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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진,사랑을 나눠주는 감동마술(感動魔術)의 고수
http://www.gugakpeople.com/sub_read.html?uid=10973
어머니의 믿음에서 나의 선택으로……
마성만작가 ㅣ 기사입력 2012/06/05 [00:34]
그의 어머니는 위대하셨다. 어떤 극한의 고통과 시련이 몰려와도 그의 어머니는 결코 가족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의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셨기 때문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이미 스며들어 버린 그런 어머니의 믿음을 거부할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새벽의 첫 예배 시간을 시작으로 마지막 저녁 예배시간까지 교회의 청소를 비롯한 교회와 관련된 온갖 일들을 도우며 하루 24시간 전부를 하나님 안에서 보냈다. 그는 하나님의 세계를 모든 이들에게 널리 알리는 목회자의 길을 걷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학대학교 2학년 재학 시절, 어느 누가 보더라도 행복하고 완벽했던 미래에 대한 그의 구체적 계획은 지인의 사기로 인한 어머니의 무리한 해외 투자사업의 실패로 단 한 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그는 학교를 휴학함과 동시에 가족들의 최저 생계비라도 책임을 지기 위해 12월 중순의 혹독한 추위를 뚫고 아무런 조건 없이 막노동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크리스마스도 그때의 그에게만큼은 마음껏 축복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일거리를 얻기 위해 새벽 4시부터 나가서 경기도 의왕시에서 서울역을 오가며 신문지 몇 장을 이불 삼아 노숙을 하기도 한 그는, 흔히 사람들이 인생의 막장이라고 말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4개월 동안이나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노량진 시장의 주차타워 건설현장에서 일감을 구하는데 성공한다.
그곳에서 곧바로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을 인정받은 그는 다음해 7월, 머리를 깎고 군대에 입대하기 전날까지 3개월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계속한다. 그리고 건물의 준공검사도 다 끝나고 난, 마지막 7일간은 건설사의 전적인 신뢰를 얻어 그 커다란 건물에 혼자서 남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또 혼자서 페인트칠도 하게 된다.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혈기로 인해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20대 초반의 그가, 하루 평균 3만 5천 원의 일당 중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알선해준 용역회사의 비용 등등으로 5천 원을 제외한 남은 모든 돈들을 6개월이 훨씬 넘는 긴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단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고 고스란히 집에 가져다 드렸다는 사실 앞에 저자는 그를 무한한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함현진 씨가 너무 잘 하니까 믿고 맡길게, 수고 좀 해줘!”
그에게 강원도의 또 다른 건설현장으로 함께 동행 할 것을 권유했던 국내ㆍ외에서 유명한 한일건설의 현장 책임자가 그에게 남긴 말이었다고 한다.
그때를 회상하며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하던 그는 불쑥 화두처럼 한마디를 내던졌다.
“성실함과 노력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내일도 또다시……
그는 군대의 단기사병, 속칭 방위병으로 동사무소에 출ㆍ퇴근을 하면서도 집안의 가장 역할을 멈추지 않는다. 남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새벽시간에 일어나는 그는, 170여 곳에 이르는 일반 가정집이나 사무실ㆍ아파트를 돌며 조간신문을 배달하고 동사무소로 출근을 한다. 구독률이 높지 않은 한겨레 신문을 돌리는 것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같이 구독자가 많은 신문을 배달하는 것보다 배는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해진 근무시간이 끝나, 상관의 퇴근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곧장 슈퍼마켓으로 달려간다. 저녁시간에 또다시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나르거나 배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 정해준 휴가기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평촌신도시에서 중국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했다고 한다. 한여름, 엘리베이터가 멈춰선 아파트의 8층을 향해 사람들이 흔히들 철가방이라고 희화화 시켜버린 배달통을 양손에 들고 계단을 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웃어버리는 그!
그런 그에게 이제 더 이상 ‘성실’ㆍ‘노력’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근면’과 ‘열심’이라는 단어도 그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그의 오늘은, 그리고 그의 내일은 과연 누구를 위한 시간일까?
지금도 저자의 마음에서는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마술이라 부르는 달콤한 유혹
단기사병으로 소집해제를 ‘명’ 받고난 며칠 후, 서울로 나와 여러 가지 일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그는, 지하철 4호선을 타고가다 건너편 좌석의 선반 위에 무료로 배포되는 광고 신문에 우연히 시선이 머무는 것을 느낀다.
평소 그의 성격이나 스타일대로라면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말았을 그 신문에 눈길이 간 까닭은 유난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신문 한 쪽의 노란색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노란색의 정체가 무엇인지 꼭 확인하고 싶어진 그는, 조금의 창피함을 무릅쓰고 자리를 옮겨가며 기어이 문제의 신문을 집어 들었다.
왼쪽 하단을 차지한 그 노란색 박스 안에는 ‘국내 최초 마술 학원’이란 문구가 선명했다. 마술학원을 알리는 단순 칼라 광고였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구절이 있었다.
‘마술을 가르쳐 드립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마술이라고는 실제로 단 한 번도 직접 구경을 해본 적이 없었던 그는, 마술을 배워놓으면 어린이 선교를 위한 인형극을 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천천히 내용을 살피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에 관해서는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로 한다.
다음날, 그의 결정은 매우 빠르고 단호했다. 경기도 의왕에서 마술 학원이 위치한 강남까지 단숨에 달려간 그는 현장에서 마술을 보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된다.
그는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기본 마술이라도 습득하기 위해 일주일을 기준으로 통상 두 개의 정규반으로 나누어진, 주중반과 주말반을 동시에 수강한다. 곧 다가오는 여름 성경학교에서 자신의 인형극과 마술을 보고 즐거워 할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웃음소리와 그 모습들을 떠올린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왕성한 호기심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의 몇 십 배 이상의 노력을 강요했다. 이는, 그가 학원에 비치되어 있는 마술에 관한 모든 비디오들을 연구ㆍ분석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배우지 않는 어려운 부분까지도 독학을 통한 완전 숙달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단 3개월이라는 시간에 남들과 다른 열정으로 더욱 열심히 마술 공부를 끝마친다.
처음에는 마술을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인형극의 또 다른 보조 수단의 하나로만 생각해서, 소도구를 이용한 단순한 몇 가지 마술만 배우려 했던 계획에서 가볍게 출발했던 그가 ‘마술사’가 되었다. KBS 인형극 전문가에게 인형극을 전수 받아 인형극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가, 그것도 보통의 마술사가 아닌 ‘국내 최고의 교육마술사’ㆍ‘재능을 기부하는 마술사’ㆍ‘사랑을 나눠 주는 마술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사랑도 어려운 모든 이들에게 나눠 주는 마술사!’
‘마술보다 더 비밀스럽고, 마술보다 너 환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선물하는 마술사!’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마술사’
그에 대한 이러한 표현들이 그에게 바치는 작가의 아부근성에 따른 찬사가 절대적으로 아니라는 사실은 그를 만나보고 또 그와 함께 호흡하는 모든 관계자들이 저자를 대신해 증명을 해주리라 믿는다.
대륙이 나에게로 다가오다!
학교로 다시 복학한 그는 공사장에서 벽돌과 흙을 다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또 특별한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여 충무로에 있는 애플의 매킨토시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조달한다. 그는 남는 시간을 쪼개어 학과 공부에도 매진, 자신이 원래 계획했던 그대로 신학대학원에 다니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리 없이 몸소 실천하는 평범한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신학을 전공한 그의 소박했던 꿈은 어느덧 점점 커져 나아가더니, 대학원의 졸업과 동시에 광활한 대륙을 향해 펼쳐져 있었다. 백 퍼센트 자신의 의지였다 라기보다는 대륙이 그를 찾고, 대륙이 그를원한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교회교육연구회’의 최연소 율동강사로 또 인형극의 전문가였던 그는, 인형 제작강사로도 활동하며 드디어 대륙을 향한 거대한 목회자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중국 최대의 산동성 청도 한인 교회의 전도사로 2년간 아동들을 지도하고, 주민들을 위해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펼친다.
그곳 교회에서 제공하는 우리나라 돈, 50만 원 정도의 월급에서 그 절반을 기숙사비로 지불하고 남는 돈은 다시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한 인형극과 마술 공연에 투자한 것이다.
그는 중국 현지에서 혼자 생활 회화와 인형극 및 마술에 필요한 중국어를 익혔고, 그런 그의 공연에 대한 열정과 자신들을 위한 헌신에 감복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그의 선행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자신의 공연을 관람한 남녀노소, 각양각색,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중국 대륙의 곳곳으로 전파된다. 그는 자신의 소망대로 대륙을 사랑 하나로 자신의 품에 안은 것이다.
중국인들이 그를 소개하는 수많은 수식어들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광활한 중국에 무작정 찾아와 중국인을 웃기고, 감동을 주는 사랑의 마술사 - 함현진!’
‘중국인을 위해, 중국의 언어로 마술을 선물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마술사!’
<중국과 동남아시아 공연에 대한 현지 평가>
. 인민광장과 영하 35도, 혹한의 흑룡강성 하얼빈 조선족과 한족들을 웃기고 울린 마술사!
.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지친 강소성 남경의 공산당원들을 제자로 만들다.
. 세계 최대의 도매단지 절강성 이우시 최고, 최대 호텔의 나이트클럽에서 열린 한상인회 ‘송년의 밤’ 단독 특별 공연 - 통역 없는 마술공연으로, 공연 관람 후 고위 공무원들이 그 를 직접 초대해서 특별 만찬을 제공. (국내의 유명한 가수, 연기자, 개그맨들도 몇 차례 방문공연을 했으나 별다른 흥미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고위층의 공무원들이 처음으로 열렬한 박수와 함께 최고의 찬사를 표함.)
. 최고의 휴양지이자 성장 도시 1위인 산동성 청도시 최고의 인사들이 초청하여 극진히 대 접하는 자리에서 마술을 보고 난 뒤, 정중한 인사와 함께 그에게 ‘스승님’이라고 호칭. (나이도 50대가 넘는 분들이 마술에 감동을 받아, 이런 마술은 처음 본다며 갑자기 일어서서 절을 함. 그 덕분에 나와 관련된 주변 사람들이 의외의 커다란 도움을 받고 있음.)
. 2010년 북경 세계문화축제에 한국 마술사로는 최초로 초대 - 중국 공산당 주석 참관, 북 경 올림픽 경기장 공연.
. 2009년 2월 한국과 베트남 수교 17주년 기념 H-TV 특별 생방송 사상, 한국인 최초의 마술 개막 공연.
. 베트남 호치민시 최대의 공원에서 2만 여명의 현지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70분간 단독 으로 마술 공연을 개최.
. 한국 마술사 최초 캄보디아 공연
. 일본 국제 마술대회 개막 초청공연 - Opening Guest
. 그 외 홍콩ㆍ마카오ㆍ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의 국제 행사에 초대, 초청 공연 및 공연 심 사위원으로 참가.
세상에 마술을 걸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각인시킨 그는, 후배 전도사 홍은주 목사에게 인형극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넘겨주고 본격적으로 마술에 전념하면서, 직업적인 마술사의 길을 걷기 위해 귀국을 결심한다.
그는 전도사나 목사라는 전형적인 목회자의 길 대신에 가장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목회의 한 방편으로 마술에 연관된 사업을 하면서, 마술사라는 독특한 진로를 선택을 한 것이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언제든지 손님들을 위한 마술을 공연하는 <국내 최초(최대에요 최초는 아니거든여)의 ‘매직 바(Magic Bar)’에 이어, 파란 부분 삭제> 국내 최대 규모의 ‘매직 캐슬(Bar Magic Castle)’을 설립하고, 부평과 청주에 체인점도 설립한다.
또한 마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취급하는 ‘매직 캐슬 코리아(Magic Castle Korea. Inc)’라는 정식 법인회사를 설립하고, 직원들에게는 마술업계 최초로 의료보험과 4대 보험 복지혜택을 제공하게 된다.
그는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의 대학교에 마술학과를 만들었고, 현재는 방송 연예과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또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마술 학원 원장으로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해오고 있다. 그의 가르침을 전수받은 제자들은 현재까지도 각종 세계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그의 명성을 입증해주고 있다.
위의 내용 이외에도 실제 그가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영역과 그 활약상은 너무나 크고, 넓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만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마술교과서와 방과 후 마술교과서를 4권 집필했고, 한국교육마술협회 회장과 한국기독매직협회 사무국장, 한국교육전문가포럼회장,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와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2009년 대한민국 지식경영 대상’을 수상한다.
사랑의 나눔을 위한 마술
영국의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휴대폰 판매원에서 전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오페라 가수 ‘폴 포츠 (Paul Potts)’가 최근 3번째로 국내를 방문해서 찾은 사람이 바로 그였다.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자선공연에 그와의 합동공연을 제의한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도 그와 함께 무대에 서기를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사랑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대학의 정해진 강의나 특별한 스케줄을 빼고는 대부분의 많은 시간들을 자선공연이나 봉사활동으로 보내는 그!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아이티에서 일어난 대지진의 참사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그곳의 어린 생명들을 돕기 위한 단독 자선공연에서 저자는 그를 처음 만났었다. 아이티를 돕기 위한 사랑의 행렬에는 배우 이광기 씨와 가수 여행스케치, 마로니에, 심신 씨들도 동참하였다. 그리고 그때도 그는 자신의 자선공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일 뿐이라고 애써 스스로의 존재감을 감추려고만 했었다.
성경의 마태오 복음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라는 구절이 언뜻 나의 뇌리를 스치며, 그의 겸손함이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저자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의 봉사와 희생에 대한 작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때의 철없는 사건과 사고로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한 소년원에서의 공연을 비롯, 국내ㆍ외의 결식아동들과 희귀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 장애우들 및 각종 노인 단체를 위해 자선공연을 펼치고 있는 그는, 10년이란 장기 계획을 세워서 머나먼 아프리카에 어린이들을 위한 100개의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매직 콘서트를 지속적으로 열어가고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콘서트의 개최에 들어가는 숙식비 및 주유비 등 제반경비들도 모두 그가 스스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무형의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으로서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에게 정신적, 육체적 치유와 건강을 제공하는 마술을 선보이고 싶다고 한다. 즉, 치매ㆍ우울증 및 기타 재활치료에도 마술이 치료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사람들이 마술을 돈이나 연예인의 인기도와 연결시키는 그런 편협 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밝혔던 그의 소망도 반드시 이루어져 그가 꿈꾸는 새로운 한류의 바람, ‘마술의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 때, 마술을 통해 전 세계에 사랑을 나눠주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 이후의 내용들은 함현진 님이 직접 써주신 글들을 저자가 다시 정리하고, 구성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마음을 열다.
모든 장르의 예술가들에게는 팬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아줌마 팬들이 유독 많다. 그 이유를 분석해본 결과가 무척 흥미로워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여러분들에게 조금만 소개하려고 한다. (제가 여기서 언급한 모든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1. 헤어스타일을 올백으로 하면 탤런트 김형일 씨를 닮았다고 한다. 조금은 터프해 보이는 김형일 씨의 스타일이 마님(?)들을 자극하는 것 같다.
2. 수염을 살짝 기르면 조금은 살찐 이승철 씨를 닮았다고 한다. 왠지 노래를 잘 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사실 노래는 좀 한다.
3. 두툼한 입술과 눈웃음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한다. 입술이 왠지 푹신푹신해 보인다나……! 사실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였던 두꺼운 입술이 사회생활에는 오히려 득이 되는 것 같다. 도대체 사람들은 날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는 것일까? 설마……?
4. 가장 중요한 것은 목소리인 것 같다. 항상 듣는 말이지만 내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드럽다 내지는 감미롭다는 말을 한다. 전화 통화를 하고나면 이 목소리 때문에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사람도 참 많다.
이 외에도 나름의 적절한 유머 감각이나 재치 있는 입담도 한 몫 하겠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만큼은 정말 높다고 생각한다. 목소리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려다 보니 엉뚱한 샛길로 심하게 빠져버린 것 같아, 바보처럼 자화자찬, 잘난 척 했던 민망함에 부끄럽고 자꾸 얼굴만 붉어진다.
일반 사람들보다도 특히 공연이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그 실제 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얼마 전 제자들과 함께 보았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마술사의 공연 이야기이다. 그 사람의 공연은 시작부터 다채로운 장면들로 재미있고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공연 마지막 부분,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프러포즈의 장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사랑하는 남자가 사랑을 고백하지만, 여자는 그 사랑을 한사코 거부한다. 그 이유는 여자가 암을 선고받은 시한부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끝내 자신의 사랑을 여자에게 고백하지만 결국은 거절을 당한다.’는 것으로, 무대에 깔리는 애잔하면서 약간은 우수에 젖은 듯한 멜로디와 조명은 관객들의 원초적인 감성에 호소하여 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연출자의 의도를 읽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삼류 멜로 영화에서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억지 감동과 눈물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술 공연에서도 공연 전반에 걸쳐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전달한다면, 공연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진실한 감정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그 공연에서는 눈물은커녕 어떤 특별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동행한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 생각은 어땠니? 왜 눈물이 안 나왔을까?”
“글쎄요, 별다른 그런 느낌이 들지 않네요.”
“그럼, 내 공연을 본 사람들은 왜 눈물을 흘렸다고 했을까?”
해답은 목소리에 있었다. 주인공들(마술사)의 목소리 때문에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 내기가 어려웠던 것이었다. 생각건대 코미디를 할 때의 목소리와 신비한 카드 마술을 할 때의 목소리는 물론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눈물과 감동을 이끌어 내려면 연출의 목적에 따라 그 목소리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공연의 흐름상, 슬픈 음악과 슬픈 내용이 전개되지만 코미디를 할 때의 목소리가 그대로 나온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누구나의 예상대로 서로를 멋쩍게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제자들에게 목소리 훈련을 시킨다. 각자의 개성 있는 목소리도 매우 좋지만, 공연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내용과 전반적인 흐름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 톤이나 칼라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흔히 자동차의 개조를 ‘튜닝(Tuning)’이라 하는데, ‘튠업(Tune up)’이라고 해야 맞다. 우리들의 목소리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튠업’이 필요한데, 보이스 컨트롤(Voice Control)이라 해도 무방하다. 누구나 분위기에 따라 자기 목소리의 톤과 음색을 달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남과는 차별화되는 아주 특별한 무기를 가진 것이라 생각된다.
주님, 이는 누구의 눈물입니까?
연극을 보다가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의 결말부분이나 극적인 장면들을 보면 그렇다. 내가 가장 뜨겁게 눈물을 흘렸던 영화는 지금 생각해도 그리 대단한 영화들이 아니었다. 다만, 그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죽기 전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고,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누군가를 진실로 아껴 준다는 것이다.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Perfect World”라는 영화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범죄자인 코스트너가 아이 앞에서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인데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르면 코끝이 시큰하고 가슴이 찡하게 다가온다.
나는 남들이야 어떻든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만드는 영화야말로 최고의 영화다.’라고 오래전 혼자서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런 연후에, 나는 마술 공연을 보고 내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에 대해 통렬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왔었다. 이제껏 아쉽게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감동을 안겨주는 마술 공연을 본적은 없었다.
전 세계 최고 마술사들의 공연을 보면서는 무한한 감동을 느끼고, 그 경이로움과 장대한 스케일에 탄성을 쏟아냈지만 거기에도 내가 생각하는 참 눈물은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아무도 믿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조그만 공연에서, 그것도 내 마술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다니……!
처음에는 내 마술공연을 보고 벅찬 감동에 눈물이 났다면서 뜻밖의 관객들이 찾아오자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한다는 말이 “아~, 그러셨어요? 아~, 네…….”뿐 이었다.
2008년 여름의 초입, 강남의 한 교회에서는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주일 낮 예배에 나를 초대하였다. 오랜 전통을 쌓아온 교회에서, 그것도 밤 예배가 아닌 주일의 가장 큰 의식인 낮 예배에 나에게 마술공연을 요청하다니, 내 자신도 정말 놀라 그 사실이 전혀 믿겨지지가 않았다.
나를 초청해주신 담임 목사님께서는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한 실력 있는 젊은 목사님으로 오래 전부터 ‘가스펠 매직(복음마술)’을 생각해 오다가, 우연히 방송에서 나를 보시고는 바로 결정을 내리셨다고 했다. 그러나 그 교회의 내부는 아주 고풍스런 고딕 양식으로 왠지 무겁고 장중한 분위기가 나의 마술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하나님의 진리와 교회의 창립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목사님의 설교와 예배의식이 끝나고 잠시 침묵의 시간들이 흐른 후, 나의 공연은 시작되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섯 마리의 비둘기가 나타나는 현란한 마술공연이 펼쳐짐과 동시에 교회 내부에 빼곡히 자리 잡은 사람들에게서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거의 모험에 가까운 첫 시도였던 공연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나중에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나의 목회 인생에 큰 획을 긋는 새로운 도전이었다.’라고 하시면서 엄청나게 많은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교회에서, 그것도 대 예배 시간에 마술을 한다는 것이 수많은 반발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몇몇 장로 분들과 제직들께서 의아해 하시기는 했지만 크게 반대는 않으셨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도 긴장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이미 교회 창립 전 주일의 예배에서 ‘복음적인 마술은 성경에서 말하는 마술과는 다른 것이며, 문화의 한 장르다.’라며 신자들을 대상으로 예비 설명을 하셨다고 한다.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설교를 들어 보니, 나도 정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의 2층까지 인산인해를 이룬 낯선 예배당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한 공연들이 그 정점을 향하면서 드디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술’을 할 차례가 다가왔다.
.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술’ - 나의 모든 열정과 의지를 반영시켜 나 홀로 창조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술’은, 오직 신문지 하나로만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 뉴스페이퍼 매직(Storytelling Newspaper Magic)’으로,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사닥다리’를 주제로 하는 마술이다.
이 마술은 원래부터 해오던 각각의 신문지 마술 5가지를 하나로 모아, 성경의 이야기와 함께 그 감동을 전달하는 연출법을 도입한 것이다. 기존의 신문지를 이용한 다른 마술들과는 그 공연 방식이나 내용에 있어서의 커다란 차이 때문에 마술만을 두고서라도, 그 장단점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야곱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신문지 마술은, 모든 신문이 갈기갈기 찢어진 후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이 되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세상의 뉴스는 우리의 가슴을 찢어내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우리의 가슴도 이 신문지처럼 찢어집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라고 불리는 복음은 우리의 상처받은 가슴과 영혼을 회복하게 해 줍니다.”
“와!”하는 우렁찬 함성과 함께 끝없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산산이 찢겨진 신문이 다시 똑같은 신문으로 멀쩡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문을 집어 들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고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자 하지만, 그 믿음을 인정받으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지 않고, 아들 ‘이삭’과 함께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40살에 아내 ‘리브가’를 만나 결혼 후에 쌍둥이를 낳았는데, 큰 아들은 ‘에서’라는 용사였고 둘째는 ‘야곱’이라는 여성스런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냥에 익숙하고 늠름한 ‘에서’를 장자(큰아들)로써 사랑했고 ‘야곱’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마 ‘리브가’는 ‘야곱’이 가진 꿈과 비전을 보고 ‘야곱’을 더욱 사랑했습니다.”
나는, 신문을 사각형으로 찢고 난 후 공중에 ‘♡(하트 문양)’을 그렸고, 신문지를 펼치자 놀랍게도 사각형은 ‘♡(하트)’로 변해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가 계속된다.
“‘야곱’은 엄마 ‘리브가’와 짜고 ‘이삭’과 사냥터에서 배가 고파하는 어리석은 형 ‘에서’를 팥죽 한 그릇으로 속이고 장자권(장남의 권리)을 빼앗아 달아납니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은 몸에 털을 붙여서 마치 ‘에서’인 듯한 연기를 한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나는 이 때 신문지 뭉치를 꺼내 들고는 다음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막은 한낮에 50도가 넘는 무더위 때문에 그늘을 찾아야 합니다. 큰 바위 밑이나 나무 아래서 쉬어야 하는데 사막의 나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아이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처럼 잎이 뾰쪽합니다.”
이 말과 동시에 신문지를 위로 쭉쭉 잡아 빼면, 천정 꼭대기까지 닿을 만큼 높은 신문지 나무가 나타난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신문지 나무를 높이 뽑으면 높이 뽑을수록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더욱 더 크게 터져 나온다.
그리고 네 번째 신문지를 들고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사막은 낮에는 덮지만 밤에는 정말 춥고 무서워요. 독이 있는 벌레들과 뱀, 늑대들이 ‘야곱’을 위협하지요. 하지만 ‘야곱’은 양털조각 하나를 덮고 평평한 돌로 베개를 삼아 잠을 잡니다. 무섭기도 하고 목도 마르고 배고픈 ‘야곱’은 엄마가 알려준 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땅으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알려주는 별을 보며 위로를 얻습니다.”
이어서 가위로 자른 신문지에서 너무도 예쁜 별 모양이 나타나자 관객들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기뻐하며 환호한다.
다섯 번째로 아주 큰 신문지 뭉치를 들고, ‘야곱의 이야기’ 마지막을 향한 이야기를 전한다.
“추위와 두려움 속에서 잠을 잔 ‘야곱’은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사들이 나타나 하늘 위에서 땅 아래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네요. 날개 달린 천사들이 커다란 사다리를 타고 있군요.”
그러면서 손으로 자른 신문지에서 진짜 사다리처럼 하늘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타나면, 관객들의 손은 숨 가쁜 박수로 그리고 입은 멈추지 않는 함성으로 하나가 된다.
“이 때 ‘야곱’은 깨닫습니다. 이 사막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신 다는 것을 알고 ‘야곱’은 기뻐했어요. 그리고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해 자기가 베고 자던 돌베개에 갖고 있던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약속을 했어요. 바로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야곱’은 4명의 아내와 12명의 자녀를 낳고 거대한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 왔답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축복’입니다.”
교회 안에 있었던 모든 이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마술’, 최고의 공연을 본 보답으로 끊임 없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었다. 공연 후,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악수 세례 속에 사인을 하고 있을 때 몇몇 여자 신자 분들이 다가왔다.
“저 너무 감동받아서 울었어요.”
“저두요.”
십 칠 년 이상 마술을 해오면서 때로는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놀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냥 “감동 받았어요.”라는 인사를 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눈물이 났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는 교회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듣게 되었다.
아마도 마술 자체보다는 최선을 다한 나의 매순간의 열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반 공연장에서도 눈물을 흘렸다는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익금 전액을 노숙자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말에 흔쾌히 베스트셀러 이지성작가의 첫 번째 팬 미팅에서 마술공연을 했었다. 예상외로 300여 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보조의자를 놓고 서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오프닝 공연으로는 화려한 비둘기 마술을 선보이고, 뒤이어 관객을 무대로 올린 다음 웃음이 나오는 코미디 동전마술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중국의 ‘링 마술’로 인연을 표현하고 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신문지 마술을 하면서 마지막을 장식했다. 공연이 끝난 후 내게 몇 명의 여성들이 찾아 왔다.
“저 울었어요.”
“저 감동 먹어서, 눈물이 막 났어요.”
눈물이 났다는 말은 자주 듣던 말인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교회의 공연에서는 눈물이 났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지만 일반 공연에서까지 눈물을 흘린 관객이 있다는 것에 내 스스로도 무척이나 놀랐다.
행사의 주빈이었던 이지성작가도 자신의 팬들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했다는 말을 전해주고, 또 인터넷상 작가의 팬 카페에서도 마술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라는 말들이 주요화제로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희망과 감동을 주었기에,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났을까?’
‘화려하고, 신비하고, 웃음을 주는 다른 마술사들과 어떤 것이 다르기에, 관객들은 ‘재밌었다.’는 말보다, ‘신기했다.’라는 말보다, ‘눈물이 났다.’라는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실마리를 그날의 이지성 작가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이지성 작가는 ‘꿈꾸는 다락방’ㆍ‘리딩으로 리드하라“ 등 200만부를 판매한 최고의 인기 작가인데, 내가 그의 책을 읽고서 남긴 글을 보고 일부러 먼저 나를 찾아 수소문 한 것이다. 그리고서 다산북스라는 출판사에서 처음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게 되었다. 처음엔 젓가락으로 하는 벌레 마술로 웃음을 주고, 동전마술로 놀라움을 주다가 다음의 고무줄 마술로 넘어가게 되었다.
세계적인 유명 마술사가 TV에서 했던 고무줄이 통과되는 마술을 선보이면서,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반드시 넘어 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마지막으로 희망의 별을 보여주는 별 고무줄 마술을 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을 적어본다.
“사람들은 마음에 바라는 것이 생기면 교회의 종탑위의 십자가를 보며 소원을 빕니다.
어떤 이들은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가고 싶어 했고, 실제로 달나라로 가는 기적을 만들기도 합니다.
자~, 여기 별 속에 또 다른 별이 있죠?
이건 바로 희망의 별입니다.
자~, 이제 마음속에 있는 소망을 생각하며 ‘후!’하고 불어보세요.”
나의 말대로 입으로 ‘후~!’하고 불었던 이지성 작가는, 평범한 고무줄이 자신이 방금 보았던 별의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란다.
“자, 이렇게 당신의 꿈은 이뤄질 것입니다.”
사실 평범한 고무줄이 별 모양이 되는 것과 실제로 내 꿈이 이뤄지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마술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은 “와! 진짜 꿈이 이뤄지나요?”하며 행복해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꿈을 되새겨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마술을 본 후 이지성 작가는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해 주었다.
“내 책 3권을 읽은 것보다 몇 배 더 낫습니다!”
그 작가는 200만 권의 책을 판매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팬들은 첫 번째 팬 미팅에 참가하기 위해 멀리 호주와 중국에서도 왔었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여성 팬이 오히려 거리상 더 가깝게 느껴질 만큼 그 작가의 인기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 최고의 작가가 “자신의 책 3권보다 더 낫다.”라는 말을 한 것은 물론 나에게 칭찬을 해 주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마술사 함현진’이 추구하는 마술의 핵심을 알고 있는 것 같아 행복했다.
이후 나는 이지성 작가와 함께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병원과 학교 건립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하고 2011년 4월 28일 자선 공연을 했다. “사랑의 마술사 함현진의 매직콘서트”라는 내 이름을 걸고 한 이날 하루 한 번의 공연으로 얻은 수익금은 무려 1700만원! 양재동 힐스테이트 전시관의 무료 대관 덕에 음향비만 100만원 지출하고, 모든 돈을 모아 보니 작년 숙대에서 이지성 작가와 함께 한 공연에서 모인 800만원 보다 두 배 이상 많이 모인 것이었다. 우린 밥도 자비로 사먹으면서도 행복해 했다. 그리고 이 모든 돈은 내가 봉사하는 한국 기아대책기구에 이지성 작가와 함께 공동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다. 내가 100만원 기부하는 것 보다 내가 직접 움직이면서 하는 봉사로 그 이상의 가치가 나온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마술을 통해 어린 아이들로부터 나이든 어른들에게까지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주고 싶었다. 물론, 나라는 사람이 진정 착한 인간이거나, 인류를 끔찍이 사랑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라는 인간은 언제나 한없이 부족하고, 오히려 남들보다 더 악한 모습을 가질 때도 많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내 무대와 내 공연에서 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하고, 좋은 꿈을 꾸며, 희망을 갖고, 또 사랑을 나눴으면 한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마술사의 길을 허락하신 큰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항상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저자가 마음으로 기억하는 그의 울림>
. 착하게 살자!
. 전문가가 되자!
. 이 세상은 신기함을 넘어, 마술로 가득 차 있다.
. 너의 인생에 마술을 걸어라!
. 너의 인생을 마술처럼 만들어라!
. 위대한 CEO는 마술사!
. 마술이 인생을 바꾼다!
. 새로운 한류(韓流)는 마술(Magic)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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