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本文】
"경에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고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經云 不見有無卽眞解脫이라 하니 何者是不見有無오. 문 경운 불견유무즉진해탈 하자시불견유무
答 證得淨心時에 卽名有요 於中에 不生得淨心想이 卽名不見有也니라. 답 증득정심시 즉명유 어중 불생득정심상 즉명불견유야 得想無生無住하야 不得作無生無住想이 卽是不見無也니
득상무생무주 부득작무생무주상 즉시불견무야
故로 云不見有無也니라. 고 운불견유무야 楞嚴經云 知見에 立知하면 卽無明本이요 능엄경운 지견 입지 즉무명본
知見에 無見하면 斯卽涅槃이라 亦名解脫이니라. 지견 무견 사즉열반 역명해탈
【講說】
깨끗한 마음(淨心)이란 일체망념의 객진번뇌가 완전히 떨어져 없음을 말하니 곧 자성청정심(自性凊淨心)을 말합니다.
자성청정심을 증득한 '있음'과 자성청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 '있음'을 보지 못함과의 관계는 단계적이고 차제적인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성청정심을 철저하게 증득할 것 같으면 그 가운데에서 자성청정심을 증득했다는 그 생각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성청정심을 얻은 연후에 얻었다는 생각도 없다는 단계적인 것이 아니라, 청정한 마음을 확실히 증득할 때 이미 청정한 마음을 증득하였다는 그 생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성청정심을 확실히 증득할 것 같으면 여기서는 일체망념이 다 떨어져서 증득했다는 생각도 없으니, 그것을 나지 않는다[無生]고 말하고 머물지 않는다[無住]고 합니다. 그리고 나지 않음과 머물지 않음을 증득해도 증득했다는 그 생각까지도 다 떨어진 것을 '있음과 없음을 보지 못한다[不見有無]'고 말씀한 것이니 있음과 없음의 양변을 떠난 이것이 중도(中道)입니다.
《능엄경》말씀과 같이 철두철미하게 바른 지견(知見)을 증득하면 지견을 증득했다는 지견이 서지 못 한다는 것이니 이것을 열반이라 하고 해탈이라고 했습니다.
열반에는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여열반은 멸진정(滅盡定)을 얻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말하나 아직까지 없다는 견해[無見]를 떠나지 못하였으며, 무여열반은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를 완전히 떠났으므로 구경각(究竟覺)인 묘각(妙覺)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성청정심을 증득하여 있다는 견해와 없다는 견해를 완전히 여의어 무생심(無生心)과 무주심(無住心)을 성취하되 성취하였다는 생각도 없음이 곧 열반이고 해탈이며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라는 것입니다. _(())_
출처 : 성철 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강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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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능엄경 읽어 보아도 이해 할수 있는 것이 많아요 더 열심히 읽어보아야 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_()()()_
능엄경은 수행서라 참 난해하지만 꼭 공부해야 할 경전입니다. 감사합니다. _()_ 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
"무여열반은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를 완전히 떠났으므로 구경각(究竟覺)인 묘각(妙覺)을 말합니다."... 종로 낙산에 있는, 홍파스님께서 주석하시는 觀音宗 <묘각사(妙覺寺)>.
寺名의 깊은 의미를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인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묘각사 순례를 해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