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요양병원으로 가신 김할머니“
장수읍 장수리 고 강 영
김할머니는 추석때와 마찬가지로 요양병원으로 가신다. 전주요양병원의 엠블런스가 시동을 걸고 있다. 이내 김할머니는 엠블런스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전주로 향했다.
오늘이 섣달 스무아흐레라 내일 모래면 설이기 때문에 공휴일이 3일간 계속되므로 우리 시설에 모시는 어르신들을 집으로 모셔다 드리야 한다. 다른 어르신들은 모두 자녀들 집으로 귀가 하셨다. 그런데 김할머니는 아들 며느리가 있지만 아들집으로 돌아가시질 못하신다.
아들이 모시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내가 밀알노인복지센터에서 일하게 된지가 지난 2010년 3월이었으니 13개월여 동안 김할머니의 자녀들을 본 일이 없다. 내가 김할머니의 아들에게 전화를 한 일이 있다. 관내에 있으니 전화통화는 가능하였다. 어머님이 많이 아프셔서 병원으로 모셔야 하겠으니 시설로 좀 나오시라고 하였더니 “나도 아파 죽겠는데 그냥 돌아가시게 하면 좋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기가 꽉 막히는 전율이 내 몸을 휘 감는 것 같다. 이게 인간이란 말인가? 자기를 낳아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란 말인가? 정신질환자일까?
김할머니는 아주 성격이 고약한 할머니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하고 본인이 본인 몸에 자해를 가하기도 하는 성격이 고약한 분이시다. 시설에 계시는 분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센터장인 나는 가끔 김할머니와 대화를 시도하곤 하였는데 그럴 때 마다 순수하게 대화에 응하고(물론 말은 일체 안 하셨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사표시를 해주시곤 하셨다. 아드님이 몸이 아파서 이곳엘 못 오시고 계신다고 하면 그 말을 믿는지, 그냥 받아드리시는 건지 묘한 표정을 지으시곤 하셨다. 때론 먹을 것을 몹시 탐을 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간식을 챙겨드리면 맛있게 받아 잡수시곤 하셨다.
그런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던 사랑결핍증 환자처럼 행동을 하셨다. 특히 여자 선생님들에게 더 심한 행동을 하시는 걸 보면 며느리한테서 받은 반사적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김할머니는 결국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의료원 장례식장에 모시게 되어 직원들과 함께 조문을 하게 되었다.
김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검은 상복을 입고 자녀들, 손자들을 옆에 세운 채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느라 분주했다. 손님 접대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이다.
모처럼 보게 되는 우리 일행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한다. 김할머니 살아 계실 때 자녀로서의 도리를 저런 모습으로 표현 하였더라면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김할머니도 젊었을 때는 자녀들을 위해서 온 정성을 다하셨으리라. 그런데 왜 저렇게 사셔야만 했는지......
살아생전에 잘 섬겨야 함이 자녀의 도리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밖혀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도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시지 않았던가. 어머니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상주들에게 조문오신 분들이 어머님 살아생전에 효자였으리라고 평가해 주실까? 아마도 조문객들의 부의금에 더 마음을 쓰신 것 아니었을까?
정신의학에서는 한 인간의 정신적 건강을 판단하는 기준들 중의 하나로 책임감을 기준으로 한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정상인 사람이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정신질병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들 주위에는 자녀로서의 책임감이나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가족의 가장이나 자녀에 걸맞은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도 흔히 보게 된다. 정신의학에서는 그렇게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평가하는 것이다.
경주엘 다녀오는 길에 고속도로휴게소에 들렸다. 점심식사를 하기위해서 식탁에 앉아 있는데 건장한 남자 한분이 휄체어를 밀고와 식탁 옆에 세운다. 휄체어에는 몸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 어르신이 앉아 계신다. 아마 딸과 사위가 아픈 아버지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휴게소엘 들린 모양이다. 딸과 사위는 정성을 다해 아버지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따님은 아버지에게 밥을 떠 먹여드리고 흘리시는 침을 연신 닦아드린다. 사위는 물 컵을 가지고 장인에게 물을 먹여드린다. 참으로 보기 좋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부모를 불쌍히 여기며 공경하는 마음이 우리 눈에 보이도록 정겨워 보였다.
전남 곡성읍 기차마을에서 제1회 장미축제가 있다하여 그곳엘 가보게 되었다. 10만평의 땅에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1004종류의 장미가 식제 되어 있었다. 기차마을과 연계된 장미마당은 아주 장관이었다. 아마 몇 년 후면 저 경기도 에버랜드 보다 아름답고 웅장한 장미꽃단지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나와 아내는 점심을 먹기 위해 2층에 마련된 웰빙식당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많이 다녀간 탓인지 음식이 떨어져 기다리고 앉아 있는데 몸이 뒤틀리는 어르신을 양쪽에서 부축하고 올라오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아마 딸과 사위가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장미축제에 구경을 왔나보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준비해 대접한다. 이것도 권해드리고 저것도 권해 드린다. 사위는 연신 장모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나르느라 바쁘게 식탁을 오간다.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고 고마운지 그 일행이 식사를 다할 때 까지 연신 넋을 잃고 바라 보고 있었다. 휴게소에서도 보았고 장미축제에서도 보았지만 딸과 사위뿐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가 부모님을 모시는 모습은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굴절되지 않은 사랑이 행복의 샘을 만든다고 한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샘물은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샘은 사랑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마음과 같다.
김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그려 보는 나는 우리 집에 모시고 있는 96세의 나의 어머니에게 더욱더 잘해 드려야겠고 효성을 다하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2011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