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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반가웠네!
문승호
“야~ ! 이게 누구야! 얼마 만인가 이 친구. 자네 대호 아닌가.”
“어! 이 친구. 자네야말로 얼마 만인가, 영철이 친구.”
“야~ ! 살아 있었군, 살아 있었어.”
“그래, 이 친구. 정말 살아 있었어.” 둘은 서로 얼싸안고 남들이야 뭐라 하든 들고 방방 뛰었다.
대호가 검정색 옷자락을 봄바람에 나부끼며 느릿느릿 친구 여혼에 H예식장 4층을 막 올라서서 접수처를 찾는데, 오랜 세월 연락이 없던 영철이가 먼저 와 있다가 대호를 보는 순간 환호성을 지른 것이었다.
이야기는 삼십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철과 대호는 도청 관리과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발령을 받아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풋내기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꿈만은 어딘가 모르게 남달라 보였다. 외모에 나타난 상으로 본다면, 영철은 감성이 풍부한 사나이로서 성급한 성격인 듯하나, 실제로는 치밀하게 계산된 카리스마로 직장 동료들을 사로잡는다. 또한 판단력이 강한 편이며, 기회의 포착과 상황판단이 빠르다. 핵심을 잘 파악하는 만큼 업무처리에 있어서도 좋은 성과를 올리는 사람이다. 이에 비하여 대호는 전형적인 군자의 얼굴에 답답할 정도로 바보스러운 면이 있으나, 실제로는 깊이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다면적인 인물이다.
대호는 심사분석계에서 주요 사업에 대한 추진 실적을 가지고 그 추진 결과를 당초 계획에 맞게 추진하였는지, 심도 있게 분석 ․ 평가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었고, 영철은 지역개발계에서 지역개발의 전반적인 추진 사업의 확인 점검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기본운영계획 및 심사분석은 보통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기본운영계획은 기획계에서 수립하여 각 과별로 추진하므로, 사업 예산과의 괴리현상으로 매 분기 분석을 해보면 전혀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사업도 허다하다. 우리가 보통 사업계획이라 함은 도정의 주요사업 시행계획을 말하며, 기본운영계획 수립의 지침이 되는 계획을 말한다. 기본운영계획이라 함은 당해연도에 시행할 사업계획 중 주요단위사업에 대한 사업목표, 예산액, 시행기간 등을 계획화 하여 분기별로 사업추진의 지침이 되는 주요사업 세부추진계획이다. 또한 심사분석이라 함은 기본운영계획에 의한 사업의 시행 결과를 평가,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도지사는 사업계획의 확정과 동시에 기본운영계획의 작성 지침을 각 과장에게 시달하여야 하며, 각 과장은 당해의 기본운영계획 작성 지침을 받아 10일 이내에 기본운영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이렇게 수립된 기본운영계획을 근거로 각 과장은 이 계획에 의한 주관사업의 시행 결과를 평가 분석하여야 하며, 그 주기는 분기별로 하는데 주요 사안 발생시에는 수시로 심사분석을 할 수 있다.
각 과장은 전 분기 심사분석 결과 부진 사업으로 판정된 사업 또는 시정을 요하는 사항에 대하여 개선 대책을 수립 시행한 결과를 당해분기 심사분석 결과 제출 시 작성 보고하여야 한다.
관리과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각 과의 사업추진실적을 확인 점검할 수 있다.
대호는 이러한 이론과 절차를 토대로 2/4분기 심사분석을 하였다. 각과로부터 접수 받은 집행 실적을 토대로 집행의 잘잘못을 분석하는 도중, 공교롭게도 지역개발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영철의 사업이 부진하였다. 그러잖아도 중점분석을 뭐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영철이 추진하고 있는 ‘충북지역 소도읍 육성방안’이 극히 부진하였다. 하필이면 친구의 사업을 꼬집느냐고 항의할는지는 모르지만, 딱 집히는 사업이 없어 그걸 물고 늘어지기로 하였다.
이 소도읍 육성방안은,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 전략의 과정에서 국가 ․ 지역도시 체계상 소도읍이 차지하는 위상은 열악한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다고 보고, 소도읍 중심 기능이 이처럼 악화되는 것은 광역생활권 중심의 지위에 있는 수도권 또는 지방의 중․ 대도시에 의해 경제권 예속이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교통망이 발달함에 따라 도시 공간간 접근성이 향상됨으로써 농촌지역 주민들의 중 ․ 대도시 지향성이 높아진 반면 소도읍의 기능적 약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소도읍을 지역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지역의 발전 동인과 기회 요인을 도출함으로써 지속 가능하고 실현가능성 높은 실질적 전략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는 내용이었다.
지역개발계에서 보내준 자료에 의하면, 기능상의 특성을 고려한 소도읍 발전전략은 소도읍을 포함한 배후지역 전체와 광역개발권 간의 연계성을 강화함으로써 계획 간의 상충성을 방지하고 계획 간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시간, 자원의 낭비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고 하며, 또한 특정 소도읍 만의 특성화 전략이 가지는 흡인력보다는 광역권의 특성을 융합한 거시적 특성화 전략을 통하여 흡인력을 배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분석되었다.
지원 방식에 있어서도 현재와 같은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른 지원 방식이 지방자치단체간 불필요한 과당경쟁을 초래하고 지역의 발전정도, 재정력 격차, 지역특화 등 지역특성에 대한 고려가 낮은 문제점이 있으므로 공모식 선발방식과 개별지원방식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소도읍의 육성전략은 소도읍 자체만의 특성이나 장단점에 따라 육성전략을 마련하기보다는 해당지역 전체, 인접 지역 등과 유기적인 지리-기능상의 연접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통합적 시각에서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효율성과 실행력 확보 차원에서 바람직할 것이라고 분석하여 담당계인 대호에게 보내왔던 것이다. 보내온 자료를 가만히 뜯어보니 이론은 명철하고 그럴 듯하였으나, 뭐 이렇다 할 수치로 된 구체적인 실적이 없었다.
“어이, 이 형. 이영철 씨.”
“왜 그래. 민 형. 뭐가 잘못됐어?”
“아니, 그게 아니고. 이 충북지역 소도읍 육성방안 말이야.”
“그게 뭐 어때서.”
“음, 내용은 그럴듯한데, 핵심이 없는 것 같아. 자세히 설명 좀 해줘.”
“아, 이사람. 꽤 성가시게 구네. 원래 그건 이론으로 시작하여 이론으로 끝나게 돼있어 이 사람아. 그리고 구체적인 실적은 연말에 가보면 알아.”
“이번 분기에 중점분석대상사업을 뭐로 할까 고심했는데, 이 사업으로 해야겠어. 좀 도와줘, 이 형.”
“좋아.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사업이야. 그 사업은 말이야, 실적이 딱 부러지게 수치로도 곤란하고, 또 우리 과장님이 걸리잖아. 안 그래?”
그랬다. 대호는 그 사업을 중점분석대상사업으로 선정하기 전에도 과장님이 걸려서 좀 찝찝했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더욱 꺼림칙했다.
중점분석대상사업은 사업 추진 실적이 극히 부진하여, 문제점 등 부진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수립하여, 다음 분기에 그 추진 결과를 보고 또 분석을 하는 것이다.
대호는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과연 이 사업을 중점분석대상사업으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과장님 평소 하는 짓거리로 보아 한번쯤 골탕을 먹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과장님은 키가 작달막하고 눈은 부리부리 뛰어나온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평소 복장도 신사정장을 입는 적이 별로 없었다. 주로 잠바 타입이었다. 겨울엔 황색 가죽잠바를 주로 걸치고, 봄가을로는 별로 화사하지도 않은 좀 칙칙하다 할까 뭐 그런 종류의 잠바를 입고 다녔다. 주로 잠바만 입고 다니는 과장님에 비하여 옆방의 서무과장님은 키도 후리후리 크고 얼굴도 세련된 모습이 영락없는 영국신사 타입이었다.
대호가 고심에 싸여있던 어느 날 이웃 서무과장님이 우리과로 슬슬 건너오셔서 우리 과장님께 말을 붙이면서 농을 걸었다.
“박 과장은 꼭 돼지장사 타입이야. 그 잠바 입고 시장에 나가면 아주 딱 이야. 안 그래?” 하시면서 뒤통수를 슬며시 걷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직원들은 함부로 웃을 수도 없고 속으로 킥킥거리기만 하였다. 그러면 우리 과장님은,
“쓸데없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곽 과장은 카바레 같은 데 가면 여자 서넛은 울릴 것 같은 족제비 인상을 하고선……, 안 그래? 어서 할일 없으면 저리가 이 사람아.”
“족제비? 내가 족제비라고? 그래 내가 족제비라고 하자. 그러면 박 과장이 내가 족제비 되는데 뭐 보태준 거 있어?”
“아이고 사돈 남 말하네. 그러면 곽 과장이 나더러 돼지장사라 하는데 내가 돼지장사 하는데 뭐 보태준 거 있어 이 사람아?”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 정겹게 다투는 모습이 직원들 눈에는 무척 다정스럽게 보였다.
대호는 고심 끝에 영철이의 「충북지역 소도읍 육성방안」사업을 중점분석하기로 결심하고, 현황과 문제점 대책과 전망 등으로 작성해 나갔다. 며칠간을 나름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속으로 ‘별 말씀이 없으시겠지.’ 생각하며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오늘따라 세심히 살펴 가시면서 일일이 체크하시는 것이 아닌가! 약간 두려운 기색이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점분석 사항을 보시면서 이마에 내 천(川)자가 그려졌다.
“아니 이게 뭐야? 이 사업은 우리 사업 아냐? 이걸 건드리면 결국은 내 얼굴에 침 뱉는 꼴이 되는 건데, 그래도 괜찮겠어?”
“글쎄요, 뭐 딱히 잡히는 사업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니까 평소 별 말씀이 없으시던 과장님이 버럭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이봐! 이 주사.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부진한 지 자세히 설명 좀 해봐.” 과장님의 불호령에 영철은 자세를 가다듬고 과장님 앞으로 와서 부동자세로 섰다. 얼떨결에 불려왔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라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저…, 무슨 말씀이신지…….”
“이 소도읍 육성방안인지, 작대긴지 왜 이리 부진해?”
“아, 예. 그것은 이렀습니다.”
그 사업은 현재 추진 중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실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고, 구체적인 실적은 연말이나 가봐야 뭔가 윤곽이 잡힌다는 등의 내용을 영철은 소상히 과장님께 보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왜, 민 주사는 무슨 근거로 이 사업을 중점분석대상 사업으로 선정하였느냔 말이야. 이거 다시 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서류 뭉치를 대호에게 집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대호는 서류를 챙겨 갖고 나와 책상에 앉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창밖의 허공으로 던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파랬다. 마치 퍼렇게 날이 선 칼날을 보는 듯했다. 과장님이 평소에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셨는데, 멍 하니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공무원 초년생으로서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엄청난 회오리에 빠지고 말았다. ‘아, 나는 왜 이리 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어찌하여 내겐 아직 천명이 없단 말인가.’ 그는 유리처럼 해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결국 2/4분기 심사분석은 중점분석대상사업을 타 과의 사업으로 선정하여 처리함으로써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그 해 가을, 우리 기관이 민방위 시범기관으로 지정되었다. 그 중 하나의 주요 메시지는 4층에 불이 나 다른 곳으로 대피를 할 수 없어 외줄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시범이었다. 대호와 영철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타과의 젊은 사람들과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는 시범 조에 딱 걸렸다.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씩 하니까 팔에 힘도 빠지고, 손바닥도 점점 피멍이 들어갔다. 그래도 젊은 오기 하나로 오후에 남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타과의 젊은이들과 같이 어울려 연습을 하다 보니 정도 새록새록 쌓이고, 끈끈한 직장동료애도 차츰 쌓여갔다.
이날 젊은이들의 고된 훈련으로 민방위 훈련의 날을 맞아 시범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민방위 훈련에 대한 청주시 민방위 과장의 다음과 같은 강평을 듣고 성황리에 끝났다.
『민방위는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 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적의 침략과 천재지변에 의한 인명피해 및 재산피해를 최소한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민간인에 의해 실시되는 비군사적 방위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근대 전쟁의 성격이 국가총력전으로 되었고, 승패의 요인이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전국가적 요소와 국민의 저항의지까지를 포함하게 되면서, 적의 공격목표도 도시, 교통시설, 통신시설, 공업시설 등의 비군사 시설을 가리지 않는 국가 공격의 개념으로 확대 되었습니다(이하 생략).』 이렇게 시작되는 강평을 약 삼십여 분 정도 듣고 해산했다.
민방위 시범훈련을 마치고 영철 이는 대호를 찾아와 계모임에 대하여 숙의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젊은 사람들끼리 계 같은 것을 조직하여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타 과의 젊은 직원들과 전화로 대충 알아본 결과 모두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의 모두가 이 목적에 찬동하므로 젊은 직원 다섯이 영철이 주관 하에 시내 한 음식점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아무리 사소한 모임에도 일정한 규칙 같은 것이 있어야 되므로, 대호는 회의 목적에 맞춰 규약을 대충 만들어 가지고 나갔다.
때마침 늦가을이라 만산은 붉은 잎으로 덮여있었고, 조석으로 제법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식당 안엔 벌써 대호를 모함하여 다섯 명의 젊은 친구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대호와 영철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서무과에서 인사업무를 보고 있는 정 주사, 그리고 재무과의 송 주사, 기획 감사실의 박 주사이었다. 그 친구들은 5급 을류(지금의 9급)공무원이었다. 한참을 쓸데없는 신변잡기로 대화를 나누다가 먼저 영철이가 오늘의 모임 목적에 대하여 입을 열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반갑습니다. 오늘 모임의 목적은 이미 전화상으로 대충 얘기가 오갔으므로 어느 정도는 짐작하리라 믿습니다. 우선 회의 명칭부터 정해 봅시다. 누가 좋은 의견 있습니까?”
이 제의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다가 대호가 입을 열었다.
“제 의견부터 먼저 말씀드리지요. 아직 우리는 장가를 들지 않은 총각들이므로 수탉들의 모임 즉 ‘수탉회’라고 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수탉회라……, 어째 좀 어감이 안 좋은데.”
“그려, 나도 별로야.”
이구동성으로 ‘수탉회’는 찬성하는 회원들이 없어서 채택되질 않고 다른 명칭을 찾으려고 머리를 짜 내고 있었다. 모두가 침묵만을 지키고 있으니까 대호가 자기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겸연쩍어 하면서 다시 의견을 냈다.
“수탉회가 싫다면 명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나면 그때 정하지 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무과의 정 주사가 무릎을 탁 치면서 의견을 제시했다.
“마침 생각났어. 청운회라고 이름 지으면 어떨까? 청운의 뜻을 품고라는 말도 있잖아.”
“듣고 보니 참 좋은 말이네. 청운회라……. 나는 찬성이야.”
영철이도 맞장구를 쳤다. 이에 질세라 대호와 나머지 친구들도 동감의 뜻을 표했다. 그러므로 회의 명칭은 자연스레 「청운회」라고 결정했다. 나머지 조항은 의례적인 조항으로써 이미 영철이가 초안을 만들어 가지고 왔으므로 그것을 토대로 회의 목적, 명칭, 회비, 임원, 임기, 애경사 사업 등등 나머지 조항을 수정 보완해 나갔다.
“자, 다음은 회장을 뽑아야 될 텐데……, 누구 희망자 없습니까?” 영철이가 이렇게 제의하자 서로가 묵묵부답이다가 침묵을 깨고 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회장을 서로가 추천해 보지. 어때 나는 회의 명칭을 청운회라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비교적 말이 없고 점잔을 빼는 정 주사를 추천합니다.” 이 제의에 정 주사가,
“제발 나를 끌어드리지 마. 하라는 대로는 할 테니 회장하라 소리는 마.” 이렇게 손사래를 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다음에도 서로가 추천을 했지만, 추천을 받은 사람마다 하나같이 극구 사양했다. 그러자 상황판단이 빠르고 핵심을 잘 파악하는 영철이가 이렇게 제의했다.
“그럼 회장을 서로 안 하려고 하니까, 인원도 얼마 되지 않으므로 회장은 관두고 회장 겸 총무를 뽑읍시다. 그에 적격인 사람을 제가 추천하지요. 다름 아닌 민대호 씨를 추천합니다. 우리 민 형은 매사에 꼼꼼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우리 모임도 역시 잘 할 것으로 믿습니다. 어때요?”
이 말 한마디에, 대호가 거절하기도 전에 이구동성으로 찬성한다고 박수를 쳐대는 것이었다. 그러니 꼼짝없이 회장 겸 총무에 대호가 걸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날 청운회원들은 한정식 식당에서 1차를 마치고 2차 단란 주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금이나 그 당시나 젊은이들은 으레 1차 식사를 마치면 2, 3차로 술집을 더듬어서 얼근히 취해 귀가하는 버릇이 있었다. 대호는 그날따라 회장 겸 총무가 돼서인지 기분도 좋아 자기가 무슨 갑부의 아들인 양 2차는 책임지겠다고 친구들을 단란 주점으로 이끌고 갔다. 그 친구들은 나이가 동갑내기이거나 차이가 나더라도 한두 살뿐이었다. 맥주가 가슴을 타고 아까 먹은 소주와 적절히 섞이자 서로 각자의 끼가 발동되었다. 먼저 대호가 그의 장기인 노래 십팔 번지를 꺼냈다.
“자, 내가 먼저 읊어보지 뭐.”
지금은 노래방이 있어 노래가사를 몰라도 화면에 나타나는 가사를 보고 흥겹게 따라 부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반상을 나무젓가락으로 두드려가며 장단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대호는 배호 가수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황소 목젖 울리는 소리로 낮게 깔면서 멋들어지게 뽑았다.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 로 시작되는 노래는 지금도 애창곡으로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 당시는 더했다. 끝부분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멋들어지게 휘어잡으니까 곁에서 같이 장단을 두드리던 영철이가,
“역시 민 형 아니 회장은 노래 하난 잘해. 정말 끝내줘. 자, 다음은 정 형이 이어받아 한 곡조 뽑아.” 같이 장단을 맞추고 있던 서무과의 정 주사가 술이 술술 넘어가듯 ‘울고 넘는 박달재’를 구성지게 뽑아댔다.
“아니, 정 형은 평소 내숭이나 떠는 줄 알았는데, 오늘 그 노래 들어보니 그동안 잔돈푼깨나 흘리고 다녔겠는데. 어이 친구들 안 그래?”
“맞아, 맞고말고. 원래 점잖은 사람이 뒤로 호박씨를 깐다고 하잖아. 자, 그럼 다음엔 내가 한번 뽑아보지 뭐.”
재무과의 송 주사가 은근슬쩍 자기 노래 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자청해서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송 주사가 이용복 가수의 ‘그 얼굴에 햇살’을 읊어대자 그 다음부턴 서로 흥에 겨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흘러간 노래들을, 나무젓가락을 두드려가며 장단에 맞춰 두서너 곡씩 구성지게들 뽑아댔다. 이날 단란 주점에서 밤 열 시가 넘도록 평소 직장에서의 못다 푼 한(?)을 노래로 풀어냈다.
직장 친구들과 청운회를 조직하고 2차까지 마신 술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도 대호는 술을 깨게 할 목적으로 겉저고리 단추를 따 벌린 채 골목으로 접어들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골목길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서너 명이 건방지게도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술은 챘어도 그것을 보는 순간 술이 어느 정도 깼다. 본능적으로 주먹이 돌주먹으로 변하면서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는 합기도 유단자이다. 학창시절과 군대에서 합기도를 연마하여 그 실력이 2단을 자랑하고 있었다.
“야 인마. 담뱃불 꺼! 어디 학생 놈들이 담배 질이야 담배 질이!”
“저 학생 아닙니다.” 이러면서 태연히 담배를 또 빨아대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울화통이 터졌다. 그 놈들이 수적으로 우세한 걸 믿고 혼자인 대호를 깔봤던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당시에는 주먹과 수도(手刀)를 샌드백으로 단련했다. 마당에는 큰 기둥을 세워 납작하게 깍은 후 새끼를 칭칭 감아 주먹에서 피가 흐르도록 단련했다. 손가락을 편 후 힘을 모아 내지르면 상대방의 복부가 뚫릴 것만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러니 주먹이나 수도가 돌이나 칼 같을 수밖에…. 그는 그런 무서운 무기(?)가 있으므로 취기가 좀 있더라도 상대를 제압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뭐? 학생이 아냐? 당장 이리와!” 그가 워낙 강하게 나오니까 기가 콱 죽어서 주춤주춤했다.
“안와? 너희들 죽는 수가 있어, 이 새끼들!” 술김에 욕설이 마구 튀어나왔다. 주춤거리는 놈을 이단옆차기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취기로 몸이 좀 둔해 발길질이 그 놈들에게 닿질 않았다.
“야, 튀어!”
학생들이 대호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감지했는지 큰길로 줄행랑을 쳤다. 그 바람에 그나마 있던 취기가 싹 가시었다.
“에이 시, 새끼들 말이야. 오늘 한번 본때를 보여주는 건데….”
내심 중얼거리면서 집으로 들어가선 옷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샌드백을 신명나게 두들겨 팼다. 그 샌드백에 아까 그 학생들의 얼굴을 그리며 주먹에서 피가 나도록…….
해가 바뀌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열리고 땅에는 무심천에 흐르는 물이 대답하여 속삭이는 듯했다. 대호도 사내새끼인지라 직장 내이건 직장 밖이건 여자만 보면 눈여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뭇 사내들처럼 결혼적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결재하러 부속실을 자주 드나들다보니 부속실에 근무하는 김 양이 눈에 점점 깊이 박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김 양은 키도 작달막하고 몸매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다만 얼굴이 동그라니 생긴 것이 눈도 크고 입술도 앵두같이 빨개서 대호의 마음 사로잡았나보다. 더욱이 대호의 마음을 더욱 달아오르게 하는 것은 그가 결재판을 들고 갈 때마다 상냥한 미소로 서로 눈이 마주치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그는 ‘아, 이 여자라면 내 배필로 손색이 없겠는데……’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더욱 가슴을 졸였던 것이었다. 사실 김 양은 요즘 여자들처럼 큰 키는 아니지만 미소 띤 그녀의 얼굴은 배꽃처럼 화사했고, 가슴이 떨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더욱이 방울을 굴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는 대호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대호는 직장에서만 서로 눈인사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직장에서 직원 극기 훈련의 일환으로 동학사로 등산을 간다는 공문이 나돌았다.
때는 봄이다. 산야에는 아련한 봄기운이 가득 차고, 먼 산은 아침저녁으로 불그레한 노을이 비꼈다. 들에 널려있는 풀잎은 벌써 싹이 돋고 북쪽의 산들도 엷게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따뜻한 봄바람은 대호의 머리를 매만지고 무심천의 벚꽃 가지들을 산들 하게 불며 지나간다. 그러나 높은 산에는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군데군데 남아 마치 새치처럼 희끗희끗했다.
직장 산악회에서 보내온 참가자 명단에는 대호는 물론 직장의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고, 가슴 설레게도 항상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김 양도 참석하겠다고 신청한 것이 아닌가! 그는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여 뛸 듯이 기뻐했다. 등산하기 전날 밤 책상에 앉아 침착하게 사랑의 고백 편지를 쪽지로 써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일요일, 말쑥한 등산복 차림으로 멋을 내고 높고 파란 하늘을 우러러 심호흡을 한 후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며 등산길에 올랐다. 버스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이나 국과장님들이 대호를 보자 부러워하는 시선을 뿌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관리과장이 그만 참지 못하고 놀렸다.
“야, 민 주사. 아주 멋져. 누구 처녀 홀릴 일 있어?”
“이거 뭐 제 평소 등산복입니다. 과장님.” 시침을 뚝 떼고 받아넘겼다.
산으로 오르면서 김 양에게 접근해 보고자 자연스레 자리 이동을 해 보았으나, 김 양은 여자끼리만 짝을 지어 오르고 있어 좀처럼 접근 기회가 없었다. 계속 접근 기회를 보고 중간쯤 오르는데 하늘이 돕는지, 앞서 가던 과장님이 여기 경치가 기막히게 좋다고 하시면서 기념사진 한판 찍고 가자고 잠시 산행을 멈추게 했다. 서로 뒤섞여 앉고 서다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 본인 스스로도 바랐겠지만 자연스레 김 양과 나란히 서서 찍게 되는 영광(?)을 안았다. 속으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 김 양에게 말을 건넸다.
“참 멋지네요. 오늘 가을산행에 참 어울리는 옷이네요.”
“뭘요. 민 주사님이 더 잘 어울리시네요.”
그렇게 말을 걸면서 미리 준비해온 쪽지를 건네줘야 하는데, 성격이 내성적이라 용기가 없었다. 순간 기회를 포착하고 쪽지를 주려고 호주머니를 뒤적이는데, 앞의 카메라맨이 사진을 찍겠다고 ‘김치’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절호의 기회가 사라졌다. ‘김치’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찰칵 하는 셔터소리와 함께 대열이 흩어졌다. 다시 자리를 정돈하고 또 사진을 찍고자 하였으나 같이 찍으려 했던 그 김 양이 여직원들과 사라지는 바람에 그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기회는 또 오겠지.’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계속 산을 올랐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아 이것도 저것도 성사를 못시키고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날 등산은 완전히 허탈한 등산이었다. 하산을 끝내고 버스에 올라앉아서 혼자 중얼거려 봤지만 뭐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에이 시부랄. 난 왜 이리 용기가 없지? 일이 안될 라니까 쪽지 전해줄 기회도 안생기고…하늘이 준 기회도 놓치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군. 사람이 일을 꾀하고 하늘이 그것을 이룬다더니 맞는 말일세 그려.’ 이렇게 그는 몇 번이나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홀로 쓴웃음을 진 채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었다. 공상에 젖어있는 그의 얼굴은 긴장되어 홍조를 띠고 있었다. 아까 하산하면서 부엣 김에 소주 서너 병 마신 술로 인하여 얼굴이 더욱 붉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며 자신의 깊숙한 가슴 밑바닥에서 자꾸만 솟아나오려는 감정을 안간힘을 쓰면서 억누르고, 마치 목석처럼 굳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대호! 이 문디자슥! 머라 씨부리노?”
곁에서 듣고 있던 영철이가 구시렁거리는 대호를 바라보고 술김에 우정의 욕설(?)을 내뱉었던 것이다. 영철이도 얼근히 취한 상태였다. 그러나 대호는 오직 김 양을 놓친 것에 대하여만 신경을 곤두세우다보니 영철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눈치 빠른 대호는 곧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고 또 공상에 젖었다.
세상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날씨와 노인네 건강과 여자를 얻는 것이라더니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넘볼 기회는 있었으나, 천명이 없어서인지 그 김 양이 일선기관으로 전근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호는 맺고 끊는 데는 칼같이 매서웠다. 남들은 한 여자를 마음에 두었으면 끝까지 쫓아다니지만 한번 끊으려 결심했으면 그 도가 얼음같이 차가웠다. 그녀와 직장 관계상 서로 헤어진 후로는 냉정히 끊고 오로지 직무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직무에만 전념해오다 그 이듬해 가을 대호가 맨 먼저 장가를 들게 되었다. 그가 서둘러 장가를 가게 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일찍이 어머니가 돌아가시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계모 슬하에서 천덕꾸러기 마냥 자랐다. 그러나 샘이 많아 다른 형제에 비해 공부는 비교적 잘했다. 성적도 학급에서 항상 상위 그룹을 맴돌았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여름방학 때 용돈도 없으므로 남들과 같이 피서여행 한번 못가보고 오로지 집에서 공부만 하였다. 그 결과 개학 후 학기말시험을 자신 있게 치러 전교에서 일등을 하는 영예를 안기까지도 했다. 담임선생님도 대호로 인하여 어깨가 으쓱해져, 학생들을 향하여 이렇게 명령을 하시는 것이었다.
“학생 여러분! 우리 민대호 학생이 이번 시험에서 전교 일등을 하여 우리 학급의 성적도 따라서 이 학년 전체 일등이야.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 고마운 뜻으로 매일 아침 등교하여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민대호 학생에게 한 번씩 절을 하고 들어가도록 해요.” 대호는 자기 스스로도 대견함을 느꼈다. 그 후로도 대호는 공부하는 습관이 떨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공부를 하였다.
그렇게 공부하여 성적은 좋았건만 그만 대학 등록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치러 어엿한 공무원 초년생이 되었다. 그러나 봉급을 받으면 장래를 생각하여 저축을 하여야 되는데, 그만 계모의 성화에 저축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봉급을 타는 즉시 용돈 몇 푼만 갖고 모두 계모에게 갖다 바쳐야 되기 때문이었다. 일 년이 넘도록 그 짓을 하니까 아무래도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그때 대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아버지에게 일대 선언을 하였던 것이다.
“아버지. 저 결심했습니다. 금년 가을에 결혼하여 살림나겠습니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잘 생각해라.”
“예, 아버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요.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뜻대로는 되지 않겠지요. 그러나 결혼을 하든 않든 가을엔 방을 하나 얻어 살림을 차릴 겁니다.”
이 폭탄 같은 선언에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참으로 대호는 대단한 놈이었다. 한번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성미의 사나이였다. 그의 특징은 성실한 태도에 있다. 그의 말은 지극히 평범하고 도도한 웅변도 아니며 하등의 기지도 없지만, 다만 속임수나 과장이 없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내심은 어떻든 남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가을까지 기다려 보았으나, 과연 아버지 말씀대로 결혼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 해 늦가을에 접어들었는데도 혼처가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나 무한정 미룰 수만 없어서 당초 결정한대로 방 하나 딸린 살림방을 전세 내어 자기 혼자만의 생활에 들어갔다. 부모님이 계신 집을 두고 소위 자취생활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살림을 나왔으니까 봉급을 타면 자기 계획대로 가계부를 정리하며 차근차근 저축해 나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 이듬해 가을 마땅한 혼처가 나타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민 주사가 시월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소문은 빨랐다.
“네. 과장님. 아직 기간이 있어 그때 가서 말씀드릴까 했는데, 소문 들으셨군요? 죄송합니다. 과장님.”
“죄송은 뭐. 아무튼 축하해요 민 주사.”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여러 과원들에게도 결혼 사실을 공표했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가족, 친지, 친구 등 여러 지인들이 운집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렀다. 대개가 축하 금으로 축하를 대신했는데, 아주 절친한 친구나 측근들은 물건으로도 축하를 표시했다. 그 중에 제일 눈에 띠는 것이 있었다. 가로가 삼십 센티에 세로가 칠십 센티 정도 크기의 중형 괘종시계였다. 괘종시계 앞면 유리에 『정․ 송․ 박․ 이』라고 예쁘게 붓글씨로 써서 금가루를 뿌려놓았다. 보지 않아도 청운회원 일동으로 보내준 것이었다. 그것을 주방 벽에 걸어놓아 삼십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서 과거 회상에 젖어본다.
청운회는 이렇듯 서로 의좋게 지내면서 몇 년을 같이 근무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어느 한곳에서만 근무를 할 수가 없다. 정기적인 순환보직으로 근무처를 달리하여 근무를 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회원들도 하나둘씩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도내에서만 전근되었더라면 별 문제가 없을 터인데, 그만 세 친구들은 정말 청운의 뜻을 품고 정 주사와 이 주사는 서울로, 송 주사는 대학으로 각각 전출되었다. 이제 남은 친구는 박 주사와 민 주사 두 사람뿐이었다.
우정은 산길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자주 오고가지 않으면 어느새 초목이 우거져 그 길은 없어지듯이 우정도 없어진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흔히 만나고 헤어짐은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던가!
만남과 헤어짐, 대호는 이 청운회원들과 같이 바쁜 일과 속에서도 정말 청운의 뜻을 품고 정겹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하나둘씩 서로 헤어진다 생각하니 왠지 허전한 분위기를 지울 수가 없다.
대호는 그들과 같이 우암산 자락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며 사계절을 보냈다. 무심천을 누볐고 상당산성도 누볐고 기타 아름다운 사람과도 만났다. 이러한 만남도 이제는 헤어짐의 시간 앞에서 아쉬워해야 할 시간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살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상반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오래 동안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빨리 잊고 싶은 사람이다. 누구나 처음엔 오래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미워하며 그렇게 살다가 잊히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혹시 살아가면서 누군가 날 잊고 싶어 하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날 잊고 싶어 하는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왜 그 사람은 날 잊어야만 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분명 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나서 당신이 잊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너그럽게 바라보면서 그 사람을 오래 기억되는 사람으로 바꿔 보기 바란다.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게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헤어지는 것보다 만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가 잊기로 했던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의 기억에서 우리도 잊히고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 먼저, 우리가 먼저 잊으려 했던 사람을 잊지 말고 오래 기억되는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 누군가도 역시 언젠간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헤어진다고 해서 모두 다 정리하려고만 하지 말고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천천히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며 오래 기억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만나고 헤어짐에 대하여 독백하고 있는데 그에게 발령통지서가 날아왔다. 지방행정주사로 승진되어 보은군으로 전근되었다. 그가 맡은 직책은 서무계장으로서 관내 종합감사도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가 1979년 여름이었다. 비록 청주시를 벗어나 타 지역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지만, 승진된 것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을 느껴 업무처리도 유난히 신명을 가지고 철두철미 추진해 나갔다. 그는 평소의 신념을 책상 모서리에 써 붙여 놓아 여러 사람들이 보도록 하였다.
『전문가적 행정처리 ․ 답습행정지양 ․ 매사에 철두철미』
이러한 구호를 A4용지 반의 크기로 써서 붙여놓으니까, 언젠가 군수님이 그걸 보시고는 ‘역시 쓸 만 한 놈이야. 모든 직원들이 본받도록 해야지.’ 속으로 다짐을 하시고는 월례조회석상에서 일장 훈시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 일로 그는 군수님의 보이지 않는 후광에 힘입어 맡은 일에 대하여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갔다.
대호는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관내 기관에 대하여 감사반장이 되어 반원들과 함께 종합감사를 나갔다. 한참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 건 크다면 큰 지적사항이 발견되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시말서 감이었다. 그런데 일이 공교롭게도 그 지적대상이 대호 친구인 것이 문제였다.
대호는 이곳 보은에 부임할 때 감사과장으로부터, 보은에서는 여태껏 단 한 건의 시말서 징구 실적이 없으니 내려가거든 한번 감사를 철저히 해서 시말서 이상을 받아오라고 넌지시 언질을 받았었다. 그로 인하여 대호는 감사 중에 속으로 중얼거렸던 것이다.
‘이거 참 큰일이네, 잡아가자니 분명 시말서감이요, 안 잡아가자니 너 역시 시말서 한 건 징구도 못하는 놈이라고 상부로부터 질책을 받을 거고……. 또 친구 녀석이 마음에 걸리잖은가! 에이 일단 잡아가고 보자.’
어쨌든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이기 때문에 확인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가지고 갔다. 받아온 확인서를 처분 전에 요약을 해서 결재를 올렸다. 비고란에는 법규(제 몇 호)의 규정에 의하여 주의, 시정, 시말서 등으로 상신을 했다. 가지고 온 확인서 중 나머지는 주의나 시정 조치로 했으나, 한 건만은 시말서로 상신했다. 결재과정에서 혹시나 걸리지나 않을까 고심을 했는데, 예상대로 군수님께서 한참을 읽어나가시다가 시선을 대호에게 멈추며 사정조로 말을 하였다.
“이거……, 시말서를 징구하지 말고 고쳐줘서 없었던 일로 하든지 주의나 시정으로 처분하면 안 될까?”
대호는 군수님이 평소에도 관대한 처분을 한다는 정보를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도 하고 결재를 올렸던 것이다. 그는 군수님 말을 듣고,
“죄송합니다. 이것은 여기 비고란에 적혀 있듯이 시말서를 받지 않으면 군수님이 다칩니다. 곤란합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라 고치면 오히려 저희들이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무슨 뇌물이나 받았는지 알고요.”
“에이, 뇌물은 무슨 뇌물. 정말 그럴까?”
“안됩니다. 다만 군수님께서 책임지신다면 그렇게 하고요.”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뭐.”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면서 결재를 해주시었다. 그때부터 관내에는 싸늘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없던 시말서를 징구하는 처분을 내렸으니 말이다.
칠십구 년 십 이륙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고, 팔십 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급박한 정세변화가 있었다. 「찾아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시기이고, 만났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회이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도, 대호는 시기와 기회를 잘 포착했다. 또한 위기관리에도 남보다 뛰어났다. 그러한 기질로 보은에서의 2년여가 넘는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도 본부로 전근되었다. 팔십 년대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내세운 국정지표가 『정의사회구현』이었다. 이의 구현 방안으로 정직 ․ 질서 ․ 창조를 실천 덕목으로 하여 추진되었다. 각 시 ․ 도에는 이를 추진하기 위한 기구가 계 단위로 설치되었는데, 교육지도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그 계의 차석으로 근무하면서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했다. 오토바이 타는데 남다른 취미가 있어 출퇴근은 물론 휴일 교외로 드라이브도 자주 나갔다. 또한 그 당시 질서 지키기가 사회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맡은 바 업무와 연관 지어 특히 학생들의 자전거 통학지도를 그 오토바이로 했다. 우측통행, 2인승 금지, 신호 지키기 등을 이론적으로는 공문을 시달하여 교육은 시키고 있으나, 실제 거리에 나가보면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비교육적인 사회현상을 직시하고 대호는 직접 오토바이로 지도하면서 출퇴근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출퇴근하면서 질서지도를 해오다 그는 뜻하지 않은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느 토요일, 그는 퇴근하면서 자전거 통학질서를 바로잡으며 교차로 진입로에 접어들었다. 좌회전을 하려고 서서히 오토바이 핸들을 꺾고 있는데, 우측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시내버스가 오토바이를 측면으로 들이받는 것이 아닌가!
그 사고로 의식불명이 되어 청주병원에 실려와 응급처치와 응급수술을 마쳤다. 그러나 워낙 상처가 깊어 지방 의료진으로는 대수술을 못하고 대전 대학병원으로 응급 후송했다. 그곳에서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수술과의 전쟁을 치렀다.
대엿새 후 정신이 돌아 눈을 떠보니 대학병원이란 걸 알았다. 실로 엄청난 대 사건이었다. 영락없이 죽는 것으로만 알고 장례 준비만 하고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니까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이건 기적이야. 보통사람은 못 일어나. 하긴 운동을 그렇게 죽어라고 하더니 살았지 그렇지 않으면 어림도 없지. 어림도 없어.」
그렇다. 그는 합기도로 단련된 몸으로 매일같이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운동에 투자했다. 너무 운동을 심하게 하니까 아마 하늘이 시험을 했나 보다. 얼마나 튼튼한가 하고…….
두 달이 지나 몸이 빠르게 회복되어 일단 퇴원했다. 퇴원은 했지만 아직도 물리치료 등 마무리 치료할 것이 많아 통원 치료를 하면서 정상 근무에 들어갔다.
그 후로도 대호는, 비록 오토바이로 거리질서를 직접 지도하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비운을 맞지만, 맡은 바 업무 처리에 혁혁한 공을 세워 국무총리 표창장까지 받는 영광을 누린다. 그러나 인사권자들은 교통사고 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요 요직을 배제한 채 오직 한직으로만 내돌렸다. 그나마 사무관 승진도 시켜주지 않는 것을 투쟁하여 추천을 받아내, 몇 년 후 승진 시험을 치러 무난히 합격하였던 것이다. 모두들 교통사고로 인하여 공부에 신경을 못 써 승진시험에서 떨어질 거라고 믿었지만, 그의 피나는 노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얼마나 피를 말리는 공부와의 전쟁을 했는지는…. 그것도 남들은 두세 번씩 봐서도 안 되는 시험을 그는 단 한 번에 해치웠으니 말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조그만 구멍에 잠긴 물에서는 잔을 띄울 수 없고,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뜻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 여건이 조성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한편 서울이나 대학으로 간 청운회 친구들은 직접 만날 기회는 없지만 그들의 동정은 소문으로 들어 대충 알고는 지낸다. 모두들 청운의 큰 뜻을 품고 활동하였기에 사무관 또는 서기관으로 승진되어 각각 요직에 근무하고 있다는 소문은 듣는다. 그 때마다 전화로 축하 인사를 잊지 않고 나눈다. 모두들 대호보단 더 크고 더 넓게 뻗어나가고 있어 그것으로 대신 위안을 삼는다.
비록 한직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신명나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일요일 친구 여혼에 예식장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풍문으로만 듣고 있던 영철이 친구가 그날 대호 시야에 클로즈업 되었던 것이었다.
만나서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들을 나눴다. 영철은 영철이 대로 집이 서울이므로 서울로 가야 되고, 대호는 대호대로 다음 스케줄이 있어 서로가 바쁘다 보니 다음에 서로 연락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 이튿날 대호는 영철이 준 명함에 있는 이메일 주소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반가웠네! 우리가 어제 만난 것이 얼마만인가. 4층에 오른 순간 자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가눌 수가 없었다네. 나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놈은 2003년에 짝을 지어줬고, 둘째 놈은 아직 취업 준비 중이라 결혼은 접어두고 있다네. 나이는 벌서 스물여덟인데 정말 큰일이야(중략). 우리가 칠십 년대에 청운회를 조직하여 출발한 지 얼마 만에 풍비박산 됐는가. 그래도 내가 결혼식 때 받은 청운회 결혼선물 괘종시계는 아직도 울리고 있다네. 거기에 성만 따서 「정․ 송․ 박․ 이」라고 씌어 있지. 나는 그걸 가끔 보며 지금쯤 이 친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 하고 허공에 그려 본다네. 나는 자네가 아는지 모르지만, 지난 84년도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여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네. 그로인해 내가 아무리 똑똑한 척 몸부림 쳐봐도 윗분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아. 그래서 현재 사무관으로 만족하고 있지. 동기들은 거의 서기관이 되었는데 말이야. 지금은 건강이 바로 회복되어 나와 맞장 떠도 그동안 닦은 합기도로 절대 지진 않는데… 그걸 누가 알아줘야지. 하긴 사무관도 그때 시험을 봤으니까 됐지, 지금같이 심사였다면 어림도 없지. 이제 2년 남짓 남았지 정년이. 정년에 대비해서 글 쓰는데 관심을 갖고 소설과 시조를 쓰고 있다네. 문단에 등단도 하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연상하며 이메일로 가끔 연락하게나. 안녕.』
대호가 보낸 이메일을 받고 영철이도 곧 답장을 보내왔다.
『반가운 얼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2~30여 년 전 그때 그 시절! 정말 반가움뿐이었지… 퇴역을 앞두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 덕분에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날이었지… 나도 디스크 수술이 재발되어 직장도 떠날까 했지만, 건강 다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지금은 정상인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중략)? 글을 쓰고 있다니 부럽기만 하군. 하긴 자네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으니까… 이번 만남을 계기로 자주 소식 전하기로 하세나. 반갑구려, 반가워! 다시 연락할게…』
문호 괴테는 ‘사람이 늙어가면서 사라져 가는 것은 친구와 일과 재산, 그리고 성욕과 지위와 미래와 희망 등’ 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친구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걸까?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만나게 되고, 인연이 없으면 코를 맞대고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인연이 다면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있겠지…」속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대호는 청운회 친구들이 결혼 선물로 준 괘종시계에 박혀있는 「정․ 송․ 박․ 이」를, 비록 지금은 글씨의 빛이 바랬지만 옛일을 회상하며 묵연히 바라보다 그 친구들의 얼굴들을 하나 둘씩 떠올려본다. *
※ 필자 약력
성명 : 문 승 호(文 承 鎬)
아호 : 봉로(奉爐)
주민등록번호 : 480310-1351126(청주 출생)
주소 : <우360-081> 청주 상당구 탑동 193번지(일신로29)
직장직위 : 전 보은교육청 관리과장
최종학력 :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석사. 2003년)
E-mail : 0182130449@hanmail.net
전화 : 자택(043)221-0615. 010-6801-5503
문단경력 : 충북 청주 출생
의료보험체험수기 입상(1996년)
청주시주최민방위표어공모 최우수작당선(1996년)
제1회 공우신인문학상 수필 당선(1998년)
제5회 공우신인문학상 소설 당선(1999년)
제14회 공우신인문학상 시조 당선(2001년)
충청일보 무심천칼럼 집필(1999년)
중부매일 세정유감 집필(2003년)
동양일보 프리즘 집필(2006~2007년)
저서 : 유럽연수기행문(서울에서 폼페이까지 1997년)
정년퇴임에 즈음한 시조집(날개를 접으며 2007년)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원
충북시조문학회 회원
충북수필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