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 전혁림 미술관을 가다.
통영대교를 건너자마자 첫번째 삼거리 운좋게 앞줄에 신호대기를 한다면 전혁림작가의 타일작품을 만날수 있습니다.
얼핏보면 채색한듯 하지만 엄지손톱만한 타일을 붙여 약간의 볼륨감을 주면서 작업한것입니다. 좌측하단 작가 사인 ㅋ
여기서 꼭 좌회전 하셔야함,,저는 우회전해서 다시 유턴해 왔다는..헤헤
작가의 겔러리는 저같이 길눈 어두운 사람에게는 찿기 힘듭니다. 한적한 주택가에 들어가있기때문에...ㅡㅡ
위의 신호대기에서 좌회전한후 직진하여(5분정도?) 용화사 입구라는 이정표를 보시고 조금만 들어가시면 됩니다.
평일(금욜)오전 이라 그런지 동네는 인기척 하나 없고 흔한 강아지 짓는 소리도 안들립니다. 오직 새들 지저귐만 가득.
건물곳곳을 자체 제작한 타일로 예쁘게 꾸며놓았습니다.
건물은 총 3채로 좌측 건물은 사무실겸, 샵으로사용중이고 우측 건물은 작가의 작업실과 생활공간 입니다.
좌측(중앙건물)이 전시장입니다.
전시는 1, 2, 3층 전층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입구 입니다.
가운데 건물은 왠지 오래된 일제 후기의 건축양식이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외벽은 깔끔, 모던, 장식적입니다.
전혁림(1916~)
사람이 태어나 무병하게 장수를 누린다는것은 본인 뿐만 아니라 그 가정의 복입니다.
그사람이 화가로서 그 지역 문화에 공헌을 하고 있다면 물론 그 지방의 커다란 복일것입니다.
전혁림 성생이 바로 그런 분이신데요. 연륜에서 볼수있듯 선생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와 다양한
문화변동을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 겪어낸 몇안되는 성공한 원로중의 원로 입니다.
지방색 특유의 보수적 성향이 아닌 실험적이면서도 세련된 그의 조형방법은 지금도 통영지방을 넘어서
경남지역의 작가들에게 정신적 기둥역할을 하고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하루 5시간 작업
약속을 스스로 지키는 선생에게 작가로서의 성실함에 존경을 표하고 건강을 기원합니다.
전시장 1층의 작업장. 소품작업은 우측 건물에서 하지만 대작은 이곳에서 작업을 합니다.
자기 그림을 옆에 전시해놓고 거기서 감상자가 있는데서 작업하는 작가의 기분. 자랑스럽지만 긴장되겠죠.
선생의 열린 감각을 볼수 있었습니다. 물감 범벅인 작가의 소박한 의자가 선생의 작업량을 웅변 해주는듯 합니다.
처음 전시실에 들어왔을때 맡을수 있는 테렌핀 냄새,,,페트롤유 냄새도 약간 나는듯...
학생때 몇년간 공기보다 더 많이 맡았던 냄새..중독성도 있어서 지금도 테레핀유 냄새를 맡으면
나는 20대 학생으로 돌아 갑니다.ㅋㅋ,,물감은 르프랑을 쓰시는듯,,목탄도 보이고,,두루마리 휴지 4개나,,^^
1층에서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비교적 오래된 소품들이 빼곡히 걸려있습니다.
천천히 감상하며 올라가시길,,
새 만다라(New Mandala) 2007 목함지에 유채
만다라-우주의 상징..원래 만다라는 원의형태로 많이 표현되지만 선생은 사각의 종이틀에
입체적으로 표현 하였습니다
1979
아쉽게 작품명찰을 촬영하지 못했네여,,죄송 ^^::::
나무 액자에 직접 페인팅한 작품으로 예전 작품입니다. 선생의 최근작은 밝고 원색적 분위기 이지만
이전 작품들을 보면 중간색을 원숙하게 잘 사용하며 화풍은 표현주의적 개념이 강합니다.
또한 선생은 소재에 크게 제한을 받지않고 다양한 작품을 하는것으로도 유명 합니다(목재, 도자기, 가구등등)
선생은 '계간미술'에서의 과소평가 받는 작가로 소개되면서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하였고
1980년 대에 도약기를 맞이합니다. 그이전에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러했듯, 특히 지방작가인 경우 더욱
기회가 없었지만,,상당히 어려운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기둥과 목어 2000년
마치 마티스의 그림을 보는듯한 이그림은 나름대로 한국적 정감과 이야기를 끌어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자꾸 마티스와 야수파가 생각나는건 막질못하겠네요,,(내머리속의 지우개가 필요해,,ㅎㅎ)
선생은 비록 지방성이란 특징이 있다하더라도 창작의 보고(寶庫) 노릇을 했습니다.
고향을 지키며 싱그러운 물빛을 안고 살아가는 지역작가로서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예술세계의 토대로 삼으며 꾸준한 제작생활을 한것은 선생의 큰 공로라 할수있을 겁니다.
누드 2006년
이것도 역시 위의 그림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하지만 거친 터치와
마티에르는 또다른 맛이 있습니다.
선생은 해방 후 감격과 좌절을 겪고 통영문화협회 창립 동인(1948)에 참여했습니다.
6.25 이후 부산에서의 유랑 생활을 거쳐 국전에 입선했고. 피난지 부산의 화단은 전혁림 화가의 토대를 굳혀주었습니다.
꿈꾸는 돌(도자기에 채색)
어문사각접시 2003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작품 입니다, 소장하기엔 주머니 사정이,,ㅎㅎ
석판화 작품입니다.
좌측의 86/99라는 숫자가 보이시죠? 우측에 작가 싸인,
이것을 에디션 넘버(edition number)라고 합니다..물론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총 99장을 완성하였는데 86번째 장이라는 거죠..
판화는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동일한 퀄리티를 유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몇번째 장이냐는 것은 작품가격이나 가치에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작가보관용 작품에는 AP(영, 미), EA(프랑스)등을 표기 합니다.
이것도 판매용 작품과 가격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판화는 보통 100장을 작가가 작업하려하면
작업중 실패를 감안하여 150-200장정도의 작업을 넣습니다.
판화는 프린팅 작업의 경우 본인이 직접하는경우 보다 판화 전문 공방에서
프린팅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프린팅 해주는 일종의 인쇄소죠..ㅎ
(석판화의 경우 공방의뢰가 많구요,,장비가 고가 & 대형이라,,동판, 목판작업인 경우 작가가 대부분 직접 찍습니다)
공방의 장인의 숙련도와 기술에 따라 로스(실패작)가 줄어 듭니다.작업중엔 작가가 꼭와서
칼라확인 작업을 하여야 합니다,그리고 에디션 넘버를 적은후,,원판을 회수하여 대부분 폐기 합니다.
후에 작품가치 형성을 위해서,,엔드 위작을 방지하기위해,,
좌측 shop건물의 내부 입니다,.
전체 인테리어가 정갈하고 깔끔한 여성적 분위기입니다.
위의 테라스창을 외부에서 찍은 겁니다. 이쁘죠?
미술관 주변 화단에 심어 놓은 꽃들,,꽃이름은 ,,,제가 꽃에 좀 약해서요,,아시는분들 이름 알려주세요,ㅋ
이렇게 전혁림 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댓글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