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환 문학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

이재복

요즘 나오는 동화집이나, 달마다 어린이 잡지에 실리는 작품들을 읽어내기란 여간 고통스런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고통만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언제까지 아동문학 동네에 되풀이 해 나올 것인지 참 안타깝다. 동화나 동시뿐만이 아니고, 아동문학 평론도 읽어내기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다.

요즘 나오는 아동문학 관계 글을 읽을 때마다 우리 아동문학은 질적으로 일제시대보다 더 후퇴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사는 밥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려는 부모나 선생님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자연 아동문학 작품에 대한 수요는 늘어났지만, 출판사마다 좋은 동화집이나, 동시집, 평론집을 내려고 하는데 원고를 구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마지못해 수요가 있으니 책은 찍어내야 하겠기에 외국의 동화책을 주로 번역하여 싣거나, 아니면 좀 수준이 떨어지는 국내작품이라도 책으로 내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우리 아동문학은 다른 문화영역이나 마찬가지로 점점 외국문학에 종속되기 시작하고, 한편 우리 작가들이 써내는 감동 없는 책들이 쏟아져 나와 결과적으로 우리 아동문학은 겉포장만 화려하게 치장하고 속은 보잘 것 없는 문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누구나 지금 우리 아동문학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안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대안 가운데 하나를 찾는다면 역시 우리 근대 아동 문학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로 돌아가 처음부터 우리 아동문학이 흘러온 모습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되짚어 보는 일이다. 다시말해 제대로 우리 아동문학사를 점검하고, 뭐가 잘못된 채 지금까지 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좋은 작업들을 해 보려 했는데 왜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중도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는지, 이런 저런 경우들을 찾아내어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너무 앞으로만 달려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허둥대며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되밟아 가면서 여기 저기 흘려 놓은 많은 문학유산들을 제대로 거두어 들이는 작업을 해 봐야 할 때라는 것이다.

방정환은 1899년에 태어났다. 1999년이면 방정환 탄생 100주년이 된다. 아마도 내년에는 방정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여기 저기서 열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또다시 예년에 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방정환을 영웅화시키는 대형 눈요기 행사만 벌리는 식의 기념식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만약에 방정환의 영혼이 살아 있다면 그 영혼은 결코 내용은 없고 겉보기식의 행사만 요란한 그런 대형행사에는 즐겨 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소박하더라도 방정환의 문학을 오늘 이 자리에 다시 불러내어, 그 방정환 문학 주위에 둘러 앉아, 작품이든 평론이든 같이 읽고 도대체 우리가 무얼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공부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방정환의 영혼은 바로 이런 조금 비좁고 몇 안되는 사람들의 모임이긴 하지만 실제 내용이 있는 모임에 오기를 즐겨할 것이다.

방정환이 남긴 글 가운데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을 들라면 역시 방정환이 소년운동의 한 부문으로 아동문학 운동을 시작하면서 개벽지에 자신의 동화관을 발표한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라는 글을 들고 싶다.

이 글은 방정환이 1923년 《개벽》1월호에 발표한 글이다. 우리 세는 나이로 방정환의 나이 스물다섯 살 때이다. 우리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글은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방정환이 말하는 동화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이 글을 여러 번 읽어 보았는데,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다. 다음 구절이다.

아동의 마음! 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동 시대의 마음처럼 자유로 날개를 펴는 것도 없고, 또 순결한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연령이 늘어갈수록 그것을 차츰차츰 잃어버리기 시작하고, 그 대신 여러 가지 경험을 갖게 되고, 따라서 여러 가지 복잡한 지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 경험과 지식만을 갖는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랴. 경험 그것이 무익한 것이 아니요, 지식이 무익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늘어간다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자랑할 것은 못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경험과 그 지식이 느는 동안에 한편으로 그 순결하고, 그 깨끗한 감정이 소멸되었다 하면 우리는 어쩌랴……. 그 사람은 설사 냉냉한 마르고(枯) 언(凍)지식의 소유자일망정 인생으로서는 역시 타락한 자일 것이다.

이 스물다섯 살의 열정에 찬 청년은 그의 뒤를 이어 아동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확신에 차고 열정에 넘친 충고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은, 혹은 아동문학 운동은 그 본질과는 다르게 방정환이 말하는 대로 아이들의 가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감수성을 빼앗고, 그 자리에 지식만을 자꾸 강요하여, 결국에는 아이들을 냉냉하게 마르고 언 지식인으로 만드는 데 만족해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충고에 이어서 방정환은 우리가 새로 개척하는 아동문학 운동은 이렇게 냉냉하게 마르고 언 지식인을 만드는 운동이 아니라, '천진난만하던 영원한 아동성의 세계로 돌아가 마음의 순결은 비는' 아이들을 만드는 아동문학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아동성의 세계로 돌아가 마음의 순결을 비는, 아이들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작품으로 그 예를 든다면 어떤 작품을 들 수 있을까. 실제 방정환이 제시한 작품들을 놓고, 우리는 그 작품에 대해서 앞으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방정환이 쓴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라는 글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소개해 보자. 그 당시 방정환은 아동문학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의 큰 숙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 세 가지의 숙제에 대하여 방정환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동화집 몇 권이나, 또 동화가 잡지에 게재된대야 대개 외국동화의 역뿐이고, 우리 동화로의 창작이 보이지 않는 것은 좀 섭섭한 일이나, 그렇다고 낙심할 것은 없는 것이라.'하고 말    하면서 방정환은 '다른 문학과 같이 동화도 한 때의 수입기는 필연으로 있을 것이고, 또 처음으로 괭이를 잡은 우리는 아직 창작에 급급하느니 보다

  1. 우리 고래 동화를 캐어내고(다시 말해 옛이야기를 잘 찾아내고)
  2. 외국 동화를 수입하여 동화의 세상을 넓혀가고 재료를 풍부하게 하기에 노력하고
  3. 이런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창작동화를 개척해 나가자 고 말한다.

이 세 가지 숙제는 방정환이 아동문학 운동을 시작하던 그 당시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우리 아동문학 운동이 앞으로 계속되는 한 언제든지 우리 앞에 문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결국 아동문학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세 가지 방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영역의 한 부분부분마다 좀더 세부적으로 풀어나가다 보면 상당히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 세 가지 문제는 각자 한 가지씩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가 먼저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 동화에 대한 바른 생각이 잡혀 있어야, 외국 동화를 보는 눈도 바르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옛이야기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 역사와 겨레의 숨결이 살아있는 우리만의 독특한 삶의 뿌리, 향내가 나는 창작품들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초에는 방정환뿐만이 아니라 아동문학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동화관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이들이 발표한 글들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도 좋겠다. 정홍교가 1926년 매일신보 4월 25일 자에 발표한 글에 〈동화의 종류와 의의〉라는 글이 있다. 이 글은 이재철 씨가 쓴 《한국아동문학연구》(개문사. 1995. 중판. 34쪽)를 보니까 일본인 학자 마쓰무라(松村武雄)의 글을 '무비판적으로 번안 도용하여 발표하였다'는 지적이 있다. 마쓰무라의 원본을 내가 구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글의 어디를 어떻게 그대로 옮겨놓았는지는 확인을 못 하였다. 하여튼 이 글이 정홍교 자신의 생각에 의존한 글인지, 아니면 마쓰무라의 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변역글인지는 원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어느 쪽으로의 글이든지 정홍교는 글을 시작하는 첫머리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아동은 활발한 심적 활동자임으로 지나(支那)는 지나적 동화를 선택하여야 할 것이며 미국이나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각각 자국적 동화를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조선인의 처지에 있어서는 조선적 동화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정홍교는 조선적 동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역시 조선적인 동화란 어떤 동화를 말하는지, 어떤 생각을 담아내고, 어떤 감동을 주는 동화를 말하는지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여전히 궁금하기만 하다. 이 당시 동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선적인 동화에 가까운 한 작품의 예를 들어보였으면 좋겠는데, 실제 글 가운데서는 그런 작품의 예를 들어 놓지는 않았다.

1920년대 초반에 아동문학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은 우리 조선의 동화가 나갈 방향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론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많은 글이 있지만 다음 두 글만을 참고로 하였다.

  1. 동화는 그 소년 아동의 정신생활의 일부면이고, 최긴(最緊)한 식물(食物)이다.(방정환)
     -식물은 먹을 거리, 즉 밥이란 뜻
  2. 아동 자신이 동화를 구하는 것은 결코 지식을 구하기 위함도 아니고 거의 본능적인 자연의 요구이다. 생아가 모유를 요구하는 것과 같이 아동은 동화를 요구하는 것이라, 모유가 유아의 생명을 기르는 유일한 식물과 같이 동화는 아동에게 가장 귀중한 정신적 식물인 것이다.(방정환)
    -동화는 아이들의 영혼, 정신을 살찌우는 밥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3. 화는 영원한 아동성을 잃지 아니한 인류 중의 한 사람인 예술가가 다시 아동의 마음에 돌아와 어느 감격 혹은 현실의 생활을 반성하는 데서 생기는 어느 느낌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이며, 그 감격, 그 반성은 세상 모든 사람의 감격, 반성이 아니면 아니될 것이다. 아니 그 작품에 의하여 누구나 감격의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또는 이 작품에 의하여 누구나 다 자기 각자의 생활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방정환)
    -좋은 동화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감격의 세례를 주고, 각자의 생활을 반성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래서 아동문학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감동을 주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아동문학은 어른의 감상까지도 견뎌내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책방에 꽂혀 있는 그 많은 아이들 책들 가운데 정작 어른의 감상까지도 견뎌내서 어른에게까지 '감격의 세례와 생활의 반성을 주는' 책들이 얼마나 될까.
  4. 동화는 그저 재미로만 될 것이 아니라 항상 그 형식과 내용이 아동을 본위로 하기는 하면서도 일반 세인에게 대하여서도 아동의 심리로써 하는 작자의 일종 감격을 넣어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하므로 동화라는 것은 우리가 아동에게 읽히기 위하여서 지은 것이 되는 동시에 또 일면으로는 일반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동성에게도 읽히어야 할 것이다.(요면자)
    -방정환의 지적과 같은 의미, 즉 동화는 어른의 감상까지도 견뎌내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걸 요면자도 강조하고 있다.
  5. 근일 우리 나라에서 발표되는 동화를 보건데 어떠한 것은 지력만으로 또 어떠한 것은 도덕을 너무 편중히 하는 견지로써 고찰하였으며 어떠한 것은 아동의 심리 또는 동화라는 그것의 발생 발달의 연구를 등한히 하여 가지고 다만 막연히 동화라는 것을 유희시하는 폐가 없지 아니하다.(요면자)
    -지력만으로 된 동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아이들에게 높은 정신을 심어준다면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생각을 알게 모르게 써 놓은 동화들을 말할 것이다. 철학동화니 해서 아이들에게 읽히는 동화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 엉뚱하기만 한 경우를 가끔 본다. 일반문학을 하는 작가들이 쓴 동화들에서도 이런 한계를 많이 볼 수 있다. 도덕을 너무 편중히 한 동화는 바로 교훈동화를 말하는 것이다. 감동은 없고 아이들을 훈화하려고만 하는 이런 동화들은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써 내고 있다. 이런 교훈동화 또는 교육동화는 문학작품으로 동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보통 생활동화라고 하여 나오는 동화들이 그 내용을 보면 대개가 다 그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없고 단지 작가가 아이들에게 훈화하는 도덕적인 충고의 말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활동화들은 엄밀히 말해서 동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동화라는 것을 유희시하는 예는 명랑동화니, 순정동화니 귀신동화니 해서 얼마든지 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다.  
  6. 극히 가난한 사람이 어찌어찌한 기회로써 크고 큰 부자가 되었다든지 우연한 행운으로써 어떠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러한 것이 가장 위대한 사실이나 되는 듯이 찬미한다. 이러한 장난은 말할 것도 없이 아동의 순수한 맘속에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종자를 뿌려두는 것이다.(요면자)
    -오늘날에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무서운 종자를 뿌려주는 문학은 잘 살펴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순수한 문학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잘 살펴보면 아이들의 맘을 병들게 하는 작품은 상당히 많이 있다. 예전에는 아동문학이 일부 전문 작가만의 몫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동문학이 전문작가뿐만이 아니고, 아이들, 학부모, 선생님이 참여하는 시민문학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에 비해서 이런 운동을 바른 방향으로 끌고 나갈, 내용을 채우는 연구는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아동문학 운동이 온 시민이 참여하는 대중문예 운동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에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나갈 위험성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동문학 운동 단체나, 독서운동 단체들이 상업적인 단체들과 결탁하여 아동문학 운동이 건전한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상품의 대상으로만 더 조직화되어 가는 위험성도 나타나고 있다. 점점 확대되고 있는 아동문학 운동에 대하여 새로운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오늘의 아동문학 운동이 잘못된 문학을 아이들에게 구조적으로 퍼뜨리며 주입시키는 그런 유통구조를 재생산하는 운동으로 나가서는 참으로 곤란한 것이다.
  7. 조금이라도 동화를 맘두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민족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여 동화의 발생과 유동의 진상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아동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여 아동과 동화와의 생명적 관계를 붙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문예적 고찰에 의하여 예술로서의 동화의 가치를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광의로의 동화의 교육적 효과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화 그것을 교육적 기구로만 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이에 말하여 두고자 한다.(요면자)
    -동화는 교육적 기구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아동문학에서 교훈은 당연히 그 내용 속에 들어 있어야 하겠지만, 그 교훈이 되는 삶의 알맹이를 어떻게 작품속에 녹여 내느냐가 문제이다. 이원수는 교훈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혹같은 교훈이다. 교훈이 삶의 이야기로 형상화되지 못하여, 교훈만 덩그러니 이야기의 중심에 드러나 있는 동화를 혹같은 교훈이라 말한 것이다. 또 하나는 피같은 교훈이 있다고 말한다. 교훈이 그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가 감동을 통해 가슴에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교훈을 말한다. 주로 교훈동화는 가슴에 호소하기보다는 어린이들의 머리(이성)에 호소한다. 요즘 나오는 동화들을 보면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 필요한 동화라든지,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든지, 너무 덜렁대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든지 하여서 자꾸만 어떤 기능적인 목적을 위해 쓰이는 일종의 예화 자료를 문학작품으로 동화와 혼동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예화 자료들은 동화는 아닌 것이다. 나는 이런 동화를 '잔소리 동화'라고 부르고 싶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필요하듯이, 문학 이전에 도덕시간에 이런 '잔소리 동화'는 하나의 예화 자료로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잔소리 동화'를 문학작품으로 동화와 혼동해서는 곤란하다.

지금까지 방정환과 요면자의 글을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자꾸만 넓혀가기 보다는 좀 좁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보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보자.

방정환은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우리 창작동화가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우선 외국의 동화를 수입해 오는 수입정책에라도 의존해서 우리 동화의 세계를 넓혀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이론적인 이야기는 앞에서 어느 정도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방정환이 말하는 것처럼 초기 아동문학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우리 동화 세계를 넓히기 위하여 외국에서 수입해 온 동화들은 과연 얼마나 감동적인 동화들이었는지, 얼마나 조선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동화들이었는지, 작품을 놓고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게 좋겠다. 여러 사람들이 외국의 동화를 번안하여 들려주었지만 역시 일제시대 당시 가장 먼저 아동문학밭을 개간하기 위하여 삽을 들었던 방정환이 그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해 놓은 수입동화들을 살펴보는 게 좋겠다.

방정환이 소년운동을 벌이면서 번안한 외국동화들은 여러 편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편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방정환이 번안한 서양동화들 가운데, 특히 안데르센의 〈천사〉라는 제목의 동화가 관심을 끈다. 우리는 이 동화를 통해서 방정환의 동화관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방정환은 동아일보 1923년 1월 3일자에 안데르센의 〈천사〉라는 동화를 번안하였다. 1923년 1월이면 방정환이 한창 《어린이》잡지를 창간하려고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하게 뛰어다닐 때이다. 그러니 방정환의 머릿속에는 온통 아동문학에 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방정환은 동아일보에 안데르센의 〈천사〉를 번안하여 실었다.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라는 평론을 개벽지에 실은 것도 1923년 1월이었다. 이때 방정환은 동아일보의 청탁을 받고 아마 여러 편의 동화들 가운데 무슨 동화를 번안하여 실을까 고민했을 것이며 한참 고민 끝에 이왕이면 〈천사〉라는 동화를 싣자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방정환의 뒤를 이어 아동문학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방정환이 왜 하필이면 1923년 아동문학운동을 한창 새롭게 시작하는 그 마당에 안데르센의 〈천사〉를 번안하였을까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선 방정환이 동아일보에 번안하여 실은 〈천사〉라는 동화를 소개하겠다.   

[착한 아헤가 죽으면 천사가 날러와서 그 조고마한 죽은 몸을 두팔로 안고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펴면서 아헤가 좋아하며 동리의 위를 훌훌 날러 넘어가면서 그러면서 한 아름이나 되도록 꽃을 따서 안고 갑니다. 천사가 그 꽃을 하느님께 가지고 가면 그 꽃은 땅 위에 있을 때보다도 훌륭하게 더고와집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 꽃을 받아 안으시고 그 중에 제일 좋은 꽃에 입을 맞추어 주십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꽃은 소리를 치며 깃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어느새 천사는 죽은 아헤를 하늘로 데리고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헤는 끝까지 어렴풋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듣고 하는 동안에 천사와 아헤는 어느 틈에 아헤가 땅 위에서 늘 놀던 동리의 위를 넘어 지나서 아름다운 꽃이 피여 어우러진 꽃밭에 벌써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천사는
[어느 꽃을 꺽어다가 하늘에 갖다 심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헤는 고개를 들어보니까 그릇 앞에는 여태까지 꽃나무 틈에 한 조고맣고 가느다란 장미꽃이 피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장난을 하였는지 반쯤 핀 봉오리 달린 가지는 모두 꺾어져서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헤는 퍽 측은해 하는 듯이 슬퍼하는 얼굴로
[에그 가엾어라. 이런 꽃도 하늘로 가져가면 잘 피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잠자코 그 장미꽃나무를 뽑아들더니
[아아 착한 아헤!]하고 아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헤는 그래도 꿈꾸는 듯이 사랑스러운 두 눈을 반쯤 가슴프레하게 뜨고 있었습니다.
[자아 인제는 다른 꽃도 어서 땁시다]하고 둘이는 한아름이나 되도록 꽃을 많이 땃는데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금잔초와 할미꽃도 정성스럽게 뽑아내였습니다.
[그만하면 훌륭하니 그만해 가지고 어서 가지요]
하고 아헤가 말하니까 천사도 그 말을 듣고 곧 일어섰습니다.
어느 틈에 벌써 밤이 깊어서 더 할 수 없게 사방이 고요하였으므로 둘이는 그냥 그길로 그 동리의 좁다란 골목으로 날러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그 동리에는 ㅇㅇㅇ이 있었든고로 그 거리에는 지저분한 북데기와 ㅇㅇ여진 그릇이 여기저기 내어진체 ㅇㅇㅇ있었습니다.
천사는 그 중에서 화초분 깨여진 조각과 맑은 흙덩이 몇 ㅇ이 한 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라고 손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흙덩이는 화초분에서 굴러나온 것인데 화초나무의 뿌리로 하여 엉기어 있기는 하지만 꽃나무가 마른 까닭으로 길거리에 내어팽겨친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가지고 가십시다. 응? 그 까닭은 내 가지고 가면서 이야기해 볼 것이니……."
하고 천사는 그것을 거두어 모아가지고 다시 날개를 훨훨 펴면서 날러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그 좁다란 동리의 굴속같이 가난한 집에 한 ㅇ살난 아헤가 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그 아헤는 세상에 다니면서부터 항상 병으로 하여 줄곳 누어 앓고만 있었으므로 병이 저윽이 낫을 때에도 지팽이를 짚고 방속에서 두 서너번 왔다갔다 하기도 간신히 하는 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굴속같은 오막살이 속에서 거의 해를 ㅇㅇ 이고 지냈습니다. 여름이 되면 잠깐 동안은 이 굴속 집에도 간신히 한 반시간을 볕이 들어비치는데 그럴 때에는 그 불쌍한 아헤는 병석에 누운 채로 오래간만에 햇볕을 쪼이면서 가늘어가는 손을 앙상하게 얼굴 위까지 가저다가 햇볕에 비추어서 그 손의 살속에 겨우 조금 남아있는 피가 붉게 비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불쌍한 신세였는고로 바깥 세상의 산이 어떻고 바다가 어떠한 것도 도무지 알 길 없고 오직 한번 이웃집 아헤가 느티나무 가지 하나를 꺽어다 주었으므로 나무잎 하나 수풀빛이 파란 것인 줄을 알 뿐이었습니다.
그후로는 그 이웃집 아헤에게 받은 느티나무 가지를 머리 맡에 꽃아놓고 자기가 볕도 쪼이고 새도 울고 하는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을 자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후 얼마 지난 후에 이웃집 아헤가 이번에는 여러가지 화초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 중에 다만 하나가 뿌리가 달려있었든 고로 아헤는 그것을 분에다 심어 달라하여 늘 드러누워 있는 자리 옆에 들창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심겨진 화초는 점점 크게 자라고 새싹이 돋아서 해마다 꽃이 피었습니다. 그 화초가 그 불쌍한 아헤에게는 넓고 놀기 좋은 마당같이 생각되어 이 세상에 다시 없이 귀중한 것으로 알게 되어서 병든 몸에는 다만 하나뿐인 동무인 그 화초를 물도 뿌리고 햇빛도 쪼여주고 하면서 그것을 위하여 적지 아니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화초의 꿈을 꾸기도 하고 좋은 향긋한 냄새를 맡기도 하면서 그 꽃을 보고는 기뻐하면서 스스로 제 신세를 위로해 가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쌍한 아헤는 기어코 죽어버렸답니다. 벌써 그 아헤가 하늘 나라에 온 지 일년이나 되는데 그 꽃은 그냥 그대로 그 들창 위에 놓인 채로 내버려 있더니 이윽고는 꽃과 나무가 마르니까 그냥 내여 팽겨치게 되야 땅 위로 굴러 나와서 세어졌습니다. 그것이 아까 우리가 끌어모아 가지고 온 이 불쌍한 꽃뿌리랍니다. 이렇게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임금님의 정원에 놓여있는 훌륭한 화초보다는 훨씬 더 아헤를 위로해 주고 있었답니다."
날러가면서 천사의 이 불쌍한 이야기를 듣고 그 품에 안겨 있던 아헤는 천사에게 "어떻게 그 전말을 샅샅이 자세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천사는 곧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자세 알기만 해요. 그때의 그 병든 불쌍한 아헤는 실상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나랍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이 꽃을 잊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안겼든 아헤는 눈을 번쩍 뜨고 그 천사의 어여쁘고도 부드러운 얼굴을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습니다.
마침 그 때 두 사람은 벌써 찬란한 하늘나라에 당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안겨온 죽은 아헤를 받아안고 다른 천사들과 같이 잔등 위에 희고 부드러운 큰 날개를 붙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천사가 가져온 꽃을 받아서 가슴에 안고 꺽어진 장미꽃과 마른 꽃뿌리와 다른 모든 꽃 위에 입을 맞추어 주시니까 꽃은 모두 일시에 기꺼운 소리를 치고 하나님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래소리는 어느 때까지든 유창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천사가 된 아헤의 소리도 말렀던 화초의 소리도 그 속에섞여 있었습니다.(안더-슨 집에서 역)

방정환은 왜 안데르센의 〈천사〉를 그 당시 우리 아이들에게 읽히려 했을까. 〈천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방정환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에 등장하는 자연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뭔가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바로 일제시대 우리 어린이들, 우리 빼앗긴 자연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방정환은 이런 〈천사〉같은 동화를 통해서 이렇게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뭔가 구원의 희망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끝모를 어둠속에 내던져저서 어찌할 수 없이 해체된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그 고통의 어둠을 지나고 나면 우리는 언젠가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방정환은 아동문학은 어린이들에게 구원의 희망을 주는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동문학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어린이들에게 구원의 희망, 다시말해 부활의 정신을 길러주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안데르센의 〈천사〉는 어린 아이들에게 한 번쯤 읽어줄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천사〉라는 동화가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과 아울러, 역시 이 동화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고통받던 아이들이 나중에 하늘에 올라가 구원을 받는 이런 구조를 옛이야기에서는 '감천부활구조'라고 한다. 하늘이 감동하여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해준다는 것이다.(《한국설화연구》. 최운식. 집문당.1991. 230쪽)

옛이야기나, 창작동화나 그 문학이 갖고 있는 본질은 결코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 부활의 정신을 길러주는 문학이 되어야 하는 건 아동문학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무인데, 그 부활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옛이야기 형식에서 자주 보이는 감천부활구조가 있을 것이요,또 하나는 창작동화에서 보이는 뭔가 납득할만한 인과관계를 갖고 현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부활구조가 있을 것이다.

감동을 주는 창작동화는 〈천사〉에서 보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가 구원을 받는다는 이런 식의 조금은 종교에서 따온 듯한 도식적인 관념에 의존하기 보다는 삶의 현장 안에서 그 목숨이 서로 부대끼며 이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승화시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부활의 정신을 아이들에게 감동깊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라면 이원수의 〈루루와 라일락〉이라든가, 〈쑥〉, 그리고 권정생의 〈강아지똥〉이나, 윤기현의 〈서울로 간 허수아비〉같은 작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방정환은 1931년에 세상을 떠났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으로 아깝다. 그래서 방정환은 누구에게나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방정환이 소년운동을 시작하면서 이런 〈천사〉를 번안하여 새해를 맞이하는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려 한 것을 보면 우리에게 영원히 청년으로 기억되는 방정환의 그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방정환이야 말로 그 당시 누구보다도 난쟁이로 상징될 수 있는 그 어렵고 힘든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자기 온 몸을 던진 방정환은 결코 자기 스스로 영웅이 되려한 사람이 아니었다. 방정환은 영원히 낮은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존재하려한 그야말로 어린 난쟁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로 존재하려 한 방정환을 뒤에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고, 그 영웅의 그늘 안에 안주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방정환은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되며, 그 자신 영원히 어린이로 부활하여 자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그 생명을 이어가는 열린 존재인 것이다.

방정환이 그 당시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겸손하게 수용하였는 지는 한정동이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소금쟁이〉란 동요가 일본사람의 작품을 번안한 번안동요인지, 아니면 창작동요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그 당시 동아일보 문단시비란(1926.9.23 이후)에 실렸던 소금쟁이 논쟁만 봐도 알 수 있다. 방정환은 엉뚱하게 소금쟁이 논쟁에서 표절시비에 말려들게 되었는데, 그때 방정환이 보인 태도를 봐서도 충분히 알 수는 것이다.

사제는 먹히는 존재'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 종교의 길을 걷는 사제들분일까. 방정환이야말로 그 당시 어린이들에게 완전히 먹힌 존재였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가슴에서 영원히 부활한 생명의 존재인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말을 했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조급하게 쫓기듯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발걸음을 조금 멈추고,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비추어 보기 위해서라도 방정환의 삶과 문학속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방정환은 그 자신 스스로 어린이의 삶과 문학을 위해 먹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 사람이니, 방정환이 어린이의 삶에 던진 그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바탕으로 해서 벌였던 여러 가지 운동의 결과들을 하나 하나 곱씹어 먹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정환의 삶과 문학이 우리들 가슴에도 들어와 하나의 씨앗이 되어 꽃피어나게 해야 할 것이다.  

요즘 같이 우리 아동문학운동이 겉보기에는 상당히 화려하고 분주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같은데 그 내용을 보면 너무나 속이 비어있는 허전한 상황에서 새삼 방정환의 삶과 문학이 그립고 소중하게 생각된다.

방정환이 번안하였던 외국동화에 대하여 이 밖에도 여러 작품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라는 작품 하나만을 살펴보았는데 방정환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편집자의 부탁을 받고 한 번을 쓰기로 하였는데, 두서 없이 이야기를 하다 두 달이나 쓰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자리를 내가 빼앗은 것 같아 여간 죄송한게 아니다.

 

// 아동문학평론가 이재복 글

 

 

 

망우리 하면 공동묘지를 떠올린다. 공원묘지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공동묘지는 웬지 오래 머물고 싶다거나 일부러 지나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망우리 공동묘지는 좀 다르다. 특히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1899∼1931)이 묻혀 있는 망우동 산57-1번지일대는 공동묘지 http://cafe.daum.net/niegroup라는 느낌보다는 멀리 굽이쳐 흘러가는 한강과 그 주변에 펼쳐진 강변의 여러 경관이 그림처럼 바라보이는 전망대라는 느낌이 강하다.

해발 281m의 이 망우산 일대에는 소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 삼림욕에 좋은 다양한 수목이 가득한 데다 초롱꽃, 구절초, 참나물, 곰취, 한라구절초 등 각종 `야생초'들이 이곳저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29600여 기의 분묘가 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의문이 갈 정도이다.

5.2㎞의 긴 능선을 따라 이어진 순환로는 온종일 산책객들로 붐빈다. 길가에 세워진 연보비도 읽어 보고 가끔씩 만나는 약수터에서 물도 마시며 천천히 걷다보면 벌써 몇 번째 이 산을 돌고 있는 걷기운동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 산의 정상에 아동문학가 소파 방정환의 묘가 있다. 묘지 입구 길가의 돌에는 `어린이 날의 약속' 중에서 따온 한 구절의 글이 새겨져 있다.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 가며 기르십시오.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살펴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책을 늘 읽히십시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

돌에는 방정환 선생을 아동문학가라는 소개와 함께 문화운동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1899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지금의 당주동에서 방경수 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방정환은 1913년 미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상업 학교에 진학을 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퇴했다. 1919년 3월 1일 3.1독립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 선언문을 돌리다 일본 경찰에게 잡혀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했다. 일본 경찰에 쫓기게 되자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1923년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과 뜻을 모아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같은 해 5월 1일을 첫 어린이 날로 정했다.

귀뚜라미 귀뜨르르/가느단 소리/달님도 추워서/파랗습니다.//울밑에 과꽃이/네 밤만 자면/눈 오는 겨울이/찾아온다고//귀뚜라미 귀뜨르르/가느단 소리/달밤에 오동잎이/떨어집니다.
`귀뚜라미' 전문

귀뚜라미 소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이 쓸쓸하다. 달님도 추워서 파랗고 오동잎도 떨어지는 가을 밤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한데, 귀뜨르르 귀뜨르르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는 밤을 방정환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냈을 것이다.

http://cafe.daum.net/niegroup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 청년구락부, 소년운동협의회 등을 조직하고 어린이 운동에 전념하던 그는 동시, 동요, 동화, 동극을 직접 지어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1923)에 발표하고 〈신청년(新靑年)〉 〈신여성(新女性)〉 〈학생(學生)〉 등의 잡지를 편집, 발간하여 문화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1931년 7월 23일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3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 누르지 말자
30년 40년 뒤진 옛사람이
30년 40년 앞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사람을 위하고
떠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만
맑은대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약관 3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어린이 문학의 대표 작가로서 소년 운동가로서 어린이 입장에서 어린이를 위해 온 힘을 다한 소파 방정환의 묘는 찾는 이들이 많다.
서예가 정주상의 글씨로 새겨진 묘비 뒷면에는 1983년 어린이날 이재철이 방정환 선생의 업적을 기려 지은 비문이 빼곡이 씌어 있다. 그리고 묘지의 봉분은 흙과 잔디 대신 가족들이 돌로 조각한 기념물이 설치돼 있는데 `동심여선(童心如仙)'이란 글로 소파 선생의
인품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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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인물 어린이날 노래와 방정환 선생
구봉산 추천 0 조회 78 08.05.05 08: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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