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