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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시대의 재앙과 하나님의 섭리 (교육개혁연구회)
서언-본서의 집필 계획과 주제
본서의 주제: 하나님의 영화로운 도성을 옹호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 불경한 자들 틈에서 나그넷길을 가는 나라이지만, 영원한 처소의 확고함도 갖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옹호하는 이유: 하나님보다 자신의 신들을 앞세우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제1부 그리스도 경배로 중단된 전쟁(1-7)
1. 하나님 나라를 증오하는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은 야만인들이 로마를 침략했을 때 그리스도교 성당에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했다. (침략자들은 그리스도교 성당과 그 안에 피신한 사람들을 살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교 시대를 비난하고 로마가 침략을 당한 것을 그리스도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는 배은망덕한 일이다. 잠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거짓말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했겠지만, 영원한 징벌을 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이름에 귀의해야 마땅하다.
2. 로마 역사에 있어서 승자들이 패자들을 그들이 섬기는 신들 때문에 살려준 전쟁은 일찍이 없다. <아이네이아스>에 보면 트로야 전쟁에서 그리스군은 트로야의 미네르바 신전에 난입하여 미네르바 신을 모독하고도 전쟁에 이겼다. 이는 신상이 사람을 지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상을 지켰음을 의미한다.(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전쟁 때 피신한 아이네이스에 의해 로마가 세워진 역사를 노래한다)
3. 경건하지 못한 로마인들이 예전에 이미 패한 적이 있는 트로야의 신들에게 로마의 안전을 맡겼던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신들을 잃어서(그리스도교 때문에) 로마가 침략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다. 오히려 로마인들이 그런 신들을 보전하지 않았다면 그 신들은 일찌감치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목숨을 부지한 사실은 잊고, 자신들의 윤리가 타락하여 당한 해악을 그리스도에게 돌리면서 모독하고 있다.
4. 트로야 전쟁 후 유노 신전은 그리스인들이 약탈물을 보관하고 포로들을 수용하던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적군들이 로마를 점령하고 있을 때 그리스도교 성당들은 자유를 보장받았고 존중받았다.
5. 살루스티우스가 전하는 카토의 연설을 보면, 로마인들도 전쟁에서 승리 후 패배자들의 도성을 노략하고 학살과 방화를 일삼았다.
6. 로마인들은 전쟁 후 패배자들의 도시를 약탈하면서 신전에 피신한 사람들을 누구도 예외없이 살려두지 않았다. 마르쿠스 마르켈루스(시라쿠스 점령)와 파비우스(타렌툼 점령)에 관한 기록에서도 그런 예는 찾아볼 수 없다.
7. 최근의 로마 함락 때 일어난 침탈과 학살, 방화에도 불구하고 적군들이 그리스도교 성당에 피신한 사람들을 살려준 것은 그리스도의 은덕이다.
제2부 인생의 해악 혹은 시대의 해악(8-28)
8. 유리한 일과 불리한 일이 선인과 악인에게 공통으로 일어나는 일이 흔하다.
8.1. (질문) 어째서 신적 자비가 불경하고 배은망덕한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가? 하나님의 채찍은 선인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하나님의 인내는 악인들을 회심으로 이끈다. 하나님의 자비는 선인을 감싸고 총애를 베풀고 하나님의 벌은 악인을 바로잡는다. 하나님께서 선인을 위하여 영원한 선을, 악인을 위하여 영원한 악을 마련해 두고 계시나 이생에서는 잠시동안 선과 악이 양자에게 공통으로 있기를 바라셨다.
8.2. 중요한 것은 순경과 역경을 대하는 자세이다. 선인과 악인이 동일한 환란을 당한다고 해서 양편이 구분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환란이 선인들을 시험하고 정화하고 걸러주지만, 악인들은 단죄 받고 파괴되며 말살되어버린다. 무엇을 겪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누가 어떤 인간으로서 겪느냐가 중요하다.
9. 교정을 위해 선인과 악인이 똑같이 환란을 당한다.
9.1. 그리스도인들은 악인들을 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의 체면이 손상되거나 악연, 혹은 재산상의 손해를 입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악인들의 영원한 벌을 받을 죄악을 묵인하면서 넘어가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잠시동안의 형벌을 받고 징계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 "현세생활의 감미로움을 사랑하다가 범죄하는 사람들에게 선인들이 쓰라린 충고자가 되었어야 하는데도 쓰라린 인간이 되기를 싫어했던 탓이다."
9.2. 악인을 질책하고 꾸짖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그런 훈계가 성사되지 못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자신의 안전과 명성이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9.3. 선인과 악인이 함께 하나님의 채찍을 맞는 이유는 둘 다 악한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고 둘다 현세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에스겔 33:6에 의거) 그리스도인들이 파수꾼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중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때문에 환란을 당한다. 한편, 그리스도인들이 환란을 당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경건한 덕으로 사심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욥의 경우처럼).
10. 성도로서는 현세 사물을 상실해도 잃는 것이란 없다.
10.1. 신실하고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재앙이 선으로 변한다(롬 8:28에 근거하여). 그들의 참된 재산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며, 이는 어떤 경우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10.2. 이번 환란을 통해 재산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주저하고 지상에 쌓아둔 만큼 잃어버림으로써 재산의 탐욕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10.3. 선량한 그리스도인들도 고문을 당하고 숨긴 재물을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선은 빼앗기지 않았다. 이번 환란은 불변하는 선을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기에 고문을 당한 것도 유용했다.
10.4. 재물이 없음에도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은 거룩한 가난을 고백한 것이고 이는 그리스도를 고백한 것이기에 천국에서 상급이 있을 것이다.
10.5 오랜 굶주림은 신자들에게 더 검소하게 살도록 가르친 것이므로 유익이 되었다.
11. 비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했으나,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어떻게 죽느냐 보다 그 죽음 뒤에 따라오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죽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죽음 뒤에 따라오는 무엇이다."
12. 시체 매장이 그리스도인들에게마저 불가능했지만 그래서 잃은 것은 없다.
12.1. 많은 사람이 학살당하고 매장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도 두렵지 않다. 학살자들이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보기에는 가혹하지만 "그분의 성도들의 죽음은 주님의 눈에 귀중하다".
12.2. 철학자들도 장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떻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때에 육체가 회복된다.
13. 그렇다고 성도들의 시신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몸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평시에 장례에 정성을 다해야 하지만 비상한 때 시신을 온전히 처리하지 못한 것이 죽은 이의 죗값도 아니고 산자를 탓할 일도 아니다.
1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포로로 잡혀간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신다.
15. 레굴루스가 종교심 때문에 포로 신세를 자원해서 감수한 모범이 있지만, 그가 섬긴 신들은 그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15.1. 마르쿠스 레굴루스가 카르타고의 포로가 되었을 때, 포로교환의 문제로 로마에 파견되었다. 로마 원로원이 카르타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신을 두고 한 자신의 맹세에 따라 자진하여 카르타고로 돌아갔다. 그러나 카르타고인들은 그를 잔인한 고문으로 죽였다. 이는 그가 섬긴 신들이 섬기는 자들의 현세적 행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신을 지극정성으로 섬겨도 불행해졌다면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로마가 재앙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15.2. 레굴루스가 자신의 신들에게 맹세를 지켜 죽은 것이 그 신들에게 치욕거리가 되지 않았다면, 자기 땅에서도 스스로를 나그네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이름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16. 여성들이 당한 정조유린이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덕성은 정신으로부터 육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무엇이며, 육신은 성스러운 의지에 의해 사용됨으로써 성스러워진다. 타인이 육신으로 내 육신에 가한 짓은 본인의 마음이 순결했다면(의지의 자유로운 동의가 없었으므로) 당한 사람의 탓이 되지 않고 순결을 파괴한 것도 아니다.
17.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하지 않은 여자들에게 부정하다는 죄를 씌울 수 없다. 누구든 자신을 죽이는 사람도 살인자가 된다. 악한 짓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죽이는 것도 죄이다.
18. 정신은 거부해도 타인이 구속된 육체에 가하는 폭행과 정욕
18.1. 정절이 육신적인 덕목이 아니고 정신적인 덕목이라면, 비록 육신이 수치를 당하더라도 정절은 상실되지 않는다. 자기 의도를 꺽지 않고 그 욕망에 저항하는 한 무슨 일을 당해도 육신의 덕이 상실되지 않는다.
18.2. "그러므로 여자가 폭력으로 유린당하고 타인의 죄악으로 더럽혀졌더라도 본인이 아무런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자발적 죽음으로 자신에게 벌을 내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니 당하기도 전에 미리 죽음으로 자신을 벌할 이유는 더욱 없다! 타인이 가하려는 그 범죄마저 아직 확실하지 못한 터에 자신을 죽이는 확실한 살인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19. 자신에게 자행된 추행 때문에 자결한 루크레티아
19.1. 루크레티아는 타르퀴니우스 왕의 아들에게 겁탈 당하자 그의 죄상을 남편에게 알라고 자살한다. 로마인들은 그녀를 칭송한다.
19.2. 루크레티아는 정결하고 무죄한 자신에게 스스로 살인을 저질렀다.
19.3. 그녀는 자신의 명예를 지나치게 탐하였고 그 일에 자신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살했다. 그리스도인 여인들은 똑같은 일을 당하고서도 자살하지 않고 타인의 범죄를 두고 자신에게 복수를 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순결을 간직하고 양심의 증언도 간직하였다.
20. 율법에서 "죽이지 못한다"(출 12:13)는 말씀은 타인과 자신 모두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죽이지 못한다"는 말씀은 다른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21. 하나님의 명령에 의거하여 전쟁을 수행하거나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처럼,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에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22. 자결하는 죽음이 위대한 정신력에 해당할 수 있는가
22.1. 자살한 사람이 위대한 정신력을 가졌다고 경탄할 수 있을지 모르나, 역경을 견디지 못하거나 타인의 죄악을 견딜 능력이 없어서 자결했다면 그런 경탄은 온당치 못하다. 위대한 정신은 시련에 찬 삶을 피하지 않고 견딘다.
22.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당할 때 자결이 아니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피할 것을 권유하셨다 .
23. 카이사르의 치하에서 살 수 없다고 자결한 카토의 경우, 그의 친구들은 그의 자살을 유약한 정신의 범죄와 역경을 못 견디는 나약함으로 여겼다. 자신의 아들은 카이사르의 치하에서 살게 하고 자신은 죽음을 택한 것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카이사르의 영광을 질시했거나 부끄러워한 탓이다.
24. 레굴루스는 자살보다 적의 손에 최후를 맞는 편을 택했다. 그는 현세 생명을 멸시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죄악으로 판단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자살을 범죄로 보고 자제해야 한다.
25. 적병의 욕정에 자극받아 자신의 욕정에 동조하게 될까 두려워 죽음을 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구원을 얻을 참회의 여지가 없는 자살의 죄보다 참회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범죄가 낫다.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에 가해진 일은 본인의 탓이 아니다.
26. 예외적이고 특별한 상황이 있지만, 원칙은 아무도 자기에게 자발적 죽음을 자초해서는 안된다.
27. 장차 죄짓지 않기 위해서 자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세례 받은 직후 모든 죄를 용서를 받자 말자 바로 자살하라고 권유해야 한다. 그러나 자살할 만한 정당한 명분은 없다.
28. 하나님은 무슨 판단으로 금욕자들의 육체에 적병의 욕정이 미치도록 허락했을까
28.1.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 그런 일들이 인간적 찬사가 따르는 순결, 절제, 정절의 덕성을 두고 스스로 자만하고 있었던 때문일 수 있다. 사람들 눈에 들려고 했던 바로 그것을 상실하였으나, 상실되어 남에게 과시할 수 없는 것이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일들을 통해서 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된다.
28.2. 만약 성도들의 정결이 육체의 순결을 잃음으로써 사라지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성도들에게 정결이 유린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제3부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로마의 몰락(29-36)
29. 불신자들은 현세적 해악이 닥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너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는다. 그에 대한 대답은 "나의 하나님은 어디나 현존하며, 어디나 전체로 계시고, 어디에도 내포되지 않으며, 은밀히 현재할 수 있고 움직이지 않은 채 부재할 수 있다. 그분이 역경으로 나를 흔들 적에는 나의 공덕을 재보거나 죄를 벌하거나 현세의 해악을 경건하게 견딤으로써 영원한 상을 보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30.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무리들은 실상 도덕적인 생활을 통해 평화를 누리기보다는 향락과 망측한 풍습을 탐닉하려 한다. 대제관이었던 스키피오 나시카는 로마에게 '안심'이 적이고 '공포'가 교사라고 보았다. 카르타고가 망하고 큰 공포가 없어지자 로마에 큰 해악이 발생하였다. 유혈적인 소요가 일어나 국민 화합이 붕괴되었고, 시민전쟁이 발생하여 학살과 약탈이 만연하였다. 로마의 소수 세도가들이 악덕 중에서 지배욕에 사로잡혀 그에 제압당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예속의 멍에로 탄압하였다.
31. 로마인들은 순경 중에서 탐욕스럽고 사치스런 백성이 되었다. 나시카는 원로원이 극장의 객석을 건축하려는 시도를 유보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가 신들이라고 믿었던 존재들의 권위까지 대항하려고 했다면 공연축제를 도성에서 추방하려 했을 것이다.
32. 정령들을 기리는 공연축제와 추행들을 상연하는 연극, 허식들이 인간의 악습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정령들(신들)의 명령에 의해 로마에 제정되었다. 육신의 역병을 진정시키기 위해 공연축제를 개최하라는 명령은 신들이 내렸다. 이는 육신 보다 훨씬 중한 정신과 습속에 역병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도성이 침탈당해도 극장에만 몰려들었다.
33. 스키피오는 비록 성벽이 견고해도 도덕이 붕괴한 이상 공화국이 성세를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악을 스스로에게 돌리지 않고, 그들이 당하는 역경을 그리스도교 시대로 돌리려 한다.
34. 아직 로마인들이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덕이다. 하나님께서 순교자의 처소에서 적병의 손길을 피하도록 보살피셨다.
35.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 중에서 미래의 하나님 도성의 시민들이 숨어 있다. 또 하나님의 도성에도 세상에 순례하는 동안 성도의 영원한 운명을 함께하지 못할 사람을 거느리고 있다. 두 도성은 이 세상에서는 경계가 애매하며, 최후심판으로 갈라지기까지 서로 뒤섞여 있다. 앞으로 두 도성의 시원과 발전, 종말에 관해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은 다른 도성과 대조됨으로써 더 빛을 발할 것이다.
36. 그에 앞서 로마의 쇠퇴가 로마의 제신들을 섬기는 제사를 기독교가 금지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할 것이다. 1)제사가 금지되기 전 해악들을 상기하고, 2)그들의 습속이 어떠했는지, 3)그들의 신이 그들을 기만하고 해를 입혔음을 증명하고, 4)현생의 이익뿐만 아니라 다음 생을 위해 그런 신들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박이 이어질 것이다.
제2권 그릇된 도덕을 낳은 다신숭배
제1부 삶의 규범을 제시하지 못한 다신숭배(1-20)
1. "어리석은 영혼들이 앓고 있는 질병은 너무나 깊고 암담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설명할 만큼 설명해서 확연히 이치가 드러난 다음에도, 지나친 맹목으로 인해서인지 눈앞에 드러난 것마저 깨닫지 못하고, 지극히 끈질긴 완고함 때문인지 옳다고 깨달은 것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의 어떤 말이라도 반박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과 어디까지 대화와 토론을 해야 하는가? 나의 저술에 대해 그들이 트집 잡을 때 답변하지 않아도 된다.
2. 하나님의 도성을 말하면서 맨 먼저 로마가 야만인들의 침략을 당한 일의 원인을 그리스도교에 돌리는 사람들을 논박해야 했다. 실은 전쟁 중 많은 불신자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목숨을 부지하였다. 왜 하나님의 이런 혜택이 불경한 사람들에게도 미쳤는가? 왜 적군들이 자행한 가혹한 짓들이 경건한 사람들에게도 일어났는가? 에 대한 의문에 답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중 어려움을 당한 순결한 여성들을 위로하려는 의도로 글이 길어졌다.
3. 무지한 대중에게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인 탓으로 돌리도록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로마에 알려지기 전에, 로마 공화국이 얼마나 많은 환란에 부딪혀 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던 신들이 과연 환란 중에 해악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4. 그들의 신들은 왜 자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선하게 살도록 아무런 율법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희생제사에 마음을 쓰는 만큼 신들도 인간들의 행실에 마음을 써야 했다. (그들의 대답) 각자 자기 의지로 말미암아 악한 인간이 된다. (반론)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신들은 자기 백성에게 선하게 살아가는 계명을 분명한 설교를 통해 내려주어야 하고, 죄짓는 사람들을 심판하고 질책하며, 징벌하여야 했다. 신들의 축제에서 추잡한 노래와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이는 신들의 이름을 내세워 인간을 기만하는 부정한 귀신들의 존재를 몰라서이거나, 본인이 그런 삶을 살다보니 그런 귀신들을 달래려 했기 때문이다.
5. 사람들이 스키피오 나시카에게 자신의 모친에게 신적 영예를 바치면서 그런 추행을 거행되었으면 하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거절했을 것이다. 최고의 선량을 물색해서 그런 추잡한 제사를 여신에게 바치게 하는 것은 로마인의 정신을 사로잡겠다는 간계가 숨어 있다.
6. 이교도의 신들은 자신들이 숭배 받는 도시나 백성들의 삶과 도덕에 관심이 없었으며, 선량하게 사는 도리를 제정한 적도 없었다.
7. 도덕적 계율에 대해서 철학자들의 학파와 논쟁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로마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의 것이다. 그들은 상당한 정도로 사물의 본성과 윤리도덕에 대해서 탐구했으나 사람들은 그런 것보다 신들이 한 행동을 따라 한다. 유피테르가 다나아이에게 행한 것을 본받아 그런 짓을 한다고 한 기록
8. 혹자는 유피테르의 소행은 신들의 제의에서 전수된 것이 아니라 시인들의 설화로 전수된 것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러나 그런 외설스런 공연을 신들이 응징하지 않았고, 시인의 창작물은 희극과 비극보다 오히려 더 추잡스러웠다.
9.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행적을 허구적으로 각색하는 것을 신들이 흡족히 여긴다고 보았으며 희극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인물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키케로의 <국가론>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우리 삶은 당국자들의 판단에나 합법적 논의에 맡겨야지 시인들의 재능에 맡겨서는 안되며, 지탄을 들을 적에도 법률에 의해 제기되고 대응의 여지가 있고 재판에 의해 변호의 의지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10. 정령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추악한 행위마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도록 해서 인간들이 추악한 일들을 저지르도록 기만하였다.
11. 그리스인들은 희생물을 신들에게 봉헌하는 제관들을 공손하게 대했을 뿐 아니라, 즐겁고 유쾌한 행사를 신들에게 바치는 배우들에게도 공손하게 대하였다.
12. 로마인들은 인간들에 대해서는 시인들이 함부로 발언할 수 없도록 법을 만들었으나 신들에 대한 발언에는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들의 체면보다 자신들의 체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13. 만일 신들이 외설스런 공연을 통해 숭배받기를 바랐다면 그들은 참된 신이 아니며, 숭배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임을 로마인들이 깨달아야 했다. 로마인들은 외설스런 공연을 하는 배우들에게 시민적인 명예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공적인 직책에서 배제시켰다. 그러나 외설 공연 자체를 금하지는 않았다. 로마인들은 애초에 그런 공연축제를 알지 못했으나 신들의 요구로 그것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연극배우를 천대하는 것은 옳은가? 1)그리스인: 신들이 이런저런 성품으로 숭배를 받는다면, 인간들도 그런 성품을 갖추고 있을 경우 공경을 받아야 한다. 2) 로마인: 그런 성품을 갖춘 인간이 공경을 받아서는 안된다. 3) 그리스도인: 따라서 그런 성품을 갖춘 신들이 절대로 숭배를 받아서는 안된다.
14. 플라톤은 도덕성이 강조되는 나라에서 시인들에게 자리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연축제를 통해 숭배받고 싶어 하던 신들보다 훌륭했다.
14.1. 플라톤은 이성에 입각한 국가에서 시인은 진리에 상반되는 자들이므로 국가에서 추방할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신들은 그런 작품이 공연되어 봉헌되기를 바랐다. 그런 정령들에게 신적 공경을 바치기보다는 플라톤에게 바치는 것이 낫다.
14.2. 플라톤은 일체의 시 창작을 단죄하고 있고, 로마인들은 인간들에 대해 악담하는 자유분방함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법률에 입각해서 신들을 능가하고 신들의 잘못을 입증하였다. 플라톤은 어떤 면에서 신들보다 더 낫게 여겨야 한다.
15. 로마인들이 신들을 선정함에 있어서, 어떤 이치가 있기 보다는 차라리 아첨이 있었다. 플라톤을 반신으로 여겼으나 사당을 헌납하지는 않았지만, 로물루스는 반신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들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두고 전속 제관(플라멘)을 두기 까지 했다.
16. 만일 로마인들이 삶에 관한 율법을 자기네 신들에게서 받을 수 있었더라면 아테네인들로부터 솔론의 법을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공화국을 멸망시키는 악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그런 악을 증대시키려고 수작을 부렸다
17. 로마에서 저질러졌던 악행들의 역사적 사례
로물루스-사비나 여자들의 납치 사건,
루크레티아의 남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의 사건,
마르쿠스 카밀루스에 대한 배은망덕
18. 살루스티우스의 역사는 로마인들의 습속을 두고, 외적에 대한 공포로 기강이 잡힌 반면에 안보가 확립되면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평한다.
18.1. 살루스티우스의 역사에 한정하여 고찰한다.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갈 때, 세도가의 부정과 불의로 계층 간 분열과 갈등이 있었다. 2차 카르타고 전쟁과 마지막 카르타고 전쟁 사이에 로마 국민들이 최선의 풍속과 화합을 이루고 살았는데 그것은 카르타고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타르퀴니우스 왕의 추방 이후에도 공정한 법도에 따라 사회가 안정되었는데 이도 타르퀴니우스왕과 동맹한 에트루스키인들의 침략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8.2. 카르타고 멸망 이후 "공화국은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훌륭한 국가에서 점차 변하더니 지극히 사악하고 지극히 추한 국가가 되었다". 평화의 시기에 풍속이 급격히 타락하였다.
18.3.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그들이 당한 해악들을 자기들 신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는데 어째서 현재 겪는 해악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가르침을 주시고 진리의 판단에 입각하여 지극히 영화로운 도성을 건설하신다.
19. 카르타고 멸망 후 로마의 습속은 급속히 추락했다. 청년들이 쾌락과 물욕으로 부패했다. 그때 신들이 로마 백성에게 어떤 계율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된 신성을 내세워 추잡하고 혐오스런 짓을 요구하였다. 반면 그리스도의 계율과 복음은 얼마나 탁월하고 신성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오만과 타락으로 인한 환란에 대해서 그리스도교를 비난하고 있다.
20. 이전의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공화국이 자기들에게 부를 제공해주고 융성하게 해주기만 한다면 국가가 사악하고 추악하게 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들이 열거됨) 이런 행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은 공적으로 삼고, 이런 행복을 이루어주는 사람을 신으로 여긴다.
제2부 공화국의 정의에 이바지한 바 없는 다신숭배(21-29)
21. 로마 공화국에 관한 키케로의 견해는 어떠했는가.
21.1. 키케로의 저작에서 카르타고 멸망 후 공화국의 부패에 대해서 스키피오의 입을 빌어 말한다. "현악기든 관악기든 노래나 성악이든 서로 다른 소리들 사이에는 모종의 화음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 화음이 변화를 보이지 않거나 깨지게 되면 음악에 식견있는 귀가 견디지 못한다. 소리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상부, 하부 및 중간에 놓인 계층들이 의견 조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극히 다른 사람들의 합의로 국가는 통합된다. 음악가들이 노래에서 화음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에서는 화합이다. 이것이 모든 공화국에서 안녕의 가장 건실하고 가장 훌륭한 연결고리이며, 또한 이것은 정의 없이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후에 스키피오는 불의만큼 국가에 상치되는 것이 없으며 공화국은 정의 없이는 통치될 수 없음을 논쟁을 통해 역설한다.
21.2. (스키피오의 주장 계속) 공공사물은 국민의 사물이다. 국민이란 대중의 아무 연합이나 일컫는 것이 아니고 법정의에 대한 동의와 이익의 공유에 의해 결속된 연합이라 규정한다. 법이 선하고 정의롭게 운용될 적에만, 공화국 곧 국민의 사물이 존립한다는 결론에 도달. 정의가 구현되지 않으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21.3. 따라서 로마 공화국은 살루스티우스가 묘사하는 국가가 되었을 때 이미 공화국이 아니었다.
21.4. 키케로는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전에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통해 이미 공화국이 멸망했노라고 탄식했다. 키케로의 생각에 의거하면 한번도 참다운 정의가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공화국은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가 창건자이며 통치자인 공화국에서가 아니면 참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서도 공공의 사물이 국민의 사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22. 로마 신들은 공화국이 악습으로 파멸하지 않게 만드는 데 관심도 없었다.
22.1. 습속의 타락으로 공화국도 아닌 가운데서 신들은 자기 백성들에게 생활과 습속에 대한 계율을 내렸어야 하지만, 정령들은 자기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숭배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22.2. 베르길리우스는 신들이 공화국을 버린 것은 시민들의 다음과 같은 습속 때문이었다고 노래한다. "사당과 제단을 버리고서 모든 신들이 떠나버렸도다, 덕택에 이 제국이 서 있었거늘." 그러나 신들은 애초에 백성들에게 선하게 사는 것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23. 현세사의 변전은 정령들의 호의나 징벌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판단에 달려있다.
23.1. 신들이 자기 욕망을 채우는 데는 관심을 가지고, 욕정을 제어하는 데는 앞장서지 않았던 것의 역사적 예들:
마리우스와 레굴루스-둘다 신들을 섬겼지만, 한 사람은 악했으나 모든 좋은 것을 누렸고, 다른 사람은 선하였으나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메텔루스와 카틸리나-극진한 칭송을 받으면서 현세의 행복을 누리기도 했고, 극악한 사람으로서 불행한 삶을 살기도 했다.
23.2. 마리우스같이 악한 사람의 지상 행복을 누구의 공덕으로 돌릴 것인가? 정령들이 뭔가를 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재량에 따라 허용된 한도에서만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도 하나님의 숨은 섭리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예는 우리로 하여금 지상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게 한다.
24. 정령들이 자기를 도왔노라고 뽐내던 술라의 행위
24.1. 무엇 때문에 신들은 술라와 같이 악한 사람들에게 행운의 징표들을 보여주면서, 술라에게 경고를 내려 그가 사악한 시민전쟁을 일으켜 저지르는 엄청난 악을 바로잡는 일은 하지 않았을까? 정령들은 단지 자기들이 신으로 숭배를 받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24.2. 술라가 타렌툼에서 희생제사를 바칠 때 승리의 징조를 보았고, 카피톨리움이 불탈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정령들에게 예견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에게 '승리는 그대의 것'이라는 말은 하지만 '범죄를 삼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순조로운 성공과 승리가 있었지만 도덕적으로는 파멸하는 결과를 빚었다. 정령들은 그런 예언으로 술라를 더욱 자신들에게 복속되도록 만들었다.
25. 악령들이 죄악을 범하면서 자신의 행동사례를 마치 신의 권위인 양 제시함으로써 인간들을 얼마나 심하게 악행으로 충동하는가?
25.1. 악령들은 스스로 악한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오히려 죄악에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려고 치밀한 계교를 쓴다. 캄파니아의 평원에서 영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로마인들끼리 시민전쟁을 벌이게 했다.
25.2.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에 시민들의 극히 사악한 습속으로 인해 로마 공화국은 이미 망했다. 그들의 신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계율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본보기를 보여 습속을 더욱 부패시키면서 징조를 통해 미래를 아는 것처럼 행사하고, 전투를 도와주는 존재처럼 행동하여 자신들이 현존하는 것처럼 증명해 보였다.
26. 제사의식에서는 정령들의 온갖 악행을 공공연하게 배우지만 선량한 습속에 해당하는 충고는 정령들이 숨어서만 권한다.
26.1. 장엄한 행사와 의례화된 행사들을 통해서 추태와 범행이 공공연하게 신들에게 봉헌되어 실상 그 정령들이 욕정으로 더럽혀진 영들임을 자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은밀한 곳에서 선한 계명을 내리는 척한다.
26.2. 카일레스티스 여신의 사당에서 일어나는 일: 외설로 가득찬 행사, 추잡한 동작과 기교를 배우게 됨.
27. 톨리우스는 국가가 극도의 위험에 처했을 때 열흘 간 축제를 치러 신들을 즐겁게 하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말한다. 향락으로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절제로 신을 화나게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행한 일이다. 적군으로부터 신체에 오는 해악을 두려워하여 신들을 무마시키려고, 지성에 있는 덕성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것은 신들이 먼저 로마인들의 선한 습속을 함락시키지 않고서는, 로마의 성벽을 공략하는 자들에게 맞서서 로마인들을 방어해 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28. 배은망덕한 자들은 교회에서 정결한 의식을 하고, 남녀가 분리되어 앉은 가운데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경청하는 것을 보고 불평한다. 교회에서는 추잡한 행동을 본받으라 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계명을 선포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은덕을 구한다.
29. 로마인들에게 다신숭배를 포기하라고 충고함
29.1. 로마인들에게 아무 오류도 없이 칭송받을 만한 것을 선택할 것을 권고함
29.2. 거짓되고 기만하는 신들에게 아첨하는 행사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로마 시민의 반열에서 제외했다면 그런 아첨을 즐기는 신들도 거룩한 천상 세력의 반열에 들 수 없다. 천상 국가는 비교할 수 없이 찬란하며, 진리, 거룩함, 평화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연극하는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기를 부끄러워했다면, 저곳에서 그런 신들을 받아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만일 행복한 국가에 도달하고 싶다면 정령들과 친교를 피하고, 수치를 즐기는 신들을 믿음에서 제외하도록 하라고 권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