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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서단산(西團山) 석관묘 유적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린시(吉林市) 서남쪽 2.5km처의 시투안산에 위치하고 있다. 서단산문화의 상징적인 유적으로, 서단산문화 관련유적중 가장 오래동안 그리고 가장 많이 조사된 유적이다. 즉, 1930년대에는 삼상차남(三上次男)과 등전량책(藤田亮策) 등이, 1948~1949년에는 양꽁지(楊公驥:東北大學)가, 1950년에는 동북고고조사발굴대가, 1953년에는 길림성박물관이, 1956년에는 길림대학교 역사학계가 이십여년에 걸쳐 도합 36기의 돌널무덤과 수기의 집자리를 조사한 바 있다.
유적의 입지는 송화강 서안 충적대지상에 솟아있는 지표고 40m의 시투안산 서남 완사면이다. 유적이 위치하고 있는 시투안산은 규모가 남북길이 300여 미터, 동서너비 400여 미터인데, 남면과 서면을 제외한 나머지 면은 다소 경사가 급한 편이다. 송화강을 사이로 동북쪽 근거리에 똥투안산(東團山) 유적이, 남쪽에 샤오투안산(小團山)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돌널무덤은 판석조(板石造)와 괴석조(塊石造), 유부관식(有副棺式)과 무부관식(無副棺式)의 것이 모두 확인되는데, 시투안산의 어깨부(지표고 30m)로부터 자락(지표고 15m)에 이르기까지 2~3m 간격으로 횡열 배치되어 있다. 대개 장축방향이 산 정상부를 향하고(북향) 있고, 아동무덤으로 여겨지는 2, 3호 무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대체로 돌널 안측의 길이가 1.3~2m, 너비가 0.3~0.6m, 깊이가 0.3~0.6m 가량이다. 출토유물로는 서단산형호(西團山型壺), 바루, 돌도끼, 돌화살촉, 석도, 가락바퀴, 돌대롱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부관이 달려 있는 경우, 부관내에 서단산형호를 중심으로 한 토기 셋트를, 돌널 안에 토기 외에 공구류와 장신구류를 부장하여 놓았다.
집자리는 1956년 길림대학 역사학계가 시굴 조사한 3기가 있는데, 무덤구역 서쪽 동일 등고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된 3기 모두 반지하식이고, 집자리 간 간격은 4.8m이다. 움 깊이가 0.43m, 너비가 5m 가량이다. 출토유물로는 돌창, 석도, 토기편 등이 있다.
시투안산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기원전 9~8세기, 기원전 8세기, 기원전 8~7세기, 기원전 7~6세기 등 여러 편년안이 제시된 바 있는데, 일반적으로 서단산문화 관련 유적중 전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시투안산 유적의 전기성은 청동기가 전무하다는 점, 토기와 석기의 형식 및 조합이 전기성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에서 잘 나타난다. 최근에는 동유적의 유물조합이 싱싱샤오(星星哨)보다는 늦으면서 사오따꼬우(騷達溝)나 샤오시산(小西山)보다는 이르다는 점을 근거로, 두 부류 유적의 중간 시기, 즉 기원전 8세기대로 보는 것이 지지를 얻고 있다. <吳江原>
참고문헌
滿洲國吉林團山子の遺迹(三上次男, 人類學雜志 54-6, 1937), 西團山史前文化遺址初步發掘報告(楊公驥, 東北日報 1949. 2. 11), 吉林西團山石棺墓發掘報告(東北考古發掘團, 考古學報 1期, 1964), 吉林西團山子石棺墓發掘記(吉林大學歷史系文物陳列室, 考古 4期, 1960), 서단산문화 석관묘유적의 연대편년(吳江原, 先史와 古代 13, 韓國古代學會, 1999)
[펌]☞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boardid=KL&qid=2gzqF&q=%BC%AD%B4%DC%BB%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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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린(吉林)서 피라미드형 고분군 발견
2006년 6월 21일 (수) 18:19 (베이징=연합뉴스) 박기성 특파원
중국 지린(吉林)성 자오허(蛟河)시에서 약 3천년 전 청동기시대 것으로 보이는 피라미드형 고분군이 최근 중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현지 언론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이 무덤들은 쑤얼하(蘇爾哈)양어장 동쪽 산비탈을 따라 50만㎡(길이 1천m, 너비 500m)에 걸쳐 분포돼 있다.
고분군을 발굴을 주도한 자오허시 문물관리소측은 이 유적이 지린시 일대에 분포한 청동기 유적지인 시퇀산(西團山)문화 유적의 일부로 추정했다. 발굴팀은 그러나 이런 피라미드 형태의 고분이 과거에도 발견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고대 장례문화와 무덤구조 연구에 귀중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만 밝혔다.
처음 발견된 것은 6개의 계단형으로 이뤄진 주거유적이며, 피라미드 형상을 한 대형 석관고분은 부근 능선에서 발견됐다.
이 고분은 각 층의 높이가 3m인 3개의 층으로 이뤄졌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탑 모양을 하고 있다. 바닥층과 중간층에는 각각 3m의 대(臺)가 만들어져 있고 맨 위층은 지름이 남북 15m, 동서 10m의 타원형 형태로 이뤄져 있으며, 고분의 바닥은 흙과 자갈로 조성됐다.
맨 위층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묘실의 크기는 길이 2m, 폭 1.5m, 높이 1m이며 주위에 자갈을 쌓아 놓았다. 또 묘실 위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 2.3m, 폭 2m, 두께 0.4m에 3t 무게의 장방형 화강석이 덮여 있었다. 이 고분에서 서쪽으로 약 20m 떨어진 곳에서 똑같은 형태의 고분 하나가 더 발견됐다.
자오허시 문물관리소 왕중천(王忠琛) 주임은 이 고분 유적의 부근에서도 땅밖으로 드러난 길이 2m, 폭.높이 각 0.5m의 석관 6기가 발견됐으나 이미 도굴된 뒤였다고 말했다.
발굴팀은 고분군에서 발견된 석관과 돌칼, 돌도끼, 청동기, 토기 등을 감정한 결과 2천500∼3000년 전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시퇀산문화 유적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유적지는 지린시 시퇀산문화 유적지에서 100여㎞ 떨어져 있다.
[펌]☞http://news.media.daum.net/culture/art/200606/21/yonhap/v13118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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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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