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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연표를 연대 유인원과 관련하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파스칼 피크의 책을 읽고서 (이 번역서에는 연대의 오류가 많다. ...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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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00만년전 사람과(호모니데 Homonidae,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 인간)는 화석 자료상 약 3500만년 전에 살았던 공통조상 개체군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뒤종, 인간의 유전자는 어떻게 진화하는가(Comment évoluent nos gènes? 2005)
1 300만년 전부터 아프리카 큰 원숭이 계보 즉 인간 종이 포함된 계보? ... ..
700만년전 숲에 살던 원시시대에 인간[영장류]은 기껏해야 키 1미터 10센티미터 몸무게 40킬로그램의 한 개체에 불과했습니다. /2001년에 투마이(Toumai, Sahelanthropus tchadensis)[700만년전], 2001년 아프리카 중앙에서 발견되었다.
- 700-600만년전 공통조상이후로 유인원과 인류는 갈라진다. 인간의 조상은 숲에서 나무가 있는 초원으로, 거기서 다시 개방된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직립보행을 하고 식습관을 바꾸었으며, 보다 정교한 문화와 도구를 발명해 집단생활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 공통조상 오로린(Orrorin)과 투마이(Toumai) .. 전자는 나무위에 후자는 호수가에 살았다.
600만년전 2000년에 케냐에서 오로린(Orrorin tugenensis, 600만년전) 발견
550만년-450만년 전으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 와 아르디피테쿠스 카다바(Ardipithecus kadabba) 언어능력을 실질적 지표로 삼을 수 없습니다.... 기저핵은 침팬지와 더 많이 비슷합니다. (67)
480만년 전 Alu 서열이 증가한 사건으로 인간 게놈이 2 000개가 존재하는 사본 중의 일부가 인간 개체군 사이에서도 다형성을 띤다. (뒤종, 2005)[다형성, 들뢰즈의 다양체와 같이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름(명사) 그 대표성 또는 표상이다.]
400-300만년된 다섯종 화석
오스틀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Australopithecus anamensis)
오스틀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afarensis: Lucy, 3,2 Ma) 루시
오스틀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Australopithecus africanus)
오스틀랄로피테쿠스 바렐가잘리(Australopithecus bahrelghazali)
케냔프로푸스 플라티옵스(Kenyanthropus platyops)- 500세제곱센티 뇌크기
이들은 식물의 뿌리의 질긴 부분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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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350)만년전 “루시”(Lucy Australopithecus afarensis) 화석 발견 - 1974년 미국 조핸슨(Donald Johanson)과 프랑스의 타이엡(Maurice Taïeb)과 이브 꼬빵(Yves Coppens, 1934-) 이다 꼬빵은 프랑스 고생물학자, 고고인류학자. 꼴레쥬 드 프랑스 명예교수. (320만년 전으로 잡는다.) [이 종은 300만년전에서 250만년 전에 사라졌다.]
[300만년전 빙하기가 있었다? ]
270만년전 - 1백만년 사이에 파란트로푸스(Paranthropus) 아프리카에 살았던 원시인류 호 est un genre éteint d'hominidé ayant vécu en Afrique entre environ 2,7 et 1 million d'années avant le présent.
270만년전 최초의 도구들은 약 270만년전에 동아프리카(에티오피아 아와시Awash 계곡)에서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내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의해 제작되었다. (87)
250만년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littéralement « homme habile ») est une espèce du genre Homo qui vivait il y a approximativement 2,5 à 1,8 million d’années en Afrique du nord, orientale et australe. / 이 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Australopithecus garhi)와 겹친다.
240만년전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두발 원시 인류
240만년 전에 영장류들은 강을 따라 현무암을 찾으러 .. 엘렌 로슈(Hélène Roche s.d.) 팀 ... . 초원을 건넜습니다. 규암 현무암 규석.. 그들은 오른손잡이인데요. 뇌는 좌우 비대칭으로 기능하므로 이들은 우뇌에 비해 좌뇌의 지배를 더 많이 받았을 겁니다. 좌뇌는 언어능력을 관정하고요.
230만년전 (26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가르히(Australopithecus garhi est une espèce fossile d’hominidé appartenant au groupe des australopithèques graciles. Son âge est d’environ 2,6 millions d’années.
200만년전 동아프리카 원시인들 ; 현재 돌을 이용해 사냥할 줄 아는 서아프리카 침팬지와 비슷했을 것이다.
200만년전 호모 에르가스테르(Homo ergaster (« l'homme artisan ») : 삐끄 견해- 최초의 인류. 160센티미터 초원을 오래 걷는데 완벽하게 적응했으며... 이주자이다.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와 유럽으로.. 흉곽은 원추형에서 술통형으로 .. 달리기 시작하면서 후두 하강했습니다. / 뇌의 평균 크기는 750세제곱센티미터에서 900세제곱센티미터 이상까지 다양했다(피크. 언어의 시대, 69) / 1984년 첫발견 1995년 재발견.. 1991년 우드(Bernard Wood, s.d.)가 명명.
200만년전 또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Australopithecus robustus), 진지(Zinj)라는 애칭. 리키부부 발견한 것.. (현재는 175만년 전으로 추정)
200만년전 인간은 ... 지구의 역사 제4기(紀) 초기(약 200만년전)에 노동 수단(도구)을 사용하여 생활 자료를 얻음으로써 지구상에 나타났고, 이때부터 수, 크기, 모양의 개념이 싹드기 시작했다. (안재구: 수학문화사, 13)
[200만년에서 100만년 사이에 화석의 공백이 있다/ 170만년에서 70만년 사이 별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
180만년전 주거흔적이 발견된다.
170만년전에 호모 에르가스테르는 좌우 대칭의 도구를 만든다. 이때 쯤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간 최초의 영장류일 것이다. - 공통기어(protolaguage)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 2002년 발견 그루지아 드마니시(Dmanisi)에서 호모 게오르기쿠스(Homo georgicus) 불의 사용 (170만년으로 추정) .
15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코와 인두의 해부구조는 분절화된 언어 형태가 이미 150만년 전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로르블랑셰 “예술의 기원” 49)
[140만년 전에도 불의 사용 흔적이 있다.]
10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1M-30만년)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발견..
60만년전 끝이 무디고 양면의 길이가 완전히 대칭인 주먹도끼를 발명했습니다.
호모 하이델베르켄시스(Homo heidelbergensis, 60만년-20만년)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살았다가 사라진 종.
50만년전 인간이 화덕을 사용한 불의 사용. [아마도 근거지로서 정주지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불을 피운 밤에, 이야기 기능으로서 언어가 나왔을 것이다. 초기 피진어..
70-20만년전 중국 북경가까이 방산구(房山區 팡산구)의 주구점(周口店 저우커우뎬 Zhoukoudian, 주구점)에서 의 발굴에 참여하였다. 여기서 시난트로프(sinanthrope) 즉 북경원인(北京原人, homme de Pekin)을 발견했다. 이것은 자바원인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인류의 전형이다. [북경원인은 20-70만년 전이라 추정한다.]
30만년전 스페인 그란 돌리나에서 발견된 유물은 .. 수십구의 잔해 .. 이들 뼈에는 사람의 손이 미친 흔적을 나타났는데 .. ‘유해 안치소’를 증명하는 것이다.
25만년 전 네안델탈인(L'homme de Néandertal ou Néandertalien ; Homo neanderthalensis) 25만년전에서 2만8천년에 살았다. est un représentant fossile du genre Homo ; il a vécu en Europe et en Asie occidentale au Paléolithique moyen, entre environ 250 000 et 28 000 ans avant le présent.
20만년전 해부학적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 homme savant ») 또는 현생인류(homme moderne)의 출현.
[지층연대: 15만년 전 홍적새: 현생 인류(homme moderne) 출현]
10만년전에 아프리카 한 집단이 서아시아에 정착하기 전에 언어가 나타났다는 가설
[10만년 전, 6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보는 학자들 중에는 이를 2단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1기는 놀랍게도 현대인이 세계 곳곳에 퍼져 살기 시작한 10만 년 전에 벌써 일어났고 제2기는 농업혁명이 이루어진 1만 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9만 5천년 전 호모 플로레지안시스(L’Homo floresiensis 9만 5천-1만 2천) aurait vécu sur l’île de Florès entre -95 000 et -12 000 ans environ.
6만년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종 출현
5만년전 - 인간에 의한 대량 멸종의 서막은 약 5만년 전에 올랐다. (짐머 “진화” 239)
[5만년에서 4만년에도 빙하기가 있었다 그리고 1만년 전에 마지막 빙하기였다고 한다]
4만 3천년 크로마뇽인(Homme de Cro-Magnon) 4만 3천년에서 1만 2천년 사이 ...
4만년 기점에 이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돌을 조각하고 동굴 안에 그림을 그리며 한층 더 다양한 악기와 장신구를 만들게 된다. 그들은 또한 죽은 자를 부장품과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그 물건들을 쓸모 있게 사용할 사후 세계를 상상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언어의 진화322)
3만 5000년 갑자기 네안델탈인 사라지다.
3만 3000년 유럽에 처음으로 인간 등장 현생인류; 이 인류가 언어의 기능을 매개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아메리카로 이동하게 했다. [오늘날 인류(Homo sapiensis sapiens)는 어디에서나 출현했는가보다 사회문화를 성립시키며 잔존했는가에서 찾아야 할 것같다. 가설 풍요로운 토양.. 동쪽 과 서쪽... ]
3만 2000년전 1994년 발견. 쇼베 뽕 다르크(The Chauvet-Pont-d'Arc Cave)동굴은 아르데쉬(Ardèche, 07)주에 있다. - 400여 마리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1868 3만년전 프랑스 중서부 도르도뉴(Dordogne dép 24, 주도 Perigueux)의 크로마뇽(Cro-magnon)에서 3만년 전 인간의 유해를 발견하다.]
3만년 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 기원전 3만 년 전 인류의 오랜 조상인 크로마뇽인들은 이런 몸매와 비례를 가진 여성을 아름답다고 생각. 원시인들은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하게 잠자고, 여기에 자손을 많이 낳아 부족이 번창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자 바람이였음. 그래서 일은 물론 사냥도 잘 하고, 아이도 많이 낳을 수 있는 튼튼한 여성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 것임.
3만년 최초로 동물기름(수지, 獸脂)을 사용.
2만 6천-2만 4천년, 상아로 만든 여성상 비너스(Le Venus de Lespugue)이 1922년 8월 프랑스 사브(Save, Haute-Garonne) 협곡의 레스쀠그에서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르네 드 상-뻬리에(René de Saint-Périer 1877-1950)이다. 이 여성상은 크기 147mm 넓이 60mm, 두께 36mm 작은 것이다. .
2만 4000년 뼈로 만든 바느질 바늘 발명
2만년 활과 화살의 발명
- 구석기시대의 예술품을 2가지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크기가 작은 조각품이며, 다른 하나는 동굴의 벽에 물감으로 그리거나 선으로 새기거나 또는 돋을새김[浮彫]한 거대한 예술품이다.
- Grotte de Lascaux 1만8천년에서 1만 5천년
[프랑스 아키텐주(Aquitaine région) 도르도뉴(Dordogne)의 크로마뇽(Cro-Magnon) 동굴에서 맨처음 발견된 화석인류로, 현생인류(現生人類)의 직접적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한다. 후기 구석기시대인 1만~4만 5천년 전에 살았으며, 유럽 전역에서 관련 유적이 폭넓게 발견되어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과 함께 유럽의 구석기시대에 나타난 화석인류를 대표한다. / 인근의 라스코(Lascaux) 동굴에서는 15000년 전 무렵에 그려진 800여점의 벽화와 암각화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퐁드곰(Font-de-Gaume) 동굴, 루피냐크(Rouffignac) 동굴, 콩바렐(Combarelles) 동굴 등 모두 25개의 동굴에서 2000여점의 벽화와 암각화가 발견되었으며, 구석기시대의 석기와 골각기 등의 유물 등이 함께 발견되어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879년 스페인의 산탄데르(Santander) 인근에서 발견된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의 벽화도 크로마뇽인의 생활과 문화를 잘 보여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1만 5천년 - 1만년 「들소」(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 구석기 시대의 자연주의 - 1879년 스페인 북부 칸타브리아 지방에서 어린 소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 [바스크 족이 사는 지역인데 그 바스크족은 고대의 독특한 기초언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47QLC)]
- 라스코 동굴벽화처럼 구석기(Paleolithic) 후기의 마들렌기인 B.C 2만~1만년전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의 대부분은 천정에 그려져 있기에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다면 나중에 개발공사 등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이 없어질 뻔했다고 한다. 매머드, 들소, 사슴 등이 검정색, 붉은색, 갈색 등으로 그려져 있다.
- 이 시기부터 장거리에 걸친 교역 혹은 교환경제행위와 관계된 증거가 본격적으로 나오며, 알타미라와 라스코의 동굴벽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을 위시한 본격적인 예술작품이 등장한다. 이들 예술품은 상징과 주술 행위에 관계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사회적 정보의 전달 및 갈등 해소의 기능적 역할을 위해 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15,000 가장 오래된 소로리(Sororica) 볍씨가 등장했으니,(58) ...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오창과학산업단지 구석기 유적지에서 지금으로부터 17,000-13,000년 전(미국 GX방사선연구소는 14,820-13,010년으로 측정)의 토탄층에서 모두 59톨의 볍씨가 발견되었다.(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상 61) 일곱번째 이야기_ 한.중 교류의 서막을 연 서복)
1만 3천년전 꽁바렐 동굴(La grotte des Combarelles) 마그달레니언(Magdalénien)시기, 크로마뇽인이 그린 맘무뜨 그림이 있다. [크로마뇽인은 1만 2천년 경까지 존속]
1만 2000년 바빌론지역(이라크)에서 개를 기르기 시작.
<1만 400년전에 인류가 사라졌다. (W. F. 리버? 노벨상수상자) 웹사이트에 있는 건데 다른 데는 없는 이야기이다. / (45LKF)>
[세월이 또 어느 정도 흘러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년 전 쯤부터는 사람이 살아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이 새로 만든 두뇌로도 쉽게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진화가 그 다음에 택한 방책은 육체 바깥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두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별도의 공용 저장소를 만들어 그곳에 보관할 줄 아는 종은 지구상에서 인류뿐이라고 한다. 이 “기억의 대형 물류 창고”를 우리는 도서관이라 부른다. (세이건 “코스모스” 557)]
약 1만년전에 빙하기가 끝난다.
인구수 500-900만명으로 추정한다.
[1만년전 신석기 시대: 곡식의 저장과 더불어 일반적으로 신석기 시대라 한다.] [칼 세이건이 생각했듯이, 기억의 물류창고로서 도서관의 첫 역할은 곡식저장의 방식일 것이다. 그 저장과 씨뿌리기는 천문학(태양 순환)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절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신석기 시대를 기호로 표시하는 방법을 만들면서 구석기의 상상적 서술로서 언어가 다른 방식을 더 보탰을 수 있다. 영혼(내화)에 대해 정신(외화)의 발달이 도래할 것이다. 이것을 형상적 체계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의 전600년 쯤일 것이다. (48NLH) ]
1만 [중동지역에서 밀을 재배(栽培) 시작 - 일반적으로 알려진 학설] 농사 시작...
8000년 바빌론 북부에서 처음 농업이 시작, 페루에서 감자를 심고, 동남아시아에서 벼를 제배.
7000년 터키지역 아나톨리아에서 직물의 발명. [[7200 구리 장신구가 처음 나타난 곳은 기원전 7200년 경 터키의 아나톨리아(떠오르는 태양의 땅이란 뜻) 고원지대이다. [그리고 구리에 주석이나 비소 또는 아연을 섞은 합금이 청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 사이가 된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황소 숭배가 발견된다. (버낼, 제3권)
6000경 구리는 중동지방에서 채취되기 시작했으며, 4000년경에 비로소 구리와 주석을 합금 시킨 청동이 만들어졌다.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상 50)
{6000 인더스 문명}
5000년 교환수단(화폐)으로 금과 은을 도입.
[1991 5,000년 전에 사망한 인간의 유해 ‘외치’가 얼음 속에서 냉동된 채로 오스트리아 지역 알프스에서 발견되었다.] 5000년전 알프스 빙하 속에서 자연 보존된 빙하인간 미라 (언어의 진화17)
4000 (즉 5000년)전의 유물로 추정되는 시바신상(Siva 神像)에서 요가의 기본자세인 결가부좌(結伽趺坐)를 볼 수 있다. [naver의 뻥일 수 있다.]
4000 빗살무늬토기는 대체로 기원전 4000년기부터 1000년기 사이에 주로 산림이 우거진 강이나 하천 주변에서 수렵과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썼다. 아직까지 이 질그릇의 발원지가 어디인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수일 한국 속의 세계(상 30-31)
4000 문명은 기원전 4,000-3,000년에 메소포타미아로부터 거대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3500년 청동의 발견 - 주석은 기원전 3,000년경에 구리에 첨가해서 구리를 단단하게 하는데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청동기 시대(Bronze age)가 열리게 되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계의 합금으로 전형적인 청동은 88% 구리와 12%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리는 무른 금속인데, 주석 또는 비소(As) 등의 금속을 소량 첨가하면 단단해지고 녹는점이 낮아지며 주조성이 좋아진다. 납과 성질이 비슷하나 독성이 거의 없어 납의 대체품으로 사용이 늘고 있다.
3300년 바빌론(이라크)에서 바퀴(륜 輪, 수레, 車) 발명 [배는 언제인가?]
3200 이집트의 상형문자(기원전 3200년) 기록
기원전 3200년경 전쟁에서 승리한 왕, 즉 어둠의 세력을 물리친 파라오들을 기념하는 내용의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 또는 "전갈왕의 곤봉"이다. 그러나 상형문자 체계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그 등장 시기는 적어도 5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00년 이라크에서 수메르인들이 상형문자(象形文字) 발명, 이집트에서 365일 열두 달 구분의 달력 도입. 수메르인들의 설형문자(楔形文字) 서판들(기원전 2800년), [중국의 동제력은 기원전 3000년전이다]
2900 돌니 베스토니스(La Venus de Dolni Vestonice: Tchecoslovaquie)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도자기 [세라믹(céramique, gr. kéramos)]
- 복희(伏羲), BC 29세기 용사(龍師) 상고(上古)시대 삼황오제 중 한 명인 태호(太昊/太皞) 복희씨(伏羲, 伏犧)씨. 팔괘(八卦) 창제 [10] 龍師火帝
2500년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楔形文字): 쐐기문자는 BC 2500년쯤에는 셈어족인 아카드어, BC 2000년쯤에는 아카드어의 분지인 바빌로니아어와 아시리아어, 다시 주변의 히타이트어와 아라라트어의 표기에 사용되었다. 또 구조가 다른 우가리트(북시리아)와 고대페르시아의 쐐기문자를 파생시켰다. 쐐기문자는 약 3000년 동안 사용되었으나 서력기원 전후 무렵에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그 용법도 잊혀졌다. [이집트 문자도 로마의 성행으로 프톨레마이오스조 시대에 사라지기 시작하여 로마 제국이 형성되면서 사라졌다.]
2500 고고학사에 따르면, 기원전 25세기 경 수메르에서 철기가 만들었으며, 강철은 아르메니아 지역의 히타이트족이 기원전 20세기경에 개발했다. (이종호 한국의 7대.. 184-185)
[2400 이집트의 피라믿 건설 ]
2333 고조선 성립
[2300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선사 유적지 스톤헨지. 기원전 2300년쯤으로 추정된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스톤헨지는 신석기시대의 루르드즉 치료소일 것이라고 한다.
2250년경(기원전) 에블라 서판(Ebla tablets) 약2250년경 유적지에서 2만자의 쇄기 글자가 있는 판을 발견했다.
2000년쯤에는 아카드어(쐐기문자)에서 갈라지는 바빌로니아어와 아시리아어, 다시 주변의 히타이트어와 아라라트어의 표기에 사용되었다
1800-1650 에블라(Ebla (Arabic: إبلا, modern Tell Mardikh, Idlib Governorate, Syria)문명: 현 시리아 지방에 3세기 후반에 있었던 국가 그리고 나중에 다시 전1800년에서 1650년에 있었던 도시국가이다 / 1800-1650 Ebla (Arabic: إبلا, modern Tell Mardikh, Idlib Governorate, Syria) was an ancient city about 55 km (34 mi) southwest of Aleppo. It was an important city-state in two periods, first in the late third millennium BC, then again between 1800 and 1650 BC.
1800-1500 청동기 초기 ?
1700년 - 1929년 이후, 레바논의 비블로스 유적에서 발견된 문자의 볼 때 알파벳 체계는 BC 17~BC 15세기에 동(東)지중해의 어느 한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 알레프(aleph: 소를 의미하는 기호)에서 A, 베트(beth: 집을 나타내는 기호)에서 B가 만들어졌다. 알파벳이라는 명칭도 이 페니키아어의 유파(流派)에 속하는 그리스문자의 자모표(字母表)의 처음 두 글자인 α(알파)와 β(베타)가 결합된 것이다. -]
1500년 이집트인이 믿을 만한 최초의 시계였던 물시계 발명 [해시계가 아니라 물시계라는 점에서 탈레스의 세계에 형성도 물이라고 했던 이유가 동일할까? - 해시계는 흐린 날에 불가능하다.]
- 선문자 B는 기원전 15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아가멤논(Agamemnon)이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미케네(Mycenae)의 이름을 딴 Mycenaean(미케네 그리스어)를 쓰기 위해 쓰였다.
1500-1200 청동기 중기
1400 중국 갑골문: 거북 등에 새겨진 중국 글자들(갑골문, 胛骨文, 기원전 1400년)
1220 세계 기근에 의한 난민의 이동으로 중동지역이 붕괴되었다. 주석의 이동이 안되어 청동기가 끝난다.
1200-900 청동기 말기 비형선형문자가 쓰인 크레타 문명은 여기에 속한다.
1000년경에 쓴 바가바드기타 Bhagavadgita에는 요가의 종류와 실천방법이 적혀 있고
1000년 중국인들이 석탄을 연료로 이용하고 얼음을 냉장에 사용하다.
900 제1기 철기문화 시작?
650년 소아시아 리키아인들이 근대적인 돈(화폐) 발명, 바빌론에서 최초로 별과 행성들로 된 점성술 책 발간.
585 탈레스(Thales, 그리스 철학자)가 일식을 예견하다. [그는 자연의 생성에 관한 근본 성질을 탐구하였다. 그래서 신화의 시대를 넘어서 탐구의 철학의 시조로 알려졌다.]
580 탈레스가 모든 것의 근원[Arche]은 물이라고 주장.
530 피타고라스 이론의 정립
500 제2기 철기 문화 ?
500 이집트에서 계산자가 사용됨.
470 그리스인 알크마이온(Alcmaeon, 이탈리아 크로톤에서 활동한 생리학자)이 처음으로 시체를 해부하고, 우리가 머리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냄.[그는 뇌가 지성의 근원이고 영혼은 생명의 근원이라 파악했다]
450 레우키포스(Leukippos, 자연주의자 데모크리토스의 스승)가 “자연의 모든 것은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지 신의 영향력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다. [소위 소박한 유물론의 성립은 보스포러스 해역 부근의 압데라에서 나왔다. 아테네는 이를 배격하여, 데모크리토스의 저술조차 남지 못하였다]
428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500-428 이오니아 클라조메네 출신) 사망. 그는 [아테네에서 페리클레스의 친구였으며] 태양과 달은 신이 아니라 자연세계의 일부라는 주장 [이오니아 밀레토스학파의 일반적 전통]을 해서 감옥에 갇힌 적이 있다.
400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460-370)가 “모든 것은 근원은 원자(atoms)”라고 주장하다.
387 플라톤(Platon 428-348, 아테네 철학자)이 세계 최초의 대학 아카데미를 아테네에 세움
352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최초로 신성(대폭발 중인 별) 발견.
350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마케도니아 출신 플라톤의 제자)가 동물들을 분류하기 시작하고 지구 중심주의적 우주론을 전개하다.
330 피테아스(R2 1990x)가 대서양을 따라 올라가 독일 해안과 노르웨이까지 항해.
320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 372-287,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자)가 최초로 식물에 관한 체계적인 책을 씀
314 테오프라스토스가 최초로 유명한 지질학(geology, 기상학에 가깝다)의 책을 썼다.
300 수학자 유클리드(Eudlides,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가 기하학 『원론』을 저술하다.
280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Ἀρίσταρχος 310-200) 지동설을 주장함. 그의 논문으로는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에 관하여」[그는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다].
헤로필로스(Herophilos 약300-200, 해부학의 창시자)인간 신경계와 그 기능연구
260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287-212, 시실리섬의 과학자) 원리 발견 - 유레가(Eureka!, j'ai trouvé!, 알았다! 찾았다!)
250 알렉산드리아 대학 건립(고대에서 가장 큰 도서관 있음).
중국에서 200가지의 실용적인 문제(측량 건축 농업 등)에 대한 해법을 담은 책 『구장산술(九章算術)』이 나옴.
알렉산드리아 의술 학교에서 인간의 내장을 연구하기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체연구. 그리스인들이 천체관측기(별 관측기) 발명.
240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최초로 핼리 해성 목격,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276-194,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 그는 지구의 둘레를 계산했고, 지구 기울기를 측정하였다.
200 [년 경 중국의사 창지는 잘못된 영양 섭취가 병을 유발한다. 즉 영양결핍증 치료법 발견]
165 중국인들이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다.
150 히파르코스(Hipparchos, Ἵππαρχος, 190-120경, 2세기경 그리스 천문학자 수학자)가 태양과 달, 지구사이의 거리를 제대로 계산함. 그리고 유명한 항성 목록을 최초로 작성함 [원을 360도로, 1도를 60분, 1분은 60초의 개념 도입] [히파르코스
100 로마인 들이 곡식을 빻기 위하여 수차를 이용함
헤론(Heron 1세기경, 알렉산드리아 출신 기하학자 발명가) 이 최초로 증기기관(아에올리스 공: 제트기관의 원조인 최초의 증기기관을 설계)을 발명
BC 7-AD 23 스트라보(gr. Strabon, lat. Strabo BC58-AD25 그리스 지리학자)가 세계 각국에 관한 지식을 자신의 책 『지리학』에 집약시킴
46 로마 황제[카이사르(lat. Caius Julius Caesar BC 101-44)가 아니다]가 이집트 달력을 개량한 율리우스력을 도입,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규정하다.
O
1 이시기의 인구는 25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다.
?30? 허신(Hsu Shen, 許愼 ?30?-?) 후한(後漢)의 학자. 명제(明帝)부터 화제(和帝) 때까지 관직에 있었다. 한자의 구조와 의미를 논술한 설문해자 說文解字,
42 수로왕(首露王, 42-199) 가락국의 시조.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김씨의 시조이다. 금관가야 9부족의 추장인 9간이 김해 구지봉(龜旨峰)에 모였을 때 붉은 보자기에 싸여 하늘로부터 내려온 금합 안에서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를 얻었다. 반나절만에 여섯 개의 알은 모두 사람으로 화하였는데 수로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수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48년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설화의 얼개를 보면, 16살의 아유타국(阿踰陀國 아요디아로 추정) 공주 허황옥(許黃玉 32-189, 157세)은 하늘이 내린 가락국 왕[김수로왕 (42-199)]을 찾아가 배필이 되라는 부모의 분부를 받들어 48년 20여명의 수행원과 함께 붉은 돛을 단 큰 배를 타고 ...
400 이집트 상형문자는 3000년 이상 사용된 다음 AD 4세기 말에 쓰이지 않게 되었다.
1775 게오르크 그로테펜트(Georg Friedrich Grotefend, 1775-1853) 독일의 고대 언어학자. 고대 페르시아의 설형문자 해독의 기초를 닦아 아시리아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진다.
1788 뻬르뜨(Jacques Boucher de Perthes, 본명 Jacques Boucher de Crèvecœur, 1788-1868) 프랑스 선사사가.
1810 롤린슨(Sir Henry Creswicke Rawlinson 1810-1895) 영국의 중동학자. 비수툰(Bisutun)에 있는 다레이오스1세의 설형(楔形). 문자의 비문을 필사(筆寫, 1835~47), 연구하고, 고대 페르시아어 연구사상 획기적인 성과를 발표했다(1847)
1824 폴 브로카(Paul Broca 1824-1880), 프랑스 의사, 해부학자, 인류학자. 1859년 파리 인류학회를 설립했다.
1825 오페르(Jules Oppert, 1825-1905) 19세기 독일 출생의 프랑스의 동양학자(앗시리아 전공). 설형문자 해독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비(非)셈어와 비셈인의 존재를 발견, ‘수메르’라 명명하였다. 저서는《아시리아어 문법의 기초》1860 등이다.
1832 테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 영국 인류학자. 원시 문화(Primitive Culture, 2 vol., 1873-1874)(Trad. en fr. sous le titre La civilisation primitive).
1832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1832 –1903)는 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도굴했다 (南延君墳墓 盜掘蠻行) / 그의 동생 구스타프(Gustav Salomon Oppert 1836-1908)는 인도전공자이고, 형 쥘리우스(Julius(Jules) Oppert 1825-1905)는 독일출신 프랑스 아시리아 전공자이다. - 이들은 유대인이다.
1850 해리슨(Jane Ellen Harrison, 1850–1928) 영국 고전학자. 언어학자, 여성주의자. 고대예술과 제의(Ancient Art and Ritual, 1912), 테미스: 그리스 종교의 사회적 기원 연구(Themis: A Study of the Social Origins of Greek Religion, 1912)
1854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941) 영국의 민속학자로 민족학, 고전문학의 자료를 비교 정리하여 주술(呪術)과 종교의 기원, 진화의 과정을 명확히 하려하였다. 저서로 토테미즘과 외혼성(外婚性), 토테미즘 Totemism, 1885)등이 있다. 주요저서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1915) 이 책에서 사상의 양식은 주술에서 종교로 발전해나가며, 이어 종교는 과학으로 발전해나간다고 주장했다.
1864 윅스퀼(Jakob Johann von Uexküll, 1864-1944) 에스토니아출신 독일 생물학자, 철학자. 동물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Mondes animaux et monde humain suivi de La théorie de la signification, 1934) 로렌츠(Konrad Lorenz)의 인종학(l'éthologie)의 선구자이며 생명기호학(la biosémiotique)의 선구자이다.
1866 파리언어학회: 언어기원에 대한 연구 중지 선언
1868년에 헤켈(Ernst Haeckel)은 L’histoire de la création naturelle, 1868)에서 언어없는 원인(Pithecanthropus alalus) 이란 가설을 세웠다.
1868 남연군분묘도굴사건(南延君墳墓盜掘事件) 1868년(고종 5) 독일의 상인 E.J.오페르트(1832-1903)가 충청도 덕산(德山: 예산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생부 남연군 구(球)의 묘를 도굴하려다가 실패한 굴총(掘塚)사건.
1869 뻬이로니(Denis Peyrony, 1869-1954) 프랑스 선사시대 학자. 고고학자.
1872 모스(Marcel Mauss, 1872-1950) 프랑스의 종교 사회학자겸 인류학자로 뒤르켐학파 확립에 공헌하였다. 그의 학문적 특색은 기존의 종교, 주술 2원론에 대하여, 더 근원에 있는 신비적인 힘(마나, mana)에 관하여 주장한 점이다. "증여론"(Essai sur le don)(1925), 희생에 관한 연구(위베르와 공저) / 모스의 아버지는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 1858-1917)의 맏누나(Rosine Durkheim)와 결혼했다. 뒤르켐은 모스의 외삼촌이다.
1872 위베르(Henri Hubert 1872-1927) 프랑스 사학자 민속학자. 셀트족에 관한 연구가 있다. 모스와 협력하여 종교사회학을 연구하였다.
1876 로버트 여키즈(Robert Mearns Yerkes, 1876–1956) 미국심리학자. 인종학자. 영장류 침팬지 연구자.
1877 브뢰이유(Henri Breuil, l'« abbé Breuil », 1877-1961) 카톨릭 신부, 선사시대 역사가. 1929-1947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 동굴벽화의 400세기(Quatre cents siècles d’art pariétal, 1952)
1878 렌하르(Maurice Leenhardt, 1878-1954) 목사 프랑스 민족학자. 뉴칼레도니아 카낙(kanak)민족 전공자.
1878 왓슨(John Broadus Watson, 1878–1958) 미국 심리학자. 행동주의 심리학 개척자. 논문"Psychology as the Behaviorist Views It"(1913)은 행동주의 선언문으로 간주한다.
1884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Kasper Malinowski, 1884-1942) 런던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문화인류학에서 역사주의를 비판하고, 기능주의라는 연구방법을 창시하여 사회 문화연구에 새 국면을 열었다. 주요 저서에 《미개사회에서의 범죄와 관습》(1926), 《문화변동의 동태(動態)》등이 있다.
1887 줄리앙 헉슬리(Julian Sorell Huxley, 1887–1975) 영국 진화 생물학자, 우생학자. a British evolutionary biologist, eugenicist, and internationalist.
1887 우리나라가 최초로 전기의 혜택을 입게 된 것은 1887년으로 미국의 에디슨(Edison, T. A.)전기회사의 전기기사 윌리엄(William, M.)이 경복궁 내에 3㎾ 용량의 증기발전기 2대를 설치하여, 경회루와 향원정에 전기아크 등을 설치한 것에서 비롯된다.
1893 다트(Raymond Arthur Dart 1893-1988) 오스트레일리아 인류학자. 1924년 첫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발견, l'« enfant de Taung »이라 불린다.
1901 미드(Margaret Mead, 1901–1978)의 사모아의 청소년(Coming of Age in Samoa, 1928) 그녀의 스승 보아스(Franz Uri Boas 1858–1942)의 생각과 일치한다.
1902 에반스-프리처드(Edward Evan Evans-Pritchard, 1902–1973) 영국 인류학자. 사회인류학의 토대를 세웠다. 아잔데 족에서 마법, 신탁, 주술(Witchcraft, Oracles and Magic Among the Azande. 1937),
1903 리키(Louis Leakey 1903–1972) Mary Leakey, 아들 리차드 리키 인류학자 집안
1903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1903-1989), 오스트리아 생물학자 동물학자. On Aggression (1966) ; (titre original : « Das sogenannte Böse. Zur Naturgeschichte der Aggression. », Borotha-Schoeler, Wien, 1963)
1904 베이트슨(Gregory Bateson, 1904–1980) 영국 인류학자, 사회과학자, 언어학자, 기호학자, 사이버네틱스(cyberneticist) Steps to an Ecology of Mind, 1972)
1904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 1904-1990) 미국의 심리학자. 파블로프와 왓슨의 영향으로 행동주의자. 이 인간의 지적테러는 지금도 조선일보를 통해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
1911 르화-구랑(André Leroi-Gourhan, 1911-1986), 프랑스 민속학자(un ethnologue), 고고학자(archéologue) 역사가 특히 선사시대전공
1911 오클리(Kenneth Page Oakley, 1911–1981) 영국 인류학자. 구석기연구자. 지질학자.
1914 릴리우(Giovanni Lilliu 1914-2012) 이탈리아 고고학자. 사르데뉴 섬 문화 전공 / 그 동료인 아쩨니(Enrico Atzeni, ?) 이탈리아 고고학자. it.Wiki에 이름만 나온다.
1916 데릭 프리먼(John Derek Freeman, 1916-2001) 마거릿 미드와 사모아: 인류학적 신화의 탄생과 해체(Margaret Mead and Samoa: The making and unmaking of an anthropological myth. 1983),
1924 첫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발견, l'« enfant de Taung »이라 불린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류학자인. 다트(Raymond Arthur Dart 1893 - 1988)에 의해서
1926 얀 옐리네크(Jan Jelínek, 1926-2004) 체코 선사시대학자. 인류학자.
1927 새뮤얼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 1927-2008)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 / 미국 하버드대학교 알버트 웨더헤드 석좌교수 /1986 미국 정치학회 회장 / 1977~1978 미국 카터행정부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기획조정관
1932 다이앤 포시(Diane Fossey, 1932–1985) 미국 동물학자. 18년 넘게 고릴라 집단 연구 밀렵군에 살해당했다. (55)
1934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 원생인류학, 인종학, 인류학자. 침팬지
1934 프랑스 꼬빵(Yves Coppens 1934-): 루시의 발견은 1974년이다. 프랑스 꼬빵(Yves Coppens)과 타이엡(Maurice Taïeb) 그리고 미국 조핸슨(Donald Johanson) 등은 중앙아프리카에서 루시(Lucy, Australopithecus afarensis, 320만년전)를 발견했다. 굉장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루시의 경우 신체 전체가 발견되었다
1934 루이스-윌리엄스(James David Lewis-Williams, 1934-) 남아프리카공화국 고고학자. 암면미술 전공
1937 바르-요세푸(Ofer Bar-Yosef, 1937-) 이스라엘 고고학자, 선사학자. 구석기연구자.
1940 필뱜(David Pilbeam, 1940-) 고고학자 고인류학자, 인종학자. 예일대에서 박사, 하버드 대학교수
1941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년 9월 10일- 2002년 5월 20일)는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과학사가였다.
1942 시먼스(Donald Symons, 1942) 미국 인류학자. 진화심리학의 창설자중의 한사람.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 1979) .
1946 비루떼 갈디카스(Birutė Marija Filomena Galdikas, 1946-) 리투아니아 출신 카나타 인종학자. 오랑우탄 연구자.
1946 흐르디(Sarah Hrdy, née Blaffer; 1946-) 미국 인류학자이며, 영장류 학자. The Woman that Never Evolved, 1981, Mother Nature: Maternal Instincts and How They Shape the Human Species, 1999
1947 로빈 던바(Robin Ian MacDonald Dunbar 1947-) 영국 인류학자. 진화 생물학자. 유인원 행동 전문가. (59)
1948 프란스 드 발(Franciscus Bernardus Maria "Frans" de Waal, 1948) 네델란드 영장류연구자, 인종학자. 심리학자. 미국 에모리 대학교수, 침팬지 정치학: 원숭이류의 권력과 성(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1982), 보노보: 잊혀진 원숭이(Bonobo: The Forgotten Ape, 1997)(Photographies de F. Lanting)(섹스가 공격성을 억제하고 화해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상을 밝힘), 원숭이와 초밥요리사: 한 유인원학자의 문화적 반성(The Ape and the Sushi Master: Cultural Reflections by a Primatologist. 2001)
1951 크리스토프 보슈(Christophe Boesch, 1951-) 스위스 출신, 영장류학자. 침팬지 연구.
1953? 고와티(Patricia Adair Gowaty, s.d.) 미국 진화 생물학자. Feminism and Evolutionary Biology: Boundaries, intersections and frontiers, 1997), (.
1954 빠스칼 삐끄(Pascal Picq 1954-) 프랑스 고고인류학자. 이브 꼬빵(Yves Coppens, 1934-)과 함께 꼴레쥬 드 프랑스 조교수 /
1956 로이드 (Elisabeth Anne Lloyd, 1956-) 미국 생물철학자. The Case of the Female Orgasm: Bias in the Science of Evolution, 2005
1959 리키(Louis et Mary Leakey 1903–1972)부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Australopithecus boisei, le premier australopithèque robuste, 175만년전) 발견
1967 인류학자 사리쉬(Vincent Sarich) 분자생물학자 윌슨(Allan Wilson)은 인류와 침팬지 사이 공동조상을 5백만전 전으로 잡다.
1961 레스텔(Dominique Lestel, 1961-) 프랑스 철학자. 인종학자. ‘자연사국립박물관’의 연구원. 원숭이들의 말투: 원시인류 대화의 불가능(Paroles de singes L'impossible dialogue homme-primate, 1995), 문화의 동물적 기원들(Les Origines animales de la culture, 2001), 특이 동물[인간](L’Animal singulier, 2004)
1974 꼬빵(Yves Coppens, 1934-) 등은 중앙아프리카에서 루시(Lucy, Australopithecus afarensis, 320만 년 전) 발견
1982, 필뱜(David Pilbeam 1940-) 파키스탄에서 1천만년 전 유인원 발견 .. 오늘날에는 이것을 오랑우탄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한다.
1995 챠드에서 아벨(Abel: Australopithecus bahrelghazali 350-300만년전) 발견
2000 케냐에서 오로랑(Orrorin tugenensis, 600만년전) 발견
2001 에티오피아에서 카다바(Ardipithecus kadabba 5,8 à 5,2 Ma), 챠드에서 투마이( Toumaï, Sahelanthropus tchadensis, 700만년전) 발견.
2012 6월 우리나라 남쪽 인구 5천만을 넘어섰다. 1)중국 13억 5천만, 2)인도 12억 3천만, 3)미국 3억 1천만, 4)인도네시아 2억 4천6백만, 5)브라질 1억9천 8백만, 6)파키스탄 1억 7천 9백만, 7)나이지리아 1억6천 8백만, 8)방글라데시 1억5천 8백만, 9)러시아 1억 4천 3백만, 10)일본 1억2천7백만... [10대 국가가 40억 쯤인데, 나머지 30억이 흩어져 있구나 ..]
2013 3월 세계 인구 70억을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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