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장은 나무를 재목으로 하여 집짓는 일에서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는 물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는 목수로서 궁궐, 사찰, 군영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로 지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문짝, 난간 등 소규모의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과 구분한 데서 나온 명칭이며, 와장·드잡이·석장·미장이·단청장 등과 힘을 합하여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진다.
즉 현대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목조건축이 발달하여 궁궐과 사찰건물이 모두 목조였다.
따라서 목수에 주어진 벼슬 또한 상당하였다.
통일신라의 관직을 보면 목척(木尺)이 70인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전문직으로서의 목수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목업에 벼슬이 주어졌고 조선시대에는 60인의 목장을 선공감에 두었고, 세종(재위 1418∼1450) 때 서울 남대문 재건기록에 의하면 대목이 정5품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목수에게 벼슬을 주는 제도가 없어졌다.
오늘날에는 사찰이나 개인의 집을 목조로 짓는 것으로 기술의 명맥이 전수되어 오는 형편이다.
대목장은 그 기법이 엄격히 전승되기 때문에 기문(技門)이 형성되어 있다.
기문은 기술로서 한 가문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기문에서의 대목장은 절대권위를 누린다.
대목장은 능력에 따라 새로운 기법이 도입되기도 하고 기능이 향상되기도 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대목장은 전통적인 공예기술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대목장 기능보유자로는 경복궁을 중건할 때 활약하였던 도편수 최원식-조원재-이광규로 이어지는 기문의 계승자로 신응수 씨와 김덕희·김중희 계열의 전흥수와 최기영 씨, 그리고 조원재·배희한으로 이어지는 고택영 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