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ER ARTIST
안호범
An, Ho-Bum
제40회 色의 오케스트라
안호범 繪畵 화상과 현실展
2005. 11. 23 - 12. 6
조형갤러리
色彩의 魔術師,
40번째 演奏하는 自然의 讚美
김남수 / 미술평론가
본란의 표지작가 안호범은 올해로 고희를 2년 남짓 남겨두고 있다. 그리고 꼭 40 번째의 작품전을 갖는다. 필자가 아는 원로화가 H씨는 고희전을 가지면서 ‘이제야 뭔가 예술과 인생을 알 것만 같다'라고 지난 세월을 반추하면서 술회한 적이 있다. 화단은 그를 정상급 원로로 추앙하고 있는데 그의 겸손함에 새삼 숙연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 원로가 피력한 이 말은 귀 옛말로 전한 것이기 때문에 솔직한 심금의 토로가 아니었나 필자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우리 화단의 원로 안호범 화백은 서양화단의 미술인 가운데 혼신의 화혼(畵魂) 을 불살으면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열심히 살아온 우리 시대의 사표가 되는 화가요, 가장 정직하고 진솔하게 살아온 양식과 자의식이 강한 예술인이다. 필자는 근 30여 년 가까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지켜보고 온 사람 가운데 한사람이다. 사반세기 전 필자가 언론인으로서 신문사에 근무했을 때도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을 쓴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으며, 20년 전 필자가 미술세계 편집주간으로 있을 때도 그의 ‘안호범 수채화전'에 대하여 쓴 글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가 걸어 온 화가로서의 역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편이다. 이 무렵 필자는 작가 안호범을 중견작가나 엘리트라는 호칭을 하면서 글을 썼지만 - 물론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한 것이지만 - 이젠 경륜이나 작품의 완성도나 연륜을 집약할 때 우리 화단의 산 증인요, 원로라는 호칭을 하여도 손색이 없는 예술인이 아닌가 하고 감히 확신과 주장을 하고 싶다. 이번 작품전이 그의 작품세계의 칠순전을 결산하는 의미가 있고, 참고로 필자가 평한 20년 전의 전시평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상략-
‘작가 안호범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할 역량 있는 중견의 한사람이다. 그는 초기부터 자연주의파라 일컬을 만큼 대자연을 소재로 한 일련의 풍경시리즈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주어진 소재는 무엇이나 자재롭게 소화 낼 수 있으면서도 그의 예술이 각기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은 작가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을 그리느냐' 가 아니고 ‘어떻게 그리느냐' 가 항상 표현상의 연구과제로 삼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기법과 방법론의 모색이 그것이었으며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을 해서 정리해 보면 ‘평면성' ‘단순성' ‘조형성'을 들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초기의 그의 회화예술은 소재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섬세하고 리얼한 기법이 두드러져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논리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근작들에선 자연의 현장에서 에스키스나 스케치 정도의 작업을 끝내고 정작 작품의 완성은 화실에서 작가의 화의에 의한 표현질의 특질만을 재구성, 재창조함으로써 불필요한 덧 살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감성과 풍토, 그리고 체질에 맞는 작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각적인 형태미에 강점을 두기보다는 내재한 조형미에 강점을 둠으로써 한국적인 이미지와 향수가 농축된 함축의 미를 화폭에 담자는 것이 작가의 조형의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하생략 라고 평하고 있다.
그로부터 12년 후 지난 필자는 다시 평문을 쓰고 있다. 우선 직감으로 이해되는 것은 그동안 작가가 깊이 천착해 온 조형의 폭과 깊이와 주제와 정신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작업하고 있는 예술양식이나 표현과 기법 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이 위대한 것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창조적인 행위 때문이다. 또한 예술행위가 관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시각적인 미를 항상 새롭게 창출 해 내기 때문이다.
안호범의 작품의 특징은 기법과 양식의 다양한 변주, 색채변화의 마술성을 들 수 있다. 가령 삼원법에 근거한 원근의 분명한 묘사, 때론 원근을 무시하고, 평면에 접근한 듯한 현대감각의 묘한 공간구성, 그때 그때 작가의 화의에 따라 정교하고 섬세한 아카데믹한 선의 묘사, 때론 선을 파괴하고 면만을 확산시켜 놓은 듯한 기법 등을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른바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유자재로운 조형기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 안호범 작품세계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특히 색채의 미학은 그의 예술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발묵법(潑墨法). 예를 들어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먹색의 번짐 효과라든지, 색점의 배열, 한국의 사계(四季)를 연상케 하는 강렬하면서도 작가가 희구하는 선명성이 극명한, 능숙능란(能熟能爛)한 색깔의 구사 등에서 그의 출중한 기량을 읽을 수 있다. 시각적인 감동과 한국의 서정과 향수가 함께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다정다감한 시인의 밀어처럼, 색채의 명연주자가 리드미컬한 오케스트라를 협연하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회화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후 전시작품의 명제들은 세계의 명소나 이름난 관광지를 소재로 하여 그린 탓인지 명제부터 시어가 속삭이는 제목이 한층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가령 <파리의 공원>, <프라하 그 아름다운 새벽에도 - 내 가슴에 지금도 ->, <러시아 그 차거운 겨울 같지만, 다뜻한 인정이>, <이효석의 봉평, 안호범의 봉평>, <산호세의 농장>, <센프란시스코 골든 파크의 사랑>, <스위스 레만호수의 기억>, <어머니가 계신 홍천의 겨울>, <프라하는 온 세계의 희망이었다>, <모스크바의 겨울밤은 찾아오는데>, < 동강 입구 마하의 나의 숨결>, < 베네치아의 기억>, <겨울의 모스크바 하나님을 위하여>, <성 페테르브르그의 겨울바람과의 대화>, < 프로레시아의 추억>, < 그대 기다리는 성당>, <북극의 겨울>, < 세에느강의 인상>, <서울 장안을 지키는 오봉산>, <설빙 몽블랑의 신비여>, < 평창읍을 향한 화가의 눈>, <성 페테르브르그의 로맨스>, < 연수리의 사랑>,< 세에느 강은 흐르고 있다>, 등 대부분의 작품들이 시정(詩情)처럼 속삭이고 있다. 아마도 작가의 마음속에 꼭 그리고자 담아 두었던 외국 산하의 풍경들을 한꺼번에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품마다 심혈을 기울여 묘사한 흔적이 뚜렷하다, 비교적 정직하고 사실에 충실한 소묘력이 눈에 띄지만 한편 소재와는 또 다른 작가가 회구하는 자연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 돋보이고 있다.
그의 스물한 번째의 작업노트에는 ‘나의 생애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나름대로 생을 찬미하며 열광적으로 작업한 것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맑은 호수와 시원한 가을 하늘, 마냥 마음을 비우고 적극적으로 즐겁게 몰두했다고 자위를 해 본다. 작가는 모름지기 혼신의 정열을 쏟아 작품제작에 화혼(畵魂)을 불살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요 지론이다. 지금도 전업 작가로 불같이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취미나 소질, 정년도 없는 마술인, 오직 한길을 가는, 화가라고 생각하니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하늘에 감사하고 싶다”라고 독백처럼 적고 있다. 사실은 칠순을 눈 앞에 둔 원로의 마음은 동심처럼 맑고 순수하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화가의 길을 가는 천부적으로 선택된 예술인인지도 모른다.
安浩範 作品의 過去의 遍歷과 行蹟들.
사법학교 시절부터 기초수업기를 철저하게 익히고 닦은 그는 자연, 사물, 인물 등 대상을 통하여 피사체의 소재를 설정하고, 작가의 감성에서 자기세계를 표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무렵만 하더라도 자연의 소재에 충실하였으며, 과장이나 허세를 철저하게 배제를 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표현양식과 방법론에서는 대상에서의 감동을 재구성하는 작업들이 벌써 이때부터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여느 작가와 다른 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시 말해 소재의 재구성주의를 추구하였으면서도 현장의 실경중심의 재제와 소재들이 사실을 근간으로 하여 명료하게 등장을 했으며, 특히 색채감각 등은 사생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현장의 사실주의 묘사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安浩範의 現在作品과 그 可能性
작가의 생활(인생)을 통하여 모티브를 설정하고 대상을 이 입(移入)하는 과정에서 형식미보다 내용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정신주의가 등장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꿈과 환상의 이야기를 자유분방하게 화면에 등장 시키는 등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조형미로, 자기언어를 구성하는 한층 승화된 경지에 도달하려는 노력과 집념이 돋보이고 있다. 특히 환상적인 것은 화면의 조형적 분할에 의하여 설채(設彩)를 하는 그가 연주하는 색채의 마술성이 돋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교과서적인 기본질서에 충실하기 보다는 회화성과 예술성에 표현의 강점을 두고 작가 특유의 자기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특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희를 바라보는 안호범씨의 이번 40회 ‘색의 오케스트라 회화 환상과 현실전'은 지난 ‘자연의 소리, 색의 오케스트라 회화전'에 이어진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색채의 연장에서 한국적인 선이 적극적인 표현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선의 얽힘은 자연의 식물, 곤충, 바위, 산, 모든 조직의 세포가 서로 연결되어 무너지지 않는 우주의 원리를 나타내며 또한 전 세계인의 영과 혼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연결고리로 인류의 안전과 평화를 가져오는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짜임의 선이 무너질 때는 인류에게 수많은 화를 가져올 것을 두려워하여 작품으로서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표현형식은 자연의 섭리, 한국적 돌각담,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를 호소함이요, 또한 굵은 형상의 윤곽선은 작가자신의 자아의식을 강조하며 대상과 자신을 하나로 보려는 강한 집념으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의 대상은 심상에 내재되어 있는 바램, 꿈, 자유의 의미를 동화와 같은 순수성에 바탕을 두어 비몽사몽 같은 행복의 나래를 자유분방하게, 회화라는 미의식의 바탕에서 펼쳐보려는 파노라마이면서도 유토피아적인 자신의 낙원을 기원하는 최상의 기도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사실이 아닌 가슴 속에서 이야기하는 현실과 과거, 미래를 작가 특유의 화면 구성법으로 탄탄한 구성원리와 미적 쾌감을 강렬하고도 서정적인 색의 대비로 내용미와 형식미가 하모니를 이루는 신선하고도 감동스러운 유쾌한 작업을 이들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작가 안호범은 앞으로도 현실과 환상의 세계로 넘나들면서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개되고 있음을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結 論
본란은 표지작가로서의 ‘안호범의 예술과 생애'를 심층분석을 하면서 개략적이나마 훑어보았다. 그를 한마디로 압축을 하면 ‘가장 안간적이고 진솔한 예술인, 독실한 신앙인으로 후회 없는 생애를 살아온 사표적인 인물'이라고 꼬집어 말 할 수 있다. 그의 예술세계는 정상의 경지에 가 있다. 앞으로 그가 지향해야할 과제와 좌표는 인간주의 완성에 있다. 그의 예술은 종교와 인간의 해방에 접목함으로서 마지막 완성의 수준에 까지 도달하는 것이 그가 염원하는 최상의 기도요, 극치다. 그의 예술이 한국미술의 창조적발전에 일조할 것으로 확신한다
작가 안호범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군 봉평면 창동리에서 출생했다. 태기산 자락 봉평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의 전설적인 인물 이효석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며, 산자수려한 태백의 정기가 흐르는 이 고장은 많은 문화 예술인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다. 그도 태기산의 기운을 몸에 품고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초등학교를 이곳 두메에서 보낸 그는 춘천 사범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심사위원을 비롯한 각급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무려 30여회나 지낸바 있으며, 경원대 강사와 중국연변 예술대 명예교수 등을 역임한바 있다. 또한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국의 초대전 100여회, 국내 그룹전 및 초대전 200여회 등 실로 엄청난 작품활동을 해 왔다. 그동안 한국미술의 창조적인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바 있는 그는 동료들과도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어 온 의리가 강한 작가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특히 서양화가 최광선, 작고한 최상선 등과는 형제간 이상의 돈독한 우정관계를 유지해 오고 왔다. 작가에게 고향이자 탯자리인 향수와 서정이 물씬 서린 봉평마을을 자주 찾으며 그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고 한다. 동료 간에도 의리가 있으며 한국미술계의 비리 등 부조리 척결에 앞장서온 그는 불의와는 타협을 참지 못하는 올 곧고 강직한 성품도 가지고 있다.
삶의 內在, 그 형상화로서의 自然
안호범의 풍경들
박용숙 / 미술평론가
76년 <산야>, <강변>, <귀로> 등으로 서울서는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거반 2년마다 꾸준히 발표를 거듭해 온 안호범이 어언 제14회전을 맞는다. 공식적인 화력만도 만만치 않은 햇수를 넘겼고 여기다 수학시절을 합치면 그의 미술시대는 가히 원숙기에 접어든 셈이다. 그에게 있어서 아주 의미 있는 이 시점을 목격하면서 나에게 동향 선배인 그의 그림세계를 좀더 친근하고 확실하게 자리매겨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관심 있는 주제라고 할만한 것은 지금까지 그가 수미일관하게 그려 오고 있는 풍경들이 보여 주는 자연이란 어떤 의미의 것이며 그는 이 자연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경우, 다시 말해 그의 풍경들이 보여 주는 ‘자연'이란 어떠한 의미의 것인가 라는 물음부터 다루어 보기로 하자. 이 물음에 대해서는 ‘안호범은 타고난 自然人이다' 라는 명제를 전제로 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에 관한한 이 말은 결코 범상한 것이 아니기에 굳이 이것을 여기에 하나의 단서로 제기해 두는 것이다. 일찍이 그는 강원도 평창에서 가까운 두메산골 봉평에서 태어나 그곳의 꽃들과 들 풀 속에서 자랐으며 춘천을 오가는 산야와 강변을 무대로 심성을 익혔던 것이다.
‘나의 원천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어렸을 때의 감흥에 있는 것 같다. 바지랑대 위에서 파르르 흔들리는 잠자리의 반짝이는 날개와 매미의 나래. 투명한 짜임새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 때를 계기로 나는 오밀조밀 짜여진 나무 가지 사이로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했고, 장독대 옆의 봉숭아와 장다리 꽃, 터밭의 무우꽃과 연보라빛 들꽃을 찾으며 굴러가는 낙엽의 아픔을 음미하는 계절의 숨소리들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게 되었는가 보다.'
<작가 노트 -올림픽 공원 중에서ㅡ>
윗글은 그가 금년 4월에 기술한 수상록의 일부를 옮겨 본 것인데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동식물들, 하늘, 구름, 계절의 감각들이 또한 그대로 금번에 출품되고 있는 작품들의 주제가 되고 있는바 그럴 만큼 그의 심성과 기질의 전부는 자연을 향하고 있으며 아예 자연 속에서 배태되었다고 말해서 좋을 듯싶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잠을 아껴 제작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처럼 살고 있다는 것은 곧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확인이 아닐까. 이런 가운데 기쁨과 슬픔, 고독과 환희, 그리고 아픔을 생활세계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 나의 그림이라 말할 것이다.
그가 자연에 대해서 갖고 있는 감회나 사랑은 더 언급하지 않아도 남다른 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일단 그가 사랑하는 자연이란 그에게 어떠한 의미의 자연으로 인식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살고 존재하며 생활하는 일의 확인'의 대상, 나아가서는 ‘기쁨, 슬픔, 고독, 환희, 아픔 등을 생활기록으로 남겨야' 할 일의 계기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리는 그가 이해하고 있는 이러한 자연을 간단히 <삶의 형상화>로서의 자연이라 줄여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과 존재를 형태 짓는 터전이거나 원천으로서 이해되는 자연은 따라서 물질적이고 차가운 자연이 아니라 심적이고 따뜻한 모태와 같은 자연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을 그려내기 위한 접근방법으로서 <자연>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풍경'의 이모저모를 주제로 떠 올리면서 이러한 주제들에다 자신의 삶(生)의 의미를 내재시켜 보려고 한다.
예술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生)의 흐름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같은 방법, 같은 색채에 의한 작업은 지겨운 것이며 이를 배격한다. 오직 감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주제와 내용, 형식, 색채, 기법이 선택되고 변화되며 가기를 바라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의 두 번째 관심이자 그가 자연을 그려내고자 하는 방법은 특히 <感性의 흐름>을 따른다는 것이다.
불타는 듯한 산야를 보고 환희와 사랑을 느끼고 쓸쓸한 들판의 스산한 바람과 낙엽을 보고 고독과 적막을 느끼는 감성(感性)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변화되어가는 자연과 성숙되어가는 연륜에 의해 신의 섭리와 같은 필연을 그리고 싶다.
정확히 말해 그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방법들은 주제를 통해 감성의 변화와 흐름의 표출을 시도하되 이러한 시도에 의해 주제(풍경)들에다 자신의 생(生)의 의미와 가치들을 내재시키려는 데 있다. 초기의 풍경들이 색채의 점묘에 의해 섬세한 광채를 담아보이다가 그 후 특히 근자에 이르면서 색면에 의해 단순화되고 명쾌해지는 특징을 보이는데, 색채의 중요성을 마치 음악에 있어서 음의 중요성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시가 있는 그림처럼 함축미를 지향하면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 보이고자 한다.
이처럼 음미되는 자연과 이 자연에 접근하는 그의 방법은 그의 화력 전체를 관류하는 문맥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근자의 풍경화들은 그 하나의 정형(定形)을 보여준다. 강변, 해변, 언덕, 들판, 고목, 산야를 집중해서 다루되 이 주제들에다 짙은 농도의 감성을 이입시키면서 감성의 변화(흐름)를 계절의 변화에다 유추(類推)시켜 보이기 위해 사계(四季)의 풍경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 봄의 꽃들과 시냇물의 흐름, 여름의 푸른산과 짙푸른 들녘을 따라 작가의 감성은 짙고 경쾌한 춤을 춘다. 그런가 하면 해변과 들판의 바이올렛과 황색 빛깔로 대표되는 가을의 정취와 싸늘해진 겨울눈으로 덮힌 파리한 흰 들판에서 또 다른 생명의 느낌과 감성의 환희를 경험한다. 이를 위한 화면의 구성과 컬러링은 정통 자연주의 회화의 것을 차용하고 있으나 이것들 역시 자신의 감성의 흐름을 표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이 모든 특성들에서 엿보이는 그의 풍경들은 결국 그가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의 어둠과 밝음, 아픔과 기쁨을 한데묶은 희망의 유토피아에다 자아를 투영시킴으로써 현실의 중압감에서 해방하고자 하는 몸짓으로 보여진다. 우리 또한 그의 그림들을 볼 때 우리의 현실들이 우리들을 압박하고 있는 중압감으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1991. 6
이효석의 봉평 ! 안호범의 봉평 !
글. 안호범
이효석은 봉평에서 태어나 봉평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안호범도 봉평에서 태어나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봉평면 창동리! 언제나 정겨운 내고향의 지명이다. 나는 이 봉평의 장거리 중심지인 삼거리 교차지점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졸업시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뒷편 멀리 장엄한 태기산과 산삼을 우려내는 계곡이 있고 그 물줄기가 우리집 앞 도랑으로 사철 끊임없이 흘러 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좌우로는 황소의 잔등과 같은 학교 뒷동산 샛터마을 뒷산이 늠름하게 유유히 평촌을 거쳐 판광터 백옥포리를 지나 장평으로 막을 내리는 정기가 서려 있는 아담한 삶의 터인 것이다.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 철쭉꽃을 시작으로 청아한 뻐꾸기 소리와 함께 아카시아꽃향기가 가득 채웠었다. 여름이면 매미소리와 소낙비를 등에 업은 시냇물에서 텀벙대는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메아리쳐 오는 작고 아늑한 이야기의 동네인 것이다. 그리고 8월부터는 이효석의 소설에 등장하는 메밀꽃이 산허리에서부터 온 들판을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반짝이며 그 위로 고추 잠자리가 맴도는 계절의 향기가 넘쳐오는 나의 고향인 것이다. 또한 겨울이면 내 어린 가슴 아래까지 차오르는 포근한 흰눈은 화롯불의 군밤과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로 깊은 겨울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옛추억의 파노라마인 것이다.
그 시절 우리집은 장날, 장거리의 중심부였다. 아래 위로 100여미터나 펼쳐지는 시끌벅쩍거리는 봉평 5일장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흥분과 기대로 마음을 들뜨게 한다. 각양각색의 옷가지, 먹거리, 장난감, 생활용품들이 푸짐이 쌓여 소리높여 외쳐대며 자랑하는 구경거리는 우리 아이들에겐 유일한 낙이었고 즐거움이었다. 헌 고무신짝, 쇳조각, 약초, 살구씨 등을 열심히 모아 이것이 장날에는 비스켓이 되고 눈깔사탕이 되며 울릉도 호박엿이 되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안에서 군침이 돌게 하는 최고의 간식이고 유일한 먹거리였다. 나는 그래도 그 시절 2~3대의 트럭이 있고 메리야스, 정미소공장과 가게가 있는 제법 시골에서는 부자집의 둘째로 태어나 무엇하나 부족됨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언제나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생활이었지만 나는 장거리에 있는 그 모든 것이 더 좋아 보였고 맛이 있었고, 또한 재미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장거리에서 뭣인가 사고 먹고 갖고 싶어서 어머니 몰래 지갑에서 십환짜리 3장을 슬
쩍하여 장터에 나가 아주 재미있게 숫자 찍기 놀이도 하고 설탕빵, 국화빵도 사먹으며 아이들과 같이 울릉도 호박엿을 입에 물고 샛터 마을쪽 ‘소'에 가서 신나게 멱을 감았다. 돌아올때는 성황당이 있는 큰 돌벼나무, 느티나무 밑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술래잡기도 했다.
그러나 집앞에 다다랐을 때 콩당거리는 가슴은 다 까먹은 삼십환의 어머니 돈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도둑고양이처럼 방에 들어섰을 때는 벽지무늬가 저승사자 같이 보였고 겁이 났다. 금년 정월에 세상을 뒤로 하시고 소천하신 그 인자하시고 엄격하신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교육에 나는 모든 것을 실토하고 그 댓가로 호된 종아리를 맞았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참어머니요, 교육자라고 자부하고 싶다.
지나간 소년시절의 그 사랑의 아픔들이 가슴속 깊이 알알이 저며오는 이 봉평은 나의 예술생활에 절대적인 소재요, 표현대상이었다. 나의 집 뒤로 다섯번째 있는 대장간, 학교 뒷동산 옆의 옹기가마, 이효석 생가로 가는 길목의 성황당과 돌배나무, 느티나무, 평촌의 용이 승천한 팔석정, 메밀꽃 하얗게 핀 산등성이 .... 이 모든 어렸을 때의 정서가 오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감성이요, 예술의 초석이었나 한다.
이제 뒤늦게나마 뜻있는 고향사람들이 시작한 이효석 ‘메밀꽃 축제'가 두번째를 맞게 된다고 한다. 그 정성이 승화되어 영원한 아름다움이 뻗쳐나가도록 기원하여 본다.
작가탐구
안 호 범
An, Ho Bum
2002. 10.10 ~10.23 하나로갤러리 1실
자연의 현장에서 에스키스나 스케치 정도의 작업을 끝내고 정작 작품의 완성은 화실에서 이를 수단으로 한 또 다른 자연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쩌면 작품완성의 프로세스이기도 하며 안호범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왜냐면 작가의 화의()에 의한 표현질의 특질만을 재구성 재창조 한 것이 마지막으로 화폭에 남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성과 풍토, 체질에 맞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의식과 정신주의, 기량을 가진 화가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호범의 경우 시각적인 형태미에 강점을 두기보다는 내재한 조형미에 역점을 둠으로서 한국적 이미지를 확폭 속에 농축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色彩의 美學,
25번째 演奏하는 오케스트라
김남수 / 미술평론가
이번으로 25 번째의 작품전을 갖는 서양화단의 중진 안호범의 초대전이 하나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인 가운데서 가장 치열하면서 도 열심히 살아 온 우리 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라면 안호범을 꼽을 수 있다. 정직하고 진솔한 성품 때문에 때론 지나치게 올곧고 강성이라는 성격으로 본의 아니게 비쳐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양식과 의식을 가진 예술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화가라면 바로 안호범을 빼어놓을 수 없다.
필자는 근 20여년 동안 작가의 작품세계를 지켜보고 온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반세기전 필자가 언론인으로서 신문사에 근무했을 때 도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글을 쓴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12년 근속했던 미술세계에서도 안호범 수채화전에 대하여 글을 쓴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가 걸어 온 화가로서의 역 정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편이다
지난 87년 필자는 작가 안호범을 중견작가라는 호칭을 하면서 글을 썼지만 - 물론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 한 것이지만 - 이젠 경륜이나 작품의 완성도나 연륜 등을 집약할 때 중진작가로 호칭을 해도 손색이 없는 예술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초기부터 자연주의파라 일컬을 만큼 대자연을 소재로 한 일련의 풍경 시리즈 작업을 해왔다. 주어진 소재는 무엇이나 자재롭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가진 화가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의 예술이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은 작가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을 그리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그리느냐’가 항상 표현상의 연구과제였다. 그가 재료에서 유화나 수채화의 매재를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혹은 풍경, 정물, 인물 등 소재 선택에서 구애를 받지 않는 것도 그에게 잠재한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며 항상 새로운 기법과 방법론의 모색 등에 고민하고 도전하는 등 새로운 창조에 스스로 심취해 있는 것도 바람직한 작화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25 번째의 색채의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이름으로 선 보이고 있는 개인 발표전은 12년전 필자가 그의 작품전의 평문에 쓴 글과는 조형의 폭과 깊이, 주제와 정신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작업하고 있는 예술양식이나 표현과 기법 등은 그 때에 비해 작업경륜은 물론이요 그의 예술 혼이 보다 폭 넓고 보다 심오하게 성숙하고 향상되었기 때문에 새삼 사족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매너리즘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화가들에 비하면 작가가 현명하고 방향설정이 잘 된 행운의 미술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이 위대한 것은 그 누구도 흉내내거나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행위가 관자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을 주는 것은 예술 본래의 모습이며 시각적인 미의 창출을 통하여 항상 새롭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믹한 삼원법에 충실했던 그가 원숙의 경지에 접근하면서부터 화면이 간결하게 정재(淨齋)되는 것도, 불필요한 덧살을 말끔이 떨쳐버리는 것 등은 그의 예술이 한 수 올라섰다는 것을 의미하며 근작들에서 가끔 나타나는 '평면성' '단순성' '조형성' 등이 이를 실증으로 입증하고 있다. 물론 초기
그의 예술은 소재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강했고, 섬세하면서도 리얼한 기법이 두드러져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논리적인 그림을 그렸던 것은 여늬 작가나 겪는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과정을 이수하지 않는 화가는 오늘날 풍경화 작가로 남지 못 하고 표현주의나 설치, 퍼포먼스 등 현대화가로 선회하고 있는 것을 일부 화가들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연의 현장에서 에스키스나 스케치 정도의 작업을 끝내고 정작 작품의 완성은 화실에서 이를 수단으로 한 또 다른 자연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작품완성의 프로세스이기도 하며 안호범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왜냐면 작가의 화의(畵意)에 의한 표현질의 특질만을 재구성 재창조 한 것이 마지막으로 화폭에 남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성과 풍토, 체질에 맞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의식과 정신주의, 기량을 가진 화가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안호범의 경우 시각적인 형태미에 강점을 두기보다는 내재한 조형미에 역점을 둠으로서 한국적 이미지를 화폭 속에 농축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 '25 번째의 색채의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이름으로 선 보이고 있는 개인 발표전은 12년전 필자가 그의 작품전의 평문에 쓴 글과는 조형의 폭과 깊이, 주제와 정신 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작업하고 있는 예술양식이나 표현과 기법 등은 그 때에 비해 작업경륜은 물론이요 그의 예술 혼이 보다 폭 넓고 보다 심오하게 성숙하고 향상되었기 때문에 새삼 사족(蛇足)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매너리즘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화가들에 비하면 작가가 현명하고 방향설정이 잘 된 행운의 미술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술이 위대한 것은 그 누구도 흉내내거나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조적 인 행위가 관자(觀者)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을 주는 것은 예술 본래의 모습이며 시각적인 미의 창출을 통하여 항상 새롭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의 특징은 기법과 양식의 다양한 변주, 색채변화의 마술성 등을 지적할 수 있다. 때론 원근을 무시한 평면성의 묘한 공간구성, 때론 선(線)을 파괴하고 면(面)만을 확산시킨 듯한 기법 등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유자재로운 조형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점이 긍정적인 공감을 주고 있다.
특히 그에게 색채의 미학은 그의 예술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흔히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발묵법(潑墨法), 예를 들어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먹색의 번짐효과라던지 색점의 배열,한국의 사계(四季)를 연상케하는 강렬하면서도 작가가 희구하는 선명성이 극명한 능숙능란한 색깔의 구사 등은 그의 예술에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멀리 아스라한 산기슭에 새마을 운동의 산물로 취락을 이루고 있는 붉은 색점의 지붕들은 이름 그대로 시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속의 그림'이다. 한국의 서정과 향수가 함께 어우러진 다정다감한 작품이다. 시인의 밀어(密語)처럼 색채의 명연주자(名演奏者)가 리드미컬한 오케스트라를 협연(協演)하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회화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를 보고 색채의 마술사, 혹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는 것도 꿈과 낭만, 황홀경이 그의 화면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이원적(二元的)인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인간과 자연이 일치(一致)하고 하나로 귀일(歸一)할 때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사유를 통한 철학적인 관점이다. 자연을 그리는 것은 인간주의 실현에 있고, 자연이 인간이요, 인간이 곧 자연인 것을 구현하기 위해 오늘도 그는 끝없는 작업을 통한 공(功)을 쌓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의 메모에서 '그동안 나름대로 생을 찬미하며 열광적으로 작업한 것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맑은 호수와 시원한 가을 하늘, 마음을 비우고 적극적으로 즐겁게 몰두했다고 자위를 해 본다. 작가는 모름지기 혼신의 정렬을 쏟아 작품제작에 화혼을 불살라야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요, 지론이다.
지금도 전업작가로 불같이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취미나 소질, 직업 등 정년도 없는 오직 한 길을 가는 것이 화가라고 생각하니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싶다'라고 독백처럼 적고 있다. 사실 육순이 넘은 중진작가지만 작가의 마음은 동심처럼 맑고 순수하다.
작가 안호범은 1940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에서 출생했다. 태기산 자락 봉평에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전설적인 인물 이효석이 태어난 고장이기도 하며 산자수려한 태백의 정기가 흐르는 이 고장은 많은 예술인이 태어난 고장이다. 그도 태기산의 기운을 몸에 품고 태어난 것이 분명하며 초등학교를 이곳 두메에서 보냈다. 그는 춘천사범과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위원을 비롯한 각급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무려 20여회나 지낸 바 있다. 그는 경원대 강사를 지냈고 중국 연변예술대에서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일본을 비롯한 해외 각국의 초대전 50여회, 국내 그룹전 및 초대전 300여회 등 실로 엄청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동안 한국미술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는 그는 동료들과도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어 온 의리가 강한 화가로서 정평이 나 있다.
명상의 스케치
메밀꽃 하이얗게 피는 두메 산골 봉평에서 태어난 안호범은 태기산 계곡의 냇가에서 멱감고 옥수수 입에 물고 먼 훗날을 꿈꾸던 때가 엇그제 같았는데 벌써 육순을 훌쩍 뛰어넘어 칠순을 향하여 누가 오라고도 않는데 세월과 같이 달려가고 있으니…
그래도 몸과 마음은 푸르디 푸른 오뉴월의 숲과 같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계절의 노래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가며 詩情과 音律을 노래하며 찬미합니다.
지금도 자연은 말없이 밝고 어둡게, 그리고 강하고도 약하고, 길고 짧게, 또한 넓고도 좁게 변화있게 하이얀 캔버스를 분할하며 아름다운 수많은 색채를 채색하면서 일년을 하루같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이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감사하며 혼자만의 자유가 있는 백색들판에 물감과 붓과 나이프를 들고 기쁘게 황홀하게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며 밤을 낮같이 십년을 하루같이 질주합니다. 그리고 화가라는 나의 직업에 무척이나 행복해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세대는 해방과 6.25사변, 그리고 4.19와 6.16 등 수많은 전란과 격동을 거치면서 IMF라는 뼈를 깍는 아픔을 겪은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이 시대의 흐름에 흘러가고 있지만 예술에의 집념과 창작은 마음의 고향이었고 삶의 이정표였으며 희망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나의 영토가 있고 그 영토 속에서 에쁘게 꽃을 가꿀 수 있으며, 동반자들도 후배도 문하생도 함께 아름다운 꽃의 재배를 위하여 쉬임없이 가꾸고 키워가며 존재할 수 있다는데 창조주인 하나님께 감사와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2002년 10월 10일 25번 째 색의 오케스트라 안호범 회화전은 삶의 존재가치를 토하며 삶의 영속성에 의한 나의 분신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선보이는 것입니다.
그래도 작가의 분신인 작품전은 그 시대의 반영이요 미술문화의 창달이며 생활의 외침인 것입니다. 또한 작가는 작품전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고 다음 작품전을 위한 작업준비기간이요 영과 혼의 잉태의 순간들인 것입니다. 그 준비기간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작가는 더욱 용기와 의욕을 갖기도 하고 좌절과 괴로움을 되씹기도 합니다.
나의 그간의 순간들은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지만 잊을 수 없는 창작의 사연들을 가슴속 깊이 담게도 했고 돌아올 날들에 좋은 작품을 위하여 기원도 했습니다. 이제 이번 작품전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여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고마움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2. 10
작업실에서 안 호 범
전시포커스
안 호 범
2004. 3. 9 - 3. 22
갤러리 율(경기도 분당)
32회 색의 오케스트라
ORCHESTRA OF COLORS AN HO BUM'S EXHIBITION OF PAINTINGS
2004년 봄을 맞이하여 중진서양화가 안호범씨의 32회의 개인전이 갤러리 율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품에서 150호에 이르는 대작까지 50- 60점을 선보이고 있는데 대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을 통해 작업의 경륜은 물론이고 그의 예술혼이 보다 폭넓게 펼쳐 보여지고 있다.
화면에 펼쳐진 그의 작업을 살펴보면 시각적인 형태미에 강점을 두기보다는 내재한 조형미에 역점을 둠으로서 자연의 이미지를 화폭 속에 농축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자연의 서정과 향수가 함께 어우러진 다정다감한 색채를 통해 색채의 마술사, 혹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는 것은 그의 작품에서 펼쳐 보이는 화려한 색채가 화폭에 전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에 작가 안호범씨는 "오늘도 나는 이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감사하며 혼자만의 자유가 있는 백색들판에 물감과 붓과 나이프를 들고 기쁘게 황홀하게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며 밤을 낮같이 십년을 하루같이 질주합니다. 그리고 화가라는 나의 직업에 무척 행복해 합니다. 작가의 분신인 작품전은 그 시대의 반영이요 미술문화의 창달이며 생활의 외침인 것입니다. 또한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고 다음 작품전을 위한 작업준비기간이요 영과 혼의 잉태의 순간들인 것입니다.
그 준비기간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작가는 더욱 용기와 의욕을 갖기도 하고 좌절과 괴로움을 되씹기도 합니다. 나의 그간의 순간들은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지만 잊을 수 없는 창작의 사연들을 가슴속 깊이 담게도 했고 돌아올 날들에 좋은 작품을 위하여 기원도 했습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의 색채는 자신의 감성의 흐름을 표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연이 보여주는 계절의 운치를 화면속에 다루고 있다.
국 제 교 류 전
安浩範 繪畵 日本國 招待展
2004. 12. 17-2005. 6. 21
일본 GENDAIKKO MUSEUM에서 열려
한국의 중진 서양화가인 안호범이 韓日文化交流 포럼 및 繪畵展(韓日美術交流協會, 現代子센터主催)의 일환으로 지난 2004년 12월 17일부터 2005년 6월 21일까지 GENDAIKKO MUSEUM에서 열렸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세계평화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역임, 미술단체 일원회 회장을 역임하며 특히 한일교류전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번 초대전에 <우리가 놀던 그 시절> <도시의 밤> <바람이 지나는 언덕> <출항> <겨울> 등 서정적이고 정감어린 한국의 풍경을 선보여 많은 관심을 얻은 바 있다.
ART NEWS
일지 안호범 미술관개관
안호범의 「색의 오케스트라」작품전
2007. 5. 1 - 5. 3
경기도 현리에 위치한 일지 안호범미술관(관장 이상실)이 지난 4월30일 개관되었다. 올해로 고희를 맞는 한국화단의 重鎭인 안호범화백이 새로운 환경속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함과 아울러 미술관을 이용한 다양한 예술행사를 통해 지역 미술문화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서울 생활을 접고 이곳에 정착 하였다.
총 350평 규모의 넓이에 세워진 미술관은 1층과 2층이 가로14m 세로6m의 규모의 공간으로 1층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며 2층은 전시장 및 작업실, 수장고, 기획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관리실은 별채에 위치하고 있으며 30여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도 확보되어 있다.
앞으로 개인초대전, 단체그룹전, 기획전은 물론 음악회 등 다양한 예술활동을 지원하게 될 일지 안호범 미술관에서는 5월 말일까지 「색의 오케스트라」를 주제로 한 안호범화백의 다양한 작품 60여점이 전시되고 있어 이곳 주민들의 정서 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미술관 탐방
色의 오케스트라 作家 安浩範
一志美術館 開館 1周年
지역문화 발전에 앞장서
지난해 5월 한국화단의 원로 일지 안호범화백이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리에 본인의 아호 ‘一志’를 따서 미술관을 개관했는데, 앞으로 두 달이면 1주년을 맞는다. 산자수려한 명소 운악산 기슭 양지 바른 터에 정초(定礎)한 안호범 미술관은 사찰과 아름다운 계곡 등을 찾는 방문객들이 지나는 길손의 쉼터요, 문화공간으로 이고장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총 350평의 넓이에 세워진 미술관은 1, 2층으로 전시문화공간이 마련되었으며, 1층은 전관이 전시장으로, 세로 20m 가로 6m의 규모로 꾸며졌으며 2층은 전시실, 작업실, 화고(畵庫), 기획실 등이며 미술관으로서의 완전한 요건을 갖췄다. 또한 관리실과 주창장은 별채로 마련되었다.
특히 이 고장 주민들의 예술적 안목의 개안 등 지역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된 작가는 매연에 찌든 도심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산수의 아름
다운 경관 등 자연 속에 묻혀 정관(靜觀)하는 자신의 초연한 작품생활이 ‘그 어찌 이보다 더 한 신선이 있을 소냐’ 라고 소신을 술회한다.
작가는 실제 자연으로 회귀한 뒤 그의 창작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으며 최근 ‘원색의 향연 오케스트라’의 연출은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과 인기를 모으고 있다. 미술관이면서 거의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공간을 꾸민 일지미술관은 화가 안호범의 예술과 생애를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작가의 모든 것들이 자화상처럼 전시되어 있다. - 취재부 -
미술화제
일지미술관 개관2주년기념전및 화문집 출간
西洋畵壇의 元老 安浩範 화백
詩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詩가 있는
굴러가는 통나무의 아픔과 幸福’ 出刊
경기도 운악산 계곡에 자리 잡은 서양화단의 원로 안호범 화백의 일지미술관 개관 2주년 기념 및 화업 반세기를 기념하는 전시회와 출판기념전이 지난 2009년 5월 성대히 막을 올렸다. 화력 50주년과 안호범 미술관 개관 두돐을 맞는 이날 기념전에는 그동안 안화백의 대표작품들과 틈틈이 집필한 시와 수필, 그리고 작업노트로 기록해 놓은 주옥같은 글들을 함께 묶은 책자(국판) 180쪽 원색 그림 140점이 수록된 안호범 ‘화문집’이 출간을 했다. 풍경, 정물, 인물화 등 주어진 소재는 무엇이나 작품으로 완성하는 안화백은 한때 한국미술의 원색의 세계 즉 한국의 오방색을 비롯하여 색동과 무지개 빛깔 등 색채의 마술사, 혹은 마술적인 조련사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동안 색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지휘자로 심볼라이즈한 닉네임이 붙을 만큼 평가를 받은 안호범 화백은 ‘굴러가는 통나무의 아픔과 행복’의 출간을 통하여 칠순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가 가평군 하면 현리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 이 고장은 문화예술 마을로 크게 이름을 얻기 시작했으며 마술관을 찾는 방문객도 늘어났으며 이름 그대로 산자수려한 명소로 명성을 얻고 있다.
안호범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 경원대학 교수역임, 연변예술대학 겸직 교수
한국 미술협회,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 / 계간 미술과 비평, 국제문화협회 자문위원.월간 아트벤트 편집 자문위원, 신미술대전 상임고문 / 대한민국 미술단체 일원회 고문, 동대문미협 고문/한국수채화협회, 서울미술협회, 가평미술협회 고문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신미술, 경기미술, 경인미술, 모란미술, 현대미술, 국제미술, 교원미술 대전, 한국여성미술 공모전 심사위원
한국미술연합회 수석 자문위원, 폴리스 저널 논설위원 / 중앙 경제 신문 논설위원, 일지 안호범미술관 설립/ “색의 오케스트라” 특허청 등록 / 간행물광고 83건, 예술그림 91건 / 패션쇼개최 69건, 총 243종류 명칭사용불가
저서: 『미술을 통한 교육』<보육사> / 『감성과 시상의 스케치』<이종문화사> / 문교부지도서5종 새교실교육자료 7종 공저
안호범의 작품세계
이름다운 한국의 풍광을 비롯하여 세계의 유명산하와 풍경과 풍물 등을 샅샅이 누벼온 작가 안호범은 인물, 풍경, 정물 등에 표현을 위한 연출을 발현할 만큼 반세기 동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온 역량 있는 작가다. 초기 아카데믹한 극사실주의 추구, 다시 중기에 오면서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주의 화풍, 이글이글 타오르는 남극의 입체파 화풍, 다시 신자연주의를 노래하는 목가적이고 동화적인 표현주의 화풍 등 과연 그가 그릴 수 없는 영역은 어디 인가 싶을 만큼 포괄적인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고 있다. 한때 색채의 오캐스트라를 연주했던 시기에는 안호범 특유의 빛깔을 화폭에 담는 극적인 표현을 통하여 많은 감동을 주고 있으며 작가의 생애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언필증 작가가 신화라고 명명한 원색의 동화는 한마디로 우리의 추억과 향수가 농축된 역사가 그림 속에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밀도감 있고 해학과 긴장이 함께 공존하는 이들 작품들은 우리 미술계에 새로룬 바람을 부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성의 애정과 점감이 흠뻑 밴 그의 예술은 한국미술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 할 것으로 확신한다.
1. 통나무 나이테엔 詩畵가 산다.
1960년
내린천은 해맑게 푸르렀고
설악을 닮은 일지의 첫 가을걷이
안호범 수채화전은
동토 인제 예술에 새 몸을 열었다
애총의 태동인 기린동인회가 손을 잡고
안화백의 필화로 동인지 기린이 탄생했다.
그리고 반세기...
달인의 길....
비탈의 구르는 통나무처럼 달려온 An Ho Bum
색의 마술사로 한국화단에 독창적 화체를 구축했고 국제전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가는 길 어찌 평탄만 했으랴
모진 풍파와 시련 속에 끝없는 도전
그것은 일지의 그림자요, 동행이었다.
흘러가는 시공 속에
빛의 영감을 붙잡아 멈추게 한 것이
한 폭의 그림이 그 화두를 겨레의 문자로 그린 것이 ‘굴러가는 통나무의 아픔과 행복’ 일진대....
2. 굴러가는 통나무의 아픔고 행복
그 마을에는
소년에서 은발까지 화살짓듯 달려간
수레바퀴 소리가 들린다
나이든 황소의 원앙소리가 즐겁다
통나무 갈피갈피
멈출수 없었던 반세기의
피땀이 밴 옛이야기가 숨어있다.
지구촌을 넘나든 영광과 기쁨의 함성이
흔적처럼 되살아 난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빛나는 지혜가
허물 하나식 아프게 벗으며
항해 끝에 깃발로 나부끼는
영혼의 귀향 만선의 뱃고동 소리다.
화문집에 수록된 글 中 에서
글/이근구
용서 할수없는 만남
만난다는 것은 지난 일에 의하여
새로움을 창출하는 강하고 가장 중요한
사회의 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일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접어두고
한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가슴속 깊이 박혀 있던 응어리들을
눈물로서 토해냈다.
그러나 말끔히 씻은 것 같은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고 또한 후회스럽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그 행위들을 용서 할 수 없다.
어머니의 간곡한 말씀에
슬픈 아픔의 눈물로
그들을 어릿광대 같이 만나고 떠나보냈다.
그렇지만 영원한 마음의 병은 치유될수 있다.
두려운 사랑의 소나타
구름이 흘러가듯이 하루해가 저물어 가며
또 내일을 재촉하고 있다.
믿음의 언저리를 맴도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사랑의 열쇠를 물고
그 의미를 열어주고 있다.
심한 갈증에서 환희의 찬가를 가슴에 안고
독수리의 미소에 두려움의 행복을
느껴야만 했다.
스스로 자학하듯이
스스로 생각했듯이
그 모든 소망도 , 상념도, 욕망도
어쩔수 없는 현실의 행복에
용해 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이렇게 가물거리는
가로등에 몸을 맡겼다.
사랑의 소나타여
코 찔찔이 고추 동무
43년만의 해후였다.
정말로 낯선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곧 뜨거운 그 옛날의 정이
아무 꺼리낌 없이 오갔고
감동의 눈물이 가슴속에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어리고 어릴 때 빨가벗고
고추 두 손에 움켜쥐고
멱 감던 봉평소의 기억과
냇가에서 종일토록 족대로 피라미 잡던
그 친구들 -
겨울이면 썰매 타며 화롯불에 감자 구워먹던
초가집 뒷방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 조무래기들의
갈아놓은 논밭같이 깊은 주름과
흰서리 내린 싸리나무 같이 성성한 머리가
떠나버린 세월을 이야기 한다.
그래도 철부지 같은 소박하고 꾸밈없는
웃음들이 옛날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주요약력
춘천사범대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개인전 (국내 35회, 미국3회, 일본 2회)
심사위원 역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경인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성남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신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한국여성미술공모전 심사위원장
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
소년동아일보 문예상 심사위원
소년한국 미술대회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한민국 종교미술대전 심사위원
서울미술제 심사위원
장애자 미술제 심사위원
교원미전 심사위원
국제미술문화, 한국미술문화 미술대전
그 외 각종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미술단체·기간활동
한국미술협회 기획, 사업위원회 부위원장
문교부 미술과 국정교과서, 교육과정, 검인정 교과서 심의위원
중앙시청각교육원, 중앙연구소 전문위원
한국이동미술교육협회 운영위원, 편집주간
국내외 전시
파리, 로마, 뉴욕 등 국제전 100여회
국내전 400여회
현재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
대한민국 미술단체 일원회 고문
서울 송파미술협회 자문위원
경기 성남미술협회 자문위원
중국연변대학교 예술대학 겸직교수
한중미술협회 회장
중앙경제신문사 편집위원
UN LEAWP 문화예술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한국수채화협회 회원
작품소장
기록화 300호-사비성의 최후-전주역사기념관
기록화 300호- 최무선의 왜구격퇴제작-전주역사기념관
명동축제 200호-서울중구구청
충무 앞바다 80호-경원대학교박물관
산실 50호-동국대학박물관
5월의 찬가 50호-삼성종합건설
한국의 4계절 6점, 각 20호 -SK그룹
어머니가 계신 마을 80호 -배나무골 교대점
올림픽 공원 5월 100호-배나무골 선릉점
고향의 겨울 80호-배나무골 양재점
행복이 머무는 곳 150호-삼부토건
사랑이 머무는곳 150호-세종문화회관
호반의 도시 300호-광주 화이트웨딩홀미술관
봄이오는 소리 100호-아트코리아
홍천의 겨울 80호-화이트웨딩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