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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편> 우즈베키스탄으로 大長征을 떠납니다 저는 소띠해 기축년 1월 13일 직장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우(牛)즈베키스탄 해외사무소장 겸 고려독거노인요양원장이라는 거룩하고 역사적 임무를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납니다. 우즈베키스탄. '똘똘이' 한국과 '경제 몸짱'인 일본, 과거 인류문명을 황금빛으로 누렇게 물들였다가 주저앉은 뒤 다시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아시아 맘모스」인 중국과 인도, 기라성 같은 이들 4개국이 몸 담고 있는 드넓은 아시아 대륙 가운데인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나라입니다. 간단하게 말해 우즈베키스탄은「아시아의 중심(中心)」입니다. 더나아가 아시아의 '심장부'입니다. 이 말은 정치와 경제, 문화 등 「국가 토탈(total) 평가」에서 아시아의 중심이라는 뉘앙스가 풍길 수 있는 바, 지구촌 동네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아시아 4대 강국이 자존심이 상해서 경제 근육이 근질근질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리적 위치가 중심이든 뭐가 중심이든, 우즈베키스탄이 아시아의 중심은 확실합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저는 우즈베키스탄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부를 것입니다. (이헌태, 자기가 간다고 의미를 세게 부여하는구만.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지. 아시아의 중심부로 간다 이거지. 자신이 중요하다는 착각이 대단하구만) 하여튼 아시아의 중심인물인 제가 가면 그곳이 바로 아시아의 중심이 됩니다.
솔직히 우즈베키스탄은 예전에는 아시아땅과 유럽-아랍땅의 가교였으며, 이슬람문명과 중국유교문명의 가교였습니다. 문명 그 자체 못지 않게 문명을 잇는 가교 즉, 다리도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지구 맏형인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 위치한 한반도에 속해서 인지, 저쪽 건너편 유럽-아랍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괜히 가슴이 쿵당쿵당 마구 뛰고 설레이지 않습니까. 로마제국과 중화제국이 처음으로 상견례를 나눈 실크로드 개척자 장건. BC139년 전한시절 한무제로부터 『저 은하수 끝을 가보라』는 지시를 받은 장건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뚫었습니다. 『저 은하수 끝을 가보라』 캬 ! 얼마나 멋진 지시입니까. 황당하게 『하늘의 은하수 다 세어보라』는 지시를 하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뭔가 지시를 하려면 이처럼 통 큰 지시를 해야 합니다.
요즘처럼 세계적 불황기에 한국의 청년들이 가슴속에 새겨 두고 도전정신과 패기로 무장해서 세계 구석구석까지 첨벙 첨벙 뛰어들기를 바랍니다. 무작정 깊은 강에 뛰어들다가 익사하려나, 일단 수영은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즉 해외 출정의 기초기술은 닦아야죠. 우즈베키스탄은 실크로드 동서3대 교역로 (북방초원로, 오아시스로, 남방남해로)가운데 오아시스 남로에 놓여 있습니다. 정수일 학자는 실크로드를 로마에서 중국 장안이 아니라 금성 즉, 경주까지 확대했습니다. 그러면 「경주- 장안 - 돈황-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우즈베키스탄)- 테헤란 - 콘스탄티노플- 로마」로 이어집니다. 중국에서 로마까지는 12000km이고 신라 경주까지는 14700km로 늘어납니다. 하루에 100리를 걸으면 꼭 1년입니다. 1년은 금방 지나갑니다. 백수 여러분, 한 번 도전해 보십시오. 저도 작년에 침과 뜸을 배웠는데 언제 배우나 싶었는데 1년이 후딱 지나갑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쉬켄트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따지면 중국과 로마의 중앙이며, 아시아 대륙으로 따지면 중국과 터키의 중앙입니다.
우즈베키스탄도 한 때는 대단하고, 지금도 대단합니다. 과거 14세기 아랍과 러시아, 인도지역까지 광범위하게 걸쳐던 이슬람 대제국을 건설했던 티무르왕이 바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왕궁터를 잡았습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전지현이 밭 갈고 송혜교가 논 갈 정도로 미인이 세계 제일이고, 일조량이 많아 수박이든 포도든 과일 맛도 세계 제일입니다. 저는 먼 길을 떠나면서 우즈베키스탄 근처까지 목숨 걸고, 진짜 목숨 걸고, 진진짜 목숨 걸고 이역만리(異域萬里) 머나먼 길을 떠나온 과거 우리 선조들 3총사를 떠올립니다. 신라승 혜초스님과 고구려유민출신 당나라 고선지장군, 사마르칸트왕을 알현하러 온 고구려 사신. 앞으로 우즈베키스탄내 어려운 고려노인을 돕고 이 나라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노인요양원의 모델을 제시하러 큰 일을 하러가고, 또 반드시 큰 일을 할 이헌태까지 합치면 4총사가 될 것입니다. 너무 오버했나. 정신병원에 입원해야할 수준인가. 특히 이 나라 길거리 자동차의 70% 가량이 대우자동차입니다. 이 곳에 자동차공장을 세운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까지 억지로 넣으면 한국 5총사가 될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김 전회장을 징기즈칸을 빗대 「김기즈칸」이라며 영웅대접을 한다나 어쩌나요. 자세하게 3총사를 소개합니다. 신라 혜초스님은 겁도 없이 겨우 19살 어린 나이에 구법여행을 위해 중국을 출발, 천축(인도)과 서역인 이 근처까지 들렀다가 4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의 가호가 있다고 생각하고 떠난 길이겠지만 그래도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젊은이여, 혜초의 도전정신을 본받읍시다. 실크로드의 대명사, 마르코 폴로는 17살에 길을 떠났지만 아버지와 숙부 손잡고 걷기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을 것이며 배고프면 『아빠, 밥 줘어잉』하면서 쫄래쫄래 따라간 여행이니, 사막 한가운데서 어린 나이에 추위와 배고픔, 고독에 몸부림치며 홀로 헤쳐나간 혜초스님과는 비교 대상도 되지 못합니다. 세계 역사상 이렇게 어린 나이에 구도여행을 떠난 이가 있습니까. 세계 역사에 빛날 일입니다. 혜초스님은 「왕오천축국전」이란 여행기를 남겼는데, 중국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 간의 상호이해와 교류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 기행문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당나라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 이븐바투타 기행기에 기가 눌릴 뻔한 우리 후대들에게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습니다. 고구려 유민출신 당나라 고선지 장군은 서역 정복에 나서서 계속 승리하다가 당시 석국(石國), 우즈베키스탄 바로 위 탈라스 전투에서 졌지만 고구려인의 기상을 크게 떨쳤습니다. 이 전투는 이슬람제국과 중국제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로, 이를 통해 파미르고원을 경계로 중앙아시아지역이 이슬람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고선지 장군이 밉겠지만 지금 돌아다보니 잘 져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슬람권에게도 일정 지분을 주어 다양하고 화려한 지구문명을 꽃 피우기위해서 말이다. 혹시 일부러 져준 것은 아닐까요.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혼자 잘난 척하고 거들먹대는 중국이 만약 중앙아시아까지 점령했다면 노는 꼴이 가관이었을 것입니다.
7세기 후반 사마르칸트 바흐만왕 즉위식에서 알현하는 사신 가운데, 조우관을 쓰고 황색 상의에 바지를 입고 환두대도를 찬 늠름한 2명의 고구려인(혹은 신라인 주장도)이 포함된 외국사절단 사신도가 우즈베키스탄 유적지 아프라시압 궁전터 궁전벽화에서 나왔습니다. 이들 3총사들은 걷거나 말을 타는 고생을 했겠지만 저는 편히 비행기를 이용합니다. 일전에는 한 숨 푹 자고 나니 도착했더라구요. 대략 7시간 걸립니다. 혜초스님이나 고선지장군이 다시 살아나, 이 사실을 알면 놀라 숨을 멈출 것입니다. 예전으로 치면 저는 축지법을 쓰고 구름 타고 왔다 갔다하는 신선(神仙)이지요. 신라시절 화랑도들이 그토록 꿈꾸던 신선이 바로 현대인들이 아닐까요. 제가 그당시 태어났다면 이같은 신선노름을 하지 못했겠지요. 저는 애써 도를 닦지도 않았는데 신선놀음을 하고 있으니 부끄럽고 민망하고 쑥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 탈 자격이 되나, 앞으로 신선에 가까운 고매한 분들만 비행기탑시다. 항공사 사장이나 직원들도 다시 뽑아야 하겠네. 다신 원점으로 가서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형제는 현대인류를 신선으로 만든 천사인가 도인인가. 어쨌든 현대인은 '집단신선'으로 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헌태는 앞으로 혜초스님이든 고선지장군이든 고구려사신이든, 그 깊고도 깊은 뜻을 잘 되새기겠습니다. 혜초스님은 불교종주국인 인도를 직접 들러서 진정한 불법과 철학, 참된 삶을 찾으러 왔을 것이고, 고선지장군은 서역정벌의 큰 성과를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패전 후 전쟁포로를 통해 종이 즉 제지술을 아랍과 유럽지역에 전해 주어서 이슬람과 서양 문화발전의 종자 (씨), 즉 아버지 역할을 했습니다. 종이가 문명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는 상상이 충분히 갈 것입니다.
그래서 고장군이 탈레스 전투에서 일부러 져주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이유입니다. 서양으로 제지술이 넘어갈 수 있는 적당한 곳에서 졌습니다. 즉 이곳에서 져주기위해 계속 전투에서 이겼던 것입니다. 제지술을 전해주는 최고의 방법은 제지술을 가진 전쟁포로들을 왕창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패배입니다. 역사의 금자탑을 세운 패배입니다. 반대로 서양과 아랍문명을 일으켜 세운 위대한 승리입니다.
고선지장군은 이슬람과 서양 문화의 아버지로 역사에 반드시 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첨단기술인 중국 제지술이 유럽과 아랍으로 건너 갔다는 것은 알면서 고구려출신 고선지장군 때문이라는 것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답답하네. 세계 역사에 빛날 일입니다. 우리 고구려 선조가 아랍과 서양문화를 살렸네. 너무 오버했나. 고장군께서 망한 고구려 사람이고 당나라 소속인가. 넘어가고. 또 고구려 사신은 당나라가 괴롭히니 절박한 상황에서 협공이 가능한 그들의 반대편 국경을 맞댄 내륙아시아국가들을 방문해서 동맹외교를 통해 고구려의 안보를 지키려는 외교사절이기도 했고 더 나아가 평화사절입니다. 국가간 상호존중과 교류, 평화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아닌가, 고구려가 망하지 않고 국가 안위를 위해서 사신들이 임금의 명령을 받아 죽음을 무릅쓰고 그 곳까지 갔나. 좋은 게 좋다고, 우리 조상들이니 좋은 쪽으로 생각합시다.
외교와 평화를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그 먼 길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이것도 세계 역사에 빛날 일입니다. 험한 일도 마다않고 상호존중과 교류, 평화를 구하고자 하는 그 높으신 뜻을 작금의 세계열강들이 배워야하겠습니다. 결국 이 3총사 모두 세계 역사에 빛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한 논리인가. 하여튼, 저는 조상의 하늘을 찌를 듯한 드높은 기상과 얼, 하늘에 닿을 듯한 숭고한 이념을 다시 생각하면서 하늘 속을 통과하는 비행기를 타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납니다. 우즈베키스탄 지역까지 오신 선조 조상님 드림팀 파이팅! 저는 그 당시와 달리 지구촌 곳곳에서 전자, 자동차, 반도체, 조선 산업 등 고기술첨단제품 시장을 휘어잡는 경제강국 '똘똘이' 대한민국 국민의 하나로 다시 그곳으로 가니 마음이 더욱 흐뭇하고 뿌듯합니다. 중앙아시아하면 징키즈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류역사상 「넘버1」의 대제국 건설자인 동시에 인간을 넘어 동식물까지 살육으로 초토화시킨 초인류(超人類) 대학살자로서 선악의 양면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서하와 금을 제압한 징키즈칸은 드디어 서역정벌에 나서서 1220년 사마르칸트를 점령했는데, 애손(愛孫)의 전사로 인해서 일대에서 저항하는 곳은 사람은 물론 개 고양이 동물까지, 먼지만 풀풀 나도록 「일목일초(一木一草)」도 남기지 않는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치를 떨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사마르칸트 지역과 치르치크 강변에서 전투도 벌이고 더러 더러 휴양도 즐기다가 1225년 봄 6년만에 귀향했고 2년후 사망했습니다. 인간대살육에 하늘이 노했나. 여기서 긴급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로 제가 근무할 요양원이 바로 치르치크 강변입니다. 대략 800년전에 이 강변에 머문 징키즈칸을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최대 라이벌 '이헌태와 징키즈칸' 이 강변가에서 징키즈칸은 대제국의 원대한 꿈을 꾸는 생각에 곰곰이 잠겨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징키즈칸과 비교되는 것에 대해 심히 불쾌감을 느낍니다. 저는 강변가에서 정복(征服)과 살육(殺戮), 야망(野望)이 아니라 봉사(奉仕)와 평화(平和), 소망(所望)라는 훨씬 더 원대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징키즈칸은 저보다 훨씬 한수 아래입니다. 죽어서 하느님, 부처님 앞에 가면 누가 더 잘했다고 칭찬받을까요. 간단합니다. 착한 일을 하고 있는 이헌태일 것입니다. 하느님, 부처님은 우쭐대며 다가오는 징기즈칸을 보자마자 " 야 임마, 저리 꺼져"라고 화를 내지 않을까요. 내가 너무 오버했나.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쉬켄트는 石國 '돌나라'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말에는 돌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표현입니다. 또라이(돌아이), 머리가 돌삐(돌대가리). 나라 이름에 돌이 들어간 것입니다. 꽃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돌이 들어갔습니다. 중국이 예전에 로마와 사라센을 大食國이라고 했다지요. 요즘으로 치면 "웬만히 먹어라, 야, 이 돼지야". 아메리카의 米國도 같은 범주네. 中國이나 日本등도 마찬가지네. 남에게 불려지든 어쨌든, 그래도 나라 이름은 적어도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 고려(高麗), 조선(朝鮮)처럼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습니다.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세계 나라 이름 콘테스트 대상작들입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으로 나라도 아름답고, 나라이름도 아름답고, 백의민족 사람들도 아름답고, 3박자 모두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 만세(萬歲)입니다. 가끔 서로 헐뜯고 지랄들을 쳐서 그렇죠. 우즈베키스탄의 돌은 보통 돌과 다릅니다. 이슬람사원의 돔형 둥근지붕은 푸른 빛을 발하는 보석입니다. 그래서 사마라칸트를 '푸른 보석'이라고 합니다. 저는 「돌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말해 '보석의 나라'에 갑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근주자적(近朱者赤) 즉 찬란한 보석 속에 살다보면 저도 보석이 되어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근보자보(近寶者寶). 보석 같은 총명한 지혜를 배우겠습니다. 지금까지 장광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저는 아시아의 심장부 우즈베키스탄, '푸른 보석의 나라' 타쉬켄트로 갑니다. 요양원은 타쉬켄트 시내에서 30분쯤 떨어진 '시온고'라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습니다.
소련연방시절 인민영웅들이 대거 탄생한 김병화 농장과 황망근 농장이 위치한 고려인 집성촌으로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통한과 감동의 이주사'가 펼쳐진 바로 그 현장입니다. 대한민국 즉, 고려인의 높은 기상이 뜨겁게 발원된 곳에 요양원에 세워졌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오시면 꼭 들러 위대한 조선 민족의 기상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에는 고려인이 약 18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소련 스탈린에 의해서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로 이주당했던 사람들(일제의 더러운 꼴과 착취를 피해서 연해주로 올라간 착한 우리 동네 사람들)과 후손들입니다. 이역만리에서 방치된 외롭고 가난한 고려노인들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운명도 이런 가혹한 운명이 없을 것이고, 불행도 이런 가혹한 불행이 없을 것입니다.
스탈린은 우리 민족과 무슨 억한 감정이 있다고 이런 모진 짓을 했습니까. 나도 울고 니도 울고,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고려인도 울일입니다. 긴데 우즈벡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땅, 가장 비가 오지 않는 곳이니, 하늘도 울지 못하고 땅도 울지 못하는 이런 곳에 데리고 온 스탈린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아는 불세출의 천재 지도자이네. 불쌍한 고려노인들이 많이 생겨 숙원사업으로, 우즈베키스탄 최초의 고려인독거노인 요양원을 정부에서 지었습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 이들을 돌보는 것은, 저의 인생 행로에 있어 가장 값지고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기회를 얻다니, 제가 전생에 착한 일을 산더미처럼 했나 봅니다. 아니면 나쁜 짓을 산더미처럼 해서 착한 일을 하도록 기회를 준 것인가요.신만이 아시겠죠. 아무런 관계가 없나. 요양원에서 고려노인들과 24시간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면서 수도승처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미력하나마 힘든 고려노인들의 한과 눈물을 살포시 닦아 드리겠습니다. 땀과 정성을 쏟아 우즈베키스탄 노인요양원의 모델이 되겠습니다. 우리 재단은 이 나라에서 우르타치르칙 아동병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첨단 모바일클리닉도 제공했고, 올해는 사회메디컬센터도 리모델링해서 잘 운영되도록 하는 등 보건의료지원사업들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해외사무소장도 겸할 것입니다. 고려노인 요양원과 다양한 우즈벡 보건의료지원사업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하고 국익을 떨치는 한편 한국인의 기상과 품격을 떨치고 오겠습니다. 우즈베키스탄 고려노인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일들을 편지를 통해 자주 전해드리겠습니다. 한용운 대선사의 「이별(離別)은 미(美)의 창조(創造)」라는 시를 대신하면서 저는 이별의 정한을 담은 이별가를 눈물을 글썽이며 부릅니다. 한용운 대선사는 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 역설적인 표현에 아주 재미를 붙인 분이시지요. 식민지 시절 지식인으로 태어나 가장 신이 난 분입니다. 고생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너무 했나요. 하여튼 일제 식민지가 만든 최고의 스타, 훌륭한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 오오 이별이여. /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한용운 대선사 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이별은 이별이고, 또한 슬픔입니다. 확언컨데 이별은 미의 창조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별에 대한 좋은 말씀들이 있더라구요.
▶만나고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이별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슬픈 이야기다 (S.T.콜리지) ▶이별의 뼈아픔을 맛봄으로써만 사랑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조지 엘리엇) ▶이별의 시간이 될 때까지는 사랑은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 (칼릴 지브란)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언제나 슬프기만 하다 (두보) ▶태어난 모든 것들은 기약조차 없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라시안) ▶한순간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일은 매우 슬픈 일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친구가 그 자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늘 함께 했던 이와의 이별은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 지라도 늘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오스카 와일드) 맞습니다, 맞고요. 이별하면 회자 1순위는 역시,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 즉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돌아오고, 산 자는 반드시 죽고. 죽은 자는 반드시 다시 살아나고. 아닌가, 종교 신자들은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 다 맞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번 가면 영영 가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헌태가 살면서 느낀 것 가운데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산에 가면서 터득한 진리입니다. 술 마시면 취하고, 산에 가면 행복하고, 즉 음주필취 (飮酒必醉), 등산행복(登山幸福) 지구촌 각 나라는 세계 대공황 이후 가장 어렵고, 이에 우리나라도 덩달아 어려워지고 있는 이 엄중한 2009년 벽두부터 저는 이럴 때 더욱 어려운 고려독거노인들을 돕기 위해 어린 혜초스님의 진리를 향한 구법의 심정으로 대장정(大長征)을 떠납니다.
카레이스키도 연해주에서 실크로드 중심부인 우즈베키스탄으로 대장정을 떠나왔고, 저도 한국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대장정을 떠나니 이 모든 게 '실크로드 팔자', '실크로드 운명'이 아니겠습니까. 안녕히 계십시오.건강하세요. (끝)
(출처 : 희희낙낙, 2009. 01.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