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로 한날한시에 죽은 남편과 아이를 화장하고 산을 걸어오던 날이었어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한 말은 이랬습니다.
참 잘 끝났다.
어쩐지 셋이 같이 있다 혼다만 살아남은 나를 비난하는 말처럼 들려 들고 있던 막대기로 나 자신을 푹 찌르고 싶어지더군요.
그 말이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어린아이를 묻고 나서 외치곤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시간이 지난 후였지요.
화자 이이송씨는 술에 의지하고 살았어요. 텀블러에 맥주를 담아 와서는 직장에서 근무 중에서도 홀짝이곤 했어요. 하지만 이송씨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운다거나 눈물을 보이는 행동은 하지 않았어요. 일단 술을 마시면 한 잔에서 끝내기는 어려웠지만요.
그녀는 별다른 술주정이 없었기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나 역시도 이송씨가 괜찮은 줄 알았어요. 어쩐지 말투가 조금 어눌하고 낮술 한 사람처럼 몽롱한 인상을 풍기기는 했지만, 어쩐지 주눅 들어 사는 듯한 모습이 의아하긴 했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서른이든 마흔이든 삶이란 팍팍하고 어떤 이는 다른 이보다 더 많이 아파하고 외로울 수도 있으니까요.
이송씨가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것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한참 후에 알았어요.
나는 보통사람으로서 그런 그녀가 무척 가엽다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그저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웅크리고 있는 그녀를 내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건데 이제는 내 속에 옴팍한 구멍을 만들어 그녀가 들어오게 했어요. 나는 이송씨가 눈치 보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싶었지요.
술을 마시고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울어도 되는 곳이길, 아니 술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랐어요.
이송씨 만큼이나 속말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또 있어요.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지요.
아버지도 술을 좋아해요. 역시나 마셨다하면 한 잔에서 끝내기 어렸지요.
삶이란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사람을 가만 두지 않잖아요.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끼고 지하철역에서 쓰러지셨던 아버지는 그 원인이 한쪽 귓속에 들어있는 작은 돌 부스러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까짓 돌 조각 때문에’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이럴 때 보면 ‘작은’ 의 기준은 참 애매한 것 같아요.
등 어딘가에 붙어있는 돌 부스러기는 먼지처럼 가볍지만 귓속에 든 돌 부스러기는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마음속에 들어앉은 돌 부스러기는 소화도 되지 않고 되려 커지기도 하잖아요.
분분히 휘날리던 흰 벚꽃 이파리들이 콧등과 이마로 떨어졌어요. 나는 그것을 손으로 떼어내며 슬쩍 아버지를 돌아봤어요.
검버섯 핀 얼굴에 맥주병모양의 안경을 쓴 채 태연히 눈을 굴리고 있는 사람. 시금치가 명아주과라는 풀을 아는 사람입니다.
뽑아서 던져 놓으면 마디에서부터 뿌리를 내려 자라기 시작하는 풀.
나는 시금치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뒤따라가요.
요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울고 싶을 만큼 마음 아플 일이 없었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그건 일종의 죄책감과 비슷해요.
세상에 존재하는 슬픔의 양은 항상 일정량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내가 슬프지 않았다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더 슬퍼하고 울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 글은 나를 위로하며 쓰는 거예요.
나보다 먼저 쓰러진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일어설 거라고,
그들의 삶에 다시 꽃이 필거라고 나를 위해 중얼거리는 거지요.
그래도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우물쭈물하며 뒤따라가요.
첫댓글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어떤 여자 작가가 자신의 알콜중독에 관해 쓴 책인데.
거식증에 대해서도 썼고. 아~~ 생각이 안나네ㅜ.ㅜ
재미있게 읽었는데 ㅋ
글 잘읽었어 피쉬야 ~~
나도 너를 '마루'야 하고 불러야 하는 거니? ㅎㅎㅎ 나는 빅씨이고 너는 별씨 ㅎㅎ
알콜중독하니까.. 갑자기 영화 '브리짓존스 다이어리'가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