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가는 길
(3) 하바롭스크의 추억- 이치 유어 백(It's your bag?)
1993년 봄 모스크바 대사관의 이종석 교육관이 사할린 부지사를 만나 교육원 개원식 날자를 12월 10일로 MOU를 체결한 상태라 늦어도 11월 하순에는 입국을 해야 했다.
11월 27일 큰 가방 1개와 작은 가방 2개를 들고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고맙게도 친구 J와 C 가 배웅차 와 주었다. 항상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절친 J 은 염려스러움이 역 역한 표정으로 멀리 떠나는 친구를 배려해 차까지 가지고와 김포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친구니 내 준비가 얼마나 어설프게 보였을까.
비행기가.. 오후 3시 넘어서 출발이었으나 비교적 일찍 출발하였다. 외국여행은 몇 번했으나 외국에 근무로 나가는 것은 처음이라 가슴이 설레었으나 그보다는 직항기가 없어 하바롭스크에서 1박을 하고 내일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워낙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 러시아말도 할 줄 모르는 데다 밤에 도착하니 걱정이 앞섰다. 삼육대학 최종오 선교사에게 의논하니 하바롭스크에 나가 있는 임영일 목사에게 부탁할 테니 염려 말라고 하였지만 한국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았던 곳이고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염려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더구나 TV 등은 연일 소련이 1990년 개혁 개방으로 무너지고 러시아로 바뀐 이후의 텅 빈 상가의 진열대와 시장 내의 모습, 그리고 마피아가 활개 치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아무래도 치안의 부재, 물자 부족 등의 이유로 금년 겨울에 식량폭동이 예상된다는 뉴스 등을 연일 보도하고 있어 불안이 가중되었다.
당시는 바퀴 달린 가방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큰 가방만 바퀴가 달렸고 작은 가방 등은 바퀴가 없어 양어깨에 메고 가방을 끌고 가자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러시아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하바롭스크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재미 교포 이종근 목사를 만났다. 내 이야기를 했더니 염려 말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한다. 더구나 자기 차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너무나 반가웠다. 하바롭스크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데 러시아에 부족한 물자가 너무 많아서 자주 한국에 나와 필요한 물건을 사 간다고 한다. 안식일 교회 임 목사한테 부탁을 했다고 했지만 하바롭스크에 사는 목사와 동행하니 크게 안심이 되었다.
외관부터 후질 구레하게 보이는 러시아 비행기를 타니, 낡고 꾀죄죄한 의자 등에서 이상야릇한 냄새가 났다. 나중 사할린에 가서 시내버스를 타니 거기서도 그 냄새가 났다. 러시아 특유의 냄새 같았다. 몸집 좋은 중년의 스튜어디스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데다 서비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 저녁 식사 서비스도 없다.
근 3시간을 넘게 날러가 컴컴한 하바롭스크 공항 활주로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러시아 땅이고 북쪽이라 그런지 찬 겨울바람에 몸이 후들후들 떨린다. 나는 가방을 양손에 들고 이 목사 뒤를 바짝 쫓아갔다.
활주로를 한참 걸어 허름한 단층 터미널 객사로 들어가 보니 영락없는 시골 고속버스 대합실 같다. 이 대합실도 일본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 가방을 한쪽에 놓고 무빙 벨트 앞에 서서 큰 가방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무심코 몸을 돌려 내 가방을 바라보니 웬 러시아 남자가 내 가방을 들고나간다.
깜짝 놀라 뛰어가 어깨를 툭 치며 “헬로 잇츠 마이 백” 했더니 그 친구 천연덕스럽게 “유어 백” 하며 가방을 돌려준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일 날 번했다.
당시 러시아의 모든 게 엉망이라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더니 내가 당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났다. 세상에 공항 내 수화물 찾는 곳인 무빙 벨트 설치 지역에까지 도둑이 설치고 돌아다니다니.... 세관원과 협잡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참 있다 쳐다보니 아까 내 가방을 가지고 나가려고 했던 그 도둑이 누군가의 가방을 들고나갔다.
지루한 통관 절차를 마치고 나가니 안식일 교회 임영길 목사가 나와 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였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짐을 들고 끌고 이 목사 지프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 차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희미한 가로등과 어딘가 모르게 우중충한 시가지 모습이 영 낯설다.
돌고 돌아 한참을 달려 도착한 교회에는 러시아 여자 신도들이 저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 이야기로는 한국에 갔다 올 때마다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 주었더니 한국에 갔다 돌아오는 날이면 이렇게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값비싼 좋은 선물은 아니고 간단한 접는 가방이나 손전등 등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이런 게 선물이 되나 하고 생각했는데 워낙 물자가 부족하고 전기가 부족하다 보니 평소에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다 필요한 물건이 보이면 바로 사서 휴대할 수 있는 접는 손가방과 컴컴한 집을 출입할 때 손전등이 필수품임을 아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나도 후에 교육원에 한 보따리씩 사다 놓고 활용했다.
러시아 아주머니가 17-18세의 두 딸을 데리고 와서 부엌일을 하고 있는데 두 딸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러시아 여자라 더 예뻐 보였던 것 같았다.
사진을 찍었고 후일 이사진이 러시아 소개하는 동영상의 첫 장면이 되었다. 이상한 러시아식 한식이지만 배고픈 참이라 맛있게 먹고는 목사님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향했다.
가로등도 없는 밖은 달빛이 있는데도 어두웠다. 북한 벌목공으로 나왔다가 탈출하여 교회에 머물고 있다는 운전수 최 군은 거리에 익숙해서인가 잘도 찾아간다. 큰길이고 뒷골목이고 가로등 없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때가 보름에 가까웠는지 달빛이 밝아 아파트 앞에서 달빛의 덕을 보았다.
허름한 아파트 앞에 차를 세우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데 외등이 없어 후라쉬로 비춰가며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들어가니 최 군이 우리를 엘리베이터 앞으로 안내한다. 공항 애 서 나 같은 한국 사람이 합류하여 객은 2명으로 늘었다. 나중 이야기를 들으니 IMF사태로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블라디보스토크 근처의 항구도시 나홋드카로 간다는 40대의 사업가였다.
깜깜한 속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아유 맙소사 뼈대만 있는 엘리베이터다. 언제인가 옛 유럽 영화에서 보았던 뼈대만 있는 쇠사슬이 드러난 엘리베이터였다.
문을 닫고 올라가는데 소리가 요란하다. 우르르 쾅쾅 굉음에 삐걱거리면서 올라가는데 겁이 덜걱 난다. 놀란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목사님은 빙글빙글 웃으며 염려 말라고 안심시킨다.
4층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문짝이 반은 망가져 덜렁덜렁한다. 처음 들어가 보는 러시아 아파트인데 낮 설지가 않다. 내가 한때 살았던 우리나라의 서민 아파트 구조와 유사했고 오래된 냄새가 났다. 우리와 다른 것은 추운 나라이다 보니 난방을 위한 라디에이터가 방마다 있는 것이 달랐다. 탈북자 최 군과 또 다른 한국인 3 이서 한방을 사용했다.
처음 보는 탈북자이다 보니 궁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보였다. 외모는 보통 한국 사람이었다. 그러나 숨 막히는 북한 이야기와 열악한 벌목장 이야기는 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비록 숨어 지내고 보기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데도 탈북자 벌목공은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지옥과 같은 동토 시베리아의 벌목장 이야기와, 이해 불가능한 북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금 이 생활이 행복하다는 그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 든 한국에 가는 게 꿈이라고 하였다. 나는 꿈의 나라에서 나와 또 다른 꿈을 찾아가고 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나누다 잠이 들었다.
첫댓글 한만희님!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행복 안에서 행복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용감하십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탈북자의 마지막 말이 가꾸기억 납나다.
어떻게든 한국에 가는게 꿈이라고 한말이....
그사람 지금은 한국에 와서 살고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