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나는 안식년을 행복하게 지냈다. '일 벌레'라던, '일 중독자'라는 말을 들어왔던 내가 그리 잘 지낼 줄 몰랐다는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이야기를 들으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함께 올라왔다. 이건 우리 새터교회 식구들의 사랑과 배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능한 복(福)이었다. 안식년의 순간순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면서, 가장 크게 가슴으로 와 닿았던 것 하나, 똥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이야기를 ...........
안식년의 마무리로 난 인도를 갔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인도여행은 참 재미있고, 또 많이 힘들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지저분한 것, 더러운 것이었다.
지역에서 지역을 옮길 때마다 기차를 이용했는데, 어찌나 땅이 넓은지 여행한 가운데 24시간이 가장 짧은 거리였는가 보다. 27시간, 33시간, 무려 37시간까지도 타고 다녔다. 창밖의 풍경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나 감탄의 감탄을 연발하면서 다니다가 꼭 끼여드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기찻길 옆,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엉덩이를 내어놓고 똥 누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똥 누는 것을 보면서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생각이 있는 걸까?', '창피하지도 않나?', '아유 더러워, 냄새 나'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와는 다르게 똥누는 사람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아주 즐겁고, 맑은 얼굴이었다. 행여 낯선 나의 눈과 맞추쳐도 오히려 씩 웃어넘기는 것이다. 이런 맑은 얼굴들을 자꾸 만나면서 내 안에는 서서이 한 물음이 올라왔다.
"누가 똥이 더럽다고 했지?"
"똥이 정말 더러운 걸까?"하는 물음이 올라오며
그 물음에 들어가는 순간....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저 사람들이 땅에 누운 똥을 지나가는 개가 먹고, 소가 먹고, 날아가던 새가 내려와 잠시 쉬며 먹고.... 그리고 땅이 먹고. 수분되어 날아가면 구름 되고, 비가 되고, 다 먹히고 남은 찌꺼기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다시 흙이 되어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기분 좋게 가슴은 뛰었다. 사실 깨끗하다고 하는 우리문화에서, 우리들의 똥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누운 똥은 많은 물의 힘에 의해 정화조 통으로 들어가 썩는다. 정화조에서 오랫동안 있어 썩을 대로 썩은 똥은 또 어찌되는가? 화학약품을 사용해 물을 정화한다고 한다. 그 화학약품 만드느라 드는 돈과 공해물질들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마음은 부끄러움으로 가득했다. 더러운 건 똥이 아니었다. 똥이 더럽다고 하는 생각의 틀이 더러운 거였다. 똥은 더럽지 않았다. 오히려 똥은 다른 것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있었다. 똥을 더럽게 여기고, 똥을 죽이는 우리네 문화는 어쩌면 죽임의 문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길에서 마구 똥을 누는 인도사람들이 사랑스럽고, 고맙게 다가왔다. 난 길가에 누워있는 똥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개의 밥이 되고, 소의 밥이 되고, 날아가는 새의 밥이 되고,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부서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똥에서 난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우리에게 밥으로 오셔서 먹히고 다시 똥으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의 하나님.
우리가 어떤 똥을 누는가?는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밥으로 오셨다. 하나님을 먹어 누는 똥은 다르겠지? 똥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과식을 했는데, 몸에 좋지 않은 것을 먹었는지, 몸의 어느 부분이 기능을 잘 못하는지를 말이다. 결국 밥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똥을 통해 삶을 보는 것이다. 난 똥을 잘 만들고 싶고, 잘 누고 싶다. 개에게 먹히고, 소에게 먹히고, 날아가는 새에게 먹히고, 사람들의 발에 밟혀 바스러져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그런 똥, 그런 똥으로 삶을 살고싶다. 나는 오늘도 똥이 되는 꿈을 꾼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