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물음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며 (고후 7: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이루는 회개를 이룬다) 자신의 신앙의 현 시점을 점검해야 할 큰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를 직접 보고 따르던 그들조차 주님이 보시기에 믿지 않는 자들이었는데
특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세상 물결이 넘실거리는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 않는 자와 복음을 순종치 않은 자와 경건치 않은 죄인의
삶을 보시면서 과연 주님은 "너는 나를 믿는 자이니라"라고 말씀하실런지 (벧전 4:17,18)
그에 대한 의구심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 (빌 2:6)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따르던 그들이 책망 받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그들이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고 썩을 양식을 위해 일을 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는다 하는 것은(요 6:29)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되겠지요.
주님은 요 4:34에서 육신의 양식이 아닌 영생할 수 있는 양식이 어떤 것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본이 되시기 위해 모델이 되신 (눅 9:23,24, 롬 8:29, 엡 5:1, 살전 1:6., 벧전 2:21,
요일 2:6) 주님은 이 양식을 드셨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 인치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요 6:27)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 부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아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예는 허다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드신 양식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 19:30에 십자가의 피의 잔(쓴 잔)을 다 드시고 영혼이 돌아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에 열 두 제자들에게 마 10:38, 16:24,25, 눅 9:23,24에서 너희도 나와 같이 십자가의 잔(막 10:38,39, 14:36)을 마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았을 때 요 6:54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침 받은 (엡 4:30)자의 자격을 갖춘 "믿는 자"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의 양식을 날마다 먹는 자는 주님을 믿는 자이기에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생수가
항상 흘러 넘치므로 목마르지 않고 (요 6:35) 영생을 갖은(모신) 자가 되며 (요 6:47)
마지막날 (마 24:3)인 주님이 임하시는 날 주님께서 다시 살리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 6:54)
이렇게 믿는 자 안에 참 믿음(히12:2)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므로 우리는 자신의 정욕을
좇지 않는 자로서 원수를 포함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롬 13:8에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율법의 완성이신 사랑 그 자체 (요일 4:8, 16)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그 분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되시므로 우리가 모든 율법 안에서 그 분의 사랑을
이루어 드리는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믿는 자의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과 피를 마시는 영생하는 양식이 고갈되지 않도록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빛 가운데 사는 삶)잠에 취하지 말고 깨어서 서 있어야 됩니다. (눅 12:35,37)
왜냐하면 어둠은 영의 양식을 먹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때문입니다. (벧전 5:8)
이 어둠에 삼킨 바 되어 사는 자가 아무리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은
"아니야 너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믿는 것이야"라고 하신다면 우리의 끝은
어떠하겠습니까?
요 5:29에서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빛에 거하는 믿는 자이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어둠에 속하여
주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믿은 자임을 주님의 심판 날(마 7:23,24:3 고전 4:5)에 구원의 유무는
확실히 드러날 것입니다.
엡 5:31,32에서 부부의 관계를 말씀하시며 그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유가 되며
큰 비밀이라고 하십니다.
부부의 관계가 어떤 사랑을 어떻게 농도 깊게 하였는가에 따라 피차 상대방에 대한 믿는 것과
또 아는 것에 대해 측정이 될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얼마만큼 깊은 사랑을 하였는가에 따라 격차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얼마만큼 진실한 사랑을 하였는가 즉 체험을 하였는가에
따라 주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의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을 더 많이 체험할 수록 성경말씀이 깊이 열려 보이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와 같을 때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분만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을 살아 드릴 수
있고 (고후 5:9,15)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릴 준비가 되어 그 분이 이끄실 때 "아멘"
(고후 1:20)하고 따르는 것이 우리를 죽은 자에서 산 자로 바꾸시어 영원한 천국으로
이끄시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는 믿음 (갈 2:20, 계2:13)의 사람이 빛 가운데 행하여야 되는 큰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 성경 66권 말씀은 유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참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확실하게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참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구원(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내 안에 믿음이 있어!"라고 아무리 외쳐도 참 믿음의 주체이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믿음의 주인이신 (히 12:2)그 분과 연결되지 않은 믿음은 결코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는 지혜가 참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정의가 정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는 일단 믿었으니까 구원은
따놓은 것이야. 성경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었다고 기록되었거든.”이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은 이런 사람들을 평가하시기를 주님께서 임하시는 세상 끝날, 주님께서 이루실 심판권을 가로채어 스스로 높아져 자존하여 하나님 행세를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살후 2:4)
이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
(마 7:14, 눅 13:23,24)을 걷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 정욕을 다 채우고 오직 자신의 배를 신을 삼아 세상에 충만하여 땅의 일만 생각하며 (빌 3:19)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 곧 멸망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보모도 당당하게
걸어갑니다.
이들이 하는 말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세차게 구호삼아 외칩니다.
누군가가 빛 가운데 행하는 믿는 자의 도를 전하면 거두절미하고 율법 주의자 혹은 이단이라고
비수를 꽂습니다.
이는 예컨대 주인은 떡 줄 마음도 없는데 김치국을 열심히 먹고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한 예로 눅 18:9-14에서 바리새인은 스스로 자신을 높여 의로운 자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의롭다 (구원받았다)고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세리처럼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기를 한없이 낮추는 자를 높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의인이 되어서 믿는다 하는 것과 믿음이 있다 하여 자신이 구원(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주님 앞에 오히려 교만한 자로 드러나는 것이 되므로 항상 주님 앞에 낮아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마 7:21에서 나(예수 그리스도) 더러 주여 주여 부르는 자가 ...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주님을 주라고 부르는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 사실을 믿기 때문에 자기 자신 안에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주여 주여 불러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께 연결되었을 때만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희고 검게 할 수 없고 키를 한자를 더할 수 없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이 자신을 구원시키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 얻는 믿음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복음서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주님은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혹자는 “네 믿음”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자기 자신이 능력이 있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런 발상은 하나님을 넘보는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영에게서 오는 것임을 속히 깨닫고 주님
앞에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은 바 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하나님 위에 섭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지는 일 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그 분은 우리를 높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자 주님이십니다. (히 12:2)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주님의 능력 곧 참 믿음이 우리 안에 연결되어 있을 때에
비로소 주님께 합당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인정받는 “믿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로 난 자며 거듭난 자로서 표징이 따릅니다.
골 3:1,2의 말씀처럼 위(하늘 보좌)의 것을 찾고 생각하며 땅의 것 세상 정욕을 생각지 않는
자가 되어 세상 정욕에서 멀어진 삶의 열매를 점점 확실하게 맺습니다.
이 열매는 엡 5:9의 빛의 열매와 갈 5:22,23의 성령의 열매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며
열립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인간의 내면에 계셔서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맺는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매를 맺지 아니한 사람들은 계 14:18-20의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에
들어갈 가라지의 열매(마 13:28-20)만 맺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는 믿음의 열매가 주님에 의해서 주렁주렁 맺히는 주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빛에
거하는 빛의 자녀들이 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여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제발 나(하나님)를 올바르게 알아라.(요 17:3)
헛된 일(썩을 양식)에 자신을 소모하지 말고 나에게 코드를 맞추고 나의 참 길을 좇으라.
그 길은 나그네와 행인 같이 사는 (벧전 2:11) 이 세상에서는 고행의 길이란다.
그러나 영생하는 나의 품 안에서 영원한 기쁨으로 수천 배의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니라.
아멘! 주 예수여 모든 이에게 이 은총을 베푸소서.
* 참고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 2:4, 롬 1:7, 갈 3:11)한 바울의
고백은 옳은 것이고, 사복음서의 내용은 율법주의니까 옳지 않다고 성경을 세분화시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계속 분열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것은 고전 1:12, 3:3-4에서 이 파, 저 파로 당을 지어 분쟁하게 하는 것이 되므로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젖 먹는 자요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마 24:19, 눅 21:22,23에 기록되었듯이 창세 이후로 가장 큰 환란 때 화가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