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납을 사용해 왔다. 아시아에서는 6000년 전부터 납을 사용한 기록이 나오고 3500년 전 이집트에서도 용기나 수제품을 만드는데 사용해 왔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의서에도 납중독에 의한 복통을 기록하고 있다. 납은 로마시대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포도주나 음료에도 첨가제로도 이용했다. 질 나쁜 포도주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납을 첨가제로 사용하던 관습은 중세시대에도 계속되었고 이로 인한 납중독의 사례는 꾸준히 보고 됐다.
근대화되면서 납의 사용은 폭발적으로 늘어 18~19세기에 유럽에서 많은 종류의 납중독이 발견됐다. 납은 재생이 가능하므로 실제 채광량 보다 훨씬 많은 양이 사용된다. 납은 도기를 만드는데도 사용됐는데 이 용기에 산성 음료를 담아 놓고 마시는 경우 음료에 납이 녹아들어 이를 마시면 납중독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청자 등의 도자기를 제작하는데 사용됐던 유약에 납 성분이 들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납중독이 적지 않게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사용하는 유약은 대부분 납이 함유되지 않은 무연안료로 대체됐다. 납은 한방의학에서도 사용됐는데 과거에는 일부 의서에 납을 첨가하는 비방이 들어 있어 1980년대까지도 한방약(주로 환약)을 복용한 후 납중독이 발생한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현재에는 이러한 처방이 삭제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고 가끔 민간요법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납중독이 발생한 사례가 보고 되고 있다.
납은 우리 주변 환경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 식물, 토양, 대기, 음료, 음식물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음식물이나 식수 또는 공기를 통해 체내에 흡수되고 있다. 그렇지만 납은 인체에는 전혀 불필요한 금속으로 체내에서 검출된 자체가 환경적 오염이나 직업적 노출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혈중 납농도 높으면 지능발달장해 초래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의 납 오염원은 휘발유에 첨가된 납이었다. 자동차의 노킹을 방지하기 위해 휘발유에 납을 첨가했고 이것이 대기를 오염시켜 일반인들의 혈중 납농도를 높인 원인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부터 납을 첨가하지 않은 무연휘발유를 사용해 대기 중 납농도를 줄였고 일반인들의 혈중 납농도도 10㎍/dL 수준에서 5㎍/dL 수준으로 떨어졌다.
납 사용에 제한을 가하면서 과거에서처럼 높은 농도의 납에 노출되는 경우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자동차 배터리, 안료, 도료, 플라스틱 제조나 전자제품 납땜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저농도의 납에는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비록 납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성인에서는 일정 수준(25㎍/dL)이하이면 건강장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아는 이보다 훨씬 낮은 농도(10㎍/dL 수준)에서도 건강장해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성장기의 소아에서 정신지능발달은 고농도의 혈중 납농도와 역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혈중 납농도가 높으면 지능발달의 장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에서 심각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져서 미국에서는 소아의 납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년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연구와 예방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사례 1> 고농도 납에 만성적 노출에 의한 만성 납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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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단된 PVC제품 포장과정 |
PVC 수지를 안정제와 함께 혼합해 PVC로 된 벽지와 천정용 판을 제작하는 사업장에서 포장작업을 하던 53세 된 A씨는 건강진단에서 납중독의 소견이 나타났다. A씨는 5년 전부터 이 회사에 입사해 절단기로 절단된 제품을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절단작업에서는 많은 분진이 발생했는데 불량제품은 다시 분쇄해 압출기에 투입하는데 분쇄과정에서도 많은 분진이 발생했다. 분진에는 안정제에 함유된 납이 포함되어 있었다.
발병 전년도 측정한 작업환경측정 자료에서는 기중 납농도는 노출기준의 1/10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A씨의 혈중 납농도는 67㎍/dL로 납중독의 기준인 60㎍/dL를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기중 납농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혈액검사에서 빈혈은 없으며 A씨가 특별한 증상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A씨는 만성적으로 고농도의 납에 노출되어 만성 납중독이 발생했고 본인은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않았던 사례이다. A씨에 대해 별다른 조치 없이 만성적으로 방치하면 납중독으로 인해 중추신경질환, 말초신경염, 만성신부전, 빈혈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사례 2> 만성적·간헐적 고폭로에 의한 급성 납중독
30년 넘게 고철을 용접해 분해하는 작업을 하던 52세의 P씨는 2~3일전부터 심한 무릎 관절통이 있어 정형외과를 방문하여 엑스선검사, 혈액검사를 했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고 퇴행성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진통제를 복용했다. 그러나 증상이 쉽게 좋아지지 않았고 무릎 엑스선 소견도 퇴행성관절염을 의심할 만한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A씨의 혈액검사에서 혈중 납의 농도는 110㎍/dL로 크게 증가했다. P씨는 착화제(체내 중금속 제거약물) 치료 후 증상은 바로 없어지고 혈중 연농도도 많이 감소됐다. 만성적으로 간헐적인 고폭로에 의한 급성 납중독으로 관절통이 나타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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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VC제조에 사용되는 안료 분말 |
P씨는 일용근로자로 하도급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아 출근해 용접으로 철구조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량이 많으면 며칠동안 일을 하지만 작업량이 적으면 2~3일 정도 일하고 쉰다고 했다. P씨는 납중독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납도장이 되어 있는 철구조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한 후에는 간혹 관절통이 온다고 자신의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P씨의 진술로는 다른 근로자들도 비슷한 증상을 앓는 경우가 있다고 했으나 고용 특성상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이들을 추적해 보지는 못했다.
<사례 3> 급성 납중독에 의해 복통 발생
22세인 젊은 여성근로자 L씨는 갑자기 심한 복통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 L씨는 평소에 관절통이 있었는데 양약으로 잘 치료가 되지 않아 시골집에서 보내준 민간 처방의 환약을 일주일 전부터 복용하고 있었다. L씨는 회사의 경리직으로 평소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될 기회는 없었다. 혈액검사 결과 혈중 납농도가 90㎍/dL이었다. 착화제 치료 후 증상이 없어졌고 혈중 납농도도 감소했다. 급성 납중독에 의해 복통이 발생한 사례이다. 과거에 한방에서 납을 치료목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납이 함유된 환약이 유통되어 이를 복용한 환자들에게 납중독이 보고 된 사례가 많았다. 납중독의 위험성이 알려진 이후에 처방에서 납 사용이 삭제되고 납이 함유된 환약을 사용하는 사례는 없어졌지만 아직도 민간 처방에서는 가끔 납이 함유된 환약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사례 4> 장기간 산화연 노출에 의한 만성 납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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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료로 사용되는 산화연 분말 제조과정 |
49세의 K씨는 광명단을 제조하는 사업장에서 배합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평소 피곤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기건강진단 결과 혈색소가 9.1㎎/dL로 심한 빈혈 소견을 보이고 있었다. 건강한 남자의 혈색소는 12~16㎎/dL 수준으로 K씨의 빈혈 소견은 아주 심한 상태였다. K씨의 혈중 납농도는 148㎍/dL 으로 매우 높아 신경계질환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K씨에게 즉시 작업을 중단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산재요양신청을 하도록 했다.
K씨는 광명단을 제조하면서 노출되는 산화연에 장기간 고농도로 노출되어 심한 빈혈 소견을 보이는 만성납중독의 사례이다. 과거에는 영양실조와 겹쳐 납중독 근로자에서 흔히 빈혈소견이 보였는데 최근에는 근로자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K씨와 같은 심한 빈혈 소견을 보이는 근로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광명단 제조 과정에서는 많은 분진이 발생해 적절한 방진장치와 호흡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으면 쉽게 납중독이 발생할 수 있다.
<사례 5> 만성 납중독에 의한 만성신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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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제품 제조에 사용되는 안정제 |
50세의 K씨는 만성신부전이 발생해 혈액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K씨는 25년 간 축전지 제조사업장에서 근무했다. 근무 중 매번 건강진단에서 혈중 납농도가 60㎍/dL 내외로 높다고 요주의자 판정을 받았으나 특별한 증상이 없어 계속 근무를 했다. 2년 전 회사가 부도로 폐쇄된 후 소변검사에서 단백뇨가 나타났고 정밀 진단 결과 만성신부전으로 나타났다. 최근에 실시한 뼛속 납함유량 검사에서 일반 사람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였다. K씨는 회사를 퇴직해 납에 노출되지 않은지도 2년이 넘는데 아직도 혈중 연량은 일반인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K씨는 만성적으로 납에 노출되고 체내에 흡수된 납이 뼛속에 남아서 장기간 배설되면서 신장을 손상시켜 발생한 만성납중독에 의한 만성신부전의 사례이다.
장기간 고농도의 납에 노출되면 그 당시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 하더라도 체내에 축적된 납에 의해 장기가 손상되어 수십 년이 지난 후 치명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현재에는 증상이 없다 하더라도 주기적으로 혈중 납농도를 측정해 최대한 낮은 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체내 흡수된 납은 뼛속 등에 축적되어 ‘위험’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처럼 단기간 고농도에 노출되는 급성 납중독의 경우에는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부분의 납중독에서는 특별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납중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기간 고노출에 의한 복통이나 관절통 이외에는 납중독이 되어도 본인이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만성적으로 노출되면서 납이 서서히 체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체내에 흡수된 납은 일부는 배설되지만 꾸준히 뼛속 등에 축적되어 체내에 남아 있다가 서서히 유리되면서 신경이나 신장 등을 손상시킨다. 일단 만성 납중독에 의해 손상된 신경이나 신장조직은 회복되지 않고 계속 악화된다. 이것이 납에 노출되는 근로자는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혈중 납농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