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처럼 사소하다는 것일까?
소설의 첫 문단부터 이토록 무겁고, 잔혹하고, 강렬하게
포문을 여는데 말이다.
예감의 수위를 벗어난 날선 암시에 섬뜩함 조차 느껴진다.
' 10월에 나무가 누래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불어와 잎을 띁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매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ㆍ목재상을 꾸려가며 아내와 다섯명의 딸들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동트기 전부터 시작해 또 다시 어둠이 찾아 올때까지, 석탄가루로 범벅이 된채 석탄을 배달하다 기진한 몸으로 귀가하는 나날이지만, 그래도 그의 집안은 온기로 가득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겨울의 한기가 칼날처럼 파고드는 추위와 불황이 계속되는 가혹한 현실이다
석탄을 배달하는 빌 펄롱은 밀려오는 주문에 녹초가 되지만, 혹독한 시기에 이정도 누리고 사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잔돈을 털어주고, 땔감이 없는 집에 몰래 땔감을 두고 오기도한다.
이런 일들은 그에게 아주 사소한 일상일 뿐이다.
어느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밤새 석탄창고에 갇힌 소녀를 발견한다. "내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 주세요!, 제발 수녀원에서 탈출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강에 몸을 던질 수 있게만 도와달라!" 애원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수녀원을 벗어난다.
그 일을 아내 아일린에게 힘들게 입을 여는데, 아일린은 항거하듯 말한다.
"그 애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 해야 하는 일도 있는거야. 그래야 계속 살아가지!"
수녀원의 거대한 권력 앞에 마을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침묵해 왔던 것이다.
빌 펄롱의 엄마는 열여섯 살때 윌슨 부인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가족들은 외면하고 등을 돌렸지만 윌슨 부인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고 일하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랐고 학교에서는 늘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다.
하지만 윌슨 부인은 항상 펄롱에게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고 용기를 주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도록 해주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수녀원을 멀리서 바라보며 사람들은 수녀원이 자아내는 모습이 마치 크리스마스 카드 같다고 했다.
멀리서만 바라보면 말이다
"나랑 같이 집으로 가자. 세라"
소녀의 손을 끌며 수녀원을 벗어나면서 펄롱은 생각한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빌 펄롱에게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잔돈을 털어주고,
추위로 얼어붙는 이들에게 땔감을 내어주듯,
그저 사소한 일이지 않을까?
엄청난 일을 하겠다는 의도도 아니고
큰 변화를 기대한 것도 아닌,
어쩌면 펄롱에게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소한 일상이진 않았을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작은 관심이
두려움보다 용기를 내는 큰 힘이 되었으리라.
펄롱이 말했듯이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이 소설은 한편의 잘 정제된 시 같다.
거대한 빙산처럼 수면위로 떠올릴 수 없는 감취진 의미들이 수면아래 갈 앉아 있다.
누군가 말했 듯이 그녀의 작품은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기하다.
동감동감하며
이 작품은 21세기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최고의 수작이라 말하고 싶다.
첫댓글 감상을 이리 사소하게 잘 쓰실 수 있나. 그 소설 한번 겁나 땡기네요. 언어가 정제되어 있어서 문학작품 같아요~~
영화로도 나왔네요~ 오늘 할일 생겼어요~^^
주인공 펄롱에게는 사소한 일상을 통해 작가는 인생의 참 의미를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책, 저도 구매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