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
-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ㅅ걸 슲은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은 이 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934>, (춘추 32호, 1943.10)
* 파촉 : ①죽음의 세계 ②옛 중국 촉나라 땅
* 메투리 : 미투리. 삼이나 노 따위로 삼은 신. 망혜(芒鞋)
* 은장도 : 노리개로 차던, 은으로 장식한 작은 칼.
* 이냥 : 이 모양대로, 이대로 내처.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사별한 임을 향한 정한과 슬픔을 처절하게 노래한 시이다. 애절한 한의 객관적 상관물로 ‘귀촉도’가 나오고, 그와 걸맞게 계절감을 나타내 주는 ‘진달래’가 나온다. ‘서역’이나 ‘파촉’은 서정주의 불교적 상상력과 결부된 죽음의 세계를 나타낸다. ‘은장도’는 이 시의 화자가 여자임을 알게 해 준다. 다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자.
▶ 성격 : 전통적, 동양적, 상징적
▶ 운율 : 3음보 율격
▶ 표현 : 설화를 현실에 접목시켜 한(恨)을 노래함.
▶ 구성 : ① 임과의 별리(제1연)
② 회한의 정과 탄식(제2연)
③ 임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제3연)
▶ 제재 : 귀촉도
▶ 주제 : 여읜 임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이별의 한과 사랑의 영원함.)
<연구 문제>
1. ㉠은 이 시에서 무엇을 암시하며, 어떤 상징 의미로 쓰였는지 설명해 보라.
<모범답> 화자가 여성임을 암시하며, 여성의 정절을 상징한다.
2. ㉡이라고 한 까닭을 40자 내외로 설명해 보라.
<모범답> 임이 죽은 지금 누구에게도 더 이상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3. 이 시의 귀촉도가 지니는 의미를 100자 정도로 쓰라.
<모범답> 촉나라 망제 혼의 화신이라는 귀촉도의 울음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로서, 저승을 떠나간 임을 표상하는 동시에 임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사랑의 매개체 구실을 한다. 전통적으로 애절한 정한을 표상하는 새이다.
4. 이 시와 제망매가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의 차이점을 100자 정도로 쓰라.
<모범답> 귀촉도는 임을 여읜 한과 슬픔을 처절히 노출시킴으로써 죽음을 비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나, 제망매가는 죽음이라는 삶의 유한성과 무상감을 두터운 신앙심과 숭고한 종교 의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감상의 길잡이>(1)
이 시는 세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연에서는 임의 떠남, 제2연에서는 못다한 사랑의 회한, 제3연에서는 귀촉도의 한맺힌 울음을 제시하고 있다.
임이 가신 ‘서역 삼만 리’나 ‘파촉 삼만 리’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를 뜻한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먼 것이어서 ‘삼만 리’로 표현되었을 터인데, 이것은 실제의 거리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거리감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하겠다.
임의 죽음에 대한 여인의 회한은 제2연에서 잘 드러나 있다. 화자가 여인이라는 점은 ‘은장도’로서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은장도’는 화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에 대한 정절의 표현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 은장도로 ‘부질없는 이 머리털’을 베어서 먼 길을 가는 임의 신이나 삼아 드릴 걸 그랬다고 후회를 한다. 머리털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말은 임이 죽은 지금 누구에게 더 이상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치렁치렁한 머리털은 여인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간음한 여자의 머리털을 잘라 버리는 풍습도 이에 근거한 것일 터이다.
마지막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임이 귀촉도의 울음으로 되살아 온다. 귀촉도는 동양의 시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미지로서, 임을 그리워하다 죽은 넋으로 이해된다.
<감상의 길잡이>(2)
제1시집 화사집(花蛇集)에서 보여 주었던 ‘보들레르’의 악마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 사상에로 접근, 영겁(永劫)의 생명을 추구하는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한 제2시집 귀촉도의 표제시가 된 이 시는 사별한 임을 향한 애끓는 정한과 슬픔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촉제(蜀帝) 두우(杜宇)가 죽어 그 혼이 화하여 되었다는 (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都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귀촉도’는 말 그대로 ‘촉으로 돌아가는 길’을 뜻하여, 멀고 험난한 길[촉도지난(蜀道之難)]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중의적인 어법이다.
1연에서는 ‘임’이 가시던 모습과 그 가신 길이 너무 멀기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음을 ‘삼만 리’라는 거리감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삼만 리’가 상징하듯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인 여인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눈물이 ‘아롱아롱’ 맺힌다. 두견화인 ‘진달래꽃’은 새의 전설과 관련된 시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에서도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백의 민족(白衣民族)이 갖는 근원적인 한(恨)을 느낄 수 있다. 2연은 돌아오지 못하는 임에 대해 ‘신이나 삼아 줄 걸’,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하면서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나타내는 한편, 임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지극한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비원(悲願)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3연에서는 화자의 감정 이입인 ‘귀촉도’의 울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새는 그리움․서러움․후회스러움 등의 감정이 사무치고 북받쳐서 ‘목이 젖은 새’이며 ‘제 피에 취한 새’이다. 그러므로 새의 울음은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안으로만 조여든다.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이기에 그 임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고뇌는 안으로 응어리져 피맺힌 눈물을 이룬다. 따라서 귀촉도의 울음은 바로 시인 자신의 애끓는 슬픔이자 사랑인 것이다. 1연에서 ‘아롱아롱’ 하던 눈물이 마지막에 와서는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피맺힌 눈물로 깊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임의 떠남’ → ‘화자의 회한’ → ‘귀촉도 울음’이라는 기본 구조로 짜여 있으며, 사랑의 본질, 더 나아가서는 생의 본질이 이 같은 비극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맥락읽기>
1. 서정적 자아를 지칭하는 시어를 찾아보자.
☞ 없는데요.
2. 그래, 서정적 자아가 시의 표면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네. 그렇지만 서정적 자아의 심정이 의탁된 존재는 있겠지. 뭘까?
☞ 귀촉도요
3. 이 시에 나오는 귀촉도는 어떤 새 일까?
☞ 아주 슬픈 사연을 지닌 새입니다.
4. 그렇다면 서정적 자아의 심정, 심적 상태가 어떻다는 것인가?
☞ 엄청난 슬픔에 잠겨있어요.
5. 왜, 무엇 때문일까?
☞ 글씨요, 님이 어디론가 가버렸군요. 님과 이별했다는 애기네요.
6. 님이 간 곳을 지칭하는 시구들을 모두 찾아보자.
☞ 서역 삼만리, 파촉 삼만리, 하늘 끝
7. 님이 그곳으로 갈 때 어떻게 갔는가?☞ 피리 불며, 흰 옷깃 여며여며, 홀로
8. 님이 간 곳은 어디일까? 님이 간 곳과 그곳으로 가는 님의 모습을 참고로 짐작해보자.
☞ 아주 먼 곳, 돌아올 수 없는 곳, 저승
9.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은?☞ 한밤중요
10. 그런 시간적 배경은 이 시에 어떤 효과를 주나?
☞ 한 맺힌 슬픔을 더욱 절절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11. 3연 2행의 ‘은하’가, 이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미치는 효과는?
☞ 은하수의 눈물 젖은 사연(견우 직녀)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 밤의 찬이슬이 슬픈 사연의 눈물인 양도 하다.
12. 2연은 내용 전개에서 약간의 도치가 사용되고 있다. 의미가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재배치해 본다면?
☞ 부질없는 이 머리털을 은장도로 베어서 슬픈 사연을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를 삼아드릴 걸
13. 떠나는 님에게 신 삼아주는 걸 보니깐 뭐 생각나는거 없냐?
☞ 아! 있어요. 입관할 때 보니까 시신에도 신발을 신기더군요
# 그래. 이 시는 우리의 전통 장례 풍속에서 모티프를 얻은거지. 망자가 저승 가는 길에 신고 가라고 신발을 넣어주지. 그런데 그 신발을 자신의 머리털로 엮어 준다는 발상이 아주 기발하네. 그쟈
14. 자! 그렇다면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지금 어떤 처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나?
☞ 님을 여윈 안타까움에 속으로 눈물 흘리며 잠 못 이루고 슬픔에 잠겨 있어요.
15. 그러면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지?
☞ ‘님을 여윈 슬픔’ 정도가 되겠네요
16. 그래,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 머리털을 잘라 신발을 삼아 준다고 한걸 보아 여자이겠네요.
# 그래 그렇다면 이 시의 주제는 ‘사랑하는 님을 여윈 여인의 한’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 그럼 이런 처지에 놓인 여인의 심정이 되어 이 시를 한 번 낭송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