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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당에서 나온 내방가사집 학지가
프롤로그
필자는 10여 년 전만 해도 안동·성주·진주·대전·정읍 등에서 개최하는 ‘유교경전암송대회’에 자주 출전하곤 했다. 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경전암송에 대한 재미 때문이었다. 통상 대회에서는 예선·본선을 마치고 심사를 하는 시간 동안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는 안동대회에서 진행하는 ‘향음주례시연’과 ‘내방가사시연’이다. 향음주례는 필자의 주특기 분야인 전통예학과 직접 관련 있어 좋아하고, 내방가사는 너무나 친숙한 가사내용과 여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4·4음보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리듬감 때문에 좋아했다.
여인들의 글, 내방가사
내방가사內房歌辭 혹은 규방가사閨房歌辭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안방 또는 규방[여인이 거처하는 방]에서 여인들이 지은 가사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 주로 영남지방 양반가 부녀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가사다. 가사는 문학의 한 장르라 할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 류가 있다. ‘사詞’는 한글·한자를 섞어 쓰면서 실제 노래로 불리는 가사였는데, 주로 남성 양반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다. 반면 ‘사辭’는 한글 전용으로 노래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읽는’, 다시 말해 낭송을 위한 것으로 남녀가 공유했다. 이 중 특별히 부녀자들이 주로 애용한 것을 내방가사라 했다.
내방가사에서 다루는 주제는 아무래도 여인들과 관련 있는 것들이 많다. 출가하는 딸에게 여인의 덕을 가르치는 내용,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 여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탄식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안주인의 입장에서 시댁의 제사를 비롯한 관혼상제를 다루거나, 시댁과 친정의 가문이나 조상 내력을 다룬 것들도 있다.
어쨌든 내방가사는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였다. 그리고 다루는 주제도 여인들과 직접 관련 있는 것들이 많다. 내방가사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리글자인 한글이다 보니 읽고 듣고 이해하는 것이 쉽다.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아니라 생활 속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누구든지 읽거나 듣다보면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자연스럽게 가사 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화당에서 나온 내방가사집, 학지가
역시 유화당은 유화당이다. 수백 년 내력의 유화당 내공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화당 바깥주인은 바깥주인대로, 안주인은 안주인대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양반선비집 문화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있다. 남편이 앞장서고 부인이 뒤따른다는 말이다. 이를 남편이 무언가 주장하면 부인은 이유 없이 무조건 뒤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잘못 오해하면 안 된다. 이 말의 속뜻은 그게 아니다.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뜻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게 부창부수의 정확한 의미다.
우리는 통상 문중이나 집안 조상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할아버지 이야기만 한다. 그 많은 할아버지와 함께 사셨던 그 많은 할머니는 다들 어디 갔을까? 역사는 물론 신화나 전설에도 중요한 대목에는 반드시 여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왜 조상 이야기에는 할머니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화당은 확실히 부창부수였던 것 같다. 바깥주인은 성리학을 공부한 선비였고, 안주인은 내방가사를 즐긴 양반가 규수였기 때문이다.
유화당에서 내방가사집 학지가가 발견된 것은 2017년 9월 26일이었다.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1차 유화당 현장자료조사를 할 때였다. 여러 문서들 사이에서 발견된 학지가가 현 팔거역사문화연구회 도성탁 회장에 의해 내방가사를 연구하는 한들 권숙희 선생에게 전해진 것.
학지가는 영천시 화북면 학지마을 출신 권영식 선생이 초를 잡고 불러 준 것을 그의 큰 며느리인 심동댁[여강이씨]이 받아 쓴 가사집이다. 학지가에는 모두 5편의 가사가 실려 있다. 신행 가는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당부하고 경계하는 내용을 담은 ‘계녀사’, 삼강오륜에 대한 내용을 담은 ‘입독가’, 학문을 권하는 ‘권학가’, 학지마을 내력과 조상에 대한 내용을 담은 ‘학지가’, 근친 와서 죽은 딸을 생각하며 친정아버지가 지은 ‘사녀가’가 그것이다.
학지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내방가사는 저자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학지가는 저자와 기록자가 각각 권영식과 그의 큰 며느리 심동댁으로 확인이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내방가사가 여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여성에 의해 읽혀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학지가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여성에 의해 읽혔다는 점이다.
영천시 화북면 학지마을에서 탄생한 학지가는 어떤 연유로 대구 북구 도남동 유화당으로 흘러 들어온 것일까? 학지가는 영천 학지마을 안동권씨 집안 여인들 사이에서는 필사본으로 전해지며 많이 읽혔던 내방가사였다. 유화당 종부 권기순 할머니 역시 안동권씨로 영천 학지마을 출신이다. 유화당에서 나온 학지가는 현 종부 권기순 할머니의 남편인 고 이학수 옹이 하양에 살던 권 할머니의 고모로부터 취득한 것이다. 참고로 학지라는 마을명은 마을 앞 숲에 학이 많이 산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학지마을 내력과 조상에 대한 내용을 담은 ‘학지가’에서는 학지마을을 ‘백여대촌’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란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가 나서 학이 살던 마을 숲은 사라지고 없다.
지난 2020년 6월 21일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유화당 관련 2차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때 권숙희 선생이 유화당에서 나온 학지가에 대한 발표를 하고 몇 분 회원들과 함께 학지가에 실린 다섯 편의 가사를 읽는 시연자리도 가졌다. 물론 2020년 11월, 156년 만에 재현된 유화당 범국회에서도 학지가를 읽었음은 당연지사.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사녀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내방가사니 학지가니 아무리 설명을 한들 직접 한번 보고 읽는 것만 하겠는가. 학지가에 실린 다섯 편의 가사 중 마지막에 실린 ‘사녀가’를 한 번 읽어보자. ‘사녀가’는 학지가의 저자인 권영식 선생이 의성 산운마을 이씨 문중으로 시집가는 딸 ‘이실’에게 쓴 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내용은 ‘이실’의 언니인 ‘김실’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큰 딸 ‘김실’은 혼인 후 친정으로 첫 근친[시집간 딸이 친정에 와서 친정 어버이를 뵘]을 왔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 본문에도 내용이 나오지만 권영식 선생의 첫 번째 부인은 두 딸인 ‘김실’과 ‘이실’이 아직 강보에 싸여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애지중지 키운 ‘김실’은 혼인 후 친정에 첫 근친을 와서 죽었고, 동생 ‘이실’은 이제 날이 밝으면 시댁으로 신행[전통 혼례에서 혼인 후 신부가 곧장 시댁으로 가지 않고 일정기간 친정집에 머물렀다 시댁으로 가는 것]을 가야한다. 권영식 선생은 신행을 앞둔 딸 ‘이실’에게 전해 줄 가사집 학지가를 ‘사녀가’로 마무리 했다.
참고로 ‘사녀가’는 옛 글이다 보니 낯설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대어로 풀어쓰면 좋겠지만 “오매불망 보고저운 나에 딸 김실아”로 시작되는 작자의 글을 진솔하게 느껴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원문 그대로 읽는 수밖에 없다. 글은 한들 권숙희 선생이 해제한 것을 그대로 옮겼다. 다만, 이해가 어려운 일부 표현에 대해서는 간단히 각주를 달았다.
‘사녀가’
오매불망 보고저운 나에 딸 김실아 / 동문오의 다른법을 나는어이 몰랐던고
한퇴지의 제문사연 층봉역이 슬프도다 / 소로천의 깊은원한 소소저가 요사로다
천고인정 스쳐보니 대동소이 아비마음 / 은금보화 좋다해도 일어불만[잃어버리면] 그만이요
양전옥답 좋다해도 없어지면 잊어부되 / 망녀생각 못잊으니 생각사자 괴롭도다
국화꽃에 갈바람은 너에 음성 의심이요 / 청천에 밝은달은 너에용모 완연하다
뜰앞에 붉은홍시 뒷동산 누린 밤은 / 네먹던 실과로서 거연[작년]같이 익었고나
앞집딸네 뒷집며늘 눈에비면[보이면] 상심이라 / 모수공단 인조숙수 볼때마다 생각이요
은가락지 금비녀는 아주보기 내사싫고 / 찰밥단술 갖은떡국 먹을라니 맛없고나
하루날 열두시에 생각안일 때가없고 / 한달이라 삼십일에 잊을날이 전혀없다
슬프다 나에 김실 생각고 생각하니 / 눈에삼삼 용모자색 귀에쟁쟁 웃는소리
여랑여취 아비마음 심회풀이 가시로다 / 내딸되어 네올때에 사남후 처음이로다
너에어마 너를 얻어 희한하고 반가워서 / 구슬인가 금쪽인가 부귀춘화 피었는가
노룡의 여의준가 만져보고 안아보며 / 눕혀보고 업어보며 울음울까 염려로세
불고보면 날아갈까 쥐고보면 꺼질세라 / 마른자리 갈아눕혀 때를 맞춰 젖먹이고
알송달송 고운헝겊 동저고리 붉은띠며 / 울긋불긋 자주명주 다박머리 쪽댕기며
오리도리 꽃주머니 대구팔시 경짜매줌[장날마다] / 발룸발룸 나비치마 솜씨있게 지어입혀
어서어서 키워내어 일등가랑 사위얻어 / 군자숙녀 짝을 맞춰 만세영화 보려하고
더위추위 불구하고 만고자미 너하나라 / 야속한 하늘님이 너에어마 무산일고
어렵잖이 병이나서 강보에 너를두고 / 고물고물 너에동생 겨우인형[사람형상] 이뤄놓고
이세상을 이별하니 영결종천 차악하다 / 너아비는 쇠한인사 너에형제 어미잃고
오뉴월에 서리친듯 꽃뒤원 불타는 듯 / 바람소리 소슬하고 물결조차 처량하다
살수없고 불쌍하니 너에형제 할리없다 / 너에어마 깊은자정 어느누가 자세알며
너에형제 가긍형상 뉘라서 거두울고 / 너에새형 심동부인 회재선생 가법으로
너에어마 효부되야 시모뜻을 알뜰이어 / 너에형제 길러내니 그은덕이 적을손가
알뜰살뜰 어루만져 공주같이 길러내어 / 침선방적 이력새며 부녀행실 언어동작
음식새며 인사범절 구비구비 잘가르쳐 / 이팔방년 되고보니 혼인유렴 주밀하여
초행재행 신행이며 문안하인 정성인사 / 사랑하던 너어만들 그위에 덮을손가
곱고고운 너에자질 헌헌장부 너에가장 / 백년해로 만복받아 너에새형 은혜갚고
너에아비 영화븨고 너에어마 흔적되야 / 김씨댁을 중케하고 부귀영화 바랬더니
너에동생 혼인때에 첫근친이 반갑도다 / 이월삼월 너에형제 거처숙실 한방안에
난형난제 즐긴단상 기이하고 이상하다 / 사월이라 짜른밤에 곤한듯이 누웠으니
알음없는 너에부모 네병난줄 아이알리 / 단불에 나비같이 약한첩도 못써보며
한번푸님[푸닥거리] 못해보고 한시간에 잠이들어 / 안색이 죽닙같고 수족이 얼음이라
아해야 무슨잠이 이다지 고이한고 / 네쪽송판 집을지어 함석으로 수장하여
자동차에 위로앉아 시댁멀리 이별하고 / 적적청산 찾아들어 꽃수풀을 장막치고
새소리를 풍악삼아 선녀따라 노단말가 / 고금없는 금년우수 어찌홀로 지냈으며
상풍낙엽 추운때에 어찌해서 견뎌낼고 / 마자새라 마자새라 너생각 마자서라
마자해도 오는생각 눈섭우에 안수로다 / 일생에 나에김실 나를위해 하는말이
황구태백[금성·샛별] 나에아바 만수무강 우리아바 / 늙지말고 강장하여 태평안과 축원하며
불귀고 나에어마 언제한번 다시볼고 / 오매불망 나에어마 보고저라 원하더니
옥황상제 찾아가서 너에아비 수를빌어 / 백세향수 하게하고 너에어마 만나보아
모녀화락 하려하야 이같이 되었구나 / 효녀로세 효녀로세 나에딸이 효녀로세
너에몸이 신선되어 어미찾아 가였고나 / 생각마자 너아비야 신선아비 신선이지
슬프다. 이실아. 탄솔한 너 아비가 잠 없이 인색하여 아무 것 줄 것 없고 인색한 너 아비가 자정은 남과 같아 신행 날을 받아놓고 암암히 생각하니 (천)하가 비는 듯고 혼실이 고요한 듯 계여사를 짓고 입독가, 권학가를 차례차례 등서하고 우리 학지 동명승처를 역력히 기록하여 보배같이 너를 주니 자연석사 역력비회 금치 못해 사녀가를 짓자하니 훙해[가슴]가 막막하고 누수가 앞을 가려 심중회포 다 할 수 없어 대강대강 기록한 것 아비 수적으로 반겨 받아 살펴보면 부녀 합석 다름없고 너에 형(언니) 대해 본 듯할 것이라 신행 간 후 여가 여가 친정회포 위로 하여라.
에필로그
필자와 아주 가까운 지인 중에 경주 양동마을 출신 여강이씨가 한 명 있다. 그 지인에게 혹시 영천 학지마을로 시집간 ‘심동댁’을 아냐고 물어보니 조금도 주저함 없이 답을 했다.
“글 잘하시는 아지매 아인교!”
그렇다. 전통문화는 사라질 때 사라지더라도 이어질 때까지는 끈질기게 이어지는 법이다. 산업화·현대화를 거치면서 내방가사 문화도 이젠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가녀린 명주실마냥 언제 끊어질지는 몰라도 어떤 식으로든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경주 양동마을에서 영천 학지마을로 시집온 심동댁을 거쳐, 대구 도남동 유화당까지 전해진 학지가. 이제는 권숙희 선생을 비롯한 내방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손에까지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학지가는 그나마 다행이다. 연구자들 손에 들어갔으니 사라질 걱정은 안 해도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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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권씨 권오문의 처로 경주 양동마을 심동 출신이다. 여강이씨 이석보의 맏딸이며 문원공 회재 이언적의 14세손이다.
○ 친정집에서 시집간 딸을 지칭하는 표현. 김씨가에 시집가면 ‘김실이’, 이씨가에 시집가면 ‘이실이’라 칭했다.
○ 당나라 문장가 한유[768-824].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 소순. 동파 소식의 아버지.
○ 소동파의 누이.
○ 슬픈 일을 당하여 몹시 놀랍다
○ 성품이 너그럽고 대범하며 솔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