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시계는 5분 빠르다
약속 시간 12분 전, 윤윤수 휠라(Fila)회장이 인터뷰 장소인 서울 프라자호텔에 나타났다. 약간 벗어진 머리, 낮고 굵은 바리톤 음성. 그는 지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지각하는 직원의 경우 보너스에서 5%씩 깎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사무실 시계는 5분 빨리 간다.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생각하고, 세상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휠라그룹의 일개 투자법인(휠라코리아)을 경영하던 그가 지난해 3월 '몸통'격인 휠라 본사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휠라가 어떤 브랜드인가? 1911년 이탈리아에서 출발한 세계 5대 스포츠 브랜드로, 전세계 70여개국 1만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로부터 1년 후, 윤회장이 이끄는 휠라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한 달여에 걸친 미국 출장을 마치고 최근 돌아온 윤 회장을 만났다. 그는 전세계 70여 개국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매년 최소 4000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게 된다., 그뿐 아니다. 휠라 브랜드를 쓰는 기간을 반영구적으로 연장해 주는 조건으로 앞으로 들어올 로열티의 절반 정도를 선금으로 받았다. 이 돈으로 휠라 인수때 썼던 단기 차입금 2억 달러를 모두 갚았다. 윤 회장은 "한국 사람으로서 글로벌 브랜드를 이끌로,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전세계로부터 로열티를 받는다는 게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윤윤수 휠라 회장은 1984년 신발 공급업자로 휠라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휠라는 의류 중심이었고 신발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휠라 브랜드에 한국의 신발 산업을 접목시키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본사를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약속이 돼 있지 않다""거래하지 않겠다"며 10번 넘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러던 그가 휠라 본사를 '접수'한 것이다. 미국 사모펀드인 서버러스 컨소시엄(SBI)에 넘어갔던 휠라를 지난해 3월 4억달러에 사들였다. 휠라코리아 사장 시절 국내 최대 연봉 샐러리맨으로 화제가 됐던 윤 회장의 신화가 글로벌 브랜드 신화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후 이달 초 윤회장은 해외 라이선스 계약까지 마무리했다. 그는 앞으로 매년 최소 4000만달러의 로열티를 받게 된다.로열티를 주는 업체 중엔 일본의 대형 종합상사인 이토추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특히 휠라 브랜드를 쓰는 기간을 반영구적으로 연장해 주는 조건으로 앞으로 들어올 로열티의 절반정도를 선금으로 받아 차입금 상환에 썼다. 매년 매출의 7~8%를 받던 로열티를 4%만 받되, 나머지 부분은 현재 가치로 환산해 일시금으로 받았다. 신종 금융기법인 셈인데, 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휠라는 전세계적으로 라이선스를 줬지만, 휠라 US와 휠라코리아는 직영하고 있다.)
-해외 라이선스 계약을 다 끝냄으로써, 올해가 글로벌 휠라 출범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느낌이 어떠세요?
"시원하네요. 라이선스 문제는 작년말에 끝앨 계획이었는데, 서브프라임 여파로 유럽지역에서 좀 지연이 됐어요. 돈줄이 얼어붙어 기업들이 투자를 잘 안하려는 상황이었죠. 한국 사람으로서 글로벌 브랜드를 이끌고,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전세계로부터로열티를받는다는 게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7시 15분이면 출근한다, 하지만 휠라의 경영 정상화는 집념의 경영인 윤윤수에게도 일생일대의 도전임에 틀림없다. 윤 회장이 인수하기 전 휠라의 미국법인( 휠라USA)은 고가라인 위주의 마케팅과 소매 중심 영업 등 당시 미국 시장 상화에 맞지 않는 경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휠라 USA는 지난해 42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때 14억 달러레 달했던 전세계 휠라 매출은 지난해 8억 달러에 그쳤다.
-휠라가 미국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언제쯤 턴어라운드(실적개선)할 것으로 전망합니까?
"작자투성이인 미국의 매장중 18개를 정리하고, 인력을 감원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42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도 이 때문이었죠. 직영 매장일변도이던 유통구조를 바꾸어 대형 유통업체와 계약을 맺고 도매 공급 비중을 크게 늘렸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재고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코올스'같은 유명 백화점과도 납품 계약을 했습니다. 코올스에게는 '휠라 스포트(Fila sport)브랜드의 라이선스를 줬습니다. 휠라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입이 생긴거죠. 이런 노력 끝에 올해는 500만달러 흑자전환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휠라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매출이 6000만달러였는ㄴ데, 올해 이미 9400만달러 상당의 주문이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순이익도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맞추던 것이 올해는 4000만달러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마켘팅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미국에서 스포츠 브랜드 시장은 흑인들이 주도한다. 1월 새 스포츠 신발을 출시하면서 흑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흑인 래퍼 허리케인 크리스를 모델로 내세웠다. 그가 부른 노래가 히트하면서 흑인 사회에서 제품이 날개 돋친듯 팔려나갔고, 출시 한달만에 150만 컬레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
그는 휠라 인수를 마무리 짓고 경영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무수히 비행기를 탔다. 작년 한 해 동안 23차례 비행기를 탔고, 5개월 가량을 해외에서 머물렀다.
"지금까지 대한항공 비행기를 1000번 넘게 탄 것 같습니다. 마일리지가 350만 마일이 쌓여 있어(뉴욕을 248번 왕복하는 거리에 해당한다) 아내는 돈주고 항공권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윤 회장은 세계 시장을 남미, 중국, 일본, 유럽.아프리카 등 4개 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의 대형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중국은 합작법인). 일본 이토추, 브라질 다스그룹 등이다.
-앞으로 휠라를 어떻게 키워나갈 계획이십니까?
"휠라를 스포츠 브랜드의 '빅3'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앞으로 3년 내 글로벌 매출 15억 달러를 달성할 계획입니다.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도 검토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휠라를 발판으로 '한국판 루이뷔통'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인수해 운영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Think globally, but do locally(사고는 세계적으로, 실행은 그 지역에 맞게)"를 강조해 왔습니다. 나라별로 상황이 다른데, 세계 전 지역을 본사에서 일일이 다 관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예전에 휠라는 지역 라이선스 업체의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했어요. 하지만 이제 휠라의 뿌리가 된 한국과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미국만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는 라이선스 업체들이 지역에 맞는 마케팅활동을 펼칠 것입니다. 다만 의류의 경우 20~30%, 신발은 70%정도를 전세계에 동일한 제품을 공급해 통일성은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회사들은 로열티를 선불로 지급했으니 본전을 뽑으려고 알아서 열심히 하겠죠"
라이선스 체제로 가면 품질 관리가 어렵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는 "R&D(연구.개발)와 금융중심인 미국, 그리고 라이선스 관리센터인 학국만 잘 지키면 글로벌 시장관리는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휠라USA 기존 조직도 최대한 살려뒀다. 휠라 USA의 CEO는 휠라 USA의 사장을 역임했던 미국인 존 엡스타인으로 20여년간 알고 지낸 사이다. 2000년 윤회장이 미국에서 심장협십증 수술을 받았을 때 엡스타인이 자신의 사촌을 집도의로 소개해 준 인연이 있다.
"외국 기업을 인수했다고 해서 점령군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가는 반발감만 키우고, 결국 문화적 장벽에 갇히게 됩니다." 다만 휠라USA 마케팅부서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휸 회장 아들(33)과 지주회사를 맡고 있는 조영찬 사장을 포함새서 4명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휠라코리아가 휠라 본사를 인수한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인데요,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2006년 8월부터이지만, 그 전부터 '본사를 인수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 본사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되지도 않는 상품을 만들어 각 지역 법인에 강매를 하기도 했죠. 휠라 브랜드가 매물로 나오고 나자 '다른 곳에 인두될 경우 휠라코리아가 보호받기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휠라를 인수했던 서버러스는 투지회사이니, 경영보다는 투자비회수가 더 큰 목표였습니다. 휠라 인수를 놓고 마지막에 2곳과 경합을 했는데, 서버러스 쪽에서 오히려 '투자비(3억9800만 달러(만 회수할 수있으면 휠라를 잘 아는 윤회장에게 넘기고 싶다'고 얘기를 해서 쉽게 풀렸습니다."
앞의 신발 이야기로 돌아가면, 휠라에 신발 장사를 제안한 윤회장의 아이디어는 결국 채택되 휠라는 신발 사엉을 펼쳤고, 의류 매출을 뛰어넘을 만큼 장사사 잘됐다. 윤 회장의 능력을 인정한 휠라 본사는 1991년 한국에 투자법인을 세우고 그를 CEO에 앉혔다. 휠라코리아 실적은 날개를 달아 전세계 라이선스 업체중 단연 독보적이었다. 휠라 그룹 엔리코 후레쉬 전회장은 "휠라는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지만 성장은 한국에서 이뤄졌다"며 "전세계 휠라인들은 휠라코리아를 본받으라"고 말했다.
-요즘 휠라 경여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었입니까?
"제가 갖고 있는 정보를 직원 모두와 빠른 시간 내에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혼자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사장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직원이 다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회사가 잘될 수 없습니다. 저는 해외 출장을 갔다 오면 직원들에게 브리핑을 합니다. 정보 공유를 위해서는 조직 상하좌우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는 매일 수시로 휠라 USA책임자들과 통화를 한다. 인터뷰 중에도 미국에서 업무 보고를 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글로벌 브랜드의 회장이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험난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돼 장티푸스로 어머니를 여의고, 고2때는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의사가 되고 싶어 서울의대에 지망했지만 세 번이나 낙방하고, 한국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하비만 3학년 때 시험기간에 공부 안 한 친구가 그의 답안지를 바꿔치기하다가 발각돼 1년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는 "그때의 내 인생은 암울했다."고 말했다. 군 제댜후 해운 공사에 취직하면 사회진출한게 나이 서른.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하며 배운 영어와 뚝심으로 미국 백화점인 JC페니와 신발업체 화승에서 각각 바이어와 영업맨드로 활약하며 성공 신화를 써가기 시작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비결은 무었입니까?
"잦년 미국 볼티모어 물류 창고에 갔을 때였어요. 한 흑인 직원이 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우선 정직해야 한다.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갖고는 부족하다. 운이 따라야 한다.' 이렇게요"
그는 1996년 연봉이 18억원이라고 공개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전문 경영인 중 1위였다. 그는 가장 많이 받을 때는 33억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돈과 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저는 제가 번 돈에 대해 떳떳합니다.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부의 축적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 반 부자 정서가 있는데, 부자들 책임도 있습니다. 어떻게 부를 쌓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가 필요한 사람과 적절히 공유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연봉을 받으면 절반 가까이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 절반중 절반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연봉이요? 월급사장 시절, 제가 나서서 그만큼 달라고 했으면 회장이 줬겠어요? 회장이 나를 그렇게 평가해 준 겁니다. 제가 돈 벌려고 아옹다옹한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다 보니 돈이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05년 휠라코리아의 외국인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명실상부한 오너가 되면서 연봉을 5억원으로 낮추었다. 차도 벤츠600에서 렌트한 체어맨으로 바꿨다. 그는 "회사 실적을 높여 높아진 주가와 배당으로 당당히 보상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기업인인 그이지만, 옳은 가장(家長)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는 듯 했다. " 특히 아내에게 미안해요. 아내는 제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타자기로 제 이력서를 타이핑했죠. 때로는 회사 경리가 됐고, 사업이 어려울 때는 저 대신 돈을 꾸러 다니기도 했어요.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사하는 날 도운 기억이 없어요. 이삿짐을 챙긴 것은 고사하고 이사하는 날 집에 있었던 기억이 한 번도 없었어요.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예전 회사 근무 시절 비리를 눈감아 달라고 보내온 돈 다발을 당장 돌려 보내도록 한 것도 아내였습니다."
그의 명함에는 'past farward(패스트포워드)'라는 빨간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더울 희망찬 미래로 전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휠라 본사 인수를 계기로 시작한 기업 캠페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