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
“Stand or die.”
‘워커’ 준장은 외쳤다. 우리에게는 오직 버티느냐 죽느냐의 선택밖에 없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때까지 이 낙동강 전선은 최후의 보루였다. 결국 그는 턱없이 모자라는 병력으로 방어선 구축에 성공한다.
6월은 호국의 달이다. 6월 첫 번째 토요일,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을 찾았다. 전쟁의 상흔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우리 민족의 아팠던 한때가 그곳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다.
이곳에서 ‘월턴 해리스 워커’ 준장을 만났다. 미국 군인으로 6,25전쟁 당시 미 8군 사령관이었다. 그는 휘하 부대를 지휘할 때 지시와 간섭을 하지 않았다. 확실한 전술 원리를 가르쳐 주고는 믿고 기다렸다. 그의 이런 전술은 먹혔다.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목숨도 바치는 것이 남자의 의리이리라.
“아버지, 어머니, 그냥 집에 계세요.”
아들의 입영 일이었다. 거름 밭에 개똥참외 하나 달랑 열리듯 삼 대째 독자다. 이 녀석을 국가의 아들로 보내는 날이다. 전시(戰時)도 아니고 병영 생활이 예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한다. 하지만 어미 마음이야 어디 편할 수만 있을 수 있으랴. 이별 공간에서의 시간, 서로의 속마음 들키지 않으려 눈 맞추지 못할 순간을 피하고 싶었으리라.
친구들이 입소장(入所場)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초, 중, 고를 같이 다닌 동네 친구이자 학교 동기들이다. 이 집 저 집 몰려다니며 몸 부대끼던 사이다. 녀석들에게도 곧 닥칠 일이니, 먼저 겪는 친구와 좀 더 긴 이별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전날 멀쩡하던 하늘에서 밤새 눈이 발목까지 찼다. 겁 모를 청춘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서둘러 일찍 출발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눈의 두께는 점점 얕아졌다. 철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들어는 가지만 나오지는 못하는 문이었다.
“뒤돌아보지 말고 곧장 들어가거라.”
앞만 보고 10여 미터 걸어가더니 오른팔을 높이 흔들었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입이 말랐다. 눈을 감고 혀로 마른 입술을 축이며 발길을 돌렸다. 아들은 그렇게 입대하였다.
창원에 있는 30사단으로 징집되었다. 후방 입대다. 걱정을 덜 해도 되리라 믿었었다. 180m가 넘는 건장한 체구는 기본 훈련이 끝나자, 박격포 특수부대 요원으로 차출되었다. 30kg 완전 군장 위에 포를 얹고 40km를 야간 주행하는 훈련도 감당했다. 박격포 훈련 때다. 이쪽 산에 포를 설치해 놓고 건넛산으로 발사한다. 그러면 양동이에 물을 담아 들고 뛰었다. 혹시라도 모를 산불 예방을 위한 대비다. 그 힘든 훈련에서 녀석을 지켜준 건 땀에 전 군화 ‘워커’였다.
첫 휴가 때다. 손 대면 베일 것같이 각을 살린 제복에 파리가 낙상할 것 같은 ‘워커’를 신고 집에 들어섰다. 집이 가득 찼다. 입대할 때 65kg이던 몸무게가 80kg에 육박했다. 고된 훈련은 허기로 뱃가죽을 괴롭혔다. 해가 져도 돌아갈 곳 없음에 눈물샘도 지극했으리라. 대한의 남아로 태어났으니 국방의 의무는 당연한 것, 잘 이겨냈다.
‘월턴 해리스 워커’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950년 12월 23일, 한국에 부임한 지 5개월여 만에 이국의 하늘 아래서 순직했다. 장군은 본인이 뛰어든 화약 냄새,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아들을 불러들였다. 부자(父子)는 인류의 평화와 자유, 사람의 인권을 목숨보다 상위에 두었던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시신은 아들에 의해 수습되었다. 그는 다짐했으리라. 이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를 거두어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리라고.
한국에는 ‘월턴 해리스 워커’의 이름 딴 것들이 여럿 있다. 쉐라톤 워커힐 호텔, 워커힐 아파트, 워커힐로(路), 경전차 M41 워크 불독 등이 있으며, 대구의 캠프 워커와 군화의 명칭인 ‘워커’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의 발이 전장을 얼마나 누볐으면 군화의 총칭이 되었으며, 곳곳에 흔적을 새겨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랴.
전쟁의 포화가 멎은 지 70여 년이 넘었다. 아들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다. 총칼로만 싸우는 시대가 아니다. 지식을 집약해 상대방을 넘어뜨리고 죽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세상은 온통 전장(戰場)이다. 남보다 앞서 기술을 개발하고 판로를 개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 위기에서 우리나라를 구해준 건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이었다. 아들은 그 정신 이어받은 군대에서 단련된 몸이다. 녀석은 대국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오늘도 ‘워커’ 대신 운동화 끈을 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