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준재
<내과전문의>
한국의 대선 정국이 요즘 뜨겁다. 뜨겁다 못해 시끄럽기 조차 하다. 미래의 어젠다 (Agenda)는 하나도 없다. 그토록 떠들던 선진화라든지 통일에 대한 토론은 없고 과거로, 과거로-그것도 박정희 대통령 시대를 들쑤셔 파헤치기만 하고 있다. 50여년이 지난 얘기들이다. 박정희 시대 (1961~1979)의 18년 중 12년간(1961~1973)을 살았던 경험에 의해서 나름의 반론을 펴고 싶어 이글을 쓰고 있다.
◆ 4·19 ~ 그리고 5·16 1960년 3·15 부정 선거로 촉발된 학생 시위는 4·19 혁명으로 이어지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이화장을 떠나 하와이 망명으로 떠났다. 그가 떠나던 날 신문 기사나 사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토록 혐오하던 자유당 정권을 대통령이 길을 떠나자 선남선녀, 남녀노소는 길을 메우고 그의 떠남에 눈물 흘리며 방성대곡하는 장면은 역사의 아이러니(Irony) 이자, 한국인의 정서를 극명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퇴진을 요구 할 때는 언제고 막상 떠나자 눈물로 가로막는 이율배반적 행위는 고등학교를 갓 들어간 나의 눈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던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 후 어찌 되었나? 사회 변혁-곧 학생혁명에 성공한 학생들, 그리고 정권 퇴진에 성공한 일반 시민 사회는 어땠는가? 사회 혼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지만 그 여파가 학내까지 번져 선생님을 구타하는 학생들, 학교대 학교의 집단 싸움-그 때 갓 지었던 모교 유리창이라는 유리창은 박살이 나 버렸다. 아니 할 말로 나라 전체가 공권력은 무력해지고, 질서가 아니라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5·16 혁명이 터졌다. "반공을 국시로 하고"로 시작 되던 혁명공약을 들었을 때 지금 당시의 통계가 말하듯 대부분의 시민이 5·16 혁명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올 것이 왔다"며 환영했다는 말이다.
◆ 박정희대통령 시대(1961~1979) 박정희 시대는 필자의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군 생활을 관통하는 그의 시대 18년 중 12년을 말 하고 있다. 뒤돌아 보건대 대학 다닐 때 흰가운 입고 길거리 데모 군중에 우리도 휩쓸려 간 적은 있지만 입만 열면 민주화 주역으로 떠들지는 않는다. 시류에 묻혀간 일탈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1963년 11월22일 달라스에서 암살 당한 케네디 대통령이 그의 취임 연설에서 간파한-국가가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묻지 말고, 오히려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고 포효하던 연설이 귀에 쟁쟁하기만 하고 "잘 살아 보세"를 노래하며 "우리도 하면 된다"던 그 시절이 눈앞에 선하다. 그리고 상대를 졸업하신 자형, 공대를 다니시던 형님, 그리고 나 셋은 밤이 늦도록 우리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묻기도 하고 토론으로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한 번도 게네디가 미국시민들에게 요청하고 질타했듯 대한민국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다. 공권력에 겁먹어 그랬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 할 수 있었던 그 자체로만 으로도 감사하고, 무엇인가 우리는 스스로의 헌신만 강구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세월을 잠깐 고등학교 시절도 되돌린다. 지금 한창 난도질 당하는 정수장학회를 건너 뛰었기 때문이다.
◆ 정수장학회의 회고 정수장학회가 지금 한창 한국 대선의 핫 토픽(hot topic)으로 논쟁 선상에 서 있다. 박정희 시대의 유산 두들겨 패기의 일환인듯 하다. 5·16과 유신시대를 들먹이더니 정수장학회로 불이 옮겨 붙었다. 정수장학회는 내가 알기로는 경상남도에서 당시 최대 장학회로 부산일보에서 시작되어 경남의 우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기사를 보니 전직 대통령도 중학생 시절에 그 수혜자들 중의 하나였고 필자도 두살 위 형님을 뒤이어 고교시절에 받았다. 몇 명을 주었는지, 얼마를 주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부일장학회가 나중에 5·16 장학 회로 형님은 대학 4년을 전액 장학생으로 공대 화공과를 마쳤다. 그 이후 5공 시절에 부일 장학회와 5·16 장학회를 합쳐 정수장학회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기리는 의미가 있는)로 개칭 현재까지 존속하고 연간 600명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공익재단으로 서울시가 감독기관으로 되어 있다는 보도다. 정수장학회 설립 시 부산일보 기여는 15%에 지나지 않고 여타 85%는 해외나 여타 기부금에서 설립 되었다고 부연하고 있다. 공익 재단으로 많은 조사와 그리고 감찰을 지난 세월 정권에서 받아왔을텐데 왜 지금 대선 정국에서 이 야단인지 알 수가 없다. 강탈한 장물이라면 전직 대통령을 비롯 내 형제가 뜻 밖에 그 장물의 혜택을 받았다는 말인지? 정말 문제 삼는 정치권의 역사 인식 내지는 해석에 마음이 불편하다. 어쩌다가 두고 온 산하조국의 정정이 과거에만 묻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지? 선진화와 조국통일 말이다. 과거로 과거로 달려들어 들쑤시는 정치 집단을 진보라 부르는 이 현실은 또 무엇인가? 그들이 진짜 수구꼴통 아닌지? 한 참 헷갈린다.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 싸이(Psy)의 열풍처럼 세상인에 회자되고 있는데 대선 정국은 과거와의 쌈박질에 여념 없는데 지금 통탄하고 있다. 내일을 위하여 우리 모두 일어서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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