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일본 개국 신화 속 새는?
오늘(1993.10.24. 일) 날짜 글에서 작가는 이런 고백을 한다.
일본인들 중에 “이것도 저것도 모두 한국말이라고 우긴다”고 작가를 힐난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일본말의 태반이 우리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대륙적인 우람한 짐승인 것에 반해 일본의 건국 신화에는 새가 등장한다.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신이 ‘왜’ 땅에 사신을 보냈는데, 돌아오지 않자, 수꿩(장끼)를 보내 알아보게 한다.
그러나 ‘왜’로 날아간 장끼는 조밭과 콩밭이 많은 것을 보고 그곳에 눌러앉아 버린다.
그러자 이번엔 암꿩(까투리)를 파견한다.
이 까투리는 맨 먼저 간 사신이 쏜 화산을 맞고 하늘나라로 되돌아와 자초지종을 아뢴다.
비로소 일본의 사정을 파악한 하늘나라 신은 자신의 자손(天孫)을 ‘왜’ 땅으로 내려보낸다는 것이 일본 건국 신화이다.
이 천손의 3대 손(孫이) 진무(神武)왕이다.
그가 ‘왜’ 땅을 정복해 나가는데 지형이 어찌나 험한지 나아갈 바를 몰라 할 때, 까마귀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고 그 덕에 왕은 중부 지방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이미 강력한 세력이 있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때 황금색 눈부신 솔개가 날아와 왕의 활 끝에 앉았고, 번갯불처럼 번쩍이는 그 솔개를 본 적군은 도망쳤다.
일본사의 첫 장은 이렇게 새로 인한 승리를 기록하고 있다.
자, 여기서 작가는 일본 건국 신화에 등장한 세 마리의 새에 대하여 우리 고대어와 일본어를 연계한 풀이를 전개한다.
〇 꿩 : 고대어에서 ‘시’나 ‘수’는 새나 벌레 등 날아다니는 짐승을 가리키는 한-일 공통어이다.
따라서 꼬리가 긴 꿩을 우리말로 <길이가 긴 새>라는 뜻의 ‘기기시’라 하는데 이것이 ‘키기시(きぎし)’ 또는 ‘키기수(きぎす)’라는 일본 고대어로 정착된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아래와 같은 상상을 덧붙인다.
우리 조상은 고구려 무용총 벽화 수렵도에 그려진 무사의 모습처럼 새 날개를 머리에 꽂는 풍습(鳥羽冠; 조우관)이 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는 두 개의 새깃을 고깔에 꽂고 다녔고, 백제 관리들은 양 끝에 새 날개를 붙인 관모를 쓰고 다녔고, 신라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되는 금관이나 금동관의 내관 앞부분에 꽂혀 있는 긴 날개 모양에서도 이 조우관의 흔적을 옅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 건국 신화 속 신이 날려 보낸 꿩은 삼국시대 우리 관리들을 상징한 것은 아닐까?
〇 까마귀 : 까마귀를 ‘가마리’라고 불렸는데 일본어로는 ‘카라수(からす)’다.
이것은 까마귀의 검은 색에서 비롯된 우리 옛말 ‘갈아 수(갈아놓은 숯)’가 일본화된 말이다.
까마귀의 ‘까악까악’ 우는 울음소리는 된소리를 내지 않던 옛사람 귀에 ‘가아, 가아’로 들렸을 것이고 그것은 ‘갈아 갈아’ 즉 화살촉 등의 무쇠를 ‘갈아라! 갈아라!’하는 뜻이 되므로 까마귀는 무쇠 기술자 집단, 또는 무쇠 제조로 이름 높았던 가야의 세력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지 않았을까?
〇 솔개 : 솔개는 일본어로 토비(とび), 톤비(とんび)라고 한다.
솔개는 원을 그리고 맴돌며 먹이 사냥을 한다. 고구려 말로 원(円)을 ‘동비’라 하고, 이두 표기로는 동비(冬非)라고 썼는데 이것이 일본어인 토비(とび), 톤비(とんび)가 된 것이다.
진무왕의 활 끝에 앉은 새는 금빛 솔개였는데 옛 문헌에서는 금은 금 자체라기보다는 금속 전체를 의미했다.
즉 ‘토비’나 ‘톤비’는 역시 제철 기술을 지닌 고구려 세력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일본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세 마리의 새라 할지라도 한일 고대 교류사의 측면에서 면밀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를 일본말로 토리(鳥, とり)라고 하는데 이것 또한 ‘돌이’라는 우리 말에서 일본화된 말이다.
새는 귀소본능이 있어 텃새는 물론 철새도 반드시 제 둥지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존재 즉 ‘돌이’라 하여 일찍이 이렇게도 이름 지어진 것이다.
만엽집에는 숱한 ‘새’ 노래가 나오는데 한자로 ‘鳥’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진짜 새의 의미보다는 대부분 돌아다니는 ‘돌이’의 뜻으로 쓰였다.
우리 말의 ‘탑돌이’와 같은 것이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 KBS 뉴스 스타일 내용 등 대폭 손질
KBS 수신료가 별도로 징수되고 있음을 이번에 알았다.
따로 신청한 기억은 없는데 전기료 납부 계좌에서 벌써 두 달째 인출되고 있었다.
분리 징수의 이유가, 항상 정권 편이었던 KBS가 현 정권에 비판적이고, 따라서 공영방송에 대한 경영 개선책이라는 핑계였던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집행부 물갈이하자마자 새로운 앵커가 눈물로 지난날의 잘못을 사죄했다는 뉴스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종합채널이야 원래 보수 중심이었지만 MBC, EBS와 같은 지상파 방송마저 정권이 장악하고자 하는 작금의 모습에서 동아일보 백지 광고(1974년?)사태를 야기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여기, 군사정권에서 김영삼 정부로 정권이 바뀐 30년 전에도 <영국의 BBC, 일본의 NHK 공영방송의 제작 정신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뉴스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강조하는 KBS의 모습이 지금 막 올라온 신선한(?) 뉴스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