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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발달
용접은 철과 불로 이루어진 것이다. 불의 역사는 인류 역사의 첫 단계
에 발견되어 에너지의 공급원이었고, 이것은 철의 생산에 영향을 미친
다. 철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의 손에 쥐어졌는가에 대해선 '채광
착오설'과 '산불설'의 두가지 설이 있다. '채광착오설'에 따르면, 청동의
원료인 황동광(Cu2S)을 채광한다는 것이 색깔이 비슷한 적철광석
(Fe2O3)을 잘못 채취한 뒤, 이를 청동 제조로에서 용해시키다가 철 성
분만 남은 덩어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들겨 최초의 철기를 만들
었다는 것이 '채광착오설'의 뼈대이다. 또하나의 철기 발생설은 '산불
설'로. 산불 때문에 땅거죽 위에 드러나 있던 철광석이 철덩어리로 변
한 것을 가지고 철기를 만들었다는 설이다. 철은 지구상에서 금속원소
로는 알루미늄 다음으로 다량으로 존재하며, 기록과 유적 발굴로 정리
된 내용에 따르면 인류가 처음으로 철을 사용한 것은 기원전 4천년쯤
소아시아 지역에서였다. 기원전 3천년 무렵에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역까지 철을 정련하는 기술이 알려졌다. 그러다가 철이 기원전 1100
경부터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8세부터 철기 시대
가 열리고 그 용도는 점차 더욱 확대되었고 18세기 중반에 제련에서 코
크스의 사용으로 철의 생산이 증가되면서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
였다. 유럽에서는 14세기에 이르러서야 주물을 사용하는 주철 작업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철로 주조된 농기구와 무기류가 춘추시대 여
러 무덤에서 출토되고, 최근 발견된 전국시대 (기원전 5-3세기경)의 주
형으로 미루어보아 주철 기술이 유럽에 비해 1,600년 정도 앞섰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철의 구분은 그 성질을 좌우하는 탄소의 비율에 의해 좌우된다. 무쇠
혹은 선철(銑鐵, pig iron)은 철광석에서 직접 제조되는 철의 일종으로서
철 속에 탄소 함유량이 1.7% 이상인 합금이며 용접 조각으로는 까다로
운 재료이다. 연철(鍊鐵, wrought iron)은 단련할 수 있는 철이라는 뜻으
로, 0~0.1 %의 탄소를 함유한 순철(純鐵)에 가깝게 조성(組成)된 것으
로 구부리고 두들기며 작업하기에 적합한 재료이다. 이에 반해 강철
(鋼, steel)은 조금 부드러운 연강(mild steel)과 스프링 같은 경강(hard
steel)이 있으며, 철과 탄소의 합금으로, 강철 또는 철강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강이라 하면 탄소강을 의미하며 다른 원소를 첨가하여 특
수 용도에 알맞도록 한 합금을 합금강 또는 특수강이라 한다. 탄소의
함유량은 0.04~1.7% 정도이다. 철에 다른 금속을 합금하여 그 성질을
개량한 것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꾸준히 개발되고 조각가들도 활용을
하고 있는데, 1913년에 H.브레얼리가 크롬을 첨가한 내식강을 만든 것
이 시초가 되어 개발된 스테인리스강이나, 녹슬지 않는 철로 알려진 내
후성 강재가 있다. 내후성 강재는 전혀 녹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철강에 비해 그다지 녹슬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러나 일
반 철이 녹으로 인해 썩어 없어진다면 특수 합금 된 철은 철의 아름다
움은 보여 주되 야외조각에 적합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즉 철판이 대
기 중에 노출될 때 보통철판은 녹이 발생하나 내후성 강재는 특수합금
에 의해 부식으로부터 철판을 보호하는 산화피막을 형성하여 부식을
방지한다. 이 재료는 자연의 밝은 적색의 녹이 표면에 머문 채 더 이상
녹이 슬어 들어가지 않음으로 페인트를 칠할 필요 없이 야외 조각에 적
합하여 데이비드 스미드의 작품에서 불 수 있다. 그 외 용접 조각에서
많이 쓰는 재료는 동합금 계열로서 황동이나 동, 그리고 일부 알루미늄
을 사용한다. 황동이나 청동의 동합금은 낮은 온도의 브레이징이나 간
단한 산소 용접이 가능하며, 화공약품으로 표면에 인공적인 부식 색상
을 내면 야외에서도 더 이상 썩어 들어가지 재료의 장점으로 주물 외에
용접으로도 작품을 제작한다.
이 중에서 강철은 그 단단함이나 탄성이 강화되면서 더욱더 다양한 가
치를 지니게 되었다. 기계공업, 운송수단에 혁신을 가져왔고, 특히 작
은 단면에서도 높은 강도를 낼 수 있는 이점은 건설이나 건축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철재 교량이 18세기말이면 건설이 되며, 철골구조로 된
획기적인 건물인 수정궁(crystal palace)이 1851년에 세워지고, 이어서
19세기 후반기 유럽에는 높은 천장을 철골구조로 하고 유리로 덮는 방
식의 밝고 거대한 공공 도서관, 백화점들이 들어서게 된다. 철골구조의
발달은 1889년 파리 박람회를 계기로 정점에 달한다. 철재로 조립된 장
대한 높이 3백 미터의 에펠탑뿐만 아니라 전체 길이가 429미터에 달하
는 기계관(Galerie des Machines)을 계기로 철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물에서 철이라는 재료의 등장은 미학에 혁신을
가져왔고 이것은 바로 번성하는 현대의 상징물이 되면서 전통이라는
개념과는 반대되는 '모던'이라는 의미를 띠는 재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철 조각의 등장
우리 나라에서 철조의 시작은 사실상, 우리 나라의 경제적인 상황과 밀
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자세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시기적으로 일
제시대와 6.25를 거치며 외국에서 도입된 현대적 철 산업은 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전통적인 대장간과 더불어 사회 속에 자리를 잡았다. 철과 관
련 된 산업의 일례로 1899년에는 이미 경인선이 개통되어 강철이 쓰였
으며, 1898년에는 미국 스텐다드 오일에서 한국에 저유 탱크를 만들고
석유 운반선으로 석유를 공급하였다. 이 때 초기 한국 용접 조각의 주
요 재료였던 드럼통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으나 실제 조각 작품으로 쓰
이게 된 것은 6.25 사변 이후 미군의 군수물자용 기름 공급을 통하여서
였다.
1950년대 우리나라의 철은 주로 선철이었다. 이때의 정부 통계에서도
선철은 수요를 초과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용접 조각으로 가능한 강
철은 확보 문제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까지 했다. 아직 전쟁 중인 국가
에서 1951년 9월에서 10월 사이 신문에서는 흥미 있는 기사가 보인다.
1951년 6월 전쟁물자로 필요한 철의 확보를 위한 미국에 년간 10만톤
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부 보유 중인 철은 주로 교
통부가 보유한 고철 5만 톤뿐이어서 11개 민간 업자와 수집 계약을 체
결한다. 수집에는 탄피와 선철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함부로 수집하는
폐단이 있어서 계엄민사부장이 고철불법수집에 대한 엄벌을 경고하였
으나, 그것으로도 통제가 안되어 드디어 10월 12일에는 44건을 단속하
여 4명을 구속하였는데, 이중 남자는 4명 뿐이었다. 또 이 당시 신문에
는 '고철에 녹은 사람' 혹은 '서울은 古鐵狂都'라는 제목 하에 부녀자들
에게서 고물상의 허가도 없이 사들인 상인을 구속하는 등 사흘에 300여
건을 적발한다. 이렇게 고찰 하나가지고 구속을 하고, 서울시장이 고철
의 시내외 운반은 물론 고철의 현 소재지에서 이동을 금지할 정도로 사
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금과 달리 선철이 아닌 강철류는 귀하였으며,
가격도 지금 시세의 약 30배에 해당하는 톤당 4만 3천원씩에 불법 거래
되었었다.
그리고 이 때는 용접 도구도 귀한 장비였으므로 용접 조각 자체가 쉬운
소재는 아니었음을 실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우리나라
에는 철이 조각 재료로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미술의 다른 분야와 달
리 조각에서는 바로 재료의 문제가 작품의 표현 내용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는 석고, 돌, 나무, 시멘트, 브론즈 등의 재료가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서 석고가 가장 일반적인 조각 재료였고 여기에
철이라는 새로운 재료가 조각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은 단
순히 주조기법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주로 사용하는 석고가 당시로서
는 최종 작품의 재료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당시 우리의 산
업의 발달 사정상 질 좋은 석고조차도 생산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작품들은 영구히 보존될 수 없었고, 현재 우리는 1950년
대의 작품을 실제로 접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석고라는 재료는 표현의 한계가 있게 되면서 작가들은 새로운
재료를 찾게 되고, 차츰 돌이나 나무를 깎아서 추상적인 작품을 시도하
지만 50년대에는 일반화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고철을 이용한 조각이었다. 사실적인 작품에서 추상적인 작품을 시도
할 때 기존의 조각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표현방법이 제기 되었고, 또한
전혀 새로운 공간개념을 표현하려는 욕망이 용접조각의 등장을 부추겼
다. 철이라는 재료는 당시에 귀한 재료였으며 현대성을 상징하는 재료
였지만, 6,25전쟁이후 전쟁 복구의 일환으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 건물
을 지을 때 새로운 공업의 철근콘크리트구법이 도입되고 철골구조 등
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며,철재 의자와 캐비넷 등 철재 가구가 등장하고
양철로 양동이, 지붕을 만들고 하는 등 주위에서 점점 쉽게 접할 수 있
게 되었으며 새로운 조각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또한 정서적
으로도 작가들의 사회의식을 표현하는데 적합하게 되었다. 이는 데이
비드 스미스가 산업사회에서 철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살상용 무기로 제작되는 강철의 쓰임에 더 관심을
두고,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인 위기와 전쟁의 시각적인 메타포로서 수
많은 철조 작품들을 제작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초기 우리나라의 철 재료는 제철소에서 바로 나온 규격품이 아니라, 주
로 고철과 전쟁물자로 공급되었던 폐품이었다. 특히 드럼통은 당시 매
우 중요한 철재였다. 버스를 비롯하여 택시를 드럼통을 펴서 만들었고,
철조 작가들은 이러한 철공소나 가구 제작소에서 철판을 얻어 철판 용
접을 했다. 무겁고 두꺼운 재료는 운반이나 들 수 있는 장비의 미비로
젊은 조각가들이 사용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였으며, 주로 학생의 신
분이었기에 이들은 쉽게 적은 량의 고철을 무료로 얻어서 작품에 이용
할 수 있었다. 또한 초기에는 철조의 양식이 전통적인 소조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 날 수 없었으므로 얇은 철판이 오히려 형태를 변형시키고 구
성하는 데 적합했다. 그리고 1950년대와 60년대 초는 거의 산소 용접에
의한 기법으로 철조를 하였으며, 전기 용접이나 아르곤 용접 기법은 70
년대를 들어오면서 사용하게 되고 작품이 점점 대형화하고 기하형태화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국전에 용접조각이 나오기 시작한 1957년의 출품된 추상작품을 보
면?? 점 중 ?/점이 용접조각이어서 다. (더구나 50년대 구상작품의 재료는 석고가 주재료(55.1%)였으나
추상은 1950년대 말기에 나타난 철이 주재료(39.1%)로 나타났다.)
철을 사용한 작가들은 주로 1950년대에 대학을 다닌 작가들이었다. 이
들은 다양한 새로운 재료를 구사했고 특히 철의 사용을 했다. 특히 이
들이 추상을 다룰 경우 철을 가장 중요한 재료로 사용했다.
그 후 60년대에 들어오면, 국전에 출품된 석고 작품은 현격하게 줄고
대신에 철조가 석고 다음의 중요 재료로 부각되었다. 국전에 출품했던
작품들의 재료를 분석한 통계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17.5%에서 7.4%) . 60년대까지만 해도 구상은 석고(41.4%)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추상은 철(31%)의 사용으로 활발했고, 동, 황
동, 알루미늄, 스테인리스스틸 등의 새로운 금속류가 나타나기도 했다.
70년대에 들어오면, 추상이든 구상이든 브론즈가 가장 중요한 재료로
시용 되었다. 그렇지만 70년대에 들어와서는 석고만으로 제작한 작품
을 국전에 내는 일은 거의 없어지고 영구적인 재료인 브론즈로 주물을
떠서 작품을 출품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이것은 이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들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더구
나 국전이라는 관전에 출품하는 작품의 재료로 석고는 더 이상 사용되
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