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ssay
풀
장미숙
익숙하면서도 편안하다. 땅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운이 배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절정을 다하고 생을 마감한 때문일까. 생각지도 못한 채 맞닥뜨린 냄새에 발길을 멈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록으로 수직을 이뤘던 천 주변이 이제 수평으로 보인다. 돌들과 함께 풍경이 되어주던 풀, 둔덕에 비스듬히 서 있거나 나무를 따라잡을 듯 키를 키우던 풀이 납작 엎드렸다. 어떤 건 뿌리를 드러낸 채 시들시들 말라가는 중이다. 서로 키를 잴 때는 모양도 색도 달랐는데 이제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한 뭉치 풀더미가 되었다.
풀이 베어진 이유는 산책로를 넘본 탓일 거다. 산책로는 사람들의 영역이니 풀로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하지만 풀이 그리 계산적으로 생을 유지했을 턱이 없다. 바람불면 흔들리고 햇빛 비치면 영양소를 흡수하며 자유로이 흔들렸을 생명이다.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데 끝을 오므려 되돌릴 수 있었으랴. 그저 물가는 대로 기운 가는 대로 뻗어 나간 뿌리는 겁도 없이 길을 점령했고 그게 생명을 단축하는 이유였나 보다. 산책로 양쪽으로 무성하던 풀이 모두 베어져 자신들의 몸을 덮고 있다. 강아지풀, 질경이, 엉겅퀴, 바랭이, 쑥, 민들레가 한데 뭉쳤다. 크든 작든 서로를 베고 누웠다. 머지않아 물기가 다 빠지면 바스락거리는 것으로 생을 한 번 더 뒤채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힘으로 냄새를 피워내고 있다.
풀냄새는 꽃냄새와 확연히 다르다. 꽃의 환한 느낌에 비해 싸하게 내면을 건드린다. 꽃냄새를 맡으면 갑작스럽게 감각이 확 열려버리지만, 풀 냄새는 그윽하게 천천히 안으로 스민다. 스치는 냄새가 아니다. 의식을 열고 들어와 깊은 무의식을 두드리는 깊은 냄새이다.
꽃보다 풀을 더 가까이하고 자란 어린 시절, 풀은 친숙하기 이를 데 없는 만만함의 상징이었다. 잘 자라는 건 물론이고 아무 데서나 자랐다. 뽑아도 뽑아도 자라는 풀은 온 마을을 초록으로 덮어버리곤 했다. 논두렁과 밭두렁, 뒤 안, 심지어 초가지붕에까지 생명을 키웠다.
그 시절 아이들도 풀처럼 귀함을 받지 못했다. 거칠고 궂은 곳을 굴러다니기 일쑤였다. 마르고 진 자리 가릴 것 없이 잘 자고 둥글둥글 거침없이 자랐다. 그런 아이들에게 풀은 편했다. 저수지에 넘치도록 자라던 풀은 미끄럼틀이, 오르막길에서는 버팀목이 되었다. 가파른 길에서 풀을 움켜잡고 오르내릴 때 아이들 손에 머리끄덩이처럼 잡혀도 풀은 다시 몸을 탈탈 털고 반듯하게 섰다. 그건 억세고 꿋꿋하기에 가능했다. 여린 꽃은 상상도 못 할 강인함이었다.
흙길에서 수없이 짓밟힌 풀은 더욱 질겨져 뿌리만 남은 채로 생명을 유지했지만, 흠뻑 비가 내리면 어느 사이 파릇한 촉을 돋아냈다. 풀이 더없이 귀할 때는 가축들의 먹이로 쓰이는 경우였다. 소나 염소는 풀을 뜯으며 살을 찌웠다. 밋밋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가축의 몸속에서 거대한 생명을 거뜬히 키워냈다. 그 많던 가축이 풀의 덕으로 배곯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
그것들은 또 하천이나 산자락, 다랑이 밭에 수북하게 세력을 넓혔다. 거기에 칡덩굴까지 합세할라치면 범접하기 힘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니 아버지들은 낫을 들고 산길을 오르는 게 예사였다. 무성하게 자란 풀은 온갖 생명을 키웠다. 똬리를 튼 뱀을 숨기거나 개구리, 작은 곤충에게도 안식처를 제공했다.
평상에서 주로 생활했던 여름날, 저녁이면 모깃불은 필수였다. 마당 한쪽에 기운 넘치는 풀을 쌓아놓고 불을 붙이면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기가 사람에게 달라붙지 못하도록 연기는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마당을 흘러 다녔다. 그 속에서 안전하게 여름을 보냈던 어린 시절, 풀이 타는 냄새는 아늑함이었다. 생솔가지가 탈 때처럼 기침이 칵칵 나지 않았다. 성분이 순하고 독특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풀을 베고 난 뒤 논두렁을 걸으면 특유의 냄새가 한들한들 바람을 타고 흘러 다녔다. 담벼락 밑 웃자란 풀을 베었을 때도 냄새는 온종일 코끝에서 아른거렸다. 질박하면서도 향긋한 냄새는 어디서든 피어올랐다. 풀은 수시로 자라서 베어지고 냄새를 피우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자리 잡은 냄새의 힘은 세월을 건너뛰어 많은 이미지를 몰고 오는 생활의 냄새가 되었다.
함부로 대해서 더 특별한 냄새, 풀이 베어진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향기가 아닐까 싶다. 애지중지 보호받지 못하고 생긴 대로 자란 아이들은 강인했다. 그들의 몸속에는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풀처럼 장소를 가리거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환경에 적응하는 걸 터득한 아이들은 거친 세상에 터를 잡았다.
그런 삶을 상상조차 못 하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풀은 한낮 필요 없는 잡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반듯하게 정리된 도시의 산책길, 풀 한 포기 없는 공원의 잔디밭, 키 한번 키워보지 못하고 베어지는 풀은 도시에서 미관을 해치는 쓸모없는 식물일 뿐이다.
그런데도 풀이 마지막으로 남긴 냄새는 여전히 시공을 초월한다. 가축의 먹이도, 모깃불도, 두엄도 되지 못하지만, 여전히 생명력만은 강하다. 도시의 한갓진 곳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멋모르고 키를 키우다가 날이 선 칼날에 스러질지라도 눈치 보지 않고 삶을 이어간다. 아마도 그래서이리라. 하천가에 수북하게 쌓인 풀에서 오히려 강한 기상을 본다. 어느 시절의 자화상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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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숙
2015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순수필 문학상 등을 받았다. 수필집으로 『고추밭 연가』, 『의자, 이야기를 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