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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 9주차(숫돌고개→현달산→고봉산→중산고개→탄현고개)
2010년 9월 24일(금요일) 맑음
▶ 개요
-. 01:00 울산 시외버스 터미널 출발
-. 05:27 동서울터미널 도착
-. 05:50 지하철 강변역 출발
-. 07:25 삼송역 도착
-. 07:35 숫돌고개 도착
-. 07:51 숫돌고개 출발
-. 08:42 농협대 정문
-. 09:19 39번 국도
-. 11:27 현달산
-. 11:38 문봉동재
-. 12:31 성동재(중식: 12:31 ~ 13:21)
-. 13:38 고봉산 갈림길
-. 14:15 중산고개
-. 15:20 탄현고개 (금일 한북정맥 종주 도상거리 : 18.6km /누계거리 : 143.7km )
-. 15:25 탄현고개 출발
-. 16:20 고양시 탄현동 석식(땅끝마을 통김치찌게)
-. 19:15 탄현 주민 센터 옆 찜질방
▶산행기
-. 01:00 울산 시외버스 터미널 출발
-. 05:27 동서울터미널 도착
-. 05:50 지하철 강변역 출발
-. 07:25 삼송역 도착
-. 07:35 숫돌고개 도착
추석 연휴의 끝자락을 이용하여 한북정맥을 마무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연휴 기간인 관계로 서울행 시외버스 편이 문제일것 같아 미리 버스표를 예매해두었었다.
추석 성묘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서 버스도 만원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시간대가 임시 편성된 시간이란다. 오늘 졸업식이지만 삼래가 추석명절이라 대가족들의 모임이 있는 관계로 부득불 빠지게 되었다. 지난겨울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 13시간 동안의 강행군이라는 어려움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마무리를 같이 못하게 되어서 많이 섭섭하다.
명절의 기간이라 새벽이지만 동서울터미널 주변이 복잡하다. 하지만 역시 영업을 하는 식당이 없다. 아침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일단 전철을 타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강벽 역을 출발한다(05:50).
을지로 3가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하고 가다 연신내역에서 하차를 한다.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큰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 주변을 살피다 연서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조그마한 국밥집에 전등불이 밝혀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께서 영업 준비를 하고 계신다.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서울 장수 막걸리로 해장을 곁들여 깔끔하게 해결한다. 역시 시장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다시 연신내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여 삼송역에 내렸다. 시장 통 골목을 역류하여 숫돌고개로 향하다 고개 못미처에서 장비를 꾸린다. 고갯마루의 들머리는 군부대가 점령 하고 있어 우회를 하여야 하는 구간이다.
-. 07:51 숫돌고개 출발
(숫돌고개 아래 마을 들머리에서 출발을 하며)
범이 형은 지난 차주에 여기를 통과하였지만 오늘은 같이 출발하기로 하였다. 마을 골목길을 통해서 군부대 철조망 우회구간을 눈대중으로 찾아 들고 채마밭 옆을 지나 야산 허리를 돌아서 마루금을 회복한다.
-. 08:42 농협대 정문
(고양 누리길 현수막)
(도로공사 현장)
(천일 약수터)
(농협대학 철조망 아래 천일 가든)
(천일 가든 입구)
(농협대학 정문)
오른쪽에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잠시 같이 하다 야산 산책길이 함께한다. ‘고양 누리길’이라며 현수막이 걸려있다. 산책로를 따라 작은 봉우리 하나 넘고 살짝 내려서려는데 앞이 환하게 열리며 안부가 펼쳐지는데 도로 공사구간이다(08:19). 양쪽으로 연결될 도로도 보이지 않는데 절개지를 크게 자르고 땅을 깊이 파고 있다.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올라서 야산 등성이를 따라 마루금을 연결한다.
잠시 만에 내려서니 약수터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있다. 물맛을 보니 별로다. 직진으로 등로를 따라 간다. 잠시 만에 왼쪽이 가든의 뒤뜰이다. 마루금은 직진으로 산으로 올라 농협 대학교 교정을 통과하여야하는데 학교 측에서 철조망으로 등로를 막았단다. 그래서 왼쪽으로 ‘천일가든’의 뜰로 내려서 마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가든 진입로를 따라 간다. 조용한 별장 같은 가든 촌이다. 정원 같은 길을 빠져 나와 정문을 통과하자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이고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니 농협대학 정문이다(08:42).
고교시절에 우리 같은 시골의 가난한 고교생에게는 우등생권의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는 선망의 대학 이였는데...
-. 09:19 39번국도
(서삼릉 입구 한옥 공사 현장)
(오른쪽이 서삼릉 입구)
(허브랜드)
(낚시터)
(오른쪽이 한국스카우트연맹)
(39번 국도 왼쪽 방면)
여기서부터 도로가 마루금이다. 농협대학이 차지한 야산과 그 오른쪽으로 펼쳐진 얕은 산등성이가 마루금일 것 같은데 개인 사유지로 묶였는지 선답자들 모두 이 도로를 따라 갔다. 아주 오래된 신작로 길이다.
서삼릉 입구를 지난다.
* 서삼릉
사적 제200호. 한때 이곳에 있었던 중종(中宗)의 정릉(靖陵)을 중심으로 희릉(禧陵)·효릉(孝陵)이 있는데, 그 근처에 왕실 묘지가 이루어져 명종(明宗)·숙종(肅宗) 이후 한말까지 역대의 후궁·대군·군·공주·옹주의 묘가 만들어졌고, 고종(高宗) 원년에 예릉(睿陵)이 들어서면서, 효릉·희릉·예릉의 3능을 일컬어서 서삼릉이라 하였다.
⑴ 효릉: 중종의 아들 인종(仁宗)과 그 비(妃)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朴氏)의 능이다. 효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난간(欄干)으로 연결한 쌍릉(雙陵)의 제도로 썼으며, 왕릉에는 양우석(兩隅石)에 운채(雲彩)와 면석(面石)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새겨진 병석(屛石)을 돌리었다. 당초 시대적인 상황으로 상례절차를 감쇄(減殺)하여 산릉(山陵)공사에 소홀한 점이 많았던 모양으로 선조(宣祖) 10년에 효릉의 개수를 명하여 병석 등 석물(石物)을 다시 고쳐 넣었다.
⑵ 희릉: 중종의 계비(繼妃) 장경왕후(章敬王后)의 능이다. 왕후가 승하하자 처음에는 능 터를 광주(廣州) 헌릉(獻陵) 구역 내에 택정하였으나, 이를 둘러싼 권력다툼의 결과로서 새로이 길지(吉地)를 찾아 현재의 위치에 모시게 하였다. 그 후 중종의 정릉이 희릉 곁에 정해지면서 정자각(丁字閣)을 양릉 사이에 옮겨 세우고 동원이강형식(同原異岡形式)을 취하게 되었다. 능 제도는 병석 없이 난간만 두른 단릉(單陵)으로 석물의 배치며 장명등(長明燈)·석망주(石望柱) 등의 수법이 전기 능석물(前期陵石物) 양식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⑶ 예릉: 국말(國末)의 철종(哲宗)과 철인왕후 안동김씨(哲仁王后安東金氏)의 능이다. 능 제도는 양릉을 나란히 놓아 난간으로 연결된 쌍릉 제도를 취하고 있으며 능 석물 양식상 융건릉(隆健陵)의 영향이 보인다. 즉, 융릉(隆陵)에서 8각 장명등과 4각 장명등의 운족양식(雲足樣式)을 합하여 새로운 양식을 이루고 있다. 능전 3계(陵前三階)는 이미 2계로 줄어들었고 장명등이 전방으로 나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릉 입구 진입로 오른쪽에 거대한 한옥을 짓고 있다. 아마 여기도 가든으로?
허브랜드를 지나 낚시터를 지난다. 벌써 많은 강태공들이 모여 있다. 이른 곳에서 낚시를 해도 재미있을랑가?
왼쪽으로는 서울 한양 골프장이다. 토요일 오전 한가한 시간이라 골프들이 많이 보이지 않고 여성분들이 약간 보인다.
보리밥집도 지나고 조용한 시골길 드라이브 길로 좋을 것 같은, 가을 맛이 물씬 나는 들길이다.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훈련원을 지나고 한참을 가자 작은 마을 입구이다. 공장 건물들도 보이고. 굴다리 밑을 지난다. 굴다리위의 도로는 서울외곽 순환고속도로이다. 굴다리를 지나면 4차선 도로와 만난다. 39번 국도이다(09:19). 왼쪽이면 고양 방면 오른쪽이면 벽제 방면이다.
범이 형은 지난차주에 여기까지 진행을 했었단다.
-. 11:38 문봉동재
(옛날 서울교외선 철도)
(구 39번 도로 오른쪽 방면)
(구 39번 도로 왼쪽 방면으로 512 탄약중대 입구 )
(왕릉 같은 고 무덤)
(군 부대 후문을 뒤로하고 벌통을 만나서)
(식사동 2차선 지방도로)
(광목장 입구)
(현달산 입구 사격장 출입금지 표시목)
(현달산)
(문봉동재 삼거리)
32번 도로를 직진으로 횡단을 하여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채마밭 수래 길이다. 들길을 조금 들어가면 원두막처럼 가건물이 있고 잡초 덤불 울타리를 내려서면 철길이다. 왼쪽이면 원릉역이고 오른쪽이면 삼릉역이다. 철길은 녹이 심하게 쓸어있다. 서울교외선인데 지금은 전철이 많이 연결 되어 폐선이 되고 간혹 화물열차만 지나다닌 단다.
철길을 가로질러 올라서면 2차선 도로이다. 구 32번 도로이다. 왼쪽으로 조금가다 오른쪽으로 제512탄악중대 입구 간판을 만나 군부대 진입도로를 따라간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이다. 주변에 산책로가 있는지 중간 중간에 이정표가 서있다. 한참을 들어가 부대정문 조금 못 미쳐서 오른쪽 숲으로 드는 곳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인다. 희미한 등로가 잠시 이더니 임도가나타나고 큰 무덤 주변이고 구릉으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마루금을 놓쳤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정문 앞 위병 초소 앞에서 우측으로 꺾인다고 했는데? 왼쪽 구릉을 치고 오르기로 한다. 오래된 무덤 옆에는 무슨 박물관에 있는 것처럼 하얀 큰 비석을 보호하는 투명유리를 둘러놓았다. 아마 나라님이 하사 하신 것인가 보다. 무덤 앞 선비석 하며 고풍스럽고 왕릉처럼 웅장하다. 구릉에 떨어졌다가 무작정 눈대중으로 치고 올라가니 군부대 울타리 옆으로 지나가는 마루금을 발견한다. 오른쪽으로 철조망 따라 한참을 간다. 구릉을 지나 철조망을 따르다 다시 잘 다듬어진 무덤 군을 만난다. ‘전주이씨’가족묘지다. 사각형 대리석 비석이 요란 서럽다. 잠시 땀을 식히며 쉬다간다.
여기 어디쯤에 고려 공양 왕릉이 있다고 했는데...
계속 왼쪽에 있는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간다. 울타리 오른쪽으로 또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무심코 좋은 길이라고 왼쪽으로 철조망을 보내고 따라가지만 한참을 가도 등로는 또렷한데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없다. 조금 전 무덤으로 다니는 길 인갑다. 다시 철조망으로 빽...
군부대 울타리서 다른 흔적을 찾지 못하겠고 조금 떨어진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에게 물어도 모르겠단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군부대 후문까지 계속 울타리를 따른다고 했다. 울타리를 표식으로 삼고 무조건 따라 간다. 희미하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인다.
다시 왼쪽의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한참을 가자 오래된 철망 문이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오래된 도로 흔적이 남아 있다. 오른쪽으로 도로 흔적을 따라 철조망과는 이별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전진을 막는 방해꾼이 나타난다. 벌통이 도로를 양가로 놓여있다. 왼쪽 풀숲으로 내려 가 피해서 통과하여 내려서니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간다(11:07). 왼쪽이면 식사동이고 오른쪽이면 사리현동이다.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타난다. 광목장 가는 도로이다. 광목장 입구에서 왼쪽으로 울타리를 통과하여야 하는데 사격 시 입산 금지라며 푯말을 세워 놓았다. 아니다 다를까 멀리서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연신 덜려온다. 부근에 군부대 사격장이 있나? 정말 가면 안 되나? 오른쪽 밭에는 많은 분들이 들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경고를 무시하고 용감하게(?) 통과....임도 같은 수래 길을 널널하게 잠시 따라가다 수래 길은 오른쪽으로 보내고 왼쪽으로 등성이 등로를 따라 올라간다.
오늘 처음으로 산을 타는 기분이다. 큰 어려움 없이 천처히 고도를 올려가자 무인 감시 카메라와 운동시설이 나타나고 마저 올라서니 현달산이다(11:27 139m). 정상 아래가 벙커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 군 요새인지 삼각점이 3개나 있다. 주변의 조망이나 특징은 없다. 그대로 직진하여 내려서려니 총소리가 더 크게 덜려온다. 이러다 혹 유탄에 맞는 거 아녀? 용감하게 앞장서서 가파르게 내려가지만 등로는 사라지고 없다. 다시 정상으로 뒤돌아서 올라서 주변을 살피니 왼쪽으로 꺾이어 내려가는 희미한 등로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보인다. 가파르게 잠시 내려서니 컨테이너 가건물이 있는 창고 같은 집의 마당이고 벗어나 골목을 내려서니 2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삼거리 문봉동재이다. 왼쪽이면 식사 삼거리이고 오른쪽이면 문봉 사거리이다. 마루금은 도로 건너 편 직진으로 동국대 병원 방면 2차선 도로인 동국로 이다.
-. 12:31 성동재(중식: 12:31 ~ 13:21)
(문봉동재의 동국로 입구)
(예빛교회를 지나 오른쪽으로 턴)
(도로가 끝이나면 마을과 연결되고)
(고봉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 통신탑)
(마루금이 공장 마당을 지나고)
(군부대 위병소 초소에서 오른쪽으로)
(마을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성동재 오른쪽방면)
(성동재 왼쪽방면)
(고봉산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열무국수와 장수 막걸리 그리고 부추두부)
문봉재 삼거리에서 동국로 도로를 따라 간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이 타워골프 연습장이다. 태풍에 철 구조물 타워가 넘어져 있지만 연습을 하고 있는 골프들은 많다.
인선이엔티라는 재활용처리 회사도 지나고 계속 도로를 따라 간다. 역시 도로를 걷는 것은 지루하고 힘이 많이 든다. 지루하게 한참을 걸어서 가면 왼쪽에 크다란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와 예빛교회가 나타나고 지나자마자 오른쪽 숲속 오솔길로 들어간다(11:58). 지루하다 보니 배도 쉬 고파오고 더 피곤한 것 같다. 오늘 점심은 성동재 주변의 식당에서 사서 먹기로 했는데 조금 더 진행을 해야 목표 지점이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도로가 끝이 나는 지점이 ‘(주)마루아이앤디’라는 공장 건물의 마당이 된다. 마당을 나와 마을 골목길을 따르다 골목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군부대 위병소이다. 위병소를 지나 마을 골목길이 계속된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한탄강 민물 매운탕’ 정면이고 2차선 도로 위다. 성동재 인 고갯마루는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야 한다.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통해서 알아 놓았던 ‘고봉산 국수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12:31). 마침 점심시간이라 야외 식탁도 만원이다. 안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신발 끈도 풀어제끼고 편안한 자세로 막걸리와 두부 안주를 시켜서 갈증부터 푼다.
꼭 외지 여행을 온 기분이다. 사실 요즘은 산타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동진이가 불만 인갑다. 국수를 좋아하지 않나보다. 그러나 대세를 따라 준다. 열무김치국수를 주문하였는데 맛은 별로지만 시원한 게 속은 후련하다.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막걸리도 먹고 얼얼한 국수도 먹고 배도 불러오니 졸립다. 한참을 쉬다 오후 여정을 시작한다(13:21).
-. 14:15 중산고개
(고봉산을 향하여)
(만경사)
(만경사 앞 느티나무)
(영천사 경내)
(고봉산을 내려오는 길)
(중산고개 오른쪽 방면 : 고봉산 삼거리)
(중산고개 고양 방면)
고갯마루에서 오른쪽으로 만경사 입구가 마루금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면 울타리도 없는 사찰이 만경사이고 불사가 진행 중인지 어수선하다. 앞쪽에 자라는 큰 느티나무가 더 보기 좋다. 도로를 따라 마저 조금 더 올라서면 오른쪽으로는 고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지만 군부대가 차지하고 출입을 통제한다.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우회하여 내려서 잠시 후면 또 영천사가 나타난다. 조그마한 암자 같은 절이다. 등로가 산책로로 변하며 오고가는 산님들도 많아진다. 여러 갈래 갈래길이 나타나지만 큰 길만을 따라 내려서니 큰 아파트 단지이다. 아니? 고봉정이 나타나야 되는데?
영천사를 지나서부터 어디선가 잘 못 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중산고개를 찾아간다. 다행히 잠시 만에 큰 삼거리에 서니 8차선 98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중산고개이다(14:15). 도로 이정표에는 고봉산 삼거리라고 표기되어있다. 오른쪽에는 SK주유소가 있다.
-. 15:20 탄현고개 (금일 한북정맥 종주 도상거리 : 18.6km /누계거리 : 143.7km )
(금강굴 입구)
(금강굴 유족회 사무실)
(공동묘지)
(항공대학 견습용 비행기)
(탄현마을 입구)
(탄현마을 입구 왼쪽방면)
(탄현마을 입구 왼쪽방면)
(탄현마을 대림아파트)
(탄현육교 아래 경의선)
(오늘의 종점 탄현고개 삼거리)
8차선 도로를 횡단보도로 건너서 왼쪽으로 조금가면 오른쪽으로 금정굴 입구가 마루금이다. 나무 장승들이 풀숲에 서 있고 “통한의 금정굴을 평화의 공원으로‘라고 세긴 키 큰 통나무 비석도 있다. 민족의 슬픔을 대변하는 곳이다. 6.25 사변 중에 경찰의 학살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곳이란다. 1994년도에 추진위가 결성이 되어 오늘까지도 이런 모습인 것을 보면 아직도 해결이 요원하나 보다. 고향 거창사건도 많은 세월이 흘러 그것도 겨우 조금 해결이 된 것 같은데 모든 것이 우리민족의 시대적 아픔인 것 같다.
아픔을 뒤로하고 산책길을 따라 숲길을 잠시 걷고 나니 공동묘지이다. 묘지들이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있는 것 보아하니 아주 옛날부터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었나보다. 분묘들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고 마구잡이로 들어서다 보니 길도 따로 없다. 대충 짐작으로 마을을 바라보고 내려간다. 묘지 입구 진입도로를 벋어나자 학교 뒤 담장이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큰 도로 건너가 슈퍼마켓이고 오른쪽에 예담교회이다. 도로를 건너 교회 앞 도로 안으로 들어가면 탄현동 성당이다. 성당 골목을 지나면 아파트 단지 복판이고 왼쪽으로 정문을 빠져나오니 ‘대림 큰마을 아파트’ 정문이다. 정문에서 4차선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나아가면 경의선 철로가 지나가는 육교이다. 탄현마을교 육교도로 건너면 4차선 도로와 만나니 359번 지방도로 이고 도로 건너는 일산 가구단지이다. 왼쪽이면 일산이고 오른쪽이면 파주 방면이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기로 한다. 여기서부터 일산 신도시 구역 개발공사로 인해서 또렷한 등로도 없다. 그래서 도로를 따라 연결해야하는데 더 이상 걷기는 무리인 것 같아 나머지 구간을 내일하기로 하고 숙소를 마련하기위해 시내 쪽으로 이동한다(15:20).
-. 15:25 탄현고개 출발
-. 16:20 고양시 탄현동 석식(땅끝마을 통김치찌게)
-. 17:15 탄현주민센터 옆 찜질방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한참을 걷다 탄현역을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기준 잡아 굴다리를 통해서 다가간다. 상가 주변에서 택시 기사 분에게 찜질방을 여쭈어 방향을 잡고 걸어서 한참 만에 찾았지만 생각보다 주변 분위가 식당도 없고 허전하다. 하여 미리 인터넷으로 정보를 챙겨놓았던 탄현주민센터를 찾아가기로 하고 택시로 이동한다.
찜질방을 찜해두고 식당을 찾아 나서니 ‘땅끝마을 통김치찌게’라는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자리를 잡고 한북정맥의 졸업식 전야제를 아주 간략하게 소맥 건배 한 잔으로 감회에 젖어 보고는 한북정맥 원정의 마지막 밤을 위해 숙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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