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이상루(履霜樓)
안동 김씨(安東金氏) 시조(始祖) 태사 김선평(太師 金宣平)
오랜 역사를 간직한 안동고택 이상루(安東金氏 台庄齋舍)
고려 태조 때의 공신이며 안동김씨의 시조인 김선평(金宣平)의 단소(壇所)를 지키고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이상루(履霜樓)의 의미와 유래
음력 10월 10일이면 고려 개국 공신 이자,안동김씨의 시조인 태사공 김선평의 묘제를 지낸 후
안동김씨 문중회의와 음복을 하곳이 안동고택 이상루(태장재사.台庄齋舍)이다
“이상루”는 서리를 밟다는 뜻으로 주역에서 나온 말로 10월이 되면 서리가 내려서, 나뭇잎도 다시 뿌리로 돌아가는데
하물며 사람이 되어서 뿌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된 의미이다.
그래서 첫 서리가 내리는 음력(陰曆) 10월10일에 안동김씨 시조인 김선평의 묘소를 찾아가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는 날 아침이면 모두 이상루에 모여 집사분정이라는, 제사 지내는 일을 서로 나누고
제사를 마친 후에는 문중회의 후 음복을 이상루에서 한다.
옛날에는 밤 12시 자정이 넘어서 제사를 지냈으니 제사가 끝나고 나면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고 하며 제사가 끝나고,
다 같이 서리를 밝고 내려와 하룻밤 정담을 나누며 조상을 추모하던 곳, 이상루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이상루(履霜樓)라고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고려 초기에 김선평의 단소를 설립하고,
숙종(肅宗) 33년(1707)에 단소 동쪽 100보 내에 작은 집을 지어 승려로 하여금 재사를 지키게 하였다가
영조(英祖) 25년(1749)에 재사로 확장되었고,
정조(正祖) 17년(1793) 때에 식수난과 질병이 겹치자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 양근(養根:승의랑공)이 승려의 집 천태암(天台庵)을 철거하고 지금의 위치에 터를 닦아
28칸으로 중건하고 익실(翼室)과 문루(門樓)를 옮겨 지었다.
1913년 주사(廚舍)를 현위치에 확장하여 10칸을 중건했고, 1960년 풍수해를 당해 재사를 보수했다.
재사는 一자형의 이상루(履霜樓)와 口자형의 재사, ㄷ자형의 관리사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는
튼 日자형의 배치형태를 취하고 있다. 재사는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실과 전사청, 참제원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상루는 묘제(墓祭) 뒤에 음복과 문중회의를 여는 장소로 사용된다. 재사는 민도리집의 간결하고 검소한 건물이나,
누(樓)는 이익공(二翼工)의 팔작지붕건물로 누상부(樓上部)에는 3면에 판벽을 치고 판문을 설치하였다.
태장재사는 안동지역의 제사 가운데서 규모가 크고 각 부분이 용도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건물이다.
이상루(履霜樓)는
뜰집(“ㅁ”자집) 형태의 태장재사(台庄齋舍),
일자형의 누각(樓閣)건물인 이상루(履霜樓),
관리사인(“ㄷ”자집) 형태인 고직사(庫直舍)가 현재 남아 있는 목조기와집인데,
이 3동 모두를 통틀어 “태장재사(台庄齋舍)”라고 부른다
이상루는 일반적인 안동 지방의 한옥과는 확실히 다르다.
앞면 7칸,옆면2칸의 직사각형 모양의 중앙에 큼직한 문이 있고,
문을 열고 계단을 밟고 들어서면 안마당으로 향하게 되어 있는 구조이며
중심이 되는 기둥은 팔각형이며 중심이 되는 기둥은 팔각형이며 누각 위의 바깥벽은 문을 달아 폐쇄하였고,
안쪽 벽은 개방하여 누마루가 들여다보이도록 했으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로 화려한 팔작지붕 형태를 가진다.
고직사(庫直舍)
“ㄷ”자집 형태인 고직사(庫直舍)는 이상루의 관리동 역할을 하는 목조 기와집이고
이상루의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전체 건물의 옆 계단으로 올라오면 제일 먼저 만난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249 (태장재사.台庄齋舍)
이상루(履霜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