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강정마을 수호천사를 돕기 위한 힐링 포차
취지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부터 강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기나긴 시간동안 온몸으로 싸워온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강정지킴이 또는 강정마을 수호천사라 합니다. 평화를 향한 그들의 몸부림은 경찰과 용역에 의해 짓밟혔고, 마음에 상처 또한 큽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또다시 연행과 재판 그리고 벌금이라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강정지킴이(가미)의 어머니가 딸과 강정 수호천사들의 아픔을 보고 만 있을 수 없다며 거리로 거리로 나서셨습니다.
-강정지킴이들의 벌금이라도 마련해 보시고자 강정마을 수호천사를 돕기 위한 힐링포장마차를 시작한 것입니다.
-가미어머니의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 생각이 듭니다. 함께 강정평화를 위해 강정지킴이들을 위해 함께 해 주십시오.
일시: 2013년 2월 28일 오후6시~오후12시
장소: 원도심레츠(대전시 대흥동 488-17 2층)
주최: 대전충청평통사(문의 : 042-635-5812)
준비: 가미(강정지킴이)어머니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2-347-926696 가미
(후원금은 전액 강정마을 수호천사들의 벌금으로 사용됩니다.)
메뉴 :메뉴에 필요한 재료는 산지에서 직접 구매 합니다.
돼지고기 두부찌개 20000
오징어 볶음 20000
어묵 우동 5000
데친 오징어 10000
어묵탕 10000
파전 10000
소주 4000 맥주 5000
-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진행경과-
출정식: 1월 28일 오후5시
장소: 영등포 민주당 당사 옆(28,29)
1월 30일 성남시
2월1일 의정부시
현재 논의 중인 곳
마포,중랑,은평,부천,시흥,인천,수원 등 (대전, 충남지역, 그 외지역)
‘강정마을' '해군기지 찬성 반대'....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2002년 길바닥 인생이 시작되고 10년간을 아스팔트 가 내 집인양 초 한자루 들고 때론 천막에서 야영을 때론 비박을 일삼았다. (2002년 희망포차 http://youtu.be/tPl8syVFaAY )
2002년 경선만 하고, 그해 1219 대선 끝날때 까지만,
노무현승리와 참여정부 탄생 거기까지가 끝이라 생각했다.
2003년 취임에 이어 재신임 재검표 탄핵 파병반대 국가보안법 포함 4대 개혁법 등등등....
그리고 2007년 이명박 당선,
...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 말자 광우병 방송법 KBS, MBC 시청에서 여의도로
생활을 뒷전이 되고 가세랄것 까진 없지만 기울대로 기울었고 그때서야 정신을 번쩍 들었다.
"이제 그만", 을 선언하고 아스팔트와 이별을 결심했다.
들리는 것들엔 애써 귀막았고 보이는 것들엔 애써 눈감았다.
나름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갈 즈음
그런데 둘째 가미가 눈을 떠버렸다.
처음 가미가 제주 강정마을을 찾게 된건 분명 일 때문이었다.
곧바로 가미의 일이란건 끝났고 가미는 서울엘 오질 않았다.
그곳에서 가미는 해군기지를 보았던 것이다.
"엄마 조금만 더 있다갈께" 그게 시작이었다.
중간 중간 서울엘 오면 열심히 알바를 했고 경비가 충당이 되면
다시 강정마을로 향했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겠지 그렇게 6개월..
얼마전 놓치기 아까운 일자리가 생겼고 겨우 겨우 설득을 해서 지난 12월 말
제주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엘 왔고 취직도 했다.
미뤄논 학업도 시작해야 하기에 대학에 대한 논의도 하고..
그러면 될 줄 알았다.
가끔 가미의 페북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강정을 바라보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모른척 했다.
말수도 적어졌고 퇴근후 자기방에 틀어박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저러다 말겠지" 라며 모른척 했다.
그러던 엊그제 잘 참고 있다고 생각했던 가미가 너무 힘들다며 참고 있었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당황도 되고 화도 났지만 겨우 억누르며 타일렀다.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단다.
겨우 겨우 대화를 시도한끝에 맘을 열기 시작했다.
역시 강정이었다.
강정에서 함께 했던 언니들 12명 에게 공사 저지를 했다는 이유로 1인당 400만원씩 벌금형이 선고 되었고 400만원이란 거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언니들이 노역을 결심하고 있다고 ...
그런데 본인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도 없고, 함께 있을 수도 가볼 수 도 없는 상황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지난 10년간 내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도 저랬으리라~
남편도 아이들도 나를 어쩌지 못했을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다니던 직장을 접고 아파트를 팔고 여기까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리고 그날밤 모녀는 마주 앉아 적절한 합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가미 대신 엄마가 나서마, 라고..
그 언니들을 위해서 엄마가 지금부터 어떤 일이라도 하겠노라고..
당장은 벌금을 만드는게 우선이니 엄마가 그 일에 앞장 서겠노라고..
그일이란게...
10년전 희망포장마차를 다시 가동하는 일이다.
해군기지반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강정마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딸같은 열두명의 20대 꽃다운 처녀들을 이 추운 겨울 감방노역을 시킬수 없다,는 일념하나로
전국투어 희망포장마차를 가동하기로 했다.
어제 하루 트럭과 집기와 천막 구하기 작업을 했다.
해결이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난 대단히 능력이 있다.
이제부터 장소 섭외와 홍보를 해야한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까마득하기는 하다.
제주해군기지!!!!
정말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ㅠㅠ
-가미 어머니-
첫댓글 문단소식으로 옮겨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