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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에세이 ⑦
아흔아홉 명의 사람들
홍일표
차도하 시인
1년 365일 중에 300일을 울던 여자, 항상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여자,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여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엄마와 연락이 끊긴 여자,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견디던 여자, 술에 취한 채 기억을 잊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여자, 예술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멋대로 부여한 고정성을 거두는 것이라고 말하던 여자,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기괴한 것이 마음을 두근대게 한다고 말하던 여자, 미래 없는 마음에 미래가 들어서게 하고 싶었던 여자, 그리하여 잘 살고 싶었던 여자, 그러나 자신의 이름대로 스물넷의 나이에 기어코 생의 강을 건너고 만 여자.
“세련된 시집에는 빛이 너무 많이 나와서 눈이 멀 것 같았다”
차도하의 ‘세련’이라는 시의 마지막 행이다. 스물넷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차도하 시인은 우리 시의 소중한 자산이며 미래였는데 많이 안타깝다. 열 살 무렵 스물셋이 되면 죽어야지 했던 그가 기어코 자신의 죽음을 매조지했다. “지구에는 나의 고향이 없다”고 했던 차도하의 유고시집 『미래의 손』, 산문집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은 서늘한 흉통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시영 시인
시단에는 과대평가된 문인들이 있다. 실제 작품과 명성과의 괴리가 큰 시인들 몇몇을 꼽을 수 있다. 작품의 외적 요소와 들러리 비평가들의 무분별한 찬사가 만들어낸 우상들이다. 그러한 허상들은 문단의 주도적 위치에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일반 독자들은 언론의 조명을 받는 문인들을 추앙하여, 당사자들은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헛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대중들은 조작된 신화를 맹신하고 추종한다. 또한 일부 메이저 출판사에서는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기존의 명성에 기대어 습관적으로 작품집을 출판한다. 그러나 눈 밝은 독자들은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아챈다. 몇 해 전 이시영 시인이 고은 시인의 작품을 비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의외였다. 대부분 찬사 위주의 평가가 대부분인데 이례적으로 고은 시인을 비판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다산성에 비해 그다지 특출한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없다, ‘작의(作意)의 노출’이 심하고 시적 상상력이 협소한 태작(駄作)이 상당수 보인다”는 그의 판단은 신성불가침의 대상에 대한 매우 정직하고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침묵의 카르텔에 묶여 입을 다물고 있던 많은 독자들도 오래전부터 이시영 시인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었다.
독재 타도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면서 창작 활동을 해온 고은 시인은 김현과 김윤식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50년대의 시를 극복하고, 우리 시의 새로운 신화를 써나갔다. 그러나 개인적 감상에 경도되어 시적 정서의 과잉이 불러오는 난삽과 잠언투의 과도한 제스처 등 엄청난 창작량에 비해 작품의 질적 내용은 기대에 미흡하였고, 초기 시 이후 몇몇 시를 제외하고는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져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작품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나 대부분 침묵하였다. 평론가들도, 시인들도 그에게 신랄한 비판의 칼끝을 겨누지 않았다. 보신(保身)의 욕망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운종리 할매
남쪽 바닷가 마을 운종리에 김명애 할매가 산다. 남편을 잃고 혼자 산 지 서른 해가 넘었다. 남매를 결혼시켜 내보내고 빈집을 지키고 있다. 비가 오는 날 이장이 마을회관에서 할매를 만났다. 술 한 잔 드셨는지 얼굴이 볼그족족하다.
“동남아 새악시덜은 잘도 델꼬 오더만 동남아 영감쟁이들은 안 델꼬 오능가? 말 안 통혀도 좋응깨 입 달린 사람 좀 델꼬 와. 나가 시방 분홍빛 맴인디 벙어리 입이 됐당깨.”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으면 말할 사람조차 없고, 마을회관에나 나와서 그나마 몇 마디 지껄이고 간다며 웃었다.
“나이가 등께 뭣이 이리 빠져나가는 게 이리 많데야? 복스럽던 볼이며 엉덩짝에 살이 다 빠져 뿔꼬, 시집 올 때 우물 같던 눈물샘도 다 말라버렸어야. 내게도 깨가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제. 그나저나 올겨울 누구랑 정을 나눈다냐. 마음만은 색시 때처럼 늘 꽃인데---. 영감은 일찌감치 저쪽으로 마실 가버렸제. 밥도 못 먹고 몇 해를 버티더니 나 혼자 두고 훌쩍 가버렸어라. 참말로 무심한 양반이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매가 앞에 있는 막걸리잔을 단숨에 비우고 창밖을 무연히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때로는 말이여. 먼 것을 먼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 같소. 그라야 그리움을 안당게. 암튼 이장 만나 한참 떠들고 낭께 좋네이.”
다음 날 이장이 택시 이용권을 나눠주러 할매 집을 찾아갔다. 할매가 금목걸이를 꺼내 목에 차려던 참이었다.
“금목걸이 허고 옷이 잘 어울린다 했능가? 어메 이장 눈에 송곳 박았는가? 우째 이 쬐끄만 금목걸이는 눈에 뵈고 쩌그 침대는 안 들어오능가?”
“침대요?”
“그려. 쩌그 침대 말이여.”
이장이 잠시 머쓱해서 할매를 바라보았다. 할매가 이장 손을 덥석 잡고 방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이것도 말이여. 우리 아들이 이번에 사준 것인데 잘 보소. 엄청 비싼 것이제. 이제 난 더 필요한 게 아무것도 읎당게. 자슥 새끼들 아프지 않고 잘 살고 요만하면 됐지라. 더 바랄 게 읎당게”
“하긴 할매가 뭐가 걱정이것소. 자식들 다 잘 됐으니 아쉬울 게 하나두 읎제.”
할매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이장은 말장단을 맞추며 할매 옆에 한참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아서는 이장에게 동네 일 보느라 수고한다며 베지밀 한 병을 내밀었다. 세상 일은 팔심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뚝심으로 하는 거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올해 첫눈이었다.
신상조 평론가
신상조 산문집 『시 읽는 청소부』가 이전 주소지에서 반송됐다가 뒤늦게 도착했다. 그를 안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그의 일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마흔이 넘어 공부를 시작하여 201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비평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평소 신상조 평론가의 글을 신뢰하고 있던 터라 바로 책을 펼쳐 보았다. 깜짝 놀랐다. 책을 읽는 중에 신상조 평론가가 백화점에서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글을 썼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공부만 해온 평론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재의 나는 구차한 생활의 고단함과 밥벌이의 눈물겨움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비평가라는 게 정확한 말일 거다. 비루한 목숨, 굴욕적인 처지의 작가, 파산의 불안을 동력으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산문집 『시 읽는 청소부』 1부에는 그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온갖 궂은일을 경험하면서 글을 써온 그의 삶은 ‘포즈’가 아닌 실제였고, 결핍과 부재를 확인하면서 살아온 그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고투의 날들이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다 만난 대학원 동기는 “왜 이런 데서 일하세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서재 같은 건 엄두도 못 낼 처지여서 TV 보는 아이들 옆에서 책 읽고 글을 써온 그는 2021년에 첫 평론집 『붉은 화행』을 펴냈다. 나는 신상조 평론가의 섬세하고 정밀한 글을 통해 미지의 영역들을 깨우치고 배운 바가 있다. 지도도 정답도 없이 홀로 걸어가는 그의 앞날이 생의 극점에서 팡 터져나오는 대꽃처럼 밝고 환하기를,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같이 아슬아슬한 생활”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동문학가 이상교
아동문학계의 원로인 이상교 시인을 오래전 인사동에서 두어 번 뵌 적 있고, 지난 6월 동시집 『괴물이 될 테야』가 나왔을 때 전화를 주셔서 길게 통화를 하였다. 동시 초보자인 나는 이상교 시인의 동시를 읽고 여러 번 놀란 적이 있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변함없이 동시와 동화 창작에 열심인 이상교 시인의 작품은 독자를 새로운 감각의 영지로 이끄는 힘이 있다.
지난주에 시인의 새 동시집 『깜깜한 밤 한 마리』가 출간되었다. 이상교 동시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시적 에너지가 충만한 동시집이다. 50년이 넘는 시력을 이어가고 있는 이상교 시인은 새롭게 진화하는 동시계의 최전선에서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빛나는 동시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교 문학의 발상지인 강화도에 가본 지도 오래되었다. 지금도 강화도 어딘가에서는 귀뚜라미, 개복숭아, 매미, 토끼, 산딸기, 나비, 솜구름 등이 어릴 적 누군가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겠다.
밤낮이 없이
언제나 깜깜한
한밤중
〉
네모난
한밤중.
-「김」 전문
조정인 시인
지난해 7월 3일 이른 아침에 조정인 시인의 남편 전화를 받았다. 조정인 시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인천 길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소식이었다.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돼서 움직일 수 없고, 말도 어눌한 상태이며, 쓰러지면서 다리 골절상까지 당하여 거동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어렵게 연결된 통화에서 조 시인은 시집에 대한 얘기를 떠듬떠듬 힘들게 이어갔다. 다음 달 시집 출간을 앞두고 창비 편집팀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이라 위급한 상황에서도 시집에 대한 걱정이 컸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출간일을 다음 해로 미루었다고 했다.
길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마친 조정인 시인은 인천 서송병원으로 옮겨서 재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문병이 가능한 토요일 오후에 병원 로비에서 조정인 시인을 만났다. 입구에서 김박은경 시인을 만나 함께 문병하였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온 조정인 시인의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어려운 재활 치료 과정을 견디느라 많이 힘든 것 같았다.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나 오른쪽 손발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하였다. 마비된 오른손은 열감이 느껴졌다. 조 시인의 표현대로 아파서 밤새 ‘앓는 손’이었다.
문병을 마치고 병원 앞 식당에서 10년 만에 만난 김박은경 시인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헤아려보니 은경 시인을 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인연에 따라 연생연멸하는 것이 삶이겠지만 누군가의 손 한 번 더 잡아주는 것이 덧없고 무상한 세계를 견디는 한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김겸 시인
그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2007년에는『매일신문』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평론과 소설을 써오던 그가 2021년에『강원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미 2020년 『모:든시』 봄호에 신인 작품으로 첫선을 보이긴 했으나 모지가 휴간됨에 따라 신춘문예를 통해 다시 신고식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평론가 겸 소설가 김정남이 아닌 시인 김겸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혹시라도 장르 순정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이 그의 도전에 대해 남의 장르를 넘본 외도로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탄탄한 문력으로 평론과 소설 분야에서 꾸준히 작업을 해온 터라 시에서도 남다른 개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삶을 형벌로 여기고 살았던 그는 이제 막 강릉 앞바다에 떠오른 붉은 해다.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설원」)고 하는 김겸 시인이 마음껏 시의 길을 열어 갈 수 있도록 성원하는 손길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강릉 인근 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김겸 시인이 텃밭을 일구어 수확한 양파, 당근, 고추, 오이, 양배추, 깻잎 등을 보내 주었다. 농약 범벅인 농작물이 아닌 무농약으로 정성껏 재배한 귀한 선물이었다. 김겸 시인은 한결같다. 대체로 시절 인연이 다하고 이해관계가 끝나면 언제 봤냐는 듯이 낯선 타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변함없는 성정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의 평론, 소설, 시 등을 가까이서 읽었고, 그의 개인사를 조금은 알고 있는 터라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다. 대학 강단과 문단에서 당대의 평균적 담론을 거스르며 살고 있는 김겸 시인의 문학적 행보를 귀하게 바라보는 이유이다. 김겸 시인의 따듯한 마음 덕분에 와병 후의 몸이 그의 시 「낮달」의 한 구절처럼 “마침내 홀로 환해”지는 중이다. 그는 현재 가톨릭관동대에 재직하고 있고, 평론집 『비평의 오쿨루스』장편소설『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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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동시집 『괴물이 될 테야』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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