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는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곡으로 제가 찬양드리게 되다니 참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이렇게 아름다운곡의 작곡자가 미상이라니....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찿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검색 3일만에 조그만 실마리를 찿았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 또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 못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곡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은 작곡하게 된 동기와 배경이었습니다. 어떤 연유로 누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곡을 만들었을까 ?
2002년 2월 16일(토요일) 오전 10시 천안 "천년 동안도"(현재 일하는 직장)라는 라이브까페에서 작곡자 박 성호님을 만났습니다. 푹 눌러쓴 검은 모자... 예상외로 상당히 젊은 모습에 좀 놀랐습니다. 처음 대하는 자리였지만 우리는 오래전 부터 알아온 사이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순수하고 진솔한 님의 모습에 내 마음도 활짝 열렸습니다.
유년기.학창시절
박 성호(朴成鎬)님은 1962년 11월 25일 서울 종암동에서 태어 났습니다.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자란 님의 어릴적 기억은 항상 "배가 고팠다"고 했습니다. 집 근처에 동네 어린이들을 내 자식같이 돌보는 감리교회 목사님이 계셨는데 배가 고플 때면 언제나 그 교회를 찿곤 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상계중앙교회에서 보내게 됩니다. 아버님이 기타리스트였던 관계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기타를 만졌고 중학교 때는 상당한 수준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작곡은 고등학교 때 부터하게 되는데 교회에서 기타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목사님 때문에 "문학의 밤"을 통해 기타치고 찬양을 하며 주님을 향한 마음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노래 잘 한다는 소문으로 타 교회의 "문학의 밤"에 초청받아 까만 교복을 입고 본인이 작곡한 곡으로 찬양했던 기억을 가진 학생가수 박 성호는 그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곡이 만들어진 동기
공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님은 여전히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여러직업을 경험합니다. 설상 가상으로 아버님께서 폐가 나빠져서 버는 돈이 모두 약값으로 들어가고 피곤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25살이 되던 1986년 어느날 그날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 와서 자리에 눕는데 그 날따라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별빛이 유난히 아름다웠습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주님! 인간을 창조하신 주님! 박 성호를 이곳에 있게하신 주님!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신 사랑의 주님 !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신음을 들으시는 주님! 지금의 이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인도하실 주님! 그 주님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 때 만든 곡이 "주만 바라볼찌라"입니다. 가장 힘들 때 주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한 박 성호님의 마음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입니다.
곡에 얽힌 기막힌 사연
1989년 기독교 방송에서 주최한 "복음송 경연대회"에 "주만 바라볼찌라"와 "창문 열면"을 출품했으나 입선되지 못합니다. 그 당시 음악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일 때여서 주위분들이 멜로디가 파격적이라 모두 복음성가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멜로디라고 했었습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며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던 대학동창 "윤 의환"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윤 의환"이의 친구인 "김 oo"을 알게 되었는데 (목동에 있는 oo교회에서 "예랑합창단"의 관리를 맡고 있었음) 그 친구가 합창단에 필요한 곡을 부탁해서 "주만 바라볼찌라"외 13곡을 주었습니다. "김 oo"의 노력으로 1990년 2월 14일 일본 FM 후지 라디오 기독교방송을 통해 "주만 바라볼찌라"가 발표됐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1991년 그 여세를 몰아 다음 곡을 준비하던 중 엄청난 금전적인 피해를 주고 "김 oo"이 미국으로 가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항상 신앙적인 말로 위로하며 저의 작곡 실력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하고 격려해주던 친구라 많은 의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교인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돈 문제를 포함해 많은 실망만 주고 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뒤로 전 절망감에 빠져 교회도 나가지 않고 복음송을 작곡하는 일도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한마디로 그 친구 때문에 교회와 담을 쌓고 음악과도 인연을 끊었던 셈이었죠."
그 일로 인하여 님은 큰 시험에 들어 신앙 생활과 작곡을 그만 두고 그 해에 천안으로 내려가 사업을 합니다. 1996년 "남천안 제일의원"에 진료 받으러 갔다가 "심 석규"원장에게 기타 개인교습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호스피스 사역을 듣게 되고 심 원장은 님에게 사역 동참을 요청했습니다."제가 작곡도 하고 가수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원장님이 호스피스 활동에 대해 제안을 하셨어요. 죽음을 앞둔 말기 암환자들에게 찬양을 들려 드리며 위로해주고 전도를 하면 어떻겠냐는 말씀이었습니다. 평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 관심이 있던 저는 호스피스 봉사에 참가하게 됐고 천안 호스피스 창립에 함께 하게됐습니다."
1997년 IMF로 인해 하고 있던 장사 밑천까지 모두 날려버리게 되었지만 1998년에 아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박 성호님도 제2의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던중 1999년(2000년?) 기독교 방송의 "하 덕규 ccm camp"에서 흘러 나온 작가미상의 "주만 바라볼찌라"를 듣고 그 때서야 자신의 곡이 많이 애창되는 곡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곡을 작곡한지 14년 만의 일 입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박 성호 님을 찿은 근거
아래 내용은 이 은희(용인 호스피스 12기 봉사자)님의 글인데 이 글이 찿게된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 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서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볼찌라'
말기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호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 죽고 싶어요. 하나님께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등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 호스피스 봉사를 하지만 환우가 고통하는 소리를 많이 듣고 나면 몸도 마음도 무척 힘들어 진다. 심지어 집에 가도 환우들의 고통하는 소리가 집안 곳곳에서 들려 온다. 그들만큼 아픈 것은 아니지만 내 눈으로 보고 듣는 환우의 사정을 알고 나면 나는 누구에게 매달리는가 ?
필자도 기댈 곳을 찾는다. 환우 앞에선 "힘드시죠 ? 힘내세요.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고통입니다." 그리고는 "함께 찬양하실래요?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어느새 봉사자인 내가 위로 받는다.
환우들에게 할 말이 없으면 "참으세요.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말로만 하다가 이 곡이 나오면서 케어 하기가 훨씬 편해진 셈이다. 이 곡이 만들어진 것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작곡자 자신도 이 곡이 유행되고 있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고 한다. 곡의 생산지가 충청도(?)이어서 그런지 참 늦게 유행되었다. 그러나 마치 호스피스를 위해 준비되어진 곡처럼 환우와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봉사자들에게 더 없이 힘이 되어주는 찬양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많은 곡 중에도 특별한 의미와 사랑을 담은 늦깍이 효자 곡이 있는데 "주만 바라 볼지라"가 그 중에 하나다. 이 곡이 샘물의 집에서 한층 돋보이게 불러지는 이유가 있다. 지난달 천안 사랑의 호스피스에서 자원봉사자 교육을 마치고 수료생들과 함께 샘물의 집 견학봉사를 왔다. 그날 오신 분들 중에 소개된 분들 중에 '주만 바라 볼지라'를 만든 장본인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무∼척 젊어 보였다. 작사자가 와서 찬양한 적은 있었지만 작곡자가 직접 찬양하기는 처음이다. 모두의 바램에 선뜻 응해주는 겸손함이 그를 한 번 더 가까이 보게 한다.
샘물의 집에서 그렇게 많이 부른 만큼 은혜를 받은 곡이지만, 이날은 한 절 한 절이 다른 때와는 다르게 들려진다. 그 동안 우리가 불렀던 것들이 잘못 되어 작곡자에게 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도 곁들이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인만큼 은혜를 받았다. 누가 이렇게 좋은 곡을 만들었는지 참 궁금했었다. 이 한 곡을 통해서 받는 위로, 특히 암과 투병하느라 힘들어하는 환우와 가족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찬양이기에 하나님께는 물론 작곡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작곡자나 가수들은 곡하나 만들어 히트치면 돈도 벌고 명성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만드는 사람들과 부르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과 별로 상관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드러내는데만 관심이 있다. 생의 막바지에서 가장 섬세한 위로를 주고받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샘물의 집에 머무는 기간이 극히 짧은 환우들에게 좋은 선물이 된 것 같다.
찬양이 있어서 한 번 더 고통을 참을 수 있고, 고통 하는 환우의 소리를 피하지 않고 잘 감당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환우의 고통소리가 어디서 들리던 이 찬양을 통해 받은 은혜로 환우와 가족, 봉사자에게는 물론 이 찬양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리라. "주만 바라보세요! 저도 주만 바라보고 당신들을 섬기겠습니다!"
천안에서의 생활과 근황
천안에 내려온 다음해인 1992년 5월에 누이동생의 친구인 최 향숙(38)씨와 결혼했고 슬하에 준형(11) 준태(7) 두아들을 두었습니다. 현재 천안에 있는 라이브 까페 몇 곳에서 노래부르고 시간날 때 택시운전을 합니다. 힘들지 않냐고 묻는 제게 말했습니다.
"경제적으론 힘들지만 마음은 기쁩니다. 제 노래를 듣고 위안을 얻는 환우가 있고 제 노래를 불러 주는 분들이 계신한 힘을 얻을 것입니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님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와 두아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말하는 표정에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도 미국에 있는 그 친구를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게 말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이 글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고 싶지만 그 친구의 연락처를 알 수 없다며....
박 성호님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최근 "COME BACK-돌아오라"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수익금 전액을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시설 건립에 내 놓았으며 그 앨범에는 14년 전 "주만 바라볼찌라"를 작곡하면서 만들었던 대부분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름다운 주님은", "세상죄 지고가신", "놀라운 주님사랑" 등 총 12곡으로 최 인혁님의 곡도 2곡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환우는 임종을 앞두고 모두 공포에 떠는데 그런 환우들에게 "주만 바라볼찌라"를 불러 주고 목사님께서 기도하면 주님을 영접하고 평안하게 임종을 맞는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을 통하여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환자들 곁”이라며 하루빨리 그들을 위한 안식처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샘물 호스피스에 계시던 말기 암환자분은 제가 찬양을 할 때마다 너무 기뻐하셨는데 얼마 후 다시 찾아가니까 돌아가셨어요. 유서에 제 찬양에 대한 느낌을 쓰셨더라구요. 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CCM 사역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찬양을 통해 그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병원이나 기관, 단체에서 초청해주시면 어디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그냥 간직하고 있었던 곡들인데 이렇게 쓰시려고 그냥 보관하게 하셨었나 봅니다."
님은 현재 천안에 있는 사랑의 호스피스에서 말기 환자들을 위한 문화선교부 일을 맡아하고 있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박 성호님의 간증은 제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 했습니다. "주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 정말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동안교회 시온찬양대 문 윤경 |
|
첫댓글 제가 좋아하는 찬양곡중에 한곡입니다
너무 잘아시는 곡이라 글쓰기를 망설였는데 그래도 모르는 분이 혹 있으실줄 알고 ....
이 곡을 작곡한 동기를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힘든시간속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별빛이 너무 아름다웠다네요..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시고 돌봐주시고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이
지금 힘든 상황속에 언제나 주님이 함께 하실줄 믿습니다..
음...좋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