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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장애를 자신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7년도 SBS 교육대상(특수교육부문)을 수상한 천안인애학교 문영옥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장애가 없었다면 장애인의 진심을 헤아리는 일에 지금보다 훨씬 무뎠을 겁니다. 제가 장애인이다 보니 그들의 아픔을 바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하기에 늘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녀가 교육대상을 받기까지 지나온 길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물어보았다. |
40여 년 전 충북 옥천의 한 산골마을, 귀여운 3살 박이의 부모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당한다. 자신들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소아마비’라는 장애 때문에 네 다리로 기어야만 움직일 수 있게 된 아이를 앞에 놓고 부모는 아이가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앞날을 미리 절망하기보다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다. 아이는 네 다리로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개울에서 수영을 하였다. 눈싸움도, 개구리 잡기도, 봄꽃 따기도 다 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란다. 부모를 닮아 희망을 보는 눈을 가진 것이다. ■ 부모님들이 참 남다른 분들이시군요. 가족들이 다 그러신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도 온갖 개구쟁이 짓은 다하고 다녔거든요. 아홉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아버지께서 자전거로 통학을 시키셨어요. 자전거에 내려서는 아버지께서 교실의 제 자리까지 업어다 주셨습니다. 온 종일 의자에 붙박이로 앉아 있다가 하교 시간이 되면 아버지께서 오셔서 다시 자전거에 태워 하교를 시켜주셨지요.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학교에 도착하신 아버지께서는 자전거에서 저를 내려놓으시더니 지팡이 하나만을 제 손에 쥐어주시며 혼자 돌아가셨습니다. 재활치료 한 번 받은 적 없지만 산으로 들로 기어 다니며, 벽을 잡고 한 발 두 발 떼던 모습에 홀로 걷기를 기대하신 모양입니다. ‘아! 이 지팡이로 혼자 걸어보란 뜻인가?’ 무섭고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어 한 발 한 발 떼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 뒤로 쭉 그 지팡이를 짚고 다녔습니다. 가족들 중 누구도 저의 장애나 지팡이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너도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면 예쁜 치마도 입고 구두도 신고 멋진 남자도 만나야 하는데 그 지팡이를 언제까지 집고 다닐 거니?” 하고 언니가 말하더군요. 누구도 그 지팡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던 터라 언니의 그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 끝에 지팡이를 놓고 걸어보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후로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미리 강요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음에도 제가 깨닫지 못할 때 옆에서 조언자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모두 제게 맡겨 주었던 거죠.” ■ 원래 꿈이 특수교사였습니까? “특수교사가 되겠다기보다는 나보다 더 힘든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5월 5일 어린이날,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 정립회관에서 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났습니다. 저보다 더 어려운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내가 가진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나보다 더 어려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렇게 막연하게나마 꿈꾸던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말 특수교육학과가 제 눈에 들어왔고, 부모님은 물론 담임선생님과 주위에 있는 많은 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특수교사가 되었죠.” ■ 임용에 어려움이 있었는지요? “쉽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 특수교사가 된다는 게 참 어렵더군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하고도 ‘혹여 이번에 임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라며 임용에 대한 불안감을 전해주던 장학사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발령 통지서를 받기까지 가슴을 조이며 애태우던 몇 개월……. 다행히도 그 해 바로 발령을 받았지만 장애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특수교사가 장애를 가진 사례는 더욱 흔치 않았으니까요. 제가 처음 특수교육에 발을 디뎠을 때 같은 학교 동료교사들이나 학부모님들께서 상당히 저를 불신하셨습니다. 장애인이 어떻게 장애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겠는가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학부모님들은 본인의 자녀가 장애가 있음에도 불신이 심하셨어요. 아! 내가 잘 해야 우리 아이들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부모님들이 제 편이 되어 계셨어요. 학교의 동료 교사들도 물론 마찬가지구요.” |
■ 지금도 초년교사의 열정을 고스란히 갖고 계신 듯한데.... “글쎄요.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 보니, 그 때의 그 열정에는 못 미치겠지만 연륜과 경험을 통해 얻은 노련함과 숙련된 교수적 기술들을 아이들을 위해 풀어 헤쳐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갑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 미리 준비해 두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개개인의 능력과 특성을 고려한 교수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신바람 나고, 흥겹게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여기시는지요? “교사에게 필요한 덕목을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유능한 교사도 불화가 있는 곳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늘 후배 교사들에게도 한 걸음 물러서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권합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지난 6월 말 충청남도교육청 지정 시범학교 운영보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담당이었지만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들께서는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주셨습니다. 그 때도 학교일에 있어서는 정말 인화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덕목이면서 제 좌우명이기도 한데요, 긍정적인 사고로 준비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가 그 보다 앞서 미리 준비해 두는 것만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며, ‘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 사고는 나에게 언제나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 요즈음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 장애학생 교육과 관련된 연구나 교수·학습 자료 개발에 힘을 쏟고 싶습니다. 혼자 힘만으로는 어렵고 여러 선후배들과 힘을 합쳐야 되는 일이겠지만요. 사실 후배 특수교사들을 보면 정말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유능할 뿐만 아니라 심성도 착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또한 그에 못지않게 대단들 하거든요. 선배로서 그런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도 생각해 보곤 합니다. 간단한 회식 자리를 만들어 정담도 나누고, 많은 정보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들과 함께 특수교육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연구해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 볼 때도 많습니다. 교사니까 학생들을 잘 지도하는 것이 가장 우선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그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자료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너무 바빠서 하루에 서너 시간도 못 주무시는 날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복이 많은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일을 주시기도 하지만 제가 일을 앞에 놓고 거절을 잘 못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은 내선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이루어내려는 스타일이기도 하구요. 그러다 보니 정말 가족들에게 미안할 때가 비일비재 합니다.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페스탈로치나 설리번을 읽는다. 우리 교단에도 그들과 같은, 그들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선생님들이 있다. 문영옥 선생님과 대담을 마치면서 필자는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한 사람을 오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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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